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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4)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20.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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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마슬로바를 포함한 죄수 이송대는 3시에 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일행이 감옥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같이 역까지 따라가기 위해 네플류도프는 12시 전에 감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 네플류도프는 소지품이며 옷과 서류 등을 챙기면서 일기장에서 최근에 쓴 부분을 드문드문 읽어 보았다. 그 마지막 부분은 그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직전에 쓴 것으로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카추샤는 나의 희생을 바라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려 든다. 그녀도 이겼고 나도 이긴 것이다. 그녀에게 내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믿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그녀는 부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몹시 괴로운 동시에 즐거운 일을 경험했다. 그녀가 병원에서 좋지 못한 짓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에 빠졌다. 이렇듯 못 견디도록 괴로울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와 이야기할 때 혐오와 증오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 후에 문득 자기 자신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가를 깨닫게 되자, 나 자신에 짜증이 났고 동시에 그녀가 불쌍하게만 여겨졌다. 나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우리가 항상 제때에 각자의 흠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선량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 날짜로 이렇게 써놓았다. '오늘 나탈리아 누님을 방문하여 자기 만족 때문에 악의에 찬 말을 퍼부어서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낡은 생활이여 안녕, 영원히 안녕. 여러가지 느낌이 너무도 많이 겹쳐 있어서 하나로 정리할 수가 없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네플류도프는 매형의 기분을 언짢게 한 것을 후회했다.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가서 사과를 해야지.'

그러나 시계를 들여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죄수 이송대가 출발하는데 늦지 않기 위해서 서루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히 떠날 채비를 한 다음, 하숙집 문지기와 같이 떠날 페도샤의 남편 타라스에게 짐을 지워서 직접 역으로 가게 하고는, 네플류도프는 처음에 눈에 띈 마차를 집어타고 감옥으로 행했다. 죄수 열차는 네플류도프가 탈 우편 열차보다 두 시간 앞서 출발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하숙비를 다 치렀다.

7월의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무더웠던 전날 밤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거리의 포석과 집집의 돌벽과 함석 지붕들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공기 속에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간혹 바람이 불어올 때는 먼지와 폐인트 냄새가 뒤섞인, 역하고 후근한 공기가 몰려왔다. 거리에는 행인들도 드물었다. 있어도 그들은 집 그늘 밑으로만 걸어다녔다. 까맣게 햇볕에 그을린, 낡은 인피 짚신을 신은 도로 인부들만이 길 한복판에 앉아서 타는 듯한 모래바닥에 깔린 돌을 망치로 다지고 있었다. 표백이 덜된 흰 제복을 입은, 침울해 보이는 경찰관은 오렌지색의 끈이 달린 권총을 차고, 기운 없이 발을 바꿔 디디면서 길 한복판에 부루퉁한 채 서 있었다. 흰 두건을 쓰고 그 사이로 귀가 삐져나온 말들이 끄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쪽만 차일로 가린 철도 마차들이 방울 소리를 울리면서 거리를 덜거덕덜거덕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왕래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감옥에 도착했을 때, 죄수들의 대열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었고, 감옥에서는 아침 4시부터 시작된 이송 죄수들의 성가신 인계 사무가 계속되었다. 이번에 이송되는 죄수는 남자 623명에다 여자가 64명이었다. 이들 전원을 일일이 죄수 명부와 대조하고 병약자를 골라내서 호송병에게 인계시켜야 했다. 신임 소장과 두 명의 부소장, 의사와 그의 조수, 그리고 호송 장교와 서기가 바깥뜰의 담장 그늘에 마련된, 서류와 사무용품으로 쌓인 테이블 곁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씩 호명해서 연달아 나오는 죄수들을 검사하고 심문하고는 장부에 적어 넣었다.

테이블은 벌써 반쯤이나 햇빛으로 덮여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다 바람은 없고 서 있는 죄수들의 입김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이야. 언제 끝날지 모르겠군!" 키가 크고 몸집이 뚱뚱한, 얼굴이 붉고 어깨가 치켜지고 팔이 짧은 호송 장교는 수염에 덮인 임으로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이면서 이렇게 뇌까렸다. "이거 정말 못해 먹겠는걸. 대체 어디서 이렇게 숱하게 긁어모아 왔어? 아직도 많이 남았어?"

서기가 장부를 조사했다.

"아직 남자 죄수 24명에 여죄수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야, 뭘 우물쭈물해! 빨리 와!" 호송 장교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 한자리에 몰려 있는 죄수들을 향해서 외쳤다.

죄수들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그것도 그늘이 아니라 뙤약볕에서 세 시간 이상이나 서 있었다.

감옥 안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문 옆에 여전히 총을 든 경비병이 서 있었고, 죄수들의 짐과 병약한 죄수들을 태워 갈 마차가 스물네 대 대기하고 있었다. 한 모퉁이에는 죄수들의 친척과 친구들이 한번 만나 보기라도 하려고, 그리고 될 수만 있으면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고 이송되어 가는 사람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려고 죄수들이 나오는 것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도 이 사람들 속에 끼여 있었다.

그는 거의 한 시간이나 서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문 안으로부터 쇠사슬 소리, 발 소리, 호령하는 소리, 기침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5분 가량 계속되고 있는 동안 간수들이 옆문을 들락날락했다. 이윽고 출발 명령이 내려졌다.

감옥문이 '쾅'하고 천둥같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자, 철거덕 쇠사슬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흰 하복에 머스킷 총을 든 호송병들이 밖으로 나와서, 익숙하고 잘 훈련된 동작으로 문 앞에서 널찍하고 둥근 열을 지어 정렬했다. 정렬이 끝나자 새로운 구령 소리가 들리고 박박 깎은 머리에 핫케이크 같은 모자를 쓴 죄수들이 어깨에 배낭을 메고 쇠고랑을 찬 발을 질질 끌면서 한 손으로 등의 배낭을 붙들고 또 한손으로는 보조를 맞추어 흔들면서 두줄로 서서 걸어나왔다. 처음에는 남자 죄수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모두 회색 바지에 등에 번호가 찍힌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젊은이, 늙은이, 여윈 사람, 뚱뚱한 사람, 창백한 사람, 얼굴이 붉은 사람, 검게 탄 사람, 윗수염을 기른 사람, 턱수염을 늘어뜨린 사람, 턱수염이 없는 사람, 러시아 사람, 타타르 사람, 유대 사람 -- 그들은 모두 발에 찬 쇠고랑을 쩔그렁거리며 마치 여행을 떠나기나 하듯이 씩씩하게 팔을 흔들면서 나왔다. 그러나 열 발짝쯤 나오더니 멈춰 서서 조용히 네 사람씩 열을 지었다. 뒤이어 계속해서 똑같이 머리를 박박 깎고 똑같은 복장을 한 죄수들이 발에 쇠고랑만 안 찼다 뿐이지 두 사람씩 수갑에 채인 채 줄지어 나왔다. 이들은 유형수들이었다. 그들도 씩씩하게 걸어나오더니 걸음을 멈추고 네 사람씩 줄을 지었다. 다음은 농민 조합원들이었고 뒤이어 같은 순서로 여죄수들이 나왔다. 선두는 회색 죄수복에 수건을 쓴 징역수들이었고, 그 뒤에는 자원해서 유형수를 따라가는 도시 복장과 시골 복장을 한 여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회색 죄수복 자락에다 젖먹이를 싸 안은 여자들도 몇 명 끼여 있었다.

여자들과 함께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이 따라나섰다. 이 아이들은 말무리 속의 망아지처럼 여죄수들 사이에 붙어 따라갔다. 남자 죄수들은 이따금 기침을 하고 간혹 말을 주고받을 뿐 묵묵히 서 있었으나, 여죄수들은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마슬로바가 나왔을 때 이내 그녀임을 알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인파 속에 곧 묻혀 버렸다. 인간다운 모습을 잃고 아이들을 거느리고 배낭을 메고 남자 죄수들의 뒤를 떠들어 대면서 따라가는, 여자다운 데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동물의 인원 점호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호송병들이 아까의 인원수와 맞추어 보려고 다시 인원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 인원 점검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여러 죄수들이 이곳저곳 자리를 떠나서 인원 점검이 무척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호송병은 욕설을 퍼붓고, 얌전하면서도 증오에 찬 죄수들을 떼밀면서 다시 점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호가 끝나자 호송 장교가 뭐라고 호령했다. 그러자 죄수들의 무리 속에서 대혼잡이 일어났다. 병약한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마차 쪽으로 달려가서 먼저 배낭을 얹어놓은 다음 올라타기 시작했다. 앙앙 울어 대는 젖먹이를 안은 여자와, 자리 다툼을 하는 철부지 아이들과, 침울한 표정의 죄수들이 제각기 짐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사람의 죄수들은 모자를 벗어들고 호송 장교한테로 걸어가서 뭔가 부탁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들은 짐마차에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었다. 호송 장교는 부탁하는 죄수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없이 담배만 뻑뻑 빨고 있더니 느닷없이 짧은 팔을 한 죄수 앞에 휘둘렀다. 죄수는 때리는 줄 알고 박박 깎인 머리를 움츠리면서 비켜섰다.

"뻔뻔스런 소리를 하면 맛을 보여 줄 테다!"하고 장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은 걸을 수 있잖아!"

장교는 발목에 쇠고랑을 찬 키가 후리후리하고 비틀거리는 노인 한 사람을 태우기로 했다. 이 노인은 핫케이크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으면서 마차옆으로 갔으나, 노쇠한 다리에 쇠고랑이 채워져 있어서 다리를 쳐들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마차에 기어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마차에 앉아 있던 시골 여자가 손을 잡아 끌어 주는 네플류도프는 보았다.

모두 짐마차는 배낭으로 가득 찼고, 그 배낭 위에 타는 것을 허가받은 죄수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호송 장교는 모자를 벗어 이마와 대머리와 붉은 살찐 목덜미를 손수건으로 훔치고는 성호를 그었다.

"앞으로 갓!"하고 그는 호령했다.

호송병들은 총을 절그럭거렸고, 죄수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성호를 긋는 사람도 있었다. 전송나온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자, 죄수들도 이에 호응하여 외쳐 댔다. 여자들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흰 튜닉을 입은 호송병으로 호위된 죄수 이송대는 쇠사슬로 묶은 발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송병이 선두에 섰고, 그 뒤로 쇠고랑을 찬 징역수들이 절그렁 소리를 내면서 네 줄로 뒤따르고, 그 다음은 유형수와, 두 사람씩 손에 수갑을 찬 농민 조합원, 그리고 여죄수들이 따랐다. 또 그 뒤를 배낭과 병약자들을 태운 짐마차가 따르고 있었고, 한 마차 위에서는 얼굴을 가린 여자가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