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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7)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25.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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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보초가 서 있는 소방서 옆을 지나 경찰서(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소방서와 경찰서가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에 도착하자, 죄수가 탄 마차는 경찰서 구내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 멈추어 섰다.

구내에서는 소방수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지껄이면서 마차를 씻고 있었다. 마차가 멎자 몇 사람의 경관이 가까이 와서 마차 주위를 둘러쌌다. 숨이 끊어져 가는 죄수의 겨드랑이와 다리에 손을 돌려 삐걱거리는 마차에서 안아내렸다.

죄수를 실어 온 경관은 마차에서 내리면서 저린 팔을 흔들고 모자를 벗고나서 성호를 그었다. 죽어 가는 죄수는 문에서 층계를 통해 2층으로 운반되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죽어 가는 죄수를 안고 들어간 좁고 조그마한 방에는 침대가 네 개 놓여 있었다. 두 침대에는 긴 잠옷을 입은 두 명의 환자가 앉아 있었다. 하나는 붕대로 목을 감은, 입이 비뚤어진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폐병 환자였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 있었다. 그때 반짝이는 눈에 노상 눈썹을 움직거리는 작달막한 남자가 속옷과 양말 바람으로 총총걸음으로 죄수의 곁에 다가왔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죄수를 바라보더니, 다음엔 네플류도프를 보며 큰 소리로 깔깔거리고 웃었다. 경찰서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정신병자였다.

"모두들 나를 위협하려는 거지?"하고 미찬 사람은 말했다. "안 돼. 그렇게는 안 될걸."

시체와 다름없는 죄수를 운반해 온 경관에 뒤이어 경찰서장과 병원의 조수가 들어왔다. 조수는 죄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아직 굳어 버리지는 않았지만 벌써 죽은 사람의 손과도 같은 창백한 얼룩투성이의 손을 잠시 잡고 있다가 놓았다. 손은 힘 없이 죄수의 배 위로 떨어졌다.

"틀렸습니다." 조수는 머리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으나, 다만 규정대로 후줄근한 땀에 젖은 죽은 사람의 너절한 셔츠를 헤치고 귀언저리의 곱슬머리를 걷어올리면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싯누레진 가슴에다 귀를 갖다 댔다. 모두들 말 없이 서 있었다. 조수는 몸을 일으키고 다시 머리를 흔들면서, 떠 있는 채 움직이지 않는 파란 눈꺼풀 하나를 손가락으로 만져 보고 다시 눈꺼풀도 만져 보았다.

"위협하려고 해보았자 소용 없어." 미친 사람은 쉴 새 없이 조수에게 침을 뱉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어떻소?"하고 경찰서장이 물었아.

"어떠냐고요?" 조수가 되뇌었다. "시체실로 치워야 합니다."

"잘 봐요. 틀림없소?"하고 경찰서장이 물었다.

"너무 늦었습니다."하고 조수는 무엇 때문인지 열어젖뜨린 죄수의 가슴을 여미면서 말했다.

"그러나 일단 마트베이 이바노비치를 불러다가 보이도록 합시다. 페트로프, 갔다와요."

조수는 이렇게 말하고 시체에서 물러섰다.

"시체실로 운반해!"하고 경찰서장은 말했다. "자네는 사무실에 가서 인수증에 서명을 하게." 시종 죽어 버린 죄수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호송병에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알겠습니다."하고 호송병은 대답했다.

순경들은 시체를 들어서 다시 층계 밑으로 운반했다. 네플류도프도 뒤따라 가려고 했으나 미친 사람이 그를 가로막았다.

"당신은 악당패들하고 한패가 아닐 테지. 그럼 담배를 한 대 줘."하고 그는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담배를 꺼내 주었다. 미친 사람은 눈썹을 움직거리면서, 모두들 최면술을 써서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빠른 말씨로 말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죄다 나의 적이기 때문에, 신들리게 해서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있단 말이오!"

"실례합니다."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하고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시체를 어디로 가져가는지 알고 싶어서 마당으로 나갔다.

시체를 둘러멘 경관들은 벌써 마당을 지나 지하실 입구로 들어가는 참이었다. 네플류도프도 그리로 가려고 하자 경찰서장이 불러세웠다.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아니오, 별로."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볼일이 없으시면 돌아가 주십시오."

네플류도프도 그의 말대로 순순히 자기 마차 있는 데로 되돌아갔다. 마부는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를 흔들어 깨우고 다시 역을 향해서 마차를 돌렸다.

그가 백 보도 채 가기 전에, 또다시 총을 든 호송병이 호위한, 이미 죽은 것 같은 죄수가 또 한 명 누워 있는 짐마차와 만났다. 죄수는 마차 안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핫케이크 같은 모자가 긴 턱수염을 기른 얼굴을 코언저리까지 덮고 있었는데, 박박 깎은 머리는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건들건들 흔들리며 마차에 부딪치고 있었다. 두꺼운 장화를 신은 마부는 짐마차와 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네플류도픈 자기 마부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이게 무슨 짓이람!" 말을 세우면서 마부는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마차에서 내려서 짐마차를 따라 다시 소방서 옆을 지나 경찰서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당에서는 소방수가 마차를 씻고 있었고, 그 옆에 키가 크고 수척한 소방서장이 퍼런 줄을 두른 모자를 쓰고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서서, 엄격한 태도로 소방수가 끌어내오는, 목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찐 밤색 수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앞다리 하나를 절었다. 소방서장은 앞에 서 있는 수위에게 화가 잔뜩 나서 뭐라고 말했다. 경찰서장도 거기에 서 있었다. 또 다른 시체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그는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어디서 주워 왔어?" 그는 못마땅한 듯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스타라야 고르바코프스카야 거리에서입니다." 경관이 대답했다.

"죄수요?" 소방서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벌써 두 사람째로군." 경찰서장이 말했다.

"암, 그러게 마련이지. 이렇게 덥고 보면." 소방서장은 이렇게 말하고는 절룩거리는 누런 말을 끌어온 소방수에게 고함쳤다. "구석 마구간에 넣어 둬! 말을 병신으로 만들다니. 말은 너보다도 훨씬 비싸단 말이야."

시체는 먼저와 같이 경관이 마차에서 안아내려 병실로 운반했다. 네플류도프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그 뒤를 따랐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경관 하나가 물었다.

그는 대꾸도 않고 시체가 운반된 방으로 갔다.

미친 사람은 나무 침대에 걸터앉아서 네플류도프가 준 담배를 맛있게 빨고 있었다.

"아, 돌아오셨구려!" 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깔깔거리고 웃어 댔다. 그러나 시체를 보더니 입을 다물고 말았다. "또야?"하고 그는 말했다. "진저리가 났어. 난 어린애가 아니란 말야, 그렇잖아?" 그는 질문이라도 하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네플류도프를 바라보았다.

네플류도프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에는 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앞서의 죄수는 잘생기지 않았으나, 이번 죄수는 얼굴이나 몸집이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이미 새파래진 입술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고, 많지 않은 턱수염은 얼굴 아래쪽을 둘러싸고, 깎인 머리 쪽으로 조그맣고 귀여운 귀가 보였다. 얼굴 표정은 조용하고 단아하고 선량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정신 생활의 어떤 가능성이 이 청년에게서 분명히 빼앗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손과 쇠고랑을 채운 발의 골격과, 균형이 잡힌 사지의 기운찬 근육으로 보아서 그가 얼마나 아름답고 강하며 민첩한 인간이었나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가령 동물로 견주어 보더라도, 아까 병신을 만들었다고 그토록 소방서장이 화를 낸 밤색 말보다는 훨씬 완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를 죽여 버렸으면서도 누구 한 사람 인간으로서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쓸모없이 죽어 버린 노동용 동물만큼도 애석해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들의 가슴속에 일어난 유일한 감정은, 썩을 우려가 있는 시체를 치워야 할 수고에 대한 성가심뿐이었다.

조수를 데리고 의사와 경찰서장이 들어왔다. 의사는 어깨가 떡 벌어진 튼튼해 보이는 사내로 비단 양복을 입고 있었다. 좁은 바지는 그의 굵은 넙적다리에 꼭 끼었다. 서장은 땅딸막하고 공처럼 둥글고 붉은 얼굴에다가 양볼을 불룩하게 해서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뿜는 버릇 때문에, 그 얼굴이 한층 둥글게 보였다. 의사는 시체가 놓여 있는 나무 침대 옆에 앉아서, 아까 조수가 하던 것처럼 손을 만져 보기도 하고 심장에 귀를 갖다 대보기도 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바지를 잡아당겼다.

"완전히 시체가 되어 버렸습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서장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내뿜었다.

"어느 감옥에서 왔지?" 그는 호송병에게 물었다.

호송병은 뭐라고 대답하면서 시체의 발목에 채운 쇠고랑을 가리켰다.

"풀어 주도록 하지. 마침 대장장이가 있으니까."하고 서장이 말했다. 그는 다시금 볼을 불룩하게 하더니 문 쪽으로 가서 천천히 숨을 내뿜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네플류도프는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안경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됐느냐고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닙니까? 겨울 동안 운동도 하지 않고 햇빛을 못 보다가 오늘 같은 날에 떼를 지어 행진을 하니, 게다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그래서 일사병에 걸린 겁니다."

"그럼 왜 이런 날에 호송하는 겁니까?"

"그건 저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구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오?"

"관계는 없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실례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의사는 이렇게 말하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지를 아래로 잡아당기더니 병자들의 침대로 갔다.

"좀 어떤가?"하고 그는 목에 붕대를 감고 입이 비뚤어진 창백한 사나이에게 물었다.

한편 미친 사람은 자기 침대에 앉아서 담배를 끄더니, 연방 의사를 향해서 침을 뱉어 댔다. 네플류도프는 마당으로 내려가서 소방서의 말들과, 닭들과, 놋쇠로 만든 헬멧을 쓴 보초 옆을 지나 문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끄덕끄덕 졸고 있는 마부를 깨워 마차를 타고 다시 역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