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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1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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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런데 조카들은 잘 있나요?" 다소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네플류도프는 누님에게 물었다.

누님은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시골에 남겨 놓고 왔다고 대답했다. 남편과 동생과의 논쟁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 그녀는, 옛날에 네플류도프가 어렸을 때 검둥이라든가 프랑스 계집애라고 이름을 지은 인형을 가지고 놀던 시절처럼, 요즘 자기 아이들도 인형을 가지고 여행 놀이를 하며 논다고 얘기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네플류도프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 애들이 노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너와 닮았는지."

불쾌한 대화는 끝났다. 나탈리아는 마음이 놓였지만 남편 앞에서 동생하고 둘만이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세 사람이 다 아는 화제를 꺼내려고, 결투에서 외아들을 잃은 케멘스카야 부인의 슬픔은 페테르부르크까지 퍼져 화제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결투에서 사람을 죽인 자를 일반 살인죄에서 제외하는 제도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의견은 네플류도프의 반감을 샀다. 그래서 끝장을 보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논쟁을 시작할 생각이 치밀어올랐으나, 두 사람은 다 입 밖에 내지는 않고 서로 마음속으로만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각자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네플류도프가 자기를 비난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의 그릇된 판단을 낱낱이 지적해 주고 싶었다. 한편 네플류도프는 매형이 토지 문제에 대해서 쓸데없는 참견을 한 것을 밉살스럽게 여겼으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하긴 그는 마음속으로 매부나 누이나 조카들이 그의 상속인으로서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편협한 인간이 자신 만만하고 침착한 척하며 저열하고 죄악으로 가득 찬 결투 사건이 틀림없이 합법적이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울화가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만심이 네플류도프를 화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재판소는 어떻게 하면 된단 말씀입니까?"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결투에서 사람을 죽인 자도 일반 살인자와 똑같이 다루어서 징역형을 선고해야겠지요."

네플류도프의 손은 또다시 싸늘해지고, 어조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된다는 거죠?" 그는 물었다.

"그래서 공평하게 되는 겁니다."

"당신의 말은 공평하다는 것이 재판소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들리는군요."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럼 다른 목적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어느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재판소란 나의 생각으로는 우리들 지주 계급에 유리한 현행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행정상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건 정말 새로운 의견인데."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말했다.

"그러나 일반 재판소에 대해서는 좀 다른 사명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겠지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판소의 목적은 현재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일반 사회의 수준 위에 올라서서 사회를 향상시키려던 사람들, 이른바 정치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수준 이하의 이른바 범죄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처벌하는 것입니다."

"찬성할 수 없군요. 정치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들 일반 수준보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처벌된다는 데는 어폐가 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역시 좀 색다른 데가 있긴 하지만 지금 당신이 수준 이하라고 보고 있는 범죄형의 죄수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쓸모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재판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분리파 교도들은 모두 정신적이며 지조가 굳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자신의 말을 한번도 방해받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듯, 네플류도프의 말에는 전혀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네플류도프의 비위에 거슬리든 말든 아랑곳없다는 듯, 네플류도프가 말하는 도중에도 자기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재판소가 현행 사회 체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견에도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재판소는 재판소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죄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든지..."

"그럼 감옥에 넣으면 올바른 사람이 되겠군요."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혹은 제거한다든지."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완강히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즉 사회의 존재를 위협하는 야수 같은 놈들과 방탕자들을 제거하는 그것을 실행할 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지요? 모를 소리군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물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합리적인 형벌이란 단 두가지 방법밖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날에 사용되었던 체형과 사형이지요. 그러나 이 형벌은 인간의 성정이 부드러워져서 지금은 폐지되어 가고 있습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당신한테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며 또한 놀라운 일이군요."

"혼을 내서 다시는 나쁜 짓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해롭고 위험한 자의 목을 베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어쨌든 이 형벌은 합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태하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놓고 근심 걱정 없이 강제로 게으르게 만들며, 더 타락한 인간들 속에 처박아 두는 것은, 대체 무슨 의의가 있을까요? 그리고 무슨 심산인지 모르지만, 한 사람당 국고에서 5백 루블 이상이나 들여 툴라 현에서 일쿠투스크 현으로, 혹은 루크스카야 현에서 또다른 현으로 이송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관비 여행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관비 여행이나 감옥 제도가 없다면 우리는 이토록 태평스럽게 앉아 있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나 감옥은 우리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만한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영원히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석방되는 날이 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이런 제도 밑에서는 도리어 죄수들의 죄악과 타락이 극한에 이르게 되어 결국 위험만을 증대시킬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감옥 제도를 완전하게 하려면 국민 교육에 소용되는 비용보다 오히려 다 많은 비용이 드니까 국민에게 새로운 부담을 줄 뿐입니다."

"그러나 감옥 제도의 결함 때문에 재판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다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츠는 처남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얘기만 되풀이했다.

"그 결함은 바로잡을 수가 없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다 죽어야 합니까? 아니면 어느 정치가의 말대로 눈알을 빼버려야 합니까?"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승리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는 효과적입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아무 효과도 없고, 또 몹시 우매합니다. 정신이 올바른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형사 재판과 같은 우매하고 잔인한 일에 관계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바로 그런 일에 관계하고 있는걸요."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말했다.

"그야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은 것 같군요."하고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재판소에서 검사보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소년을 어떻게 해서든지 유죄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또 어떤 검사가 분리파 교도를 심문하고 복음서를 읽었다는 죄로 유죄로 만들려던 것도 보았습니다. 요컨대 재판소의 일은 그렇게 무의미하고 잔혹한 것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근무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플류도프는 매형의 안경 밑이 이상하게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눈물이 아닐까?'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모욕을 받아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창가로 다가갔다. 손수건을 꺼내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안경을 벗어들고 눈물을 훔치고 안경을 닦기 시작했다. 그는 소파로 돌아오자, 담배를 피워 물고 잠잠히 있었다. 네플류도픈 이렇게까지 매형과 누이를 괴롭힌 것이 가슴 아프고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내일 출발하면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더욱 그러했다. 그는 서먹서먹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 말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어, 적어도 그는 반박을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를 모욕하고 가엾은 누님을 슬프게 만든 것을 보면, 나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나 보군.'하고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