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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21)

카지모도 2022. 10. 22.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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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덕순이가 용인을 갔다올 때 조정이와 같이 왔다. 그때 정이는 성관한 사람

이지만, 덕순의 대부인이 자질과 같이 여기어 안으로 불러들여서 용이 죽은 인

사도 말하고 지내는 형편도 물어 보았다. 정이가 며칠 묵는 동안에 하루는 덕순

이가 정이를 보고 “여보게, 자네가 찾아가 볼 사람이 하나 있네.” 하고 말하니

정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선장과 자별히 지내던 사람이야.” “노

인 어른이겠읍니다그려.” “노인이야. 나하고 같이 보러 가세.” 정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자기 아버지의 친구 노인이면 덕순이에게도 존장일 터인데 어찌하여

말을 홀하게 할까 괴상한 일이다 하고, 재차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다. “선

장이 자주 상종하시던 갖바치가 있어. 그 사람을 보러 가잔 말일세.” “갖바치

라니요? 가죽신쟁이 말씀이오? 선친이 그런 자와 상종하셨을 리가 있나요.” “

상종하실 뿐인가. 그사람의 집에 가서 흔히 주무시기까지 하셨으니.” “저는 불

행이 늦게 나서 선친의 일이라도 친히 뵈온 것이 없는 까닭에 남의 말을 듣고

아는 것밖에 없습니다만, 선친께서 일언일동이 다 후생의 본이 될 만하시던 것

은 저의 집안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겠읍지요.” “그게야 누가 모르나.” “그러

면 갖바치와 상종하셨을 리 없지요.” “당신이 상종하신 것을 자네가 상종하셨

을 리 없다면 되나?” “저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읍니다.” “갖바치와 상종하

셨다는 것이 당신께 수지 될 일이 아니니.” “그래, 사대부가 백정놈의 집에 가

서 자는 것이 수치가 아니란 말입니까? 어찌하시는 말입니까?”“자네가 그사람

을 보지 못한 까닭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예사 백정이 아니야.”

“예사 백정이 아니라도 갖바치라면 가죽 다루는 백정이지요.” “백정이라도

나는 선생님으로 아는 터일세.” “선생님으로 아시거나 말거나 그 선생님이 선

친과 자별히 지냈다고 거짓 말씀이나 마십시오.” “거짓말이라니? 자네하고는

말 못하겠네, 고만두게.” 하고 나중에는 덕순이도 증을 냈지마는, 정이는 자기

아버지를 욕보인 것같이 속으로 대단히 분하게 생각하였다.

그날 밤 초저녁이다. 글 배우는 아이들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수선한 덕수

의 사랑이 조용하여진 때다. 덕수와 덕순 형제가 덕무와 정이를 데리고 앉아서

옛이야기를 하는 중에, 갖바치와 심의가 작반하여 찾아왔다. 두 사람을 맞아들이

는데 덕순은 말할 것도 없고 덕수도 대접이 깍듯하였다. 정이 외에 여러 사람이

각기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주인 삼형제를 따라서 섰다 앉았다 하는 정

이를 갖바치가 유심히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정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

야?” 하고 덕순을 돌아보는데, 덕순이가 대답을 더디하여 덕수가 “정암 자제

이에요.” 하고 대신 대답하였다. “그러면 정인가? 돌 전에 본 사람이 저렇게

컸단 말이지.” 하고 그 다음에 정이를 바라보며 “나는 선장의 욕된 친구 갖바

치야.” 하고 말하는데, 홍안백발에 외모도 틀지게 보이거니와 반말로 그치는 말

소리가 위엄 있게 들리었다. 정이는 다른 생각 할 사이가 없이 일어나서 절하였

다. 갖바치는 “절은 무슨 절.”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앉은 채로 조금 허리만

굽실하였다. 옆에서 보던 덕순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정이를 바라보니, 정이는

무안본 사람같이 얼굴이 붉었었다. 갖바치가 심의를 가리키며 정이를 향하여 “

이 양반은 대관재 심선생인데 그 형님과는 팔팔결 다른 양반이야. 이 주인 삼형

제도 혐의 없이 좋게 지내는 터이니 절하고 인사하지.” 하고 말을 일러서 정이

는 그가 누구의 아우인지도 채 모르고, 또 한번 무릎을 굽히었다. 심의가 정이를

보고 하는 말이 “내가 남곤·심정이 하는 심정의 아우야. 그리고 효직이는 우

리 선생님이야. 인제 알겠지?” 하고 미친 사람같이 웃었다.

 

13

덕순이가 다시 서울 와서 살게 된 뒤로 전날 선생 갖바치 외에 젊은 친구 꺽

정이가 새로 생기어 갖바치나 꺽정이의 얼굴을 하루만 못 보고 지나도 궁금히

생각할 만큼 가까이 상종하므로 혜화문 안에 있는 갖바치의 집을 남의 집같이

여기지 아니하더니 갖바치가 금동이 내외를 양주로 보내서 살게 하고 자기는 팔

도강산에 떠돌아다니겠다고 작정하니 혜화문 안 집은 주인이 갈리지 않을 수 없

이 되었다. 심의도 누차 갖바치에게 집을 없애지 말라고 말하였지만, 덕순이가

지성으로 말리었다. “내가 서울 와서 살게 되자 선생이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

일변 생각하면 야속한 일이 아니오.” “내가 올해에 서울을 떠날 것은 이십 년

전에 작정하여 둔 일인 즉 지금 갑자기 변할 수가 없소.” “어디를 가실 터기

에 그렇게 오래 전부터 작정하셨단 말이오?” “우리 선생님을 만너러 갈 터이

오.” “선생님에게 가서 다시 서울 오지 않을 터이란 말씀이오?” “아니오, 또

오지요.” "그러면 집까지 없애실 것 없지 않소." "아니, 오더라도 서울 와서 살

지는 않을 터이오." "이때까지 살던 서울이 아니오? 갑자기 그렇게 작정하실 것

이 무엇 있소?" "늙은 것이 금동이 내외에게 얻어먹고 들어앉았으면 무엇하오?"

"무엇하는 건 아니지만 육십 넘은 노인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주는

밥 먹고 앉았는 것이 낫지 않소." 갖바치는 고개를 외로 흔들고 말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말리어 되지 않을 것을 본 뒤에 "그러면 이 집을 나를 주

오. 우리 집이 적기도 하려니와 이 집을 내가 지니고 있으면 서울 와서 묵으시

지 좋을 것 아니겠소?" "그것은 좋지요. 그러나 혼자 살림을 어떻게 하시려 하

오?" "어머니께 말씀하고 아우 내외를 이 집으로 분가시키고 붙이어 있을 수도

있지요." "그것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고 갖바치가 덕순이의 말대로 작정한 뒤

에 서울 살림을 하루라도 속히 거두어 치우려고 경영하였다. 금동이 내외가 살

림을 떠싣고 양주로 내려갈 때 꺽정이도 따라 가게 되었다. 갖바치가 꺽정이를

보고 "나도 앞으로 한 달 내외간에 서울을 떠날 터이다. 네가 양주 가서 갑갑하

게 들어앉았느니 날 따라서 훨훨 쏘다니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니 꺽정이

는 선뜻 "그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양주 집에 가서 한 보름 동안 묵다가 올라와서 보니 갖바치 방에 심

선생 외에 낯모르는 사람이 하나 앉았는데, 그 사람이 갖바치를 보고 말할 때

형님이라고 불렀었다. 꺽정이가 잠깐 그 방에 앉았다가 나와서 덕순이를 찾아왔

다. "선생님 집으로 이사한다더니 어째 아니했소?" "차차 하게 될 터이지. 그런

데 지금 선생과 새로 온 사주쟁이는 심선생 집에서 식사를 하지만, 널랑은 내게

서 먹어라." "그건 아무리나 합시다. 설마 사람 사는 곳에 굶게야 되겠소. 그런데

지금 선생님에게 낯모르는 사람이 하나 있더니 그게 사주쟁이오?" "유명한 사주

쟁이 김륜이란 사람이다. 이번에 선생과 동행하려고 왔다던가." "별놈의 동행을

다 데리고 갈 모양일세. 나는 고만두어야겠군." 하고 꺽정이가 "이따 만납시다."

하고 일어서니 덕순이가 "선생에게 가거든 나하고 같이 가자." 하고 말하여 꺽정

이는 덕순이와 같이 갖바치에게로 돌아왔다. 꺽정이가 갖바치를 보고 밑도끝도

없이 "선생님, 나는 이번에 아니 가겠소." 하고 말하니 갖바치가 꺽정이의 얼굴

을 치어다보며 말이 없었다. 한동안 있다가 갖바치가 심의 김덕순 김륜 세 사람

을 방에 남겨 두고 꺽정이를 데리고 빈 안방으로 올라와서 "꺽정아, 왜 이번에

아니 간다느냐?"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그까지 알지도 못하는 사주쟁이하고 누가 동행을 하겠소?" 하고 불쾌하게 말하

였다. 갖바치가 이 말을 듣고 “그런 듯하더라”하고 허허 웃고 나서, 묘향산에

갔을 때 김륜이와 같이 한 선생 아래서 공부하던 것을 말하고 선생이 올해에 강

서 구룡산서 만나자고 약속이 있어서 이십 년 전에 동행 맞춘 것을 말한 뒤에

“가기 싫거든 고만두어라만, 중간까지라도 같이 가면 반가운 사람도 만나보고

좋을 것이다.”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직수굿하고 앉아서 대답이 없었다.

 

14

김륜이란 사람이 꺽정이에게는 첫눈에 들지 아니하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

어 보이는 사람이 할깃할깃 남의 눈치를 보는 것과, 우습지 않은 말에 하하 웃

는 것과 얄미운 얼굴을 잠시 가만두지 아니하고 되반들거리는 것이 모두 사람

같지 않게 보이었다. 꺽정이가 김륜이 사주쟁이란 말을 듣고서는 그 작인이 천

생 잡술꾼밖에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꺽정이가 동행하여 길 나서기 싫다

고 말하다가 갖바치의 달래는 말에 수그러져서 갖바치의 뒤를 따라 바깥방에를

나와 보니 김륜이가 덕순이를 대하여 경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

소격서 안에 사람의 사태가 났었지요. 소격서에서 사주 보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알 사람이 없지 않으리다. 본래가 번잡한 걸 좋아하지 않는 성미에.“ 하고 말하

다가 ”이 형님은 잘 아시지요.“ 하고 갖바치의 눈치를 보고 ’밤낮 사람에게

시달리니까 나중에는 정말로 성가시고 귀찮아 못살겠습디다. 그래서 신경과 신

판사란 사람이 광주로 낙향한다기에 같이 가기로 했지요. 서울서 떠날 때는 도

망하듯 했소그려. 광주 간 뒤에 신판사의 중신으로 그곳 반명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지요.” “그래, 그때가지 총각이었더란 말이오?” 하고 덕순이가 이야기에

쐐기를 쳐서 “총각은 아니었지만.” 하고 우물쭈물하는데 이야기하던 흥이 갑

자기 꺾이는 모양이었다.

이야기 뒤가 싱거워졌다. “광주 있기도 하고 고향에 가지고 하고 또 구경다

니기도 하고, 그럭저럭 지금 나이 오십객이니 그동안 경력이야 이루 다 말할 수

가 없지요.” 꺽정이가 인사도 하기 전이건만, 경력 많다는 말이 비위에 잘 맞지

아니하여 “사주 보는 경력이지요?” 하고 말을 물으니 김륜이는 대답을 아니하

고 무례하게 말 묻는 총각이 누구냐고 묻는 듯이 갖바치를 돌아다보았다. 갖바

치가 이것은 본체 만 체 하고 “우리 내일 모레쯤은 길을 떠나 볼까?” 하고 떠

날 날짜를 공론하니 김륜이가 “어느 날 떠나든지 구월 초하룻날 구룡산만 대어

가게 합시다.‘하고 말하고 ”구월 초하룻날은 미리 약언한 날인가?“ 심의가

묻는 말에 ”녜, 그렇습니다.“ 대답하고 무엇이 우스운지 하하 웃었다. 심의가 "

그러면 아직도 앞으로 달포가 남았으니 그렇게 일찍 떠나 무엇하나?”하고 갖

바치를 돌아보며 “나는 자네를 떠나보낼 일이 큰 걱정일세. 하루라도 더 같이

지내보세.”하고 잠깐 동안 있다가 “그럴 것 없이 송도 가서 놀다 가려나? 서

경덕이도 찾고 박연도 구경하고.” 심의의 말이 그치자마자, 김륜이가 “좋지요.

나도 이때까지 박연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하고 갖바치를 앞질러 대답하였다.

갖바치가 덕순이를 바라보며 “송도 구경 아니 가시려오?”하고 같이 가자는 뜻

을 보이니 덕순이가 “어머니께 말씀하고 가보지요. 나는 이왕이면 평산까지 가

서 연중이의 소식을 좀 알아보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네 사람이 같이

길을 떠나기로 작정되었다.

나귀 한 마리에 길양식과 소줏병을 실어서 아이에게 고삐 잡혀 앞세우고 어른

네 사람과 총각 한 사람이 뒤를 따라 송도길을 향하였다. 길에서 심의는 갖바치

와 같이 가며 이야기하는데, 김륜이가 그 사이게 끼이고 덕순이는 꺽정이와 붙

어가며 이야기하였다. 두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의 걸음이 갑갑하여 길 가며 이

야기할 때보다 앉아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이삼십 리쯤 걸음을 보고 갑갑증이

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뛰어가느니나 다름없었다. 가령 내

를 만날 때에 길에 다른 행인이 있으면 다리로 건너가지만 행인이 없으면 훌훌

뛰어 건넜었다. 덕순이도 서울서 송도쯤은 당일에도 다닐 만하고 더욱이 꺽정이

는 칠월 해에 한번 다니기만 할 사람이 아니니 갑갑할 만도 하였다. 서울서 떠

나던 이튿날 저녁때 일행이 송도에 들어와서 곧 벼우물골 서처사집을 찾아갔다.

 

15

서처사 삼형제가 서울 손님을 데리고 송도 고적을 구경 나섰다. 일행이 관덕

정과 선죽교를 돌아보고 자하동에를 들어와서 이리저리 다니는 중에 시내 있는

편에서 맑은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중화당 태평잔치

자취조차 아득하니

만년환 옛날 곡조

아는 사람 못 보도다.

자하동 시냇물 소리

시름 알어 우는가.

서처사가 노래 한 곡조를 다 듣고 나서 빙그레 웃으며 “우리를 앞질러 온 게

로군.”하고 심의를 돌아보니 심의는 알아듣고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가구에

게는 진이가 따라다니네그려.”하고 허허 웃었다. 서처사가 여러 사람의 앞을 서

서 노랫소리 나던 곳을 찾아오니 시냇가 잔디밭에 정한 자리 몇 닢을 연폭하여

깔아놓고 진이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각기 자리 위에 앉게 되

었는데, 덕순이와 꺽정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조금 동안 떨어진 풀밭 위에 붙어

앉았다. "저 계집이 유명한 황진이란 기생이라는구나."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곱

습니다." "절대미인이란 칭찬을 받던 기생이다." "기생이라도 옷 호사는 아니했습

니다그려." "지금은 고사하고 한참 불릴 때도 의복은 물어멈같이 차리고 다녔다

더라." 이와 같이 한편에서 진이를 공론할 때 서형덕 서숭덕 형제가 진이에게 무

엇을 조르는 모양이 보이더니 참벌의 날개치는 소리와 같은 노랫소리가 나기 시

작하여 그 노래를 듣느라고 공론이 그치었다.

부소산 푸른 남기 예와 이제 다르려니 진봉산 진달래꽃 가을 손님 뵈올소냐

아이야 송소주 드려라. 진일장취하리라.

"명창이다." "곡조는 몰라도 소리가 듣기 좋구먼요." "네가 시조맛을 알겠니?"

"시조거나 말거나 이쁜 계집의 고운 목소리면 고만 제일이지요." 이와 같은 공론

이 다시 시작하였을 때, 서형덕이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오라고 손짓하였다. 진

이가 가지고 온 술과 안주를 두상으로 차리어서 서경덕과 심의와 갖바치와 김륜

이가 한 상을 차지하고, 서형덕과 서숭덕과 김덕순과 꺽정이가 다른 한 상을 차

지하였다. 진이가 양편 상으로 왕래하며 술을 권하나 흔히 노축에게 가서 오래

앉아 있으므로 서숭덕이가 "우리는 술 권하는 사람이 없어도 좋은가." 하고 진이

가 데리고 온 계집을 돌아보며 "꿩 대신 닭이란다. 너 이리 와서 술을 쳐라." 하

고, 그 계집아이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서 자리에 앉히는데, 그 자리는 서숭덕과

꺽정이의 틈이었다. 꺽정이가 거북살스럽게 앉은 계집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

여다보니 살결이 희고 눈 속이 맑고 코가 단정하고 입매가 예쁘장스러워서 넉넉

히 미인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이었다. 꺽정이가 연해 돌아보며 말을 물었다. "

몇 살이냐?" "열네 살입니다." "이름이 무어냐?" "금단입니다." "부모가 있냐?" "

아버지만 계셔요." 나중에 꺽정이가 "편히 앉아라." 하고 금단이를 가까이 끌어

가니 서숭덕이가 이것을 보고 "계집아이 하나를 얻어왔더니 총각놈이 독차지하

네그려." 하고 웃어서 좌중이 다같이 웃었다. 술들이 취하였다. 술 뒤에 점심 밥

이 있었건만 꺽정이 외에는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 없었다. 서형덕 서숭덕 형제

가 술이 취한 김에 요술을 할 것이니 구경하

라고 떠들었다. 진이가 그 형제를 돌아보며 “정우치에게 배운 재주를 내놓으실

터이오?” 하고 방그레 웃으니 형덕이가 “뉘게 배운 재주든지 구경이나 하라

구.” 하고 물 만 밥 한술을 입에 넣었다가 공중을 향하여 뿜으니 흰 나비들이

펄펄 날았다. 여러 사람들이 “저것 보아” “저것 보게” 하고 놀라자마자, 갖

바치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튀기더니 나비로 보이던 것이 종이쪽이 되어 떨어졌

다. 서형덕이는 ‘이것 웬일인가’ 하고 놀랐다. 숭덕이가 “형님, 가만히 계시

오. 내가 한번 해보리다.” 하고 “묵판 밑에서 까치 나가는 것 보시오!” 외치

고 목판을 아무것도 없는 자리 위에 엎어놓고 왼손 무명지로 부작 쓰는 체하고

“까치 날아간다.” 하고 목판을 드니 까치 같은 것도 없다. 숭덕이는 “이게 웬

일인가?” 하고 놀라고 여러 사람은 웃는 중에 서경덕과 갖바치가 앉은 뒤에서

까치가 날아 나갔다. 요술꾼들이 낭패를 보고 머리를 긁었다. 여러 사람들이 패

패이 웃고 떠드는 중에서 경덕은 갖바치와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데, 진이가

속으로 ‘심선생이 칭찬하던 갖바치가 참말 범인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 옆에 가까이 앉아서 정신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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