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큰일은 큰일이었다. 설령 옹구네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그렇게 말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차피 헛소문이라도 한 바퀴 돌 모양 아닌
가. 공연히 평순네의 가슴이 무겁게 두근거렸다.
"얌전헌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드라고, 옛말 그른 디 하나도 없당게. 하이고매
원 시상으나. 법도 찾고, 도리 찾고, 효자.열녀 다발로 엮어 나는 집안에 무신 망
신살이여. 이런 년은 아조 내놓고 사는 노무 인생잉게 추접시럴 것도 없고 머
넘부끄럴 것도 없다마느은."
패앵. 코를 풀어 마당에 던지고 치마귀에 손가락을 문지른 옹구네는, 물 건너 열
녀비 쪽으로 길게 눈을 흘긴다. 그러더니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면서 입맛을 다시
고는, 평순네의 귀바퀴 가까이에 말을 불어 넣는다.
"내가 오짐 누러 다무락 밑으로 안 갔능가아. 칙간에는 누가 들었는 것 같고 급
허기는 허고. 거그다가 굿도 한참 신이 나서 아깝드란 말이여. 동녘굴덕 울어쌓
고, 죽은 총각 혼신은 또 자개 어머이를 부름서 애간장이 녹게 울어쌓고. 아 참,
굿도 굿도 그런 굿이 없제잉. 그리서, 옳지, 저그 다무락 허물어진디 있드라, 살
째기 넘어가서 누고 오자, 그러먼 굿도 안 놓치고 오짐도 누고..."
그러면서 웅구네는 담을 넘었다. 담이라야 어른의 허리 조금 넘는 낮은 토담이
었는데 그나마 무너진 자리는 흙더미가 패어나가, 안팎이 한마당이나 다름없었
다. 그네는 캄캄한 텃밭 쪽으로 엉덩이를 두르고, 곱게 꾸민 신랑 신부 녹의홍상
사모관대 허수아비가 소리 없이 맞절을 하는 마당 풍경을 놓칠세라, 모가지를
길게 뽑아 물고는 쪼그리고 앉았다. 괭굉 괘괭 굉굉 괘괭 괭 괭굉굉 (하앗따아,
굿판 한번 서럽다. 무신 노무 인생살이 살어서도 눈물바람, 죽어서 귀신이 되야
도 눈물바람. 오나 가나 울고 우는 굿이구나. 기양 울어 부러라 울어 부러. 애껴
뒀다 가뭄에 쓸라고 참겄냐? 오짐도 누고 나먼 씨언허고, 눈물도 쏟고 나면 개
법지. 울고 자픈 거 못 울먼 울음에도 체헝게. 헤기사 먼, 울라고 굿허제 웃을라
고 굿헌디냐? 에이고오, 시언하다. 한참을 참었네 기양.) 옹구네는 몸을 일으키며
치맛자락을 여미었다. 잘 입을래야 입을 것도 없는 동강산이 두루치 자락을 겅
어 올리던 그네는 무심코 뒤를 돌아 보았다. 누가 보았으면 어쩌나 싶은 무망간
의 몸짓이었다. (아이고매.) 순간 옹구네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명아주 여뀌
가 우거진 담 밑 저만큼에 무슨 희끄무레한 형국을 본 것이었다. 사람인 줄 알
았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귀신인 중 알었제잉. 꼭. 귀신들끼리 맞절하고, 허새비가 뿔겅옷 푸렁옷 입고 혼
인허는 굿을 보다 나와서 그랬등갑서. 아이고오 놀래라."
옹구네가 놀란 가슴을 누르며 눈썹을 찡기고 노려본 그 형국은 여자가 분명했
다. 그것도 앳된 젊은 여자가.
"내 눈때가 얼매나 매운가는 평순네도 잘 알 거잉만 그리여."
"허든 말이나 해 보시겨."
"니가 귀신이냐, 사람일 테지. 어디 보자, 누가 멋 헐러고 거그 섰냐 싶드랑게.
아니여, 섰능 거이 아니라 앉었드라고, 이러어케 넋을 놓고 무신 혼 나간 사람맹
이로."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은 옹구네는 두 팔을 추욱 늘어뜨린 채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시늉을 하였다.
"꼭 이러고 있드랑게. 척 보먼 몰라? 그 밤중에 무신 일로 텃밭 모퉁이에 우두
거니 넋이 빠져서 앉어 있겄어? 내가 오짐 누는 것도 아매 몰랐능갑서. 그렁게
사램이 옆으서 저를 체다바도 모르고 그렇게 앉어 있었겄제? 나 같으먼 얼릉 다
무락 밑으로라도 숨었을 거인디."
"아앗따아, 그리여. 참말로 장허네. 그리서, 시방끄장 몇번이나 그렇게 다무락
밑이로 헛간 구석지로 찰싹 붙어서 숨어 댕겠능가?"
"이노무 예펜네, 말 다헌 거이여 시방?"
"다 안했그만, 왜?"
"알겄다 알겄어. 시암 나먼 너도 숨어 댕기그라. 누가 못허게 허겄냐아. 족보 있
는 양반댁으 처자도지 오래비허고 상피붙는 시상에, 이께잇 노무 상년으 신세에
머어이 무서서 절개를 지킨다냐."
"아이고, 저노무 호랭이 물어갈 노무 주둥팽이."
옹구네가 입맛을 쩍 다신다. 다음 이야기를 하겠다는 표시였다. 평순네가 무슨
소리를 하든 무서워할 옹구네가 아니었다. 그네는 숨죽이어 말하는 시늉은 하면
서도 간지럼을 타듯 꼬이는 혓바닥을 참지 못한다.
"여름잉게 모시 적삼이든 삼베 적삼이든 한 희겄는가? 어깨가 동그스름허고 곱
닷헌 거이, 그 깡깜헌 중에도 눈에 들어오드라고. 그러고 저러고 헐 거 없이, 내
가 척 봉게 그거이 오루꿀덕 강실이여. 내가 머 하루 이틀 보간디? 걸어가는 그
림자만 바도 금방 알제잉. 그리서 내가 후딱 사방을 둘러봤제, 누가 있는가아 허
고."
누르팅팅한 묵은 솜이 그나마 납작하게 눌려 개 혓바닥같이 되어 버린 것을 알
뜰하게 패워 내던 평순네는, 아예 일손을 놓고 옹구네의 입만 쳐다보았다. 어서
어서 솜타는 일을 마치고 우물에 가려니 했던 것도 다 잊어 버린 터었다. (시상
에 무신 그런 일이 다 있으까잉. 쥐도 새도 모르게 헌 일도 바람 타고 소문이
나능 거인디, 저노무 예펜네 눈꾸녁에 들케 놨이니 어찌꼬. 에이, 그렇다고 참말
로 무신 일이 있었을라고? 지 년이 오짐 누러 갔으먼 작은아씨도 혹시 그럴라고
갔능가 누가 알어? 아니며. 그때 굿판에 오루꿀 작은아씨는 안 뵈았는가? 멋 헐
라고 집 두고 텃밭끄장 나와서 그런당가? 가만 있어 봐. 그날 오루꿀덕은 거그
굿허는 디 왔었는디? 동녘굴덕이 대 잡고 오루꿀덕이 머 이것저것 안 물어 보등
게비...? 그러먼 어머이 따로 딸내미 따로 있었능게 빈다. 무신 일이까잉.)
"내 말 들어어, 안 들어? 먼 생각을 허고 있당가?"
"으응? 으응, 그리여."
골똘히 자기 생각을 하고 있던 평순네가 쥐어지르는 옹구네 말에 놀라 엉겁결에
대답한다. 아무래도 그네의 얼굴에는 짙은 두려움이 덮이고 만다.
"내가 오직이나 눈치가 빨른 사람잉가. 한눈에 휘익 둘러봉게 첨에는 아무것도
안 뵈야. 오냐, 니가 혼자 매급시 거그 나와서 넋을 놓고 앉았겄냐, 옆에 누가
있지, 싶드라고."
괭굉 괭괭 괴괭 괭괭 굉굉 괘갱
옹구네는, 당골네 백단이가 구성지게 불러 넘기는 독경 소리와 징소리가 아까워
서, 힐끗 담 너머 마당을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어둠 속을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때는 이미 어둠에 눈이 익어, 검은 산자락이며 가까이 서 있는 상수리나무 밤
나무의 둥치들도 머뭇머뭇 분별이 갈 정도였다. 더구나 앉아 있는 사람이 강실
이라는데 생각이 짚이자, 솟구치는 호기심 때문에 라도 기어이 '누군가'를 알아
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아이고매, 어찌야 옳이여? 그거이 누구겄어?"
"누가 누구여?"
"누구기는 누구여? 강실이 넋 빠지게 헌 남정네지."
쿠웅.
평순네가 가슴이 내려앉는다. 물론 이야기가 이렇게 되고 만다는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지만, 막상 듣고 나니 까닭없이 부르르 등이 떨리는 것이었다.
"누가 듣는고만 왜 그리여? 그렇게 막말 허능 거 아니여어."
"막말이 아니라 내 눈으로 봤당게, 이 눈으로."
"무얼 봐? 아무것도 본 것 없구마는. 그게 오루꿀 작은아씬가 아닝가도 잘 모
르잖이여?"
"왜 몰라, 모르기는? 내 눈꾸녁은 머 뽄으로 달고 댕기간디? 나도 이날 펭상 거
멍굴에 어푸러져 삼서, 눈치 하나로 목심 붙이고 연멩허는 사람이여, 왜?"
"그리서 ... 그거이 누구였간디?"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저도 알고 자픔서 매급시 똥구녁으로 호박씨를 까
고 앉었네. 뺄 거 다 빼고, 충신은 혼자 나고, 알고 자픈 거 다 알고... 아이고 야
야, 뇌꼴시럽다."
"잘 알도 못험서, 무단히 끄집헤 가서 맞어 죽을랑갑다."
"대신 죽어 도라고 안헝게 사돈 걱장 말드라고."
"그렁게에, 그거이 누구였나고오."
"대실 새서방님이시다, 왜? 왜 놀래? 하늘 아래 천지간에 귀헌 양반이, 상놈만도
못헌 지서리를 헌 거이 놀라운가? 왜 그렇게 놀래냐고오. 하앗따아, 눈꾸녁에 불
씨겄네."
패앵. 한 손으로 콧날개를 누르며 코를 풀어 던진 공구네가 침까지 타악, 뱉는
다. 침 소리가 오지다.
"옹구네, 그런 소리 어디 가서 당최 입 밖에 내들 말어. 참말로 죽고 자픈가? 율
촌샌님 성품이 대쪽 같고, 청암마님 호령 소리 얼음 같은디, 어쩔라고 그런 소리
를 허능 거이여, 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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