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혀를 찬 공배가 돌아눕는다.
"들으가서 주무시요. 모구가 다 뜯어먹겄소. 그나마 한 방울이나 되까마까 허는
노무 피."
"방이나 한디나."
웬일인지 두 사람은 마음이 무겁다.
"어쩔라고 이렁가 모리겄네. 통 어디 맘 붙일 디가 없고 말이여."
"아 머언 일이 있을랍디여? 춘복이란 놈이나 옹구네 저 예펜네나 다 주뎅이가
암팡진 것들잉게 그렁갑다 허고 말어야제."
"그런다고 없는 말 지어내서 허겄어? 숭년에, 가뭄에, 구설에... 이거 어디 시상
어수선해서 살겄다고?"
공배는 풀썩풀썩 연기만 내뱉는다. 중천에서 지울어지고 있는 은하수의 꽁지는
유야무야, 지워지는 흔적처럼 희미하다. (은하수가 가물었능가. 어째 물줄기가 시
언찮허다. 그나저나 춘복이란 놈도 저 주뎅이를 못 참고 오장에서 끓어나는 대
로 저렇게 말을 토해야 직성이 풀리니 큰일났다. 들은 사램이 우리들뿐잉게 어
디 가서 욍기던 않겄지마는, 지 소가지가 부글거리자머언,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부리기도 헐 거인디, 우선 참는 버릇이 붙어야 목구녕을 못 넘어온 말이 뱃속에
서 삭고 썩고 허제, 나오는 대로 저러다가 일 당헌다, 일 당히여. 누구는 머 청
춘에 속 안 상허고 세월을 넹겠다냐... 속 상허는 것도 힘이 얼매나 팽긴다고 그
려. 헤기는 그것도 다 힘 뻗칠 적으 이얘기다. 너도 인자 나이 먹어 바라. 지 몸
뗑이 건사허기도 힘들고, 처자 권속 입으 풀칠도 해야고, 살든 자리서 곱게 죽어
갈라먼 그렇게 성질대로는 못 사는 거이다. 까딱 잘못허머언, 이만한 복쪼가리도
쪽박 뚜드러 깨디끼 지 발로 박살내고 마는 거여. 옛말에도 다 세 치 샛바닥을
조심허라고 안했능갑서. 태생이 천허게 난 것을 어쩔 거이냐. 천허먼 천헌 대로
흙바닥에 어푸러져서, 이거이 내 판짠게비다 허고 숨 쥑이고 살어야제. 그나마
청암마님이라도 정정허시고 그 집안 탄탄해야, 이런 목심 하루살이도 신간이 편
헐 거 아닝게비. 뛰어 봤자 베룩이지, 상놈의 신세가 하루아침에 당상관이 될 거
이냐. 이 철딱서니 없는 자석아.) 공배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자
신도 까닭을 알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이 가슴에 매캐하게 차 오른다. 그러나 춘
복이는 그렇지 않았다. 물 건너 매안의 문중 마을에서는 그런대로 뚝심 있게 일
도 잘하고, 웬만한 일에 분별없이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일단 거멍굴로 내려오
면 짚신짝을 땅바닥에 패대기 치듯 참지 못하고 툭툭, 말을 뱉어 내는 것이었다.
"이노무 자석아, 좀 색여라 색여. 뱃속에 들은 오장육부 창사가 왜 그렇게 꼬불
꼬불헌지 아냐? 불끈 성질 치미는 대로 말허지 말고 열두굽이 구곡간장 돌아 나
옴서, 생각 한번 해 보고 한 마디 내레놓고, 생각 한번 또 해 보고 한 마디 또
내레놓고, 쉬어감서 말허라고 그렁 거이다. 알겄냐?"
그럴 때마다 공배가 쥐어박는 시늉을 하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아앗따아, 아재는 징그럽도 안허요? 그만치 참고 살았으먼 원 쇠심줄 창사라도
썩어 부리고, 그 창사가 구리라도 녹아 부렀겄소. 무신 노무 한 시상을 참을라고
산다요? 시상으 나왔으먼 머 씨름을 허든지 농사를 짓든지 산을 헐든지, 조께
본때 있게 살다가 죽어야제. 이노무 시상은 멋 헐라고 사는 노무 거이간디, 오나
가나 참으라는 소리뿐이여어. 참으먼 뱃속에 똥만 차지 무신 삐쭉헌 꼬라지가
있냐고요. 에레서 애비 죽고, 죽은 애비 뒷산마루 묏동에다 파묻어 내비리고는,
자식 새끼도 팽개치고 밤도망 가 부린 에비는 낯바닥도 모리겄고... 키워 주신
아재한테는 헐 소리 아니지만, 이런 신세가 될지 알었으먼 차라리 내가 동낭아
치가 되는 것이 천만번 속 시언할 뻔했소. 이노무 신세는 머 생기는 것도 없이
참을 것만 산데미맹이로 첩첩허니... 사방팔방 걸리는 거 없이 얻어 먹고 댕기는
신세가 못될 바에는, 내가 헐 수 있는 거이 머엇어겄소? 그저 내 몸뗑이 달린
것 갖꼬 헐 수 있는 것은 말배끼 더 있냐고요. 내가 속 터져 죽는 꼴을 보시는
것보담 말이라도 퍼내고, 이렇게 사는 것이 안 낫겄소?"
"아이고오, 이 웬수놈아. 말 못허고 사는 놈이 조선에 너 하나냐? 너 하나여어?
어찌 사램이 지 속에 있는 말을 다 허고 산다냐. 너 그러다가 무신 일 저지르고
말겄다. 으엉? 부모를 잘못 만나 인연이 짤루어서 설웁기는 한량없지만, 어쩔 거
이냐... 니가 전상에 지은 복이 그거뿐이고, 그런 부모 태를 빌려서 이 시상으 나
왔으먼 벨 수 없지 어쩌겄냐. 부모를 바꾸겄냐아, 신세를 뒤집겄냐. 말이 동냥아
치지 그것들은 또 우리만도 못헌 불쌍헌 족속들 아니냐. 시상에 부럴 거이 없어
서 그런 신세에다 비간다냐. 그래도 내 발 밟을 마당 있고, 내 몸뗑이 드러누울
방부닥 있고 아침에 눈 뜨먼 오손도손 아는 얼굴들이 잘 잤냐고 물어보고, 속
상허먼 말도 허고... 동낭아치들은 또 우리가 부럽단다."
"아재가 몰라서 그렇제, 우리가 머이 그 사람들허고 달르다요? 동냥아치들은 돌
아댕김서 빌어먹고, 우리들은 한 간디서 빌어먹고, 빌어먹는 것은 다 한가지 아
니요? 내 손꾸락 내 발부닥 갖꼬 내 땀으로 논밭 농사 다 지었는디, 내 앞에는
쭉쟁이만 노적가리맹이로 싸이고, 손발개고 앉었는 양반은 앉은 자리서 나락 섬
을 주체 못허는디, 왜 입 두었다 말도 못헌다능 거이요?"
"춘복아, 이놈아. 양반은 머 편헌지 아냐? 그려, 니 말대로 우리가 동낭아치보담
한나도 나슨 것이 없다고 허자. 그런대도 양반 너무 부러 말그라. 그런 말도 안
있냐? 거렁뱅이 맛 딜이먼 펭양 감사를 씌워 줘도 도망간다드라. 양반은 또 양
반값 허니라고 더워도 못 벗고, 비가와도 못 뛰어간다. 알겄냐? 세상 일이라능
거이 다 지 분복이 있능 거이다. 쌍놈은 곧 죽을 것 같어도 쌍놈 낙이 있고, 양
반은 다 신선맹이라도 넘모르게 속 썩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닝 거여. 양반도
하루 세 끄니, 쌍놈도 하루 세 끄니, 날 새먼 일어나고, 날 저물먼 잠 자고... 그
러다가 너나없이 저승사자 당도허먼 도리 없이 죽어가는 거잉게, 너무 속 낄이
지 말어. 사람 근심이란, 이름만 다르제 누구한테나 똑같이 있는 거잉게, 매급시
내 신세만 한탄헐 일도 아니고, 넘으 신세만 부러헐 일도 아니여어."
"모르겄소. 나도 늙어 꼬부라지먼 아재맹이로, 붙들이란 놈 오그려앉혀 놓고, 참
어라, 참어야능 거이여, 헐랑가 모르겄지마는, 아직은 셋바닥에 힘이 뻗쳐서 그
렁갑소."
"몸뗑이에 달린 것 중에서 지일 무선 거이 셋바닥잉게."
"알겄소. 알겄어. 셋바닥이 칼날잉게 조심허그라. 니 목구녁 니가 찔른다. 그 담
말은 내가 다 앙게, 인자 그만 허시요."
춘복은 공배가 노상 염불마냥 외는 말을 미리 제가 해 버리며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으나, 그런 입씨름은 어김없이 또 다시 되풀이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공배는 질리지도 않는지 같은 말을 되새겨 이르곤 했다. 상놈의 씨, 크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상놈 되겠지마는, 그래도 자식이라 애지중지했던 어린 것이
황달을 앓다가 죽어 버린 뒤로, 먼저 간 놈 대신 내버려진 춘복이를 거두어 기
른 정이 애틋한 공배로서는, 춘복이한테 하찮은 일도 대수롭게 넘기지 못하고
사사건건 토를 달고 나서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정을 춘복이도 알고는 있을 것
이다. 공배는 긴 한숨을 삼키며 멍석에서 일어난다. 공배네는 마당 귀퉁이의 모
깃불 자리를 발로 밟는다. 사르라지던 불씨 몇 이 발밑에서 죽는다.
"그런디, 옹구네는 멋 헐라고 저렇게 춘복이만 바싹 따러 댕기는가 모르겄소. 치
매자락을 꼬랑지맹이로 흔들어댐서."
멍석을 두르르 말아 올리던 공배가 담뱃대로등을 긁는다. 그리고 공배네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에이그으."
하고 만다. 몹시 못마땅한 기색이다. 한 마디 무어라고 해붙였으면 시원할 것을
참는 모양이다.
"어서어서 춘복이도 장개가얄 거인디. 저렇게 장개는 안 갈란다고 뚝심만 부리고
있응게, 가당찮은 예펜네가 좋아라고 지 차지를 삼능 거 아니겄소."
"호랭이 물어갈 노무 것들."
"수완 좋고 입심 좋겄다, 낯빤대기끄장 뻔뻔해 갖꼬는, 넘부끄런지도 모르고 내
둘르고 사는 예펜네가 머엇이 무서서 체면을 보겄소? 저러다가 무신 딱쟁이를
쓰고 달라들랑가. 납짝없이 자식 딸린 홀에미한테 뒤잽히게 생겠는디."
"거 무신 씰닥쟁이 없는 소리를."
"내 말 그른가 보시요 인자. 혹 띠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드라고, 애먼 년한테
물려서 넘의 새끼끄장 지 자식 삼게 되고 말 어잉게."
"어허어 참, 말이 씨 된다고 어쩌서 그런 소리를 자꼬 해쌓는당가. 어서 들으가
한 숨이라도 더 자제."
아무래도 공배네는 속이 편치가 않았다. 그것은 공배도 마찬가지였다.
"상놈 신세 나 하나로도 여한 없응게, 아재 나 보고 장개가라, 자식 낳아라, 그런
말씸 허지도 마씨요. 지집 없이도 한 펭상 잘 살랑게요. 보마나마 뻔허제. 나 같
은 상놈에 부모없는 떠돌이를 사우로 맞는 집구석은 또 오죽헐 거이며, 그런 집
의 딸년을 각시라고 맞어서 자식을 나먼, 그놈이 커서는 내 속 상허는 이런 시
상을 또 살 거인디, 무신 웬수로 신세 쳇바꾸를 돈다요...?"
춘복이는 노상 그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냥 해 보는 말이었다면 장가를 가도 열
두 번은 더 갔을 것이다. 그러나 공배와 공배네가 내미는 것마다 빈번이 고개를
흔들어 버린 중매자리를, 나중에도 아예 말도 못 꺼내게 듣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놈아. 쥐새끼도 암수가 짝을 짓고 개미도 알을 낳는다. 니께잇 놈
이 머 잘났다고 천지 조화 속으서 삐져 나올라고 허능 거이여, 시방? 무신 독살
시런 생각이여 그거이?"
참지 못한 공배가 춘복이 대가리를 쥐어박았지만, 그는 머리만 한번 털어냈을
뿐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사램이 저 헐 도리는 해감서 살어야 복도 받고 낙도 있는 것이제, 너맹이로 모
지락시럽게 인생을 살기로 허먼, 상놈은 어디 씨가 남어 나겄냐?"
"그렁게 나 같은 놈은 나 하나로 되얏다는 거 아니요오? 상놈은 머 사람 아니고
고샅에 돌팍이간디? 이놈 저놈 오고 감서 아무나 밟고 댕기고, 내키는 대로 집
어 들어 팔매질을 허드라도 말도 못허는 노무 것, 무신 요행을 바래고 자식을
낳는단 말이요?"
"아 이놈아, 아무리 상놈이라도 한 펭상 울고만 살든 안헌다."
"어거지로 코뚜레를 헐 수는 없을 거잉게요."
"아나, 니 멋대로 허그라. 니 멋대로 혀. 그런디 이건 알어 두어라. 아무리 안성
맞춤 번쩍거이는 방짜 놋그륵이라도 지 속으서 녹이 나먼, 지가 삭어 부리제 벨
수 있는 중 아냐? 녹은, 쇠도 색이는 것이다. 녹이 독이여. 니 맘속에 독을 품고
있으먼 니 신상에 해로와. 니가 뿜어낸 독이 너를 생케 부릴 거잉게, 어쩌든지
순헌 맘 먹어라이. 잉?"
저러다가도 돌아설 날이 있겄지 싶은 마음을 버리지는 않았다. 공배가 무엇보다
도 아쉬워한 것은, 대장장이 금생이의 딸 얌례가 비얌굴로 시집을 가 버린 일이
다. 생김새도 그만하면 그런대로 수수하고 성정도 온순하여, 얌례는
"아앗따, 그 집구석에 밤낮으로 쇳덩어리만 뚜드러 재키등만, 딸내미 하나는 그
래도 죄용헌 놈으로 씨 받었능갑서. 여그저그 둘러봐도 얌례만헌 시악시 흔치
않겄데."
하고 이웃 동네 고리배미까지 소문이 나 칭송을 받는 터였다. 그래서 공배도 은
근히 춘복이한테 짝을 지어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얌례를 욕심내는 사람으로는
공배말고도 바로 울 너머에 사는 백정 택주가 있었다. 택주는 눈이 바늘같이 가
늘고 온 낯바닥에 누런 수염이 소털처럼 덮여 있는 칼잡이였다. 대대로 그 집에
서 나고 죽고 하면서 살아온 세습의 백정으로, 그는 물 건너 문중 마을의 큰일
작은일이 있을 때마다 소와 돼지를 잡았다. 물론 복날을 당하여서는, 날이 날마
다 개를 잡아 대느라고 허리를 펴지 못할 지경이기도 했다. 그럴 때는 개털을
태우는 연기와 노랑내가 온 거멍굴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자연히 택주네 마당에
는 쇠가죽 개가죽이 빨래처럼 널려 있고, 마루기둥에 매달아 놓은 쇠꼬리에 온
동네 쉬파리가 새파랗게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내가 이 까죽으로 얌례 꽃신 하나 맹글어 쥐야겄다."
하면서 은근히 혼인 말을 넣는 눈치를 채고는 공배가 애가 닮아
"춘복아, 너 얌례 어쩌드냐?"
하고 몇 번을 떠보아도 춘복이는
"어쩌기는 머어이 어쩐당교?"
하고는 그만이었다.
"저놈의 자식은 달릴 거이 안 달렸는가, 왜 저렇게 사서 뱅신 짓을 헐라고 그러
까잉?"
보다 못한 공배네가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얌례는 엉뚱하게도 하루아침에 비얌
굴로 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찌나 허퉁하고 서운하던지 한동안은
키운 정이고 무엇이고 춘복이가 밉살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마당에 와서
꼴같잖게 옹구네가 춘복이한테 다리를 걸고 넘어지다니,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
질 노릇이었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춘복이란 놈은 그런 옹구네를 공배
보는 앞에서라도 면박을 좀 주었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이건 또 그냥 두고 보
는 시늉이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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