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어가도 즈그 망신이여, 안 그런당가? 곤장을 칠래도 죄목이 있어야고, 죄목을
밝히자먼 즈그 집구석 똥구녁을 뒤집는 꼴이제잉. 양반이라고 부럴 거 한나도
없다아. 집안으 누이동상 못 잊어서 상사벵으로 죽어간 놈 원한 풀어 주는 날
밤으, 큰집 작은집 오래비 누이가 또 붙어 먹었으니, 그거이 무신 양반이냐? 아
이고 꼴 사납다. 빛 좋은 개살구지 머. 껍데기만 번지르르. 차라리 나 같은 상년
은 팔짜대로 천대박고 팔짜대로 막 살응게 거짓말은 안허지, 즈그들은 헐 짓 다
해 처먹고도 누릴 것은 다아 누린당게. 에이, 던지러라."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숨죽이어 하던 말끝이 암팡지게 팽개쳐진다. 그러면서도
옹구네는 속으로 알고 있다. 원뜸의 대갓집에서 이 소문을 들으면 당장에 말 낸
사람을 뒤져내 찾을 것이다. 그까짓 것 찾는 데 힘들 것도 없다. 거멍굴의 누구
든지 잡아다가 덕석말이를 해 보라지. 덕석말이까지 갈 것조차도 없이 그 댁 마
당에 끄집혀 들어서기만 해도 제 입으로 먼저 털어 바치고 말 위인들. 누가 감
히 그 높은 솟을대문 앞에서 허리를 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금방 소문
의 근거가 자기인 것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옹구네."
라고만 밝혀지면 그 다음 자신의 목숨이란 죽어 나가도 할 말 없는 일이다. 그
댁 가문이 먹칠이 되든 환칠이 되든 그것은 자기네들끼리의 일이요, 일단 옹구
네는 몰매로 죽게 될 것이다. 버선목처럼 뒤집어 보인다 해도 하릴없는 노릇이
요, 천지가 다 아는 일이라고 해도 몰매를 피할 길은 없다. 그래서 옹구네처럼
말을 참지 못하는 아낙이 용케도 이날까지, 그 일만은 꼬깃꼬깃 구겨 넣으며 참
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말은 남모르게 거멍굴로 번져 나갔다. 듣는 사람은 새
하얗게 질려서, 나 혼자만 이 소문을 알고 속으로 삼키리라 결심하였지만, 어느
새 한 사람을 건너갔다. 한 사람을 건너간 말은 다음 사람에게로 좀더 은밀히,
좀더 빠르게 건너갔다. 거멍굴에는 또 한 가지의 소문이 들어왔다. 새서방님 강
모가 일본 요릿집의 기생을 첩실로 얹혔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는 대갓집에
종손이 태어난 후라서 온 마을에 희색이 만면하여 거멍굴에까지도 훈김이 돌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진하게, 이 이상한 기생 첩실의 소문이 번진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새서방님이 파직이 되었다는, 깜짝 놀랄 말을 춘복이가 내뱉
었다.
"공금을 쓴 거이라. 그것도 삼백 원씩이나. 야아, 삼백 원이먼 대관절 논이 몇 마
지기고 밭이 몇 마지기냐. 태어나서부터 눈에 뵈능 것은 모다 자개 거이고 손에
잽히능 것은 모다 자개 몫이었응게 공금이라고 머 넘으 돈 같었겄능가. 내 것
아닝 거이 어디 있어야재? 어떤 사람은 씨를 잘 타서 도적질을 허고도 만사헹통
이고 어뜬 놈은 개 돼야지마냥으로 똥지게나 지고 살고. 빌어먹을 노무 시상. 이
거 무신 이런 노무 시상이 있어."
"그런디 돈 많고 전답 많은 새서방님이 머에다 쓸라고 넘으 돈을 훔쳐 냈이까
이?"
옹구네는 모깃불 연기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춘복이 곁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말은 춘복이가 할 것인데 입술은 옹구네가 쫑긋거린다. 공배는 그 옆자리 멍석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메마른 별자리에 물이 좀 오르나 하는 눈으로 하늘을
본다. 물론 귀는 온통 춘복이에게로 쏟아져 있었지만 아는 체하기도 대꾸하기도
싫었다. 애꿎은 곰방대만 빨아대는 그의 볼따귀가 어둠 속이라 더욱 우묵해 보
이고 까칠하다.
"에이고, 가뭄도 시절을 아능가. 어쩌자고 석삼 년씩이나 빼싹 말러갖꼬 모다들
외틀어지고 비틀어지고."
목소리마저도 쉰 듯하다. 쉬었다기보다 푸스스 먼지가 일 것 같은 소리다. 공배
네는 평순네와 마주앉아 다리미질을 하는 중이다. 잠깐 춘복이 말에 귀를 팔았
더니 그새 다리미 숯 위에 허연 검불이 앉았다.
"아이고, 성님은 더워 죽겄는디 대림질끄장 허니라고 그러시요잉.이런 날은 기양
앉어만 있어라도 떠 죽겄그마는. 꽉꽉 밟어서 털어 널어 갖꼬 기양 입어도 허는
디, 멋 헐라고 땀 흘림서 대리니라고오."
옹구네는 공연히 한 마디 참견을 한다.
"아, 기양 입을 거 따로 있고, 대려서 입을 거 따로 있제잉. 아무껏이 나 기양 입
간디?"
손잡이를 잡고 두어 번 다리미를 까불어 검불을 뒤집으며 공배네가 말한다. 불
티가 여름밤의 마당에 점점이 반짝이다 스러진다. 그러면서 되살아난 숯불이 벌
겋게 이글거린다. 거기다 대고 공배네는 다시 후우 입김을 불어 좀더 불기운이
일어나게 한다. 벌건 숯불에 비친 그네의 얼굴이 주홍으로 보인다. 캐갱 그르르.
건넌집 대장장이 금생이네 강아지가 잠결인 듯 짖는 시늉을 하다가 만다. 금생
이는 마흔 몇 살의 벙어리였다. 그래도 강아지는 주인을 닮지 않고 짖어 주니, 신
통하다고 할까.
"말복 지내기 전에 저거이 중개라도 되야 주먼 잡어먹겄는디 저건 머 조막만도
못허니 저게 언제 커?"
춘복이는 기다리는 말은 안하고 대신 개장국 타령을 한다.
"하앗따아. 오사게 뜸도 딜이고 있네잉. 무신 사단인가 모가지 아푸그만 후딱 말
해 부리제."
"기다리다 못한 옹구네가 핀잔을 준다.
"말로 허제 왜 찝어까고 그런당교?"
아마 허리를 꼬집혔는지 움찔하더니 춘복이는 목소리를 낮춘다.
"새서방님이, 생김새는 그렇게 각시맹이로 곱상헌디 여색은 남달릉가, 기생을 첩
으로 딜있다대?"
"어짜 옳이여? 누가 양반 아니라께미 그짓부텀 허능구만잉."
말을 맞받는 것은 옹구네다. 평순네는 빨래 잡던 손을 공중으로 치켜든다. 다리
미가 턱밑까지 달려든 때문이었다.
"본새 남정네라도, 각시맹이로 이쁘장허게 생긴 사람이 색골이라고 않등게비? 무
지막지 씨름꾼 장정마냥 생긴 사램이 외나 심도 못 쓰고 밤새도록 잠만 퍼 잔다
고 안히여?"
히히히. 아무래도 옹구네는 재미가 나 죽을 것 같은 모양이다. 강실이가 텃밭귀
퉁이에 넋을 놓고 앉아 있던 모습만도 말문을 텄으니 석삼 년 석 달 열흘 어치
이야기는 되는데,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양반 나으리는 좌우로 즐비하게 열
첩을 거느린다더니 그 말이 맞기는 맞는구나.
"기생 첩?"
공배네가 곰방대를 마당에 대고 두드려 털어내며 묻는다. 혼인하던 그날부터 웬
일인지 각시마님도 마다하고 공방 들렸다는 소문이 몇 년째 파다하던 새서방님
이, 어찌 꿈결같이 아들 하나를 낳게 해 주어 생각만 해도 다행이다 싶어 하던
끝이라,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첩을 딜인 것은 또 아무것도 아니라."
"또 무신 일이 있간디?"
"양반 한량에 첩실이야 머 쌔고 쌨는 거잉게 놀랠 것도 없는디, 그 여자가 기생
잉게 공으로 얻어 가질 수가 없었든 거이제. 기생이란 거이 몸뗑이만 지 꺼이제
쥔이 따로 있능 거 아니요? 그것도 머 쪽지고 풍류허는 구식 기생이 아니라 무
신 요릿집 여자라등만. 자세 몰라도 삼백 원잉가 사백 원잉가 퍼다 주고 빼왔능
갑데요. 율촌양반 알먼 다리 몽생이 뿐질러질 거는 불을 디리다 보드끼 뻔허고,
그렁게 아매 돈 말을 못허고 공금을 집어냈는갑습디다."
"공금? 공금이 머이여?"
"넘으 돈이라 그 말 아닝교?"
"넘으 돈을 집어내다니? 그러먼 도적질을 했다 그거여?"
"도적질이제잉."
"이것은 또 무신 소리여? 뚱딴지멩이로."
"뚱딴지는 무신 뚱딴지라요? 암만 자개가 관장허는 돈이라도, 지 꺼 아닌디 집어
내다 썼이먼 그거이 도적질이제. 양반은 머어이든지 지 눈에 띠먼 가져 부링게,
사램이건 육축이건 땅뙈기건 먼저 가지는 놈이 임자였는디, 인자는 그런 시상이
아니라고요."
"아, 집이다가 노적가리 곡석을 산데미로 쟁에 놓고 문갑으다가는 논문서 밭문서
를 채곡채곡 낟가리맹이로 쟁에 놓고 사는 댁 종손이, 머이 아숩다고 도적질을
헌당 거이여?"
"그렁게 미쳤다는 거이제잉."
"허허어. 니가 머엇을 잘못 들었능게비다."
"잘못 딛기는, 머 나는 헐 짓 없어서 밀지울 처먹고 헛심 팽기게 헛소리허고 자
빠졌간디요?"
(허어어. 일은 일이 났구나. 청암마님 쓰러지시드니, 서까래가 주저앉고 기왓장이
와그르르 무너지능갑다. 시상도 뒤숭숭헌디 그 댁이라도 짱짱하게 버티고 받쳐
주시야지 그 밑이서 우리가 사는디. 이 노릇을 어쩔 거인고. 그 집안이 어수선허
먼 내 속도 시끄럽고, 그 집안이 흔들리면 우리들이라고 무사헐 수 없는디, 멋
헐라고 그런 겁날 일을 대실서방님은 허셌이꼬. 불쌍헌 우리들을 생각해서라도.)
공배는 비스듬히 누워 있던 몸을 반쯤이나 일으키더니 아예 일어나 앉아 버린
다.
"없어서 굶어 죽으께미 도적질을 했다먼 가련허기나 허제. 지집 밑구넉으로 처박
을라고 관공서에 공금을 훔쳐낸 거잉게 가막소를 가도 싸제잉. 하이간에 교옹장
히 소란스렀능갑습디다. 어찌 어찌 무마가 되기는 되았능갑지만, 망신은 망신이
고."
"참말로 춘복아. 너 말 그렇게 야박시럽게 허능 거 아니다잉? 지내가 다 그 집
처마그늘에 비만 조께 피했어도 그 공덕을 고맙게 아는 거인디, 아 우리가 시방
다 뉘 덕에 이때끄장 요만이라도 살어왔간디, 그런 싸가지 없는 소리를 얌통시
럽게 허냔 말이다, 말이."
"아재는 인자 죽으먼 극락왕생허시겄소. 나는 딴 디 가 있을 거잉게, 죽은 담에
안 뵈이그덩 서운타 말으시요."
일어나 앉은 공배와 반대로 춘복이는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다림질도 거의 끝
나 숯불은 이미 가물가물 빛이 스러져 가고 몇 집건너 당골네 사립문 앞의 방죽
에서 머구리 우는 소리만 왁왁거린다. 말을 쏘아내는 춘복이와 그 옆에 바싹 붙
어 앉아 검은 눈을 반짝이며 말꼬리를 잡는 옹구네말고는 모두 다 웬일인지 심
란하여 잠잠히 앉아 있다. 이따금 애애앵, 날아드는 모기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
리는 소리와 털럭털럭, 다 떨어진 부채를 부치는 소리만이 밤이 깊은 것을 더욱
느끼게 한다.
"그나저나 골고루 구색 맞춰서 들어앉헤 놓고 지집 거나리는 것만도 양반으로
난 보람은 있겄네."
"골고루라니?"
옹구네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탄식조로 말하는 것을 공배네가 거들어 묻는다.
그때서야 평순네는 옹구네 옆구리를 쿡 지른다.
"아아니요. 기양 해 본 말이요."
강실이 이야기를 슬쩍 섞어 넣으려다 손가락으로 질리는 바람에 옹구네는 입을
다문 것이다.
"정도 줄라먼 한 간디다 주랬다고, 여그 저그다 흘리고 댕기먼 목마를 때 떠먹을
물 한 박적이라도 괴이간디? 아, 그런 말도 안 있습디여?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고. 여그서는 저그서 먹었겄지 하고 저그서는 여그서 먹었겄지 허고, 서로
미룸서 밥을 안 중게 굶어야제 벨 수 있어? 그렁게로, 미우나 고우나 한 자리를
파야는 거인디. 매급시 쩝적거리기만 허먼 생가슴에 원한이나 심어 놓는 거여."
그 말은 춘복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지. 옹구네는 대답 없는 춘복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옛말데도 첩 중에는 기생첩이 지일 무섭다등만 대실아씨도 큰일났네. 글 안해도
독수공방을 못 멘허고 사는디. 인자는 머리크락도 안 볼라고 허겄그만잉. 그렁게
대실서방님은 인자 아조 전주다가 꼬막같이 살림끄장 챙겠을 거 아닝게비?"
여전히 춘복이는 대답이 없었다.
"잔당가?"
"자기는 왜 자요?"
"근디 왜 말을 안히여?"
"내가 가 밨간디요?"
"그러먼, 머 공금 빼다 지집 사온 거는 바서 헌 말이었간디?"
"아이고, 나도 모리겄소. 밤도 짚었는디 나는 가서 잘라요."
귀찮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춘복이를 따라 옹구네도 부채를 챙긴다. 그
제서야 평순네도 치마 말기를 추기며
"성님 주무시요."
하고는 주섬주섬 멍석 위를 치운다. 극성스러운 모기들은 모깃불마저 꺼진 터라
마음 놓고 떼를 지어 앵앵거린다. 시늉뿐이어서 닫을 것도 없는 사립문을 나가
는 평순네의 발짝 소리가 고샅에 들릴 때, 아직까지 멍석 위에 앉아 있는 공배
는 다시 곰방대에 담배를 잰다. 그 옆에서 공배네는 다림질한 빨랫감을 개킨다.
"에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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