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야제. 익어서 저절로 꼭지가 빠져야제. 설익은 재주에 코 깨지느 법이니
라."
그런디도 야가 한 번 먹은 맘이라 들떠서 주저앉들 못허고 기어이 질을 떠났
드란다. 금강산으로 들어갈 적에는 여나무 살 소년이었는디, 그새 구 년이나 세
월이 흘러서 인자 의젓한 총객이 되야 갖꼬, 큰시님 밑에서 멩당 풍수 공부를
헌 사램이라 생김새도 점잖허니 보기 좋게 갖춰져서,절에서 떠날 때는 차림새
갠찮었는디, 강원도서 전라도 땅이라는 게 험허고 멍게로 걸어걸어 고향 찾어가
는 질이 쉽들 안히여, 어쩌겄냐. 천리 질을 가는디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수중
에 가진 돈도 없응께, 비렁비렁 빌어먹음서 밤에는 한뎃잠을 자고 낮에는 찌그
러진 동냥치 다 된 꼴로 질을 걸었드란다.
그러다 하루는 어뜬 잔등이를 넘을라고 기진맥진 배가 고파서 허덕허덕 올라
가는디, 거그 잡곡 수풀에 웬 조그막헌 머이매 하나가 나무를 닥닥 긁고 있거든.
지게에다 도시락을 하나 얹어 놓고.
그것을 본 이 사램이 그만 시장끼가 할퀴디끼 돔서 희가 동허네. 여러 날을
굶어서 배는 고프고, 한 숟구락이나 얻어먹을라고 동네로 들어스먼 온갖 개가
한끕에 달라들어 물어뜯을라고 짖어 제끼고, 그래서 등에 가 붙은 뱃가죽을 틀
어쥔 채 하루라도 앞댕게 집으로 가고 자와 가고 있는 중이가, 시방. 그런디 눈
앞에 밥이 뵈이네. 도시락이. 그것도 안 먹은 거이 분명헌. 밥을 다 먹었으면 도
시락을 지게 뿔따구다가 짬매서 걸어 놨을 거인대 그게 아니그던?
이 사램이 순간 염치를 불구하고 그 애한테 사정을 했드란다.
"야야, 나 좀 보자. 미안허지마는 내가 질 가는 사람인디 하도 배가 고파 기진
을 허게 생겠으니, 너 나한테 밥 한술 줄 수 없겄냐?"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그 머이매보담 두 배는 되게 생긴 놈이 덜썩 커 갖
고 쬐깐허니 에린 것 점심밥을 얻어먹을랑게 그 총중에도 낯바닥이 뜨뜻헐 일이
지마는, 그렁 걸 챙길 겨를이 없는 처지여. 지치고 배 고파서 죽게 생겠잉게.
"아, 디리지라우, 잡수시오."
아, 이 조그마헌 머이매가 선선허게 도시락을 내주고는, 저는 도로가서 나무를
긁는디, 꼭 이 총객이 산소 공부를 허로 집을 떠나기 전의 지 모습 같드란 말이
다. 어쩐지 안쓰럽고도 고마운 마음으로 체다봄서 쪼끔만 먹으리라 허든 밥을
반이나 먹어 부렀그만, 에린 것 밥을.
"하이고, 이거. 그저 기척만 해도 죽든 안헐 거인디, 내준 밥이라고 염치도 없
이 이렇게 다 퍼먹고 자한테 미안해서 어쩌꼬."
그럼서도 자꼬 손은 밥으로 가.
원청 배가 고파 농게, 그만 먹들 못허고.
그래도 말로는 체면을 챙겠제.
"야아, 너도 시장헌디 어서 와서 이 밥 먹어라. 아나, 나는 다 먹었다. 먹어야
힘이 나서 낭구도 허제, 그만 먹고 너 주께 얼릉 먹어."
"아니라요. 나는 한 끄니만 참으면 저녁에 집에 가서 밥먹을 수 있지마는, 여
러 날 굶고 먼 질 가시는 모양인디 기양 그놈 다 잡수시오."
"허허어, 고맙다."
그래 눈을 딱 감고 그 밥을 다 먹었네.
그러고는 물었어.
"너 어디 사냐?"
"저 아래요."
"누구랑 사냐?"
"어머이 한 분 뫼시고 둘이 사요."
"아부지는 안 지시냐?"
"돌아가셌소."
"하, 그래. 그거 참 안되얐구나. 에린 니가 고생이 많겄다. 그런디 장사 치른
지는 얼매나 되ㅇ고, 또 산소는 어디다 썼냐?"
"한 삼 년 지냈는디 시방 뫼신 디는 최빙굴(초빈골)이고, 아직 뫼는 못 썼그만
이요. 관 욱에다 이엉 덮은 그대로 있습니다."
"허허어, 그러냐."
이 사램이 만감이 착잡해서 한참 동안 물끄레미 머이매를 체다보다 속으로 저
놈 불쌍헌 놈, 내가 저놈 밥을 뺏어 먹고 기양 간다먼 사램이 아니제. 내가 그래
도 배운 공부가 있으니, 자 아부지를 참 어디 따땃헌 자리에다 뫼셔 주고, 그 발
복으로 밥이나 좀 먹게 해 주고 가는거이 도리리라. 굳이 도리를 안 찾드래도
그러고 싶은 거이 내 마음이다. 에린 놈이 가난헌 중에도 인정이랍시고, 이렇게
나 고맙게 저 먹을 밥을 내줬는디. 나도 얻어먹은 밥을 갚어야제.
그래서 인자
"너 내가 느그 아부지 산소 자리 하나 봐 줄 거잉게. 느그 집으로 가서 어머이
만나자. 이런 일은 어른이 알어양게."
허고는 머이매 앞세워 오막살이 초가집으로 갔제.
가련허게 생긴 그 집에 잠시 머뭄서 이튿날부텀은 가허고 둘이서 일삼어 근처
를 돌아댕기는디,아무리 산을 타고 댕게도 자리가 없어. 멫날 메칠을 뒤지고 댕
게 봐도 도대체가 눈에 띄는 자리가 나오들 안해. 헛걸음이제. 멩당이 무신 호박
넝쿨에 호박 달리디끼 여그 저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하나 자리를 잡어 줘야
겄는디, 이럴 수가 있으까 싶게 혈이 안 잽혀. 참 별일이다.
이러고는 그날도 터덜터덜 산으서 낼오는디
"그러먼 그렇제."
한 간디가 탁 눈에 들오네.
눈에 번쩍 띠여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좌우 사방을 돌아봉게, 틀림없이 삼
년 내에 한 백석은 허게 생겠어, 이 자리가.
"내 말 듣고 여그다 느그 아부지를 뫼시면 앞으로 삼 년 못가 한 백석지기 살
림은 이루고 살 거잉게, 그리 알고 아부지 유골을 여그다 뫼세라. 이 자리가 바
로 새비 자리다."
헝게로 얼매나 좋을 거여?
아들이고 어머니고 기양 은인 도사로 극진히 떠받들어 공대를 허고는 날을 잡
어 뫼셨제. 산역꾼 살 형편도 못 되는지라 이 사램이 머이매 데꼬 직접 나서서
땅을 파는디, 땅이 뻘건혀. 시뻘건 흙이란 말이제.
흙색이 그렁갑다 허고는 벨 생각없이 유골을 뫼신 뒤에, 간단헌 제수를 채려
평토제도 지내고,그 모자한테서는 눈물로 바치는 감사를 받고, 흐뭇헌 심정으로
길을 다시 떠났어.
"밥값 옳게 했능가 모르겄습니다. 내가 산소 공부를 많이는 못했지만 인자 보
도시 그 깊이를 알 듯도 해서 한 자리 써 디렸는디요. 허나 두고 보시먼 제가
별 짓 안허고 갔다고 허실 겁니다."
"이 은혜를 어뜨케 다 갚으꼬. 언제라도 요 근방 지내시그던 잊지 말고 꼭 들
르시오. 백 석지기 부자가 되얐능가 어쩠능가 궁금해서라도 꼭 한 번 다시 오시
오 그려. 그래야 은혜를 갚지 어찌 갚겄소."
아들 손을 잡고 언덕 날맹이끄장 배웅 나와 어디만큼 아득히 가드락, 돌아보
면 거그 서 있고 돌아보면 또 거그 서 있는 사람들을 뒤로 허고 고향으로 고향
으로 갔드란다.
고향에 와서 봉게 즈그 어매가 그때끄장 안 돌아가셌어. 살어 지신다 그 말이
여. 머리가 멩주꾸리맹이로 하얗게 시어 갖꼬는. 허리는 다 꼬부라져. 쪼글쪼글.
그랭서 둘이 기양 붙잡고 한바탕 울고불고 헌 뒤에
"너 오먼 죽을라고 내가 아직 못 죽고 있었다. 나는 니가 하도 보고자와 얼매
나 많이 울었능가 눈이 다 짓물러서 아무껏도 안 뵌다."
어매가 다시 한 번 목을 놓아 통곡을 했드래.
"너만 보면 되얐제 다른 것 봐 멋 허끄나. 아무것도 쇠용없다. 금도 싫고 은도
싫어. 온갖 꼴도 다 뵈기 싫어. 그렁 것 갖기도 싫고 뵈기도 싫다. 너만 있고 너
만 보먼 나는 되ㅇ다. 아이고오, 내 새끼이."
"안 갈라요 어머이, 인자는 갈 일도 없소. 내가 아부님을 멩당으로 뫼실라고
십 년을 결단하고 자아깨나 쉬임없이 공부를 했드니, 그 세월이 다 안 걸리고
구 년 만에 공부가 끝나서 더 배울래야 배울 거이 없습디다. 인자는 어서 좋은
자리 찾어내서 아부님을 뫼세 놓고 어머이한테 효도 험서 살겄으니 눈물을 거두
시오."
허고는 그날부텀 산소 자리를 찾을라고 일구월심 원을 험서 인근을 이 잡디끼
헤매고 돌아댕기기 시작했다드라.
그런디 통 자리가 없어. 뵈이들 안혀. 눈 깡깸이여. 하 이런 낭패가 있능가. 암
만 눈을 비비고 봐도 안개 찐 것맹이로. 당최 안 뵈여. 하루 가고 이틀 가고, 한
달 가고 두 달 가도 없어.
나중에는 낙심천만이라 밥맛도 떨어지고 기운도 떨어지드란 말이다. 그런 날
이 참 몇 달이 흘러가고 그 욱에 또 세월이 흘러 몇 년이 또 훌쩍 지내갔드
래. 속절도 없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제잉.
귀신이 곡헐 노릇이라.
그러다 하루는 문득
"내가 이거 처음에는 십 년 공부를 서원허고 갔었는디, 십 년을 다 못 채우고
구 년 만에 돌아와서 머이 모지래능 거 아니까. 나는 다 배운 줄 알었지마는 아
직도 못 배운 머인가가 있길래 이렇게도 자리를 못 찾는 거 아니까. 암만해도
이러다가는 아부님 멩당에 못 모시고 말 것 같다. 내가 그 십 년을 다 채우고
왔다먼 혹시 모르겄는디. 안되겄다. 다시 가야제. 가서 다시 일 년간을 더 배와
야겄다. 벨 것 아무리 없을망정 옛선생님 시키는 대로 구름이나 보고 물 소리나
듣다가 오는 한이 있어도 그 옆에서 그 기한을 채워야만 허겄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우는 즈그 어매한테
"일 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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