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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47)

카지모도 2024. 8. 2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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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죽어 갖꼬 멩당을 간당가?"

"아 긍게 죽어도 심있는 양반 죽기를 지달를랑게 쉽들 안헝 거 아니요오. 송사

리사 냇갈에 가먼 짝 깔렸지마는."

"휘유우."

"한숨 쉬지 마씨요. 부정타게 맘을 질게 묵어야제 그렇게 한숨으로 토막을 치

면 쓰간디. 신명이 돌아보먼 방정맞다 그러시겄소."

"저어그 대산면 한울리 이딘가는 시암 속에도 멩당이 있다고 허드마는. 그게

있을라면 그렁게도 있는 거인디."

"헤기는."

"아 그 왜 새비 자리 쓴 이얘기도 안 있소?"

"그것도 그리여."

내외 마주앉아 한숨 섞어 하는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귀남이가, 꼭 만동이

어렸을 때 아비 홍술이를 올려다보고 묻던 모습으로

"새비 자리가 머이당가?"

고개를 반짝 치켜들며 물었다.

"그렁 거이 있어."

"있다고만 말고오."

"이얘기 좋아허면 가난허게 산대."

"가난허면 어쩌간디?"

"못 쓰제 어쩌."

"끈 달어 쓰제 머."

"아냐, 끈."

만동이는 귀남이 두 귀때기를 깜짝 순간에 양손으로 감싸서 꽉 부둥켜 쥐고

공중으로 끌어 올리며 웃었다.

"모가지 빠지겄네."

징을 닦아 웃목으로 밀어 놓으며 백단이도 옆에서 웃는데, 귀남이는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이야기 해 주어어."

"그리여, 그려. 그러자."

전에 전에 금지면에 어뜬 사램이 있었는디, 나이 똑 너만 해서 즈그 아버지가

그만 죽어 부렀드란다.

그 아부지가 영갬이 다 되드락 어찌 자손이 없었다가 천행으로 늘그막에 아들

하나를 두었등게빈디, 복이 그것배끼라 이 아들 낳는 것 보고는 그만 죽고 말었

디야. 아들도 딸도 더는 없고 외아들 독자로 이 자손 하나 달랑 탯줄에서 떨어

져, 할마이 같은 어매허고 단 둘이서 궁혀게 하루하루 살었드래.

그저 뒷산으서 나무나 한 짐 해다 팔고 제우 입에 풀칠이나 험서 에린 아들

데꼬 꼬부라진 즈그 어매가 가냥 사는디, 하루 가고 이틀가고, 한 달 가고 두 달

강게, 어느새 한 해 가고 두 해 가서, 야가 인자 한 여나무 살 먹게 되얐능게비

드라.

가가 가난해서 그렇제 영리허고 신통헌 디가 있었등가.

"인자 지가 이만치 나이 먹었응게 나뭇짐을 해도 지가 허고 어머이 봉양을 해

도 지가 헐라요, 어머이는 집이가 가만히 지십시오."

그러고는 지게 하나 딱 둘러메고 산으로 가네. 그러더니 그날부텀은 눈만 뜨

면 새복같이 산으로 가서 하루 죙일 가리나무 긁어대고 삭젱잇단 짬매 묶어, 대

체나 즈그 어매 대신 장에 내다 팔어 오고 했는디.

하루는 가마안히 속으로 생각을 해봉게,

"내가 울 아버지한테는 단 하나 혈육인디, 아부지 자식으로 태어나 아부지한테

아무껏도 해 드린 거이 없고나. 인자 와서 효도를 헐라 해도 아부지가 이 세상

에 지시기를 않으니 도리가 없어. 어쩔끄나. 내가 지금부텀이라도 공부를 해서

우리 아부지 유골이나마 멩당에다 펜안히 뫼시야겄다."

허고는 작심을 했겄다.

"허나 내가 집이서 이러고 있으면 공부허기가 에럽제. 펭상에 나뭇꾼으로, 살

아 지신 어머니 끄니조차 지대로 챙기기 에러울 거이고, 돌아 가신 아부지 멩당

에 뫼시기는 아예 그를 거이니, 내가 이 질로 명산 대찰을 찾어가 산소 공부를

좀 해야겄다. 그러고 돌아오리라."

즈그 어매한테 십 년 수에 오마고 하직을 허고는, 물어 물어 강원도 금강산을

향하여 떠나가서는, 드디어 그 공부로 이름 높은 어느 절에 이르러서 큰시님을

찾어 뵙고 공손히 꿇어 앉어

"나는 이러이러 전라도 땅 아무 디 촌으 사는 아무갠디, 우리 아부지 나이가

많아서 늙은 후에야 태어난 탓으로 내가 이빨도 안 나 주먹만 헐 때 그만 돌아

가세 부렀소. 늦게 난 자식 재롱도 다 못 보고. 나는 그 냥반의 자식으로 나서

내 손으로 따순 밥 한 그릇을 생전에 못 지어 디리고, 내 손으로 그 방에다 불

한 부석(아궁이) 못 때 디린 거이 한이되야. 인자라도 멩당에다 아부지를 뫼서

보까 허고는 지금 이렇게 산소 공부를 허로 왔습니다. 내가 십 년 결단을 세우

고 왔으니 부디 나한테 가르침을 주십시오."

간곡하게 청을 올렸드란다.

그 효심을 읽은 큰 시님이

"그러먼 그래라."

해 갖꼬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대. 산소 공부를, 그런디 어떻게나 열심히 배우

고도 총명헌지, 선생님이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고 둘을 갈치면 열을 미리 짚

어 부러서 선생도 그 재주에 깜짝 놀랬드리야. 그러장게 넘들보다 갑절이나 공

부가 빨러서 인자 만 구 년간을 배우고 나니, 통머 그 선생이 거그다 더 갈칠

것이 없게 되얐드래.

그 동안 고향도 잊어 불고, 굶는지 먹는지 즈그 어매도 잊어 불고, 제백사 제

만사를 헌 채로 일구월심 오직 공부에다가만 온 정신을 씨고 헝게로, 번쩍번쩍

아능 거이 늘어나네이, 아 그렇게 십년 결단 시간은 아직 일 년이나 남았지마는

공부가 차고 넘쳐서, 이 아들이 선생한테 멀 물을래야 더 물을 거이 없드래.

선생도 인자는 멀 더 갈칠라고 허능 거이 아니라, 야보고 기양 오락가락 험서

흘러가는 구름이나 체다보고 계곡에 물 소리나 듣고 놀으라고 헌단 말이여.

까깝허제. 공부를 허니라고 시간을 씨는 것도 아니고, 달리 무신 헐일이 있는

것도 아닌디, 무단히 십 년 결단을 채우니라고 벌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아서,

날 가는 거이 아깝고 마음이 조급히여. 어서가서 배운 대로 아부지 멩당도 씨고

잡고 어매도 보고 자와 도저히 안되겄어. 좀이 쑤셔서. 아, 그러다가 하루는 야

가 더 못 참고 선생 앞에 물팍을 딱 꿇고 앉어서 토로를 했네.

"내 요먼허면 인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부지를 멩당에다 뫼실 자신이 있으니

떠나야겄습니다. 늙으신 어머이가 혼자서 어뜨케 살고 지신지 그것도 모르겄고."

"오, 그러냐? 허나 장부가 한 번 십 년 공부 뜻을 세웠으면 반다시 십년 기한

을 채워야지. 아직 일 년간을 더 공부허도록 해라."

"아, 내가 더 배울래야 선생님한테 인자는 더 이상 배울 거이 없습니다. 구름

보고 물 소리 듣는 거이야 금강산 아니라도 어디서나 헐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조선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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