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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34)

카지모도 2025. 3. 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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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리운 옛 강토

 

중일간도협약전문

1. 중.일 두 나라 정부는 두만강을 중, 조 두 나라 국경으로 하고, 강원천 근방은 경

계비를 기점으로 하여, 석을수를 경계로 한다.

2. 중국 정부는 본 조약에 조인한 후 아래의 몇 개 곳을 개방하여, 외국인들이 거주

하고 무역하게 하며, 일본 정부는 이런 곳에 영사관이나 영사분관을 설치한다. 개방시

간은 참작하여 정한다.

용정촌, 국자가, 투도구, 백초구.

3. 중국 정부는 조선민이 두만강 북켠에서 계속 개간하고 거주하도록 허가한다. 그 지

역 경계선은 지도로 따로 표시한다.

4. 두만강 개간지에 거주하는 조선민은 중국의 법권에 복종해야 하며, 중국 지방 관리

의 관할과 재판을 받아야 한다.

중국 관리들은 이런 조선민에 대하여 중국 공민과 동일한 대우를 하며 모든 납세 및 기

타 모든 행정처분도 중국 공민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조선민과 관계 되는 모든

소송 사건은 중국 관리로부터 중국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일본 영사거나 위임받고 파견된 인원은 마음대로 재판소에 들어가 들을 수 있으며,

인명에 관계되는 중대한 안건은 반드시 사전에 일본 영사에게 각서를 띄워 재판소에

오게 한다.

만약 영사가, 법률에 맞지 않는 판단을 내렸다고 지적한다면, 중국측에서는 인원을 따

로 파견하여 재심사한다.

5. 두만강 북쪽 잡거 구역 내의 조선민이 소유한 토지, 가옥 등을 중국 정부에서는 중

국인의 산업과 동일시하고 일률로 절실히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강기슭 적당한 곳에 나룻배를 두어 인민들이 서로간에 마음대로 나들게

하되, 증명서가 없이는 무기를 가지고 국경을 넘지 못한다.

잡거 구역 내에서 생산한 알곡을 조선민들이 판매 운수할 수 있다. 만일 흉년이 들

면 국경을 넘기지 못한다.

6.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길장(연길과 장춘) 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고 다시 조

선 회령 철도와 연결시킨다. 그 모든 방법은 길장 철도와 같이 취급한다. 시공 기간

은 중국 정부에서 정황을 참작하여, 일본 정부와 다시 상의한다.

7. 본 협약은 체결한 후 즉시 실시하며, 일본 통감부에서 파견한 문무 인원들은 두

달 이내로 전부 철퇴하며, 일본은 제2조목에서 개방하기로 한 상업지에다 두달 안으로

영사관을 세워야 한다.

명치 42년 9월 8일

선통 원년 7월 20일

대일본전권공사

이집원어길 인

대청국영명외무부상서회판대신

양돈언 인

중국과 일본이 체결한 이 협약에 의해서, 같은 해인 1909년 십일월 이일, 용정촌에 간

도 총사령관이 섰고, 국자가 분관이 그 이튿날인 십일월 삼일에 섰으며, 투도구 분관

은 십일월 구일에, 백초구 분관은 또 이듬해 삼월 일일에 서서 사무를 보기 시작했는

데.

간도, 간도, 대관절 그 간도라는게 무얼 두고, 어디를 보고 말허는 것인고? 이기채

는 기표에게 무심히 지나는 말처럼 물었다.

흔히 연변 일대를 그렇게들 부르지요.

연변이라...

왜 그 두만강 너머 길림성 동남부, 연길, 훈춘, 왕청, 화룡, 네개 현을 통칭 그리 말

허지 않습니까.

거기라면 내륙인데 그 복판에 무슨 섬이 있어서 간도란 말인가. 그게 사이 간, 섬

도, 그렇지 아마? 그 명칭에 어떤 연유 래원이 있을 것 아니라고? 그 말을 할 때 이기

채의 낯빛은, 극추 생마포 거친 삼베로 얽은 상복보다 더 누르고 썽클하였다. 초췌한

얼굴에 깊이 패인 수심은, 강모의 안부를 드러내어 염려하고 묻는 대신 만주 근교 무

엇에 대해서라도 좀 듣고 싶은 기색을 띠고 있었다.

논조가 다단해서 무어 어느 것이 옳다고 딱이 꼬집어 단언하기는 어려운가 봅니다만.

지리적으로 볼 때, 연변 일대는 남쪽에 두만강이 있고, 북쪽에는 목단강, 수분하가 있

으며, 동쪽에 홍기하가 있어, 이 강물들이 네개 현 주위를 에워싸 흐르는지라, 이 지

역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뜬 섬 같다는데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고,. 역사적으로

는 중국과 조선의 경계에 물려 자리한 이 간도가, 근교의 봉금 시대에 중립 지대로서

어느 한 나라에 속하지 않았는지라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였으며.

또 한편에서는, 본디 이곳의 땅이 비옥하고 토질이 농업 개간에 알맞은 곳인지라 따

비질할 간자가 들어가는 간도인데, 조선에서는 음이 같은 사이 간으로 잘못 알고 있다

는 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간도는 간동의 틀린 음이라는 일설도 있는데, 이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가 경원군 용당으로부터 간동으로 이사를 했던 일에 비추어, 간동을 두만강

동쪽 일대라고 해석하고는, 조선음에서 강과 간이 서로 비슷하므로, 간동을 간도라 부

른다는 것이었다.

뿐 아니라, 화룡현의 광제욕과 그 맞은편 언덕 너머 종성 사이에 작은 섬이 하나 있

는데, 귀속이 분명하지 않아 의견이 서로 엇갈리어 간도라고 해 오다가, 이 작은 섬 이

름이 연변 일대로 확대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도 저도 확실한 것은 아니며 떠도는 추측일 따름인데 내가 단언하고 싶은 것

은, 간도라는 두 글자가 한꺼번에 생긴 것이 아니라, 같은 음을 가진 간도와 간도가

서로 뒤섞이어 쓰이다가, 경계에 대한 교섭이 있은 뒤에, 연변이 중국 영토임을 승인

하고 싶지 않은 조선인들의 심리가 이 땅 이름을 간도라 하고, 이곳이 그 어느 나라

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지대인 것을 표시하였다.

고, 망국 조선의 아들로서 연변에 오랫동안 살면서 그곳의 산천 모습과 정치 외교 연혁에

대하여 아주 숙달하였던, 여추 심용해 같은 사람은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그 연변 일대라는 것이 말갈들 사는 데 아닙니까.

기표는 눈을 가느스름 뜨고, 국경의 변방 너머 아득한 상고를 더듬는 어조로 말했다.

말갈.

얼굴의 광대뼈가 높이 솟아 튀어나오고, 머리칼은 검으며, 피부는 황색인 인종으로

통고사족(퉁구스족) 의 일족인 말갈은.

저 멀고 추운 시베리아로부터 만주와 조선 함경도에 걸쳐 널리 살면서, 생업으로 짐

승을 쫓아 수렵을 하며, 혹 강이나 바닷가에 살게 되면 어업에 종사하는 족속. 이

말갈의 무인들은 돌화살과 독화살을 썼다.

거칠게 들판을 내달리며 미개 야만으로 살던 말갈족 중에 더러는 농경을 익히어 정착

하기도 했지만, 대 부분은 막사 하나 짊어지고 떠돌며 무리지어 다니는 이동생활을 하

였다.

역사 속에서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였다.

주나라 때는 숙신, 한나라 때는 읍루, 그리고 위대에는 물길, 수. 당 이후에는 말갈이

라고.

그리고 조선에서는 야인이라고 불렀다.

고구려가 건국한 뒤,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말갈은, 신라 통일 이후, 멸망한 고구려

의 유장 대조영이 고구려 부활을 꿈꾸며 창건한 나라 발해에 예속되었는데, 이때 일

부는 신라로 귀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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