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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36)

카지모도 2025. 3. 6.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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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간에 있는 다른 샘물 한 줄기는 삼사십 보 가량 흐르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한

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 원천과 합치고, 한 갈래는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 원천

과 합치었다. 그 흐르는 모양새가 사람 인자와 같은 두 물줄기 가운데, 호랑이 형국의

작은 바위가 하나 어찌 보면 뛰는 거북처럼도 보이게 엎디어 있었다. 비석은 이곳에

세웠다.

경계가 확정되자 조선 조정에서는 두만강 봉금령을 내리고, 사사로이 강을 건너는 자

에 대해서는 사형을 내리겠다 하였다.

청나라에서도 신주 밖을 국경 바깥으로 취급하고 사람 살 곳이 못된다하여 황폐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하여 연변 일대는 날짐승과 길짐승이 하늘을 메우고 땅을 채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다만 사냥꾼이나 약을 캐는 사람들, 혹은 탐관오리 학정을 못이겨 달아난 망명자들

만 이 봉금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사로이 드나들면서, 심산 유곡이나 황야에서 짐

승들과 함께 먹으며 살아갔다.

그러던 고종 6년 기사년(1869), 청나라 목종 동치 8년에, 함경북도 육진에 전례 없

는 대기근이 들어, 풀뿌리도 캐먹을 수 없게 된 백성들이 국가 봉금령을 불고하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강북으로 넘어가니, 이것이 바로 최근 근세 조선인들이 연

변으로 이주한 역사의 첫 장이었다.

그러면서 십여 년이 지난 고종 9년 임오년(1882), 청나라 덕종 광서 58년에, 길림 장

군 명안이 두만강 동북지대를 개간하기 위하여, 영을 받고 변경을 순시하다가 조선인

의 이주 정황과 형상을 보고는 크게 놀라 조선 조정에 글을 보내어 두만강 이서와 이

북을 차지한 조선 빈민들을 몽땅 돌려가라고 하였다. 그 이듬해 계미년 사월, 돈화현

에서는 종성. 회령 두 개 읍에 포고를 보내어 삼엄하게 항의하였다.

월경한 조선 개척민들을 몽땅 돌려가라.

이리하여 두 나라의 경계 교섭은 다시 또 시작되었다.

1885년부터 1888년에 걸쳐 세 차례나 변계 검증 회의를 가졌으나 결국은 효과를 보

지 못하고, 중국 정부에서는 무력을 행사하려고 간도 중심에 연길청을 새로 세운 뒤

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조선 개간민에게서 조세를 받아들였다.

조선 개간민들은 조선 조정에 여러 차례 공소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보살펴 달라고 하소

연하였다.

조선에서는 두만강 유역에 변계 경찰서를 설치함과 더불어 간도 사찰사를 두어 조선 개

간민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었는데, 당시 중국 국적에 입적한 조선민이 이만 칠천사백

여 호에 남녀 숫자가 십여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몇 년 안돼서 노일전쟁이 시작되고 조선은 나라 안팎의 재난이 한창 자심해

진 까닭으로 간도 문제를 돌볼 사이가 없었다.

그 말갈. 여진. 야인의 땅으로, 부랑의 땅 간도로, 이 애들이 왜 갔단 말인가, 대관절

무엇 때문에, 무엇을 하러.

이 애들이 간도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모르지요.

이기채는 무겁게 눈을 감았다.

부모로서 제 자식이 어디로 갔는지 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으리야.

이기채의 회한에 저린 심서를 기표는 이미 건너짚어 보았는지라, 되도록 자상하게 아

는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 늦도록까지 들려 주었다. 집에도 내려가지 않은 채 사

랑에서.

닿을 수 없는 곳에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자식의 소식을 간접으로나마 어루만져 보고

싶은 어버이 가여운 심회를 기표가 모를리 있겠는가. 그 지역의 지명만 말해도 가슴

의 밑뿌리가 어금니 저리듯 저르르 울리곤 하는 것은 기표도 마찬가지였다. 강모가

있는 곳에는 강태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 기표는 만주와 연변 일대에 대하

여 남모르게 많은 소식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널리 벼릿줄을 풀어 귀의

망을 펼쳐 놓으면, 어느 날인가 자식들의 소식이 그 저인망에 걸릴 것을 기표는 믿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기표는 국경 너머 만주땅 그 어느 곳이라도 조선 사

람 사는 곳이라면, 날카롭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 톨이라도 정보를 얻어냈다.

기표가 그러할 때 이기채인들 다를리 있으리.

아무리 대추씨처럼 단단하고 놋재떨이 같이 강단있다 하지만, 그는 태산 같던 어머

니를 여의고 시린 무릎 여윈 뼈에 살 부빌 단 하나 자식놈 또한 종적없이 도둑맞은,

허전한 아비에 불과하였으니, 형제 서로 마주앉아, 속마음을 구겨서 접어 두고, 그저

다만 간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우회하여 심중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

이야기 곁에 자식들 살 닿고 숨 어린 바람이 묻어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제 강호가 돌아와 만주 봉천 서탑거리에서 만난 강모와 강태의 소식을 풀어 놓

고 갔으니.

선조의 그리운 옛 강토에, 그리운 자식들이 몸담고 머물러 있는 것이, 불쌍한 아비

의 가슴을 쳐, 이기 채는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홀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울었다.

그러나 그곳이, 전주 이씨 선조의 아득한 숨결이 일구어 낸 땅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도 안심이 되기는 되어, 강모가 그 품에 든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 싶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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