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신 지 백 일이 다 못되어, 유택을 더럽고 소란하게 뒤집은 죄, 내 뼈를
빻아 가루가 된다 해도 씻을 수 없는데 혼백인들 어찌 안정하실 수 있으며, 잠시나마
더 머물고 싶은 정이 나리오.
내 너를 낳지 않아 이대도록 홀대하느냐.
어머니는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양자 온 아들이라, 저와 같이 제 어머니 산소를 허술히 지킨다. 피는 어쩔 수 없다고,
사람들이 냉소하여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이는 것만 같다.
아니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기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부르짖는다.
하지만 자신의 양자 온 아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각성되며 골수에 사무쳐, 처신에
구설이 있으리라는 것도 아지 못하는 것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피 한 점 살 한 점 이승에
남기지 못하고 가신 어머니, 유혼의 흉중이 어떠하실까.
짐작만 해도 이기채는 창자를 찧고 싶었다.
꿈에라도 어머니를 생모. 양모, 자각하여 생각해 본 일 없었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
고 보니, 허물은 드러나고 정은 감추어져, 오로지 죄지은 자식으로서 자격지심이 뼈에 미
치고 사람들 보기에도 부끄러웠다.
또한 그냥 제 어미의 산소를 훼손당한 것만 해도 수치요 치용인데, 홀로이 한세상 추상
같이 공규로 지나오신 어머니의 사후에 깨끗하신 그 뼈 하나 온전히 보존해 드리지 못하
고, 무당아비 뼈다귀가 침노해 들어가 개개게 하니 그 봉욕을 어찌하시리. 아, 무엇으로 어떻게 갚아 드리리.
이제는 틀렸다. 어머니의 한세상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말았다.
살아서 지키신 어머니의 뼈를, 죽어서 자식은 지키지 못하고. 한낱 지 웬수엣 놈의 천
골들 작란에 말려들어, 풍비박산, 흩어지게 만들고 말았으니. 하늘 아래 이와 같은 죄인
이 또 어디 있으리오.
울지 말아라. 울지도 말아라. 무슨 낯을 들고 슬프다, 서럽다, 운단 말이냐.
다 이런 일 경계하노라고 여묘 시묘하는 것을.
상제가 부모의 거상 중에 무덤을 돌보지 않고, 몸 편히 집안에서 자고 눕고 한 죄를 하
늘이 아시는 것이지. 징벌하신 것이지.
나는 어머니를 도둑맞고 말았다.
이기채는 이 능멸을 견딜 수 없어 그만 무릎을 꺾고 주저앉는다.
원통해서...어머니.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아아, 이런 말을 참람해서 용서도 받을 수 없지만, 그렇지만... 기왕에 어쩔수 없이
투장을 당했다 하더라도, 통혼하는 동제간, 양반의 댁 부인이 산소의 옆구리를 들치고 들어
온 것이라면, 그랬더라면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만 이토록 처참하게 모욕스럽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도, 명당도둑 일화로서 전고에도 있었고 지금도 남모르게 일어나
는 사건의 사단으로 수군거리다 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생전에도 남녀가 유별
한데 죽었다고 이치가 바뀌랴, 개결하신 부인의 시신이 아직 땅의 생기운도 삭이지 못했
을 시간에, 신체 형영이 역력한 몸을 범하여 성가시에 달라붙는, 무당아비 홀아비 늙은
뼈 홍술이가 어찌 말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킥킥
깨물어 터지는 웃음 소리가 이기채의 폐를 찌른다.
이기채는 기침을 토한다. 토혈을 하는 것 같다. 얼굴이 거멓게 졸아들며 입술이 멍든 보랏
빛으로 질린다.
옆에 있던 기표가, 가슴을 쥐어잡는 이기채의 손을 얼른 따라 잡으며, 괴로움을 진정시킨다.
이기채는 괜찮다고, 기표의 손을 밀어낸다.
이제 그만 지곡허세요.
너무 과히 우시면 몸이 못 견디십니다.
아아. 어머니의 몸을 훼손해 드리고. 이 몸 견디어서 무엇 할 것이냐. 이이고오, 아이고오오.
이기채의 낯빛이 폐색이 된다.
어머니. ...어머니이. 부정탄 그 자라, 꿈에라도 더 거기에 모시고 싶은 마음 티끌만치
도 없사오나... 아직은 마른몸 되지 못하시어... 진몬 가지고는 면례를 못하시니 어찌하
오리이까... 육탈을 다 하시도록은... 구멍 뚫린 옆구리, 온전한 구천을 이루지 못하시
고, 오욕... 오욕의 혼음을 견디어야만 한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세월이 가기만을, 육탈하시기만을, 살아서 깨끗이 가지신 몸 죽어서 더럽힌 살을, 다
썩히어 말강물로 바꿀 때까지, 썩어서 말강물 되신 그 물로 백골의 흰 뼈를 개완허게 씻
으실 때까지,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을 원망허시고... 용서하지 마시고, 다만 어디로도 가
지 마시고... 부디 제 안에 머무소서. 어머니.
이기채는 졸곡에 맞추어 편지로 조상을 해 온 위문의 글들을 채곡채곡 포개 놓고, 그에
게 답례로 써 둔 답장을 한 장식 챙겨 봉투에 넣고는 피봉에 답소상모성모관좌전 이라,
각 성씨를 따라 쓰면서 시름없는 눈물을 떨구었다.
이제 상제는 요질에 끼워 늘어진 베조각을 거두어 묶고, 무시로 애곡하던 것을 폐지하
여, 아침과 저녁에 비록 슬픈 마음이 일어나도 곡을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잠자리도 바뀌어 지금까지 침고 침괴로 거칠고 험한 짚자리에 흙덩이 베개를 베고
자던 것을 거두어, 침석 침목하기 시작하니, 목침을 베고 자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만큼은 여전히 죽미음에다 소금과 장을 찍어 먹는 정도에 그치며, 나물이나
과일은 먹지 않는다.
이른 새벽 미명에 푸른 비늘이 일어나는 찬물로 목욕을 한 이기채는, 집사자가 영좌 앞
에 제사 때 수저를 담은 놋그릇 시접이며 잔반, 그리고 소.과.포.혜를 숨죽이고 진설하는
곁에 파리하게 서 있었다.
졸곡 제를 올리려는 것이다.
상장조차 짚지 않은 그는 자칫 잘못하면 비척 스러질 것만 같이 보였다.
그 옆에서 축을 맡은 기표가 신주의 겉집 독개를 조심스럽게 여는 순간, 이기채는 희고
소슬한 분면의 신주를 향하여 고꾸라질 듯 곡을 터트렸다.
이제는 울지도 못한다. 이제부터는 울면 안되는 것이다. 오늘로 곡을 그쳐야만 한다.
그것이 더욱 서러워 그는 청암부인의 말없는 영연을 우러르며 입곡하였다.
강신과 진찬이며 초헌.아헌.종헌을 올리는 것, 그리고 집사자가 술잔에 첨주하면 희게
봉우리 솟은 메에 공손히 숟가락을 꽂아 삽시하고, 시접에 젖가락을 나란히 맞추어 놓는
소리 토독톡, 두어 번 들리게 하는 유식. 그리고 신명이 제수를 흠향하시는 동안 상주를
비롯하여 상복 입은 유복자들은 제상 앞에서 물러나와 문을 닫고 한식경이나 밖에서
읍하여 기다리는 합문, 또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계문들은 우제 때와 꼭 같은 절차였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절차가 같다고 제의도 같으랴.
이기채는 북받치는 설움에 허리를 꺾고 울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넋이 상한 사람처럼 뜬
정신으로 헛손을 들어, 삽시했던 숟가락을 뽑으면서 흰 밥티 몇 알을 숙수 숭늉 대접에
담그었다. 삼초반 그는 세번을 그렇게 했다. 마른밥에 목이 메이실 것이니 숭늉을 잡수
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씹지 않고 흠향만 하는 신명이라 하신들 투장의 능욕, 그 절통한 지경을
당하고서야 이 제찬이 어찌 목에 넘어갈 것이며, 물 몇 모금 마신다고 얹힌 밥이 내려갈
것이냐. 한갓 시늉이고 우롱일 뿐.
너는 이제 그만 운다고 절하느냐. 나는... 이제부터 울리로다.
이기채의 가슴팍 명치에 어머니의 울음이 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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