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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57)

카지모도 2025. 4. 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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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니 알겠던가, 이 내 사정 알겠던가, 사친지회 그리운 정 근친 와서 풀고 가소.

화전놀이 가거들랑 화전가를 지어 불러, 시집살이 고달픔과 남정네들 방약무인 허심탄회

그려 보고, 딸네들은 새색들을 아낌없이 놀려 주며 새댁들은 딸네들을 아낌없이 놀려 주

어, 풍자마당 웃음 소리 흥에 겨워 못 이기게 한 바탕 봄꽃놀이 화전하러 가쟀다나.

네 한 일이 장하구나 도량 있고 너그럽다, 어서 가자 화전 가자.

하루 해가 짧아시니 날 기다릴 광음 아니다.

깊이깊이 접어 넣은 농옷 찾아 털어 입고, 저 동창을 열치어서 좌우 동산 살펴보니, 건

듯 부는 봄바람에 춘삼월 화풀 소식. 앞냇가 범나비는 꽃을 찾아 춤을 추고 황금새야 꾀

고리는 세우간에 오락가락. 어젯날에 불던 삭풍 오늘날에 훈풍 되니, 앞뒷산에 푸른 초목

가지 가지 봄빛인저.

가세 가세 화전 가세, 동구 밖에 모이시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사진을 이루면서 이 댁 저 댁 액씨 따님 우리 문중 며느님들, 근

친 오신 부인이며 동류 벗님 모여든다. 누구누구 모였던고, 두루두루 친면이라. 십오십육

처녀들과 이십삼십 새댁들이 노댁 또한 모시고서, 무지개 구름인가 아릿다운 자태 자랑

은근하고 화려하네, 선녀라서 따라오랴.

생초 상의 매만져서 기름같이 곱게곱게, 양태무늬 수갑사에 금사로 수를 놓아 수복다남

박아달고, 다 각지 종대로 오색치장 하였구나.

백능 비단 겹저구리 자주 비단 깃을 달고 남색 비단 끝동에다 반호장을 물렸으며, 홍능

치마 길게 말아 백능으로 말기 달고, 삼승 버선 겹버선을 마치맞게 기워 신어, 앙징할사

어여쁘다 배꽃 같은 두 발길을, 푸른 비단 운혜 당혜 검은 공단 속을 받쳐 담숙담숙 신었

으니, 그 아니 고우리요, 이 댁이 누구신가.

또 한 댁네 치장 보소. 시절 알고 때 맞추어 초록으로 물들여서 푸새다듬 맞게 하야 제

색 고름 늘이우고, 한산세저 가는 모시 진솔 내어 꾸밀 적에 주름은 좁게 잡고 말기는 넓

게 달아, 오만 누비 잔줄 바지 발등 우에 남상남상, 삼승 버선 외씨발에 아조 담쏙 신었

으며.

어떤 댁네 차림이냐, 송화색의 겹저구리 흑자주색 깃을 기워 흰빛으로 동정 달고, 홍갑

사 속치마에 청갑사 겉치마를 몸 맵시 가득 내어 보기 좋게 덮어 입고, 알송달송 꽃당혜

는 운무간에 노니는 듯.

이 모습을 어떠하오, 아른아른 유문갑사 순색으로 깃을 달아 바람 받아 나부끼는 제 색

으로 고름 매며, 월광단 다홍치마 아홉폭 말아 입고 얼쑹덜쑹 호랑당혜 두 발길에 넌즛

신네.

그 남은 온갖 치장 다 각각 기록 못해, 물색도 찬란하다. 대강 짐작 하오소셔.

녹두 비단 겹저구리 밀화 단초 달았으며, 물명주 속옷에다 시금치색 진녹치마, 산호 진

주 좋은 구슬 옥패 경경 앞에 차고, 은장도 빛난 칼을 치마끈에 나붓 차니. 인물도 좋을

시고 장하고도 어엿브다.

오색창연 만색당혜 신체 따라 격에 맞춰 떨쳐입고 나설 적에, 난잡하게 안하고도 상품

의복 가려 내어 옥양목 차렵버선 달갈같이 굴려 짓고, 백설 백운 흰 신에다 일신을 고이

담아, 갑사 치마 녹의 홍상 첫걸음에 썩 나서니 꽃도 같고 달도 같네, 우리 모두 놀아 보

세, 어화 둥둥 놀아 보세.

이 말 저 말 다 버리고 화전 감독 누가 하리.

우리 문중 종갓댁에 새손부 대실댁께 이 좌중을 이끌어갈 화전 감독 맡겨 보세. 신구식

이 훌륭하고 어백사가 능통하여 못할 일이 없으리라.

때는 바로 상춘이요, 놀기 좋은 화신인데, 시호시호 부재래라 아니 놀고 무엇 하리.

일기도 명랑하고 풍광은 더욱 맑아, 흉금이 쾌락하고 가슴이 도도하다. 어젯밤에 부던

바람 도리춘광 걷어 가면 봄빛이 더 없는 줄 낸들 어찌 알았으리. 양류간 천만사로 가는

춘풍 잡아매랴, 편편각화 꽃잎 모아 봄 못 가게 성을 쌓랴. 도화 유수 흘러가니 물 우에

도 봄이 간다.

그 일일랑 한탄 말고 시비 불러 길 잡어라, 어디로 가잔 말가. 여러 동류 뒤를 따라 손

님 끌고 옷깃 부여 정다웁게 올라가세, 새 닢 나고 새 꽃 피는 모든 초야 다시 보세.

앞산으로 올라갈까 뒷산으로 올라갈까, 화전 장소 정할 적에 공론들이 분분하다.

이름나고 경치 좋은 명승 고적 찾자 하면 소상팔경 어떠하리. 중국이라 호남성에 동정

호 남쪽 부근, 소상야우, 동정추월, 원포귀범, 평사낙안, 황릉애원, 어촌낙조, 강천모설,

산시청람, 여덟 곳의 절경들을 두루두루 둘러봄이 이 봄날에 마땅한가.

중원도 좋지마는 우리나라 더욱 좋지. 강원도 금강산 동해안의 관동팔경, 평생에 원하

요되 단 한 번만 보았으면, 총석정, 삼일포,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에

월송정.

그 소망도 옳지마는 우리 고을 남원에도 팔경 어찌 없으리오. 교룡낙조, 축천모설, 금

암어화, 비정낙안, 선원모종, 광한추월, 원천폭포, 순강귀범, 여기에다 또 하나는 만복귀

승 있다더라.

마오 마오 그리 마오. 팔경 산수 좋다 해도 우리 놀음 부당하고, 도리원이 좋다 해도

우리 놀음 부당한데. 노적봉 호성암도 여기서 머잖허고, 벼슬봉 꽃골짜기 지척이면 흐드

러져, 재공 뒷골 절경에는 작년 삼월 작별한 꽃 금년 삼월 기다리오.

가세 가세 그리고 가세. 이곳 저곳 다 버리고, 생장지 매안방의 명승지를 찾아가세. 소

백산맥 곧은 줄기 한 가닥을 받아 안아 동으로는 계룡산, 서쪽에는 노적봉, 남면에는 밤

재 율치 어깨 겯고 우뚝하며, 물빛 맑은 매안천과 서도천 율쳔 내가 서류하다 합수하는

삼계석문 빼어남이 그 어디만 못 하리오.

유서 깊은 노유재 아름드리 노거수는 천삼백 년 은행나무, 경건하게 찾아야지 놀면서는

불경하고, 남원 읍내 광한루나 관촌마을 사선대는 오늘 갔다 오늘 오는 하루 길로 모자라

니, 산도 좋고 물도 좋은 삼계석문 찾아가자 우리 고장 자랑일레.

어질고도 맑은 물결 양양하온 비단 계류, 바위 안고 모래 적셔 천하 절경 예 있도다.

우리 선조 대대손손 문인지사 배양할 제 충신.열사.효지.효부 끊임없이 이어나고, 명현

달사 이름 높아 나라고을 일컬으는, 우리 동네 독서 소리 오늘 하루 쉬는구나. 저 물소리

은은한 게 글 소리와 흡사하다.

넓은 반석 꽃그늘에 마치맞게 숨어 있고, 푸른 물빛 맑은 모래 도화 떠서 흐르도다. 좌

우경개 둘어보니 꽃밭 조선 예 아닌가.

하루 전에 모은 떡쌀 새벽부터 찧어지고, 번철 위에 바를 기름 두루미로 이고 오는 여

종 불러 분부하되, 너희들은 먼저 가서 솥을 걸고 불붙여라. 길라잡이 하려무나.

이 마을 젊은 도령 공부하는 월록서당 오늘 종일 하루 빌려, 넓은 대청 앞뒷문을 활짝

열고 달아매니, 문전옥토 싱그럽고 굽이치는 물결 이랑, 산간벽촌 앞 뒷간에 두견화가 불

이 난 듯.

고직이는 쫓아나와 황송해서 조아리며 땔나무도 갖다 주고 솥뚜껑도 걸어 줄 제, 시비

는 꽃을 따고 노파는 불 넣는다.

옛글에도 일렀으니 무산 놀음 하는데도 음식 없이 어이하리. 악약루도 식후 구경, 풍류

남자 모인 자리 주륙진찬 제격이요, 유한정정 여자 놀음 꽃떡이라 제격이지.

매안 이씨 출가 따님 오랜만에 친정 와서, 삼삼오오 작반하야 모여드니 한 방이요, 악

수상봉 즐긴 후에 쌓인 회포 털어놓고, 어린 딸 네 산에 보내 두견화를 꺾게 하니, 아롱

명주 겹저구리 자주 고름 팔랑팔랑. 잇시물감 다홍 치마 꽃과 섞어 바꿔 볼 듯. 온 봉우

리 진달래꽃 어린 품에 다 안겼다. 아이마다 한 아름씩 꺾어 온 꽃 진단래야, 화심을랑

고이 두고 화판만을 곱게 따소. 차노치떡 구울 적에 보기 좋게 얹어 붙여, 난들난들 익거

드면 맛이 있게 노나 먹세.

이만한 좌석에 잔치를 하자 할 때 무엇이 부족한고. 한량이 없지마는 비상시국 이 시기

에 벌리기가 당치 않아, 소 한 마리 돈 두 마리 거멍굴에 분부하고, 건청어에 대북어며

메추리도 장만하여 술안주로 챙겼으니. 소주 닷 말 약주 닷 말 이것이야 안할손가.

어와 우리 벗님들아, 우리 비록 여자라도 성상의 은덕으로 덕문중에 생겨나서, 아름답

게 노닐면서 꽃가지를 꺾어 드니. 꽃 속에 잠든 나비 분날개를 놀라 펴네. 솥다리 높이

걸고 흰 가루 맑은 기름 두견에 졸던 나비 춘몽을 다 깨치네. 잠깨 나비 꿈을 꾸듯 두 날

개를 몽유하며 푸른 연기 피해 가네.

장자의 호접몽이 남의 얘기 아니로다.

저 나비가 나로더냐, 내 이 몸이 나빌러냐. 나비는 꿈을 꾸어 사리반댁 되어 있고, 사

리반댁 꿈을 꾸어 저 나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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