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듣던 강호가, 귀면의 콧구멍에 꿰어진 군청색
끈을 들여다본다.
끈은 허리띠를 물고 있는 귀면의 콧구멍에서 빠져 나와 가위표로 꼬아지면
서 허리띠 아래로 내려가, 산도야지라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무엇일까, 무
척도 사나운 맹수가 분명한, 들짐승 같은 것의 콧구멍을 여지없이 한달음
에 엮어 꿰고 있었다.
그 짐승은 복종의 뜻으로 눈을 감고 있다. 지금 막 잡아서 껍질을 벗긴 것
처럼 생생하고 얌전하게 터럭 하나 하나, 붓털 지나간 자국에서 죽은 터럭
이 살아나게 그린 이 짐승은 몸통이 진회색이었는데, 귀때기속이 바알갛게
뒤집혀, 만지면 꿈틀, 할 것만 같았다.
"이것이 '강철'이라는 짐승입니다. 이 짐승이 얼마나 독한 놈인가 하면, 한
번 지나만 가도, 그냥 아무짓도 안하고 말입니다. 산중이고, 골목이고, 마을
이고, 한번 이놈이 쓰윽 지나가기만 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없어진다는 것
입니다. 그만큼 이놈의 기운이 독하고 바람이 세서 휩쓸어 버리는 것이지
요. 이것을 잡아서 터억하니 허리에 찬 천왕이시니, 그 용맹과 역강한 힘을
무엇에다 비교하겠습니까."
강철은 대체로 동방과 남방의 천왕들이 많이 차고 계십니다.
비파를 든 북방천왕과 당, 보탑을 든 서방천왕은 연옥색 치마 같은 군의를
두 다리 사이에 휘장처럼 둘렀는데, 허리띠 밑에 고사리 수염이 달린 귀면
의 아래턱을 받치고, 그 아래턱에서 두 줄의 허리끈을 늘어뜨려 꽃장식을
한 매듭을 화려하게 묶었다.
그러나 칼을 든 동방천왕과, 용을 거머쥐고 여의주를 높이 치켜든 남방천
왕은 강철의 네 다리를 좌악 벌려 펼쳐서 치마옷 대신 자신의 두다리 사이
에 두르고 있다.
아아, 저 힘을 빌려서 왜놈들을 때려 부수어,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를 찾
고, 우리가 잃어버린 범련사 범종과 부처님을 찾아서, 이 땅의 백성들이 부
디 어질고 올바른 세상을 살게 되었으면.
강호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빌고 있었다.
아마 이 절의 주지스님도, 사천왕 불사에 시주를 한 신도들도, 옆에서 있는
스님 도환도 모두 그렇게 빌었을 것이다. 그 비는 마음이 한 줌 한 줌 진
흙을 바치어, 눈물로 반죽해서, 저토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사천왕이 우뚝
서시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 소식을 모르는 이 답답하여라.
강호는 마음이 차오르며 북받쳐, 터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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