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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0권 (45)

카지모도 2025. 8. 1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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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쓰광창 너머 화장터 북쪽으로 경마장 가까이 외진 곳에 기거하고 있는 박해규

를 만나고 온 강태에게 심진학은 말했다.

"첫째, 그 사람이 조사한 박가촌에 대해서 좀더 확실히 알고 싶고, 갈 수만 있다

면 나도 같이 가보고 싶어. 둘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해. 어쩌면 나는

두 번째가 더 궁금한 것인지도 몰라."

누렇게 마른 심진학의 움푹 꺼진 볼에 그림자처럼 엷은 미소가 고였다. 그는 상

기되어 있었다.

"박군도 저희들과 함께 야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툰자향의 박가촌에 직접 찾아갔던 이야기도 좀 자세히 듣지, 왜."

"한 번 꼭 모시고 가겠답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

"박군이 더 열심히던 걸요. 이제야 제대로 선생님을 모시게 됐다고."

"선생이 웬 말이야. 동지를 삼아 주면 내가 고맙지."

"박군도 많이 외롭고 고달펐던 모양입니다."

"어찌 아니 그렇겠나."

심진학은 몸소 박해규를 찾아가 만나 보고 싶어했다.

"아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쪽에서 어련히 알아 예를 갖추고 선생님을 찾아뵈올

것인데, 구태여."

어른이 먼저 젊은 사람을 보러 가실 필요가 있는가. 강태는 그렇게 하면 자기들

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런 일에 애 어른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가야지.

자네도 일후 평생을 살면서 어디에 훌륭한 뜻을 가진 이 있다는 말 듣거든, 나

이 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찾아가서 배우고 만나기를 청하게. 그것은 흉이 아니네. 그럴 만한 사람 있다는

것이 오히려 홍복이고 자랑이지."

하여 강태는 서둘러 심진학과 함께 박해규가 임시로 몸을 부치고 있는 집으로

가려 했던 것이다.

"날 많이 풀렸구만."

심진학은 겨우내 두르고 있던 줄무늬 목도리를 풀어 낡은 양복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헐렁하게 드러난 그의 마른 목이 눅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썽클해 보이

는데, 심진학은 시원하다 했다.

"선생님, 봉천에 오셔서 지금 바깥 나들이 처음 하시는 거지요?"

전주 경찰서에서 뭇매로 두들겨 맞은 자리가 끝내 말썽을 부려, 상하면서, 장작

불 땐 온돌방 아랫목에 지질 수도 없는, 중국식 구들 썰렁한 바닥에 눕힌 채 냉

골을 견딘 몸이 살마다 쑤시고 뼈마다 저리었지만, 심진학은 바깥바람이 상쾌하

였다.

"어쨌든 내가 살아 있고, 박해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

두 가지 사실이 모두 오늘따라 기껍다고, 그는 심호흡을 하였다.

"선생님, 저것이 하늘다립니다."

강태는 손가락을 들어 공중에 걸린 철교를 가리켰다. 어지러이 뒤얽힌 철로 위

로 걸린 다리는 이 끝과 저 끝이 멀어 보일 만큼 길었다. 장작림은 여기서 바로

지척인 철로의 기차에서 폭사당했다. 당시의 폭음이 천공을 울리는 것 같다. 동

문사 인쇄창에서 나오면서부터 시부대로 서탑거리를 지나오는 동안, 강태는 놀

라움과 감회로 눈이 휘둥그래 열린 심진학에게 자상히 왼쪽과 오른쪽 이곳 저곳

을 설명해 알려 주었다.

"여기는 화목정, 저것은 삼흥정미소, 그리고 이것은 왕관카회, 이리로 들어가면

새끼골목이지요. 서탑소학교 가는 길은 저쪽입니다. 이 절은 귀원사라 하고요."

두 사람이 길목을 눈여겨보고 있는 곁으로 무명저고리 입은 아낙 하나가 검정물

들인 치맛자락을 걷어서 허리끈으로 동여맨 채 무슨 보퉁이를 비녀 지른 낭자

머리에 덩그렇게 이고 지나갔다.

"그대로 조선이구만."

"예. 이 거리 하나 때문에 중국이 고향이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어느곁에 서탑거리가 끝나가는 신시장 입구에 서서 하늘다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심진학의 얼굴에 아쉬운 빛이 지나갔다.

"벌써 다 됐나?"

삼천 리를 걸어간들 아쉽지 않으랴만, 심진학은 조선인 거리 끝난 것이 몹시도

서운하여 자기가 걸어온 쪽 도로를 다시 돌아보았다. 아, 이 한 토막의 조선. 서

탑거리 그 길목들이 눈에 들면서 울컥 설움이 북받치는데, 강태는 심진학의 마

음을 읽고 짐짓 명랑하게 높은 소리로 제안을 했다.

"며칠 후에 날 잡아서, 선생님, 저기 민족극장에 구경 가시지요. 제가 모시고 가

겠습니다. 조선에서 연극단이 온답니다."

심진학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고 물었다.

"저것은 무언가?"

그가 턱을 들어 눈짓으로 가리킨 것은 보초가 선 노도구 파출소였다. 심진학의

얼굴색이 순간 창백해지더니 어금니를 물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나 그 옆

에는 바로 바짝 경비대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저 위로 해서 가는가?"

"아닙니다. 이 아래로."

"응. 그래?"

음성을 떨어뜨린 심진학은 먼저 앞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명색이 봄이라는

데 다리밑에는 아직도 냉기가 돌았다. 다리 상판이 햇볕을 차일처럼 가리어 그

늘을 만든 탓도 있겠고, 거대한 시멘트 기둥들이 우뚝우뚝 서서 찬바람을 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 음습하고 더러운 다리밑에 엉기어 뒹구는 시

체들이 차갑게 뿜어내는 냉기가 으스스 살을 치는 탓이 컸으리라. 거기다가 저

개떼들이라니. 강태는 등골을 좌악 훑어내리는 소름에 후루룩, 진저리를 쳤다.

지난번에는 멋모르고 지나갔는데, 새삼스럽게 그 개떼들이 무서워 그는 골이 시

렸다. 죽은 송장의 대가리를 물어뜯고 있던 개 한 마리가, 눈구녁을 파먹다 말고

그르르륵, 목구멍 소리를 내면서 뒷발굽에 힘을 주더니 엉버틴 자세로 심진학을

노려보았다. 누우런 기름이 터럭에 자르르 흐르는 송아지만한 놈이었다. 다른 개

들은 제각기 송장들을 헤집으며 창자와 살덩어리를 발겨 내 흩트리느라고 이쪽

에는 관심이 없는데, 유독 그 누런 개가 웬일로 콧등에 주름을 잡는 것이었다.

순간 강태는 저도 모르게 위험을 느끼며 단말마로 소리쳤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그러나 이미 늦고 말았다. 비호같이 심진학한테로 달려든 개가 번개처럼 날카로

운 이빨을 허벅지에 박았던 것이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호랑이가

덮치듯 사나운 기세라, 심진학은 개 기운에 벌렁 뒤로 자빠져 네 활개를 뻗어

버리고, 송장을 뜯어먹어 살기 등등한 개는 여지없이 심진학의 생살점을 찢었다.

"사람 살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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