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는 퍼렇게 질려서 비명을 질렸다. 우선 눈에 뜨이는 돌멩이를 주워 던지거
나 막대기를 쥐고 휘둘러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으로 물러날 개가 아니었고,
오히려 어설피 저 개떼들을 모조리 건드리게 되면 한꺼번에 두 사람 모두 저것
들한테 갈갈이 뜯기어 참혹한 꼴을 당할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떻게, 선생님을
저렇게 잠시라도 그냥 둔단 말인가. 하도 기가 막혀 얼이 빠진 강태도 그 총중
에도 정신을 수습해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그날따라 지나는 사람 하나조차 눈에
뜨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먼 풍경뿐이었다. 그 때 이상하게도 강태의 뇌리로,
적막이라고나 해야 할 묵음이, 압지로 먹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빨려들어 왔다.
세상의 모든 집과 거리와 사람들이 몹쓸 악몽 속에서 달아나고자 걸음을 떼려
해도 뗄 수 없을 때, 저기까지만 가면 살 수 있겠는데, 간이 졸아붙었지만 끝내
발이 떨어지지 않아 아득히 안타까운 가위에 눌려 있을 때마냥, 멀게 느껴졌다.
강태는 그 묵음의 악몽을 가르며 몸을 날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
을 할 겨를도 없이. 그 순간에는 오로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심진학의
배에 올라탄 개한테로 돌진하여 덤벼든 강태가 개를 팔굽으로 쳐 밀려고 했으
나, 개는 뜻밖에도 완강하고 힘이 셌다. 그르르르윽. 개의 낯바닥이 강태의 얼굴
바로 바짝 가까이로, 핏물 든 송곳니를 버얼겋게 드러내며 들이밀 때, 강태는 그
개 눈깔이 시퍼런 불을 켜는 것을 보았다. 들개가 이렇게 생겼을까. 그처럼 불길
하고 무서운 짐승의 눈은 처음이었다. 단순히 사납다고만 해 버릴 수 없는 개의
미친 듯한 눈구녁이 사기 뻗쳐 독 오른 광채로 번들거리며, 송장 먹은 시취 가
시지 않은 주둥이에 피비린내를 바른 채, 아가리 딱 벌리고 거품을 내며 강태를
물어뜯으려 할 때, 강태는 하마터면 아찔 정신을 놓칠 뻔하였다. 개는 제 멱을
틀어쥔 강태의 손등과 팔을 사정없이 물었다. 물고 놓지 않았다. 이빨 박힌 팔에
서 선지피가 덩클덩클 흘렀다. 덩치가 집채만하고 싯누런 개 한 마리와 중년이
넘어 보이는 남자와 젊은 남자가 들어붙어 사생결단을 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뒹구는, 다리밑 쓰레기더미 기괴한 광경이 곧 다른 사람들 눈에 뜨인 것은, 그
나마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들 곁에 저만치 서서 우
중거이며 한 마디씩 쑤군거릴 뿐, 선뜻 손댈 염을 못 냈다. 우선 눈앞에 벌어진
일이 하도 끔찍하고 참혹한데다가, 개도 여느 개가 아니며, 무엇보다 누군가,
"요새 광견병이 도는데, 저 괜찮을까."
하고 던진 말에 오금이 붙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미친개한테 물리면, 같니 미치는 것 아니야?"
저 개가 미치지 않고서야, 죽은 송장도 아니고 산 사람을 둘씩이나 한꺼번에 저
지경이 되도록 덤벼들어 물고 놓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두려움에 뒤
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타당, 탕. 까맣게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느닷없이
정수리를 뚫고 지나가는 총소리가, 귀청을 찢으며 들린 것이 바로 이때였다.
"비켜라."
허공에 공포를 쏜 것은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비대 순경이었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온 그들은 이미 달아난 다른 개떼들은 버려두고, 총소리에 놀라 심진
학과 강태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개를 향해 총을 쏘았다. 개는 허공으로 튀어올
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검붉은 피를 뿜고 쿨쿨쿨 쏟으며 길바닥
에 네 발을 뻗어 버린 개를 본 심진학은, 그 죽다 살아난 황망중에도 고개를 돌
렸다. 심진학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허옇게 바랬다. 순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만하기 천만다행이오마는, 요즘 광견병이 돌고 있으니, 두 분 다 지금 곧바루
꼭 병원엘 가 보시구레."
아직 늙은이 소리 듣기는 이르나 아니랄 수도 없게 후줄근한 구경꾼 하나가 넌
지시 귀뜸하는 말을 한 귀에 담아 듣고, 심진학은 강태와 함께 경비대로 가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래서 나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공연히
며칠을 못 참고 경솔히 거동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빌미를 잡히는구나.) 심진학은
낭패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순경은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상부에 보고할 조
서를 꾸며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상세히 캐물을 것이고, 심진학은 조선에서 만주
까지 도망온 보람도 없이 다시금 요시찰 인물이 되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싶어, 앞이 캄캄하였다. 또 자기 때문에 애꿎은 강태까지 혹 무
슨 꼬투리를 잡히어 독서회며 야학이며 봉욕을 당하지나 않을까, 그것도 몹시
불안하였다.
"이름이 뭐냐?"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주소를 대라. 어디에 사는가?"
"왜, 무슨 일이 있어서, 누구를 만나러, 어디로 가려고 하필이면 그 시각에 그 다
리밑 개떼 앞을 지나갔는가?"
"두 사람은 어떤 사이냐?"
"언제 조선을 떠나 봉천으로 왔는가?"
하고 묻기 시작하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진학의 머리
속이 노랗게 흔들리며 물맴이를 돌았다. 워낙 조선에서 고문에 골병이 든데다가,
그 끝이 멍들어 있고, 보신은커녕 끼니도 거르는 몸이 아까 너무나 놀라서 혼비
백산 넋이 나가고는, 개한테 물려 살점이 떨어진 곳에서 끊임없이 피가 쏟아지
고 있으니 어느 장사라고 이 지경을 당해낼 수 있을까만, 메마른 심진학은 견디
지 못한 것이다. 핑그르르. 졸인 간에 사력을 다한 몸이 퉁, 쓰러졌다. 그래도 젊
은이라 강태가 아직은 간신히 제 몸을 버티고 섰다가 선생이 졸도를 해 버리자
창황히 심진학을 붙들고 일으키려 했다. 강태의 팔뚝과 어깻죽지에서도 덩어리
진 피가 흘렀다. 상황이 급박한지라, 순경도 더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고, 우선
이름과 주소와 나이를 대라 하였다. 그리고는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뒤꼭지에
남만주 의과대학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 보라는 말도 던졌다. 그들은 지난 1924
년, 일본에서 광견병이 크게 유행하여 물경 이백스물다섯 명이나 사망했다는 사
실을 떠들었다. 어쩌면 그 순경도, 광견병 바이러스가 침투된 피가 경비대 안에
단 한 방울이라도 더 묻는 것은 싫었으리라. 그래서 질문도 형식적으로 간단히
해치우고 이들을 내보냈을는지도 모른다. 강태도 어려서 광견병에 걸린 개를 본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미친개는 흥분해서 온 마을의 고샅을 싸돌아다
니며 목쉰 소리로 짖어대고, 눈구녁은 깊이 파묻혀 들어간 채 침을 흘리면서 아
무라도 물어뜯으려 마구 덤비었다. 그 개를 잡으려고, 집집마다 머슴과 종들이
몰려나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여 꾀를 낸 뒤, 밧줄, 새끼줄, 사슬들을 들고 잡
으러 다니다가, 결국은 포위해서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고 말았지만, 그 와중에
어떤 종 하나가 그 개한테 물려 광견병에 걸려 버렸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는
한두어 달 지난 뒤부터 갑자기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하더니, 밥조차
거의 먹지 못하면서 온몸이 나른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은 권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초점없는 눈동자에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괴이했던
것은 이 사람이 공수병에 걸린 일이었다. 그는 물을 마시려고만 하면 목구멍에
경련이 일어나 콱 막히는 바람에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하였다. 숨도 쉬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목이 마르면서도 물만 보면 발작을 일으켰다. 그 발작이 괴로워서
이제는 물을 보면 공포에 떨었다. 그러다가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손발이
굳어 뻣뻣해지곤 했다. 나중에는 끈적끈적한 침을 칠갑이 되게 흘리고는 급기야
호흡이 막혀 죽었다.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제가 어려서 본 종의 하잘것없는 이
름이 이제 와 생각날 리 없었지만, 그 정경만은 선연히 떠올라, 강태는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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