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 죽은 개를 해부해 본 다음 뇌에서 균이 검출되면 광견병이 확실합니다
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감염이 안된 개일 수도 있단 말이지요. 어쨌든 지금 막
물렸으니 좀더 두고 봅시다. 이게 보통, 개한테 물리고 나서 석달이 지나야 증상
이 나타나거든요. 그 동안은 잠복기라, 알 수가 없습니다. 잠복기."
대학병원 의사는 고개를 갸웃갸웃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염되었다면, 당장 오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습니
까? 한 달이나 석 달씩 증세가 나타나도록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잠
복기에는 치료가 안 됩니까? 걸린 것으로 간주하고."
강태가 물었으나,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수무책인가요?"
심진학을 우선 응급실에 뉘어 놓고, 강태는 의사한테 매달리고 있었다. 그의 온
몸의 피톨과 맥박 속으로 미친개의 균이 돌면서, 매안의 종이, 걸렸던 광견병의
증세들을 하나하나 일으키는 것이 벌써 느껴졌다.
"그래서 예방이 첫째지요."
"예방?"
"개는 미리 예방주사를 맞히고, 사람은 물리지 않도록 해야죠."
아니, 집에서 기르는 개도 아니고 쓰레기더미에서 송장 뜯어먹는 개한테 어찌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힐 수 있겠으며, 천하에 어떤 시러베아들놈이 물리고 싶어
서 미친개한테 물렸단 말인가. 강태는 분이 뻗쳐 눈꼬리가 올라갔으나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의사가 놓아주는 주사만 맞고 지혈을 시켰다. 주사는
진정제였다.
"안정을 취하고, 자극을 주지 마세요."
간호부가 가루약을 싸 주며 강태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나중에야 집에
와서 알았지만, 그 형용 몰골을 하고 인총이 번다한 남만주 의과대학 병원에 버
젓이 나타났다는 것이 가관이었다. 흙투성이와 피투성이에 짓이겨진 옷자락은
찢기고, 뜯기고, 살점은 뚝뚝 떨어져 나간 모습이 거울에 비쳤던 것이다. 그것은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 동안에 겉모양은 그런대로 아물었으나, 근심스럽
게 조마조마한 마음은 심진학도 강태와 일반이어서, 서탑교회에 열기로 한 야학
도 아직 착수하지 못한 채 차일피로 미루고는, 우선 발병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
는데, 오늘은 마침 그로부터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라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온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렇게 봄빛은 짙으며, 꽃들은 피어나는가.
"아직은 별 뚜렷한 증상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만, 조금 더 지켜보고 이야기합시
다. 한 백일 정도는 잠복할 수 있는 병이니까요."
의사가 어떤 경우, 잠복기가 이 년까지 가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별일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 의사들이야 늘 만약에 대비해서 안 좋은 쪽 결
과를 예상하는 것 아닌가요? 낫는다고 했다가 예상이 빗나가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긍정적인 대답을 미리 안하는 것일겝니다. 의사는 섬세하고 소심하
잖아요?"
강태가 일부러 농담조로 말하자,
"혁명가는 아니지."
심진학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뜻이 있으면 무얼 해. 이역만리 타국땅에 정처없
이 떠돌면서, 송장뜯는 미친개한테나 물리어 이 꼴을 당하는데, 개도 사람을 우
습게 본다. 참으로 불행한 시절이로다. 심진학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힌다. 이것
이 내 값이다. 식민지의 역사 선생. 송장을 뜯어먹는 저 다리밑 개떼들처럼, 제
국주의 일본은 우리를 뜯어먹는데, 삼천리 강산, 금수강산, 조국강토, 고향산천,
참혹하게 대가리 물어뜯고, 맑은 눈 눈구녁 다 파먹고, 기름진 허벅지에 날카로
운 이빨을 박는다. 그 질기고 깊은 이빨에 찢긴 오장, 부드러운 속창시도 다 발
겨먹고, 피 묻은 아가리를 통째로 벌리어 마지막 남은 정신도 넋도 한입에 삼키
려 한다. 시대의 개, 광견. 죄없이 물려서, 물린 죄로 광견병에 걸리는 사람들,
또는 광견병에 걸릴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아, 미친 시대. 심진학은 고개를 나
직이 수그린다. 비애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제 저놈들, 일본은 우리를 지렁이로 만들고 말거야."
묵묵히 듣고 있던 강태가 선생을 바라본다.
"지렁이요?"
"그렇지. 견훤의 지렁이."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저들은 우리의 문화나 역사나 정신이나 삶이나 존재를, 비하 왜곡하여, 너
희는 한낱 지렁이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세뇌 감염시킬 것이네. 그래서 우리들은
어느결에 개한테 물린 자국을 통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용이나 뱀이 아
니라 지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자. 지금도 벌써 많이들 그렇게 되지 않았
나?"
그리고 그것은 기록으로, 문서로 남는다. 마치 신라가 백제에 대하여, 고려가 후
백제에 대하여 그러했듯이. 그리고, 후세에서는 그것을 믿는다. 우리가 백제의
의자왕과 후백제의 견훤에 대하여 그러하듯이. 억울하게 멸망한 백제의 설분을
하고자 몸을 일으킨 후백제 왕 견훤을 유사에서는 고기운이라 하여,
"광주 북촌에 사는 한 부자의 미혼 여석이, 밤마다 붉은 옷 자의를 입고 찾아오
는 미남자와 교통하여 고민하다가, 하루는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더니, 그가 놀다
갈 때에 실꿴 바늘을 옷소매에 꽂아 두라. 아침에 따라가 보면 실끝 닿은 데를
알리라 했다. 그 말대로 했더니, 과연 집 북쪽 담장 밑에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
가 있는데, 그 허리에 바늘이 찔려 있었다. 이리하여 훤이 출생하였다."
고 탄생의 설화가 적히어 있다.
"물론 그의 탄생에는 몇 가지 이설이 있지만, 그것은 성씨와 생장지에 관계되는
것이어서, 이런 상징적 설화는 아니야."
견훤의 본성이 이씨였다든가, 아버지가 이자개였다든가, 혹은 그가 상주 사람이
었든가.
"그러한 것들보다, 나는 왜 그가 지렁이의 아들인가 생각해 보게 되네. 뭇 제왕
의 탄생에는 신비한 이적이 많고 그에 따른 상징이 생성되기 마련인데, 대개 그
당시의 토템이나, 민중의 집단 무의식이 빚어낸 동. 식물 혹은 자연물이 작용을
한 것이라고 봐. 그런데 견훤은 야래자형설화에서 파생된 탄생설화를 가지고 있
지. 밤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처녀의 방에 찾아와 동침하고, 아침이면 사라지
는데, 그 남자의 옷에 바늘을 꿰어 실을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곳에 그 바늘에
찔려 죽은 뱀이 있었다더라. 그런데 그 후 임신하여 낳은 아들이 비범하였다, 하
는 이야기가 원형이지.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 두루 구전되고 있
고, 일본 고사기나 중국 쪽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네. 그리고 야래자의 정체는
대개 절구공이나 동삼, 수달피, 용 등으로 다양한데, 절구공이가 온 경우에는 아
들이 없고, 수달피인 경우에는, 태어난 아이의 머리가 노랗대서 '노랗지'라고 불
리던 아들이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버지가 되었다고도 해. 그리고 용인 경우에는
중국의 천자가 되지. 그런데 후백제의 견훤은 하필이면 지렁이야."
나는 설화 연구자가 아니라서 보다 깊은 뜻은 알 수 없지만, 왜 견훤은 뱀이나
수달피나 용의 아들이 아니고, 신비로운 알도 아니고, 담장 밑의 한 마리 지렁이
의 아들이었을까. 여기 소위 승자들이 엮어 온 역사의 야유와 조롱이 설화 속
에 숨어서 킬킬거리는 소리를 나는 듣네. 비늘이 거꾸로 돋는 소리지. 이 설화가
정말로 견훤의 탄생 시절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어. 아마 이것은 후
대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하고 멸실되어 버린 후백제의 빈칸에, 그의 목을
친 칼로 쓴 설화일 것이네. 일개 필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말보다 더 굴욕적이
어서 의아하고 이상한 지렁이, 지렁이 임금. 무지렁이.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처
럼, 아나, 너도 용.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는, 그 생존의 최하단위, 하찮고 가련한 미물.
"무릇 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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