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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0권 (48)

카지모도 2025. 8.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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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지렁이는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지. 오천 년 역사 속에 단 몇 십

년, 하찮게 꿈틀거리다 죽은, 후백제라는 지렁이가 아직도 여전히, 전라북도 전

주부 완산정에 동네이름으로 살아서 맥맥히 그 혼이 용틀임하고 있는 것이야.

아직도 전주 사람들은 완산에 산다. 저 아득한 상고에 마한의 오십오 개 소국

가운데서, 강성한 백제가 마한을 한 나라씩 병탄해 올 때, 맨 마지막까지 저항했

던 전라도 지역 원지국의 수도 원산, 그 완산, 전주, 그리고 빼앗겨 능멸당해 버

린 백제의 서럽고 찬란한 꿈을 기어이 다시 찾아 이루겠다고 꽃처럼 일어선 후

백제의 도읍 완산. 그 꿈조차 짓밟히어, 차현 땅 이남의 수모 능욕을 다 당한 이

땅에서 꽃씨 같은 몸 받은 조선왕조 개국시조 전주이씨 이성계. 천 년이 지나도

이 천 년이 지나도 또 천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 결단코 잊

지 않고 잃지 않고, 맨 처음 나라 받은 그 마음을 밝히면서 아직도 귀순 복속하

지 않은, 마한의 순결한 넋으로 옛이름 옛터를 지키는 전주 완산, 완산정, 완산

칠봉, 완산다리.

"그 이름을 들으면 눈물이 나."

심진학 선생은 목울대에 차 오르는 울음을 삼킨다.

"그런데 이 동네는 참 묘해. 자네도 가 보았나?"

전주 부성 남쪽 바깥 완산칠봉 봉우리 아래, 전주천 흐르는 물자락에 두고, 동쪽

으로는, 조선 말엽에 참형자들의 목을 쳐 효수하던 형장 곤지산 초록바우 음산

한 벼랑을 끼고, 서쪽으로는, 마한의 기운이 쇠잔해질 때 전주천에서 자란 용이

천 년을 기다려 승천을 하려고 안간힘 쓰며, 전주천 물을 모조리 삼키고 하늘에

올랐으나, 그만 힘이 빠져 떨어지고 말았다 하는, 용머리 끼고 있다지 않아? 몸

부림치다가 승천하지 못한 한을 품고 떨어진 용의 머리와 곤지산 초록바우 음산

한 벼랑에 참형을 당한 채 걸린 머리.

"그것은 견훤의 넋인지도 몰라. 이루지 못한 꿈을 안고 목을 떨구어 버린, 후백

제, 견훤, 왕. 하지만 그 넋은 세월이 가도 결코 죽지 않아서, 오늘도 '완산'이란

동네에 이름으로 살아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완산정에만큼은, 일본 사람이 단 한

발자국도 발을 못 들여놓아, 터가 세서 살지를 못해. 그것을 누가 시키겠는가."

기미년 삼월에 독립만세 운동이 거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용머리

고개를 하얗게 넘어오며 목메어 만세를 불렀지. 그 자리는, 강모가 오유끼와 함

께 살던 다가정의 다가봉 밑 용소 물살 바로 옆이었다. 그리고 곤지산 초록바우

깎아지른 벼랑도 냇물을 따라 한동안 몇 생각하면서 걸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강태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강모 살던 동네가 역사에 그처럼 체화된 곳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치 좌청룡 우백호처럼 처연한 전설과 형장을 좌. 우에 끼고, 완산동은 홀로이

그리운 꽃 머금고 있어."

심진학은 말했다.

"오늘은 일본이 우리를 잠시 친 것 같지만, 우리를 지렁이로 폄하해서 군화발로

무참히 짓밟겠지만, 우리는 짓뭉개진 오욕에도 결단코 죽지 않을 것이네. 밟은

그 발보다 오래 살아서, 우리 이름 우리 혼을 이어갈 것이야. 개한테 물리어도

생살은 돋아나듯이."

가슴은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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