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혼불 10권 (50)

카지모도 2025. 8. 17. 05:59
728x90

 

"꾀 파 봤자 매급시 일만 두 벌 허는 디 머. 새아씨, 아씨 눈을 무신 재주로 기

이여? 맘 잘 먹고 꾸벅꾸벅 엎어져서 한 번에 끝내능 게 낫제. 신간도 편허고.

히히힛."

계면쩍은 듯 웃음을 깨무는 소례를 따라 우례도 실소하여 웃는다.

"어채피 일 안허고 살 수 없는 시상, 기왕이먼 이렇게 때묻은 거 빨어 내고 얼룩

진 것 깨애깟허게 싸악 빼서, 더러서 못씨게 생긴 놈을 뽀얀허니 새놈으로 맹글

응게, 빨래허는 일이 나는 좋데."

"좋기도 허겄다. 헤기는 저 남원 오수 장터서는 왜놈들이 기양 씨꺼먼 먹물총을

막 쏴대서, 넘의 흰 옷으다가 까마구 물을 딜에 놓는다드라."

"나쁜 놈들이제잉."

"그런 물은 한 번 들먼 안 빠져."

"그래도 빼 바야여, 암만 먹물이라도 밥티 막 깨 갖꼬 거그다 비벼서잉. 그러먼

아조 다 안 빠진대도 많이 엷어지제."

지성으로 꾀를 내서 온갖 짓을 다 해 보면, 몰라서 그렇지, 못 뺄 얼룩이 없다

고, 소례는 말했다.

"당최 안 빠지능 거 있잖이여? 감물 같응 거. 그렁 건 애물이제."

소례 말에 우례는 비스듬히 시선을 떨군다.

"사람의 속도 그러끄나. 때 빼고 얼룩 빼먼 보오여니 새 맴이 되능 거이여? 녹

슨 것맹이로 죽어도 안 빠지는 감물이 든 것은 어쩔 거이여."

내 가심에 포원은 무슨 물로 씻는다냐.

"셍이 요새 먼 맴이 조께 시끄렁갑네? 날이 더워징게로 바누질꺼리는 쌔이고 일

은 헤기도 싫고 그리여? 자꼬 땀은 나고?"

"지랄헌다. 나는 지가 안씨러워서 그렁만."

"나는 갠찮히여어, 요렇게 살다아 살다 보먼 죽는 날도 있겄지맹."

빨래가 부그르르 끓어 넘치는 솥단지 뚜껑을 열어제치며 소례가 한숨처럼 말했다.

"죽어도 상놈은 다시 상놈으로 난단다."

"그리여?"

우례 말에 소례가 실망스러운 낯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렁게 살어서 바꾸고 죽어야 요담의 세상에서는 이 몸써리나는 종노릇을 안허

제. 참, 니 말마따나 빨래허디기 종의 얼룩 싹 빨어서 싯쳐내 부리고, 서리 같은

비단으로 새로 났으먼 똑 좋겄는디. 이 한시상. 이놈의 신세는 어뜨케 안 빨어진

다냐? 전상에 우리는 무신 죄가 그렇게 많아서, 한 탯줄이 매달려 넘의 집 종으

로 나 갖꼬, 한 년은 빨래허고 한 년은 침비험서, 우산장시 짚신장시 성지간들맹

이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놈은 저놈이 걸리고 저놈은 이놈이 걸리는, 대간장

이 녹고 뻬가 녹는 세상을 사능고, 어디고 가도 못허고, 일은 기왕에 허는 일이

라고 치드래도."

깔고 앉은 미영치마 끝자락을 걷어쥐어 코를 훔치는 우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도망이나 가 부리끄나."

무심코 겁도 없이 툭, 쏘듯이 말을 터치는 제 형을 향해 소례는 황급히 손사래

를 친다.

"하이고요, 성 왜 그리여어? 누가 듣겄고만. 그런 소리 당최 허들 말어잉? 요새

무신 일이 있능 거이여? 으이? 왜 않든 말을 허고 그려."

빨래솥에서 둥그렇게 부우하니 부풀어오르는 호청을 방망이로 꾹꾹 찔러 누르며

소례가 다그친다.

"앙끗도 아니여."

"아니면 되얐어. 딴 생각 말고 나랑 냇갈에 빨래나 허로 가드라고. 가서 기양 찬

물에 발 첨벙 당구고 방맹이질 탕, 탕, 허고 나먼 맥힌 속도 시연허게 뚫리제.

다 그 맛에 빨래 댕기능 것 아닝게비, 잉? 이걸로 시상까지는 못 빨어도."

소례는 벌써 삶은 빨래를 자배기에 건져낸다. 데이게 뜨거운 김이 잿물 냄새를

풍기면서 뿌우옇게 구름을 일으킨다.

"암만 봄날이라도, 하루해는 짤루어서 금방 넘어가. 해 넘어가먼 방맹이질도 못

허고잉. 갈라먼 얼른 가제."

아침 식전에 빨래를 두드리면 동네에 소년 죽음이 나고, 해 넘어갈 때 두드리면

청년 죽은이 난다고 해서, 어른들이 절대로 그리 못하게 하는지라, 소례는 자배

기를 머리에 둘러이고 서두른다. 아랫몰 물가로 가려는 것이다. 단비조차 둘 수

없는 행색의 문중 부인들이 혹 빨래하러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누구 눈에 뜨이지

않는 뒷동산 계곡으로 갔지만, 타성바지나 종들은 아무 거리낄 것 없이 아랫몰

로 내려갔다. 그곳이 물도 더 많고, 냇가에 평평한 자갈밭도 꽤 널찍하여 아예

마전까지 하기가 좋았으며 왁자지껄 떠들어도 원뜸 중뜸에서 멀어 꾸중하는 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참 빨래가 많을 때는 매안의 집집 종들이며 타성바지 아낙

들이 광주리에 점심까지 이고 지고 모여들어, 하루 종일 콧등이 벗어지게 방망

이질을 해대고, 키득거리고, 물장난도 치다가, 자갈밭에 걸어놓은 한데솥에 빨래

를 부글부글 삶아 내고, 다시 빨아 널어서 아예 말리기까지하여 저물녘에야 철

벅철벅 돌아오곤 하였다. 요즘에는 뼈빠지게 베를 짜도 자투리 한치 감출 수 없

이 악착스럽게 모두 공출을 해 가는 바람에, 누가 길쌈한 무명을 마전하는 사람

도 없지만, 전에는 아랫몰 냇물가 자갈밭에 햇볕 좋은 날이면, 그 볕에 마전을

하려고 하이얗게 펼쳐 놓은 무명폭이 새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어 참으로 보기에

상쾌하였다. 베틀에서 막 떼어 낸 무명은 누렇고 거칠어 그대로 쓰기에 마땅치

않으니, 우선 물에 담갔다가 잿물에 삶아 빤 후, 냇가 햇볕에 널어서 바래는 것

이 마전이다. 그 마전도 아랫것 종들의 틈바구니에 섞이어 하고 싶지 않은 문중

의 무세한 부인은 뒷동산 양지 바른 곳에 깨끗하게 널어서 말리었다.

"밤에는 빨래 널어 두지 마라."

고 어른들은 당부하였다. 남편이 바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어두워지기

전에 빨래를 걷는 습속도 있었지만, 어쨌든 밤이슬 맞은 빨래는 개운치가 않아

서, 아무리 귀찮을망정 해가 지면 마전 무명을 걷어 왔다가, 이튿날 다시 적셔

널었다. 그렇게 한 이틀만 하여도 벌써 한 쪽이 하얗게 바랬다. 마전에 제일 좋

은 곳은 바닥에 자갈이 깔리어 얕게 흐르는 냇물이다. 그 물 속에 무명을 넣고

귀퉁이마다 무거운 돌을 얹어 떠내려가지 않게 두면 사나흘만에 상등 표백이 되

었다. 그만은 못해도 냇가의 습기가 있는 곳이 빼빼 마른 것보다 더 잘 희어지

기 때문이었다. 매안의 아랫몰 냇물가는 비록 평사십리는 아니었으나 비산비야

의 둔덕진 마을에서 그래도 황감한 공터였다. 뒷동산 계곡의 물길이 이 아랫몰

에 이르자면 밤나무숲 마을 뒤편 등허리를 타고 경쾌하게 쏟아져 내리다가, 중

뜸에서 한 바퀴 굽이를 틀며 이제는 마을의 배 앞으로 솰솰솰 흘러, 군데군데마

다 상수리나무, 밤나무, 감나무 그늘 밑에 빨랫돌도 하나씩 놓게 하고는, 드디어

마을 발등에 당도하여 벙벙해지면서 그 자락을 밋밋하게 풀어내니, 작은 빨래야

굳이 아랫몰까지 걸음할 것 있겠는가. 사립문 밖에서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종이며 아낙들은 걸핏하면 휭하니 빨래 보따리를 이고 아랫몰로 내달았다. 그것

이 재미였다. 따갑게 내리쪼이는 햇살을 정수리에 받으며 우례도 빨래통을 끼고

소례 뒤를 따른다. 어차피 소례가 빨래를 끝내야 우례 바느질이 시작될 터이니,

오늘은 발등에 떨어진 일도 없거니와, 소례한테도 말 못할 속궁리가 있는 탓이

었다.

"아이, 야, 오빼미는 빨래 안허다냐?"

"왜애, 수천샌님댁으서도 이불이란 옷이란 모도 다 새로 싯쳐서 꼬매시야제, 하

먼."

"일 많을 거인디."

"그렇지 머."

"우리 아씨께서나 수천아씨께서 갠찮다고만 허시머, 내가 가서 조매 얼릉 해 디

리먼 좋을 거인디."

"전에 없든 일은 아닝게로."

"그렁게 말이다."

무심한 듯 맞장구를 치는 소례의 대꾸에 우례 가슴이 벌럭벌럭 뛴다. 용구네가

주고 간 부적 때문이었다. 지난밤에 옹구네는 살그머니, 우례한테 찾아와 넌지시

부적을 건네며 속삭속삭, 아무도 못 듣게 숨소리로 못을 박았었다. 수천샌님의

아들 강태, 즉 새터서방님이 만주에서 영영 매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면,

당골네 백단이가 그려 준 부적을 당사자 베갯속에 몰래 집어넣고 봉하는 것이

상책이요, 다음으로는 그 울안에 사는 가족 중에 한 사람 어느 누구의 베갯속에

라도 좋으니,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넣으라 하였다. 그러면, 부적이 무서워서

강태는 그 집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례가 그 집 베개를 단독

으로 혼자서 꿰매지 않는 한, 그것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 아닌가. 생심만으

로도 우례는 속이 떨린다.

"비갯속도 다 갈어얄 거인디, 잉?"

"그것도 아매 새로 허길걸. 셍이 한 번 사뢰 보지 멀. 수천아씨한테. 말라고는 안

허실 거이여."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불 10권 (52)  (5) 2025.08.20
혼불 10권 (51)  (5) 2025.08.19
혼불 10권 (49)  (5) 2025.08.16
혼불 10권 (48)  (3) 2025.08.15
혼불 10권 (47)  (4)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