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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권 (12)

카지모도 2026. 2. 12.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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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송이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도적 무리의 가운데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당하지 못하고 도적들이 뒤로 밀려났고, 감동이와 차인들이 그들을 차차

압축해 들어갔다.

박대근이는 창을 제법 잘 다루는 자와 칼 가진 자를 상대해서 싸우고 있었다. 상대는 창

법을 제대로 익힌 듯 했다. 먼저 지남침으로 공격해 들어오더니 대근이 날렵하게 비켜나자

백원법으로 퇴거하면서 다시 기룡으로 갑자기 바꾸어 급습했다.

박대근이가 상체를 뒤로 넘기려는데, 이미 창끝이 뺨을 부욱 찢고 지나갔다. 박대근이는

뒤로 넘어졌고, 상대가 적수의 자세를 취하면서 창을 비스듬히 헤워 박대근이의 배를 꿸

듯이 들어왔다. 박대근이는 몸을 굴려 피하면서 창을 장검으로 받아냈다.

길산이는 칼을 날렵하게 쓰는 노가에게 쫓겨 뒤로 물러났다. 노가가 칼을 위로 쳐들어 반

월도의 선으로 내리그으려는 순간, 쌍수의 자세로 단검을 세워 칼 쥔 손목을 다른 손으로

잡은 채 엇비슷이 퉁겼다. 쨍 하면서 칼날이 단검 위에 머무르는 사이 두 팔로 힘껏 밀어올

리니, 노가의 하복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틈을 놓치지 않고 내뻗은 길산이의 억센 왼쪽 다리

가 나랑가 노가의 옆구리에 가서 꽂혔다.

"에쿠쿠쿠!"

노가가 칼 든 손을 뒤로 젖히며 넘어가는데 연이어 길산의 오른발이 노가의 칼 든 팔목

을 후렸다. 칼이 노가의 손 안에서 뿌리쳐지면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길산이는 노가의 넘어

진 몸이 땅에 닻자마자 우선 정권으로 노가의 인중 급소를 질렀는데, 앞니가 부러져 턱 아

래로 흘러내렸다. 길산이는 단검을 노가의 목덜미에 재빨리 갖다 댔다.

"꿈쩍하면 목을 도려낸다."

장창 가진 자와 붙었던 대근이는 일장 오척의 나무 창한을 노리고 그자가 철우경지의 자

세로 휘두르는 것을 반대편으로 비스듬히 내리쳤다. 역시 창자루가 댕겅 부러져나갔다. 보병

창이란 말 탄 자를 공격하거나 여럿이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검객에게는 맥을 추지 못하는

법이었다.

창자루가 잘라져 나갔건만 상대는 두려워하지 않고 남은 자루를 봉으로 써서 공격해 왔

다. 박대근이는 그자의 창술이 훈련원에서 십팔반 무예를 통해 익힌 것임을 잘 알 수 있었

다. 창봉을 휘두르며 다가드는 상대에게 박대근은 짐짓 뒷걸음 치는 체하여 공격을 허용했

다. 그의 봉이 팔랑개비처럼 돌아 정수리 쪽으로 내리 박히는데, 대근은 칼날을 세워 봉을

퉁겨 사이를 만들고 잇달아 상대의 팔꿈치를 칼 등으로 후려쳤다. 반사적으로 팔이 쳐들렸

다가 봉을 떨어뜨리며 그자는 팔을 움켜쥐었다. 관절을 얻어맞아 당분간은 팔을 쓰지 못

할 것이었다. 그자는 당황하지 않고 두 손을 척 내려뜨린 채 박대근이를 노려보기만했다. 대

근은 쳐들었던 칼을 슬며시 내리며 말했다.

"네 재주가 아까워 차마 베질 못했다. 이름이 뭐냐?" 상대는 무방비의 자세로 서서 말없

이 노려보기만 했다. 칼과 창을 내던지는 소리들이 들렸고 갑송이와 감동이가 빈손이 되어

버린 도적들을 땅에 주저앉히고 있었다. 길산은 아직도 뒤로 벌렁 자빠진 노가가 꼼짝 못

하도록 그의 목덜미에 단검을 갖다 대고 있었다. 노가가 꺾여 버린 것이 부하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제일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감동이가 나섰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의 짓에는 의리와 도량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비록

나라에 죄를 짓고 고향을 떠나 산림에 숨어 살며 도적질을 하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거늘

자비령에서 떠나온 이후 여태까지 어떠했는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고 어려운 장사치나

나그네의 보따리마저도 빼앗았다. 반항하지 않는 자도 베어 죽였으며 불까지 지르고 일가를

패망시켜버린 일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재물은 어찌되었는가. 한 사람의 축재에 모두

자취를 감추고 우리는 술 한잔 제대로 마시질 못했다. 이는 누구의 탓인가. 한 집안이 잘 되

려면 그 가장의 인품 여하에 달렸듯이 우리의 우두머리라는 자가 용렬하여 일이 거듭되어

우리가 인심을 잃고 보면 산속의 다람쥐새끼조차 우리를 적대할 것이고 우리는 멀지 않아

갈 데 없이 죽고 만다. 내가 산채의 기강을 다시 바로 잡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따르겠는

가."

감동이의 말이 끝나자 마자 박대근이와 상대했던 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말은 번지르르하니 그럴 듯 하지만, 네 놈은 식구의 의리마저 저버린 놈이 아니냐? 뭣 때

문에 아무 상관도 없이 장사꾼 패거리를 끌어들여, 이제까지 함께 죽고 살기루 맹세한 형제

를 배반하느냐? 이것이 녹림당의 의리란 말이냐?"

"말 잘했다. 나와 두령이 서로 다투게 된다면 분명히 산채는 두 패로 갈라지게 될 것이요,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서로 살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번 두령의 실책을 참아왔다.

헌데, 여기 계신 이분들은 우리네처럼 협기와 의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청했다. 너희들을 살상하지 말고 내게 이런 기회를 주기를 부탁했다. 극악무도한 자를 산채

에서 내쫓고, 인화하는 녹림당이 되자는 것인데 이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지 어재서 배신이

된단 말이냐? 좋다, 말할 자가 있으면 나서서 말해봐라." 말을 꺼냈던 자는 입을 다물었고,

다른 자들도 잠시 묵묵히 앉아 있었다. 졸개들 중에서 감동이의 연락을 맡았던 자가 나서

서 말했다.

"부두령의 얘기가 맞소, 저자는 포악한 사람이오. 아까도 양산마루를 넘다가 떠꺼머리 총

각애들을 셋이나 베어 죽여서 낙엽 아래 묻고 왔소이다. 우리가 부처고개에서도 시골 장꾼

들을 몰살시킨 적이 있소만, 나는 그 뒤 밤만 되면 악몽에 시달리오. 우리가 덕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탓이오."

감동이와 함께 상단에 잡혔던 자도 말했다.

"이분들은 관아와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보다는 우리네 같은 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협

객들이셔. 내가 한 사날 지나며 겪어봐서 잘 알지. 우리 산채는 다른 이를 두령으루 모셔야

하네."

이렇게 되자, 다른 모든 졸개들은 서슴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다.

"노가 놈의 목을 쳐버려야 해."

"죽여라!"

"그가 재물 숨긴 곳을 안다."

"산채에서 혼자 내려가버릴 작정이었어."

그 창봉을 제법 쓰던 자가 다시 나서며 감동이에게 말했다.

"둘이 싸우시오. 저항 못할 자는 베는 법이 아니니까." "좋다."

감동이는 환도를 빼어들고 길산의 앞으로 나섰다. 길산은 노가에게서 물러났고 노가는 턱

으로 흘러내린 피를 소매로 쓱 문지르며 일어나 앉았다. 감동이가 떨어진 장검을 주워 노가

앞으로 던지며 말했다.

"어서 들고 나서라."

노가는 칼을 집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박대근이며 길산이, 갑송이 등을 둘

러보고 나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놈을 쳐죽이고 나면 너희는 어쩔수 없이 나를 따르게 될 거다." 감동이는 칼을

쳐들고 노가의 주위로 돌아가며 대꾸했다.

"큰 소리 치지 마라. 그 애 호박 같은 대갈통을 두 쪽으로 내줄 테다." 노가도 칼을 몸과

수평이 되게 옆으로 벌려들고 휘저으면서 감동이의 빈틈을 노렸다. 노가는 장검이나 쌍수

도를 쓰게 되었고, 감동이는 길이도 짧달막한 예도이니 무술검으로 대적하게 되었다. 원래

칼을 쓰는 데 있어서 쌍수도란 단칼에 필살시킨다는 법으로, 공격하기에는 유리하지만 다

음 자세를 취하기까지의 동작이 느리고 칼 방향의 선을 쉽게 바꿀 수가 없아 방어에는 좀

불리한 검술어었다. 예도로서 하는 무술검은 자세에 변화가 많고 칼의 방향을 여러 가지로

빨리 바꿀 수가 있는 대신에 장검의 직도를 막아낼 수가 없는 약점이 있었다. 자연히 무술

검은 동적이 되고 쌍수도는 정적이 되게 마련이었다. 노가는 장검을 두손으로 잡고 왼편으

로 곧추세워 들고 감동이의 측면으로 천천히 도는데, 발은 안전하게 옆으로 펴서 땅에 댄

채로 끌고 갔다. 감동이는 예도를 정면으로 불숙 내밀어 칼끝을 통해 상대를 겨누어보며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돌렸다.

 

제1장 재인촌

 

1

재인말 사름들은 연희가 없는 철에는 공동으로 경작하는 조밭이나 매며, 여가를 공장이

일로 보냈다. 그들이 주로 많이 만드는 것은 왕골이나 버드나무 가지로 만드는 반짇고리, 고

리짝, 소쿠리, 키 같은 것들이었고, 베틀에 쓰는 바디라든가 참빗도 만들었다. 그들이 평상시

에 유기 수공품을 만들고, 또한 그것으로 부역을 삼게 된 것은 하도 까마득한 예날이어서

그들 자신도 언제부터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갈대나 버드나무가 자라난 천변과

강가를 따라서 머물곤 했던 것이다. 유기를 만드는 자들은 광대들 뿐만 아니라 백정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신분의 한 표시였었다.

"길산아, 야 길산아!"

장충은 툇마루에 나서며 생솔 울타리 옆에 엇비슷이 대어 지은 헛간 쪽으로 고개를 뽑으

면서 외쳤다. 얼마 전까지도 길산이 버드나무 가지를 다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인기척이

없었다.

"아니, 이 녀석이 어딜 간 게야. 송화 무더리장을 봐얄 텐데..... 이러단 놓치겠군." 안방,

윗방 그리고 마당 한편에 따로 지은 마누라의 신당에서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물론 장충의

처야 일년이 열두 달이면 반 넘어 나가 사는 사람이고 그 점은 장충의 경우도 마찬가지였

다. 하지만 봉순이마저 보이지 않았다. 봉순이는 몇해 전에 그들의 딸을 까막내 사는 갖바

치 박서방에게 여읜 뒤로 마누라가 신딸이랍시고 데려온 열일곱살짜리 처녀였다. 장충은

그동안 만들어온 바디와 참빗을 망태에 그득히 담았다. 물주에 일정량을 납품한 나머지는

저자에 내다 파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막연하게 집 밖을 향하여 외쳤다.

"야, 게 누구 없느냐?"

어디선가 대답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울타리 삽짝문이 벙긋 열리면서 봉순이가 쫓아

들어왔다.

"어디 갔었니?"

"텃밭에 가갔댔어요."

봉순이는 파와 고추를 소쿠리에 가득히 담아 갖고 있었다.

"네 엄마는 청송서 아직 안 왔니?"

"아직 올 때가 안됐어요. 어쩌면 낼 오신댔는데."

"뭘 까짓 무꾸리루 밤을 세워..... 길산이 찾아오너라." "오빠는 동무들 데리러 나간댔어

요."

"장에 가야 할텐데. 얘가 모르나....."

"동무들이랑 함께 장에 간대요."

"누구 말이냐?"

"아이 참, 누구겠어요. 갑송이 오빠하구 큰돌이 아저씨죠." "거 비슷한 놈들끼리 어울리는

게 무슨 사단이 있는 모양이로군." 봉순이는 배시시 웃고 나서 자랑조로 말하였다.

"오빠가요, 무더리 수철전패들 버릇을 고쳐놓겠다구 그러던데요 뭐." 장충은 고개를 끄덕

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도 빙긋 웃었다.

"저희 세 놈이 무슨 수로 무더리 장터 패거리를 당할라구." 하며 일부러 코웃음을 치는

장충의 말에 봉순이는 시무룩해졌다.

"지난 장날에 큰돌 아저씨가 허리를 삐어 와서는 다음 장날엔 꼭 같이 가자구 신신당부를

했대요."

"익소 패거리란 하다못해 아전 뒷배경이라두 있는 놈들인데, 타관두 아니구 제 고장에서

싸움질 해봤자, 권세 없는 놈들 손해란 걸 모르구....." "길산 오빠가 그놈들 얼굴을 모르니

까 데리러 갔지요, 뭐..... 당을 지어 대적하자구 갔나요. 모두들 그런대나요."

"뭐라구....."

"황주, 봉산, 문화 장터의 무뢰배들은 길산 오빠 이름만 들어두 꽁무니를 뺀다구요." "그

따의 권술이나 조금 익혔다구 조무래기들 두드려서 뭣해." 이제부터 바빠질 텐데 연희나 맞

추어볼 게지. 아, 그러다 관가에 끌려가서 옥살이라두 해보란 말야." "장정들이 재인 말은

몰라두 길산 오빠는 안대요."

"허허 녀석두 참!"

고갯짓을 하면서 자랑스레 얘기한 봉순이는 점심으로 개떡을 찌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

충은 남초를 쌈지에서 내어 곰방대에 담고 한모금씩 천천히 빨면서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일부러 봉순이 앞에서 길산의 얘기를 떨떠름하게 받는 척하였으나, 기실 내심으로는

길산을 든든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디엘 가나 제 고장이 따로 없이 양식을 구걸해온 그들로

서는 심지어 어린아이에게서까지 철저하게 천인의 대접을 받게 마련이었다. 밥술이라도 얻

어먹으려면 유들유들하고 교활한 들개 같은 사나움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명년에는 장가를 들여야 할 텐데....."

갓 오십줄에 들어선 장충의 귀밑머리는 제법 흰 오라기가 생겨났고, 예전의 팽팽하고 울

퉁불퉁하던 근육들은 모양뿐이지 근기가 빠져서 느슨해져 있었다. 요즘 젊은 광대들은 재인

말에 싫증을 느껴 거사질이랍시고 사당패에 끼여들기도 하고, 저자의 괴뢰배가 되어 삼남으

로나 북관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자가 많았다. 하긴 장충도 젊을 적에 구월산 기슭을 떠

나 송도 굿중패에 끼여들었던 적이 있었고 덕물산에서 소무질을 하던 지금의 처를 만났던

것이다. 처는 은근히 장충이 굿거리의 잽이 노릇이나 하며 걸립 행각을 그만두어 주기를 바

라는 눈치건만, 신명 많고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느끼는 장충은 자연히 봄 가을이 되

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장성한 길산이가 탈판이나 재담의 상대역이 될

때는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장충은 길산을 데려오던 해에 울타리 곁에 회초리처럼 가느다란 버드나무 한쌍을 심었는

데, 시방은 굵기가 두 뼘은 되고 늘어진 가지가 대문 위를 덮을 만큼 크게 자라난 것이다.

그는 곰방대를 뒤집어 툇마루 턱에다 탕탕 두르려 털고 나서 방안으로 들어서며 봉순이에게

말하였다.

"내 것은 챙기지 말아라."

"장에..... 안 가시게요?"

"오늘은 집에서 탈박이나 새로 만들고, 북도 낡았으니 손좀 봐둬야겠다. 곧 길 떠날 때가

될텐데."

"오빠가 일낼까봐 그러셔요?"

"아니다, 세 녀석이 작당을 해서 가는데, 내가 끼이면 녀석들이 재미없어할 게야." 장충

은 선반에서 고리짝을 내려놓고, 묵은 탈박이며 나무 파는 장도들을 내어 숫돌에 물을 치

고 날을 갈았다. 그는 오랜만에 장터에 나가려 했으나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혹시 길산이

가 아비를 짐스러워하여 장터에서 행동하기가 불편할까 염려하였던 때문이었다. 광대가 장

터나 도희에서 본바닥놈들에게 괄시받고 꿀리기 시작하면 패거리의 연희에도 지장이 많을뿐

더러 재인들 사이에서도 행세할 수가 없게 되는 법이었다. 광대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온

가족 같은 단결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들끼리만 통하는 은밀한 법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패거리를 단단히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춤과 노래에 잡재주뿐만 아니라 주먹질에도

능해야만 하였다.

절에 승병이 있어 외적과 화적에 스스로 방어를 하듯, 저희끼리 작당하여 다니는 보부상

이나 광대패들도 간단한 권술이며 칼질을 익히게 마련이었다. 장충은 젊었을 적에 거사질을

하던 시절, 절의 노스님에게서 태껸과 단검쓰기를 배웠었다. 그가 배운대로 길산에게 땅재주

나 탈춤을 가르치는 틈틈이 그것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워낙 재간이 몸에 배어서인지 대번

에 익히고 말았던 것이다. 길산은 타고난 몸짓으로 삽시에 그 형을 모두 익혔고, 언젠가 어

느 마을에서 양민 아이들에게 흠씬 맞은 뒤로 더욱 열심히 단련한 듯하였다. 큰잿말에 머물

게 되는 여름과 겨울마다 산기슭에 모래더미며 말뚝을 세워놓고 남몰래 단련을 몹시 하는

눈치였었다. 길산은 매처럼 날래었고, 차돌같이 단단한 장정이 되었던 것이다.

장충이 묵은 탈의 먼지를 털고 모양을 견주어 보고 있는데, 밖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짝이 열렸다.

"아버지 송화 장날인데 잊으셨어요?"

목소리가 걸걸하고 어깨는 탄탄하며 중키에 날렵한 몸매의 총각이 쾌활하게 들어섰다. 장

충은 그냥 코대답으로, "알구 있다."

하면서 일손을 멈추지 않는데, 길산은 문가에 와서 들여다 보았다.

"그럼 뭘 하세요. 장에 내갈 물건들은 다 챙겨놨는데요." 길산이는 땋은 멀리를 질끈 동

인 무명 두건으로 감쌌는데, 볼때기에 구레나룻이 시커멓고 하관이 쪽 빨랐다. 살결은 가무

잡잡하고 콧날이 고집스레 섰으며, 눈이 크고 부리부리한 것이 여간내기로는 보이질 않았

다. 얼핏 보아서는 뼈대가 억센 머슴 같지만 역시 뚜릿거리는 눈빛에 총기가 있어 뵈고 동

작이 가벼워 보여서 젊은 창우의 모습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누구하고 같이 왔니?"

장충은 탈을 만지작거리며 삽짝 밖을 살폈다. 길산이는 머뭇거리더니, "저어..... 밖에 큰

돌 언니 하고 갑송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걔들두 무더리에 같이 가냐?"

"예..... 저..... 이번 장은 저 혼자 보구 올까요?"

"흠, 너희끼리 가서 재미를 보겠단 말이구나."

장충의 말에 길산은 뒤통수를 긁적이는데 길산과 차림새가 비슷하고 덩치는 훨씬 우람한

총각과, 꼭대기 뾰족한 말뚝 벙거지에 동저고리 바람인 사내가 뒤따라 들어섰다. 앞선 총각

이 갑송이인데 툇마루를 향하여 턱을 치켜든 채로 상체를 굽신하였다.

"안녕합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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