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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권 (9)

카지모도 2026. 2. 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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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송이는 이미 뽑혀진 다섯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앞줄에 버티고 앉아 있었는데 상대는

둘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자도 갑송이보다 몸집은 작았으나 눈꼬리

가 매섭고 목은 짧으며 어깨가 다부지게 벌어진 것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 사내의 뒷전

에 장정 서넛이 않아서 떡을 돌려 먹고 호리병에 담아온 술을 나눠 마시고 하는 품이 일행

인듯하였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아 농부들은 아니고 보상들인 것 같았는데 패를 떠나 별개

로 다니는 자들인 모양이었다. 드디어 심판을 보는 박대근이네 행수 차인이 나서서 말했다.

"자아, 이제는 끝으로 남은 두 장사가 나와서 결판을 내겠소. 이긴 사람은 저기 천리를 달

리는 청노새 한 필을 상물로 받게 되오. 자아 투전 걸오볼 사람은 양쪽 멍석에 돈들을 걸어

두시오."

"좋다, 난 열 푼을 동편에 건다."

"나는 서편 닷 푼이오."

"몸집 보아서는 저쪽이 우세하지만 이쪽은 동작이 날렵하니 승패를 가리기가 곤란한데.....

하지만 이쪽을 거네. 우리 어울려서 내지. 누구 스무 돈 곱내기할 사람 없수?" "좋소, 이기

면 사십 문..... 나는 저쪽에 걸었수."

상사람이나 양반 한량들이나 구별없이 뒤섞여 돈을 멍석에 내던지는데, 관리하는 자가 지

표를 셈대로 몇 장씩 나눠주었다. 서편에 자기네 일행과 앉았던 장정이 일어나며 눈짓을 하

니 뒷전에 앉은 자가 슬쩍 그자의 손에 무엇인가 건네주며 속삭였다.

"감동이..... 손 안에 꾹 움켜쥐고 알았지?"

"글세 알았다니까."

감동이란 정정은 그 이름대로 온몸이 까맣게 차돌처럼 반들거리는데 상대들 바라보며 빙

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가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은 끝이 뾰족한 자갈 돌맹이였다. 커다란 손

에 끝을 감추고 주먹을 쥐고 있으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털이 곱게 빗겨

진 청노새를 마치 자기 것이나 되었다는 듯 싱그레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갑송이도 픽 웃으

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샅바를 쥐고 허리를 굽혔다. 심판은 두 사람의 자

세가 안정되자 두 손으로 등을 탁 두들겼다. 그러자마자 갑송이는 샅바를 잡은 손에 힘을

넣어 상대를 번쩍 치켜들었다. 힘으로는 결코 상대가 되지않았다. 다리 걸어 후리는 것조차

필요가 없을 듯 했다. 감동이는 안간힘을 쓰면서 가까스로 허리를 굽히며 궁둥이를 뒤로 죽

뽑아냈다. 그는 한 손으로만 갑송이를 잡고 남은 손은 몸의 중심이라도 잡으려는 듯이 공중

에서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어어.....라랏차차....."

하며 갑송이가 다시 끌어당기면서 들어 태기를 치려는 순간인데, 감동이는 휘젓고 있던 돌

듯 손을 뒤로 치켰다가, "에에에라라랏차!"

고함소리로 엄벙뗑하면서 갑송이의 무릎관절뼈 위에다가 모질게 콱처박았다.

"어이쿠."

갑송이의 육중한 상체가 기우뚱하는가 싶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감동이의 발걸이가 스리

슬쩍 파고들며 기울어진 종아리를 휘감고 밀어냈다. 갑송이는 감동이를 부여안은 채 뒤로

태산이 무너지듯 넘어갔다. 감동이는 앞으로 쳐박힐 때 모래땅을 짚으며 쥐고 있던 돌맹이

를 모래 깊숙이 넣어버렸다. 관중들의 감탄소리와 내기에 이긴 자들의 환호가 떠들석했다.

"신묘한 기술이다!"

"문화에 장사났네, 항우 손자 났어."

"덩치가 크면 고기값이라두 할 것이지, 뜨건 물 맞은 개좆 사그라지듯 폴싹 넘어지니.....

젠장할 돈 잃었네."

궁둥이를 땅에 대고 어이없이 멍청하게 퍼질러앉았던 갑송이가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며

감동이라는 자의 손목을 왈칵 쥐었다.

"끼놈! 네 손안에 뭘 가지고 있나 보자."

감동이란 자는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욕설을 터뜨렸다.

"이런 멧돼지 같은 놈아..... 졌으면 곱게 물러날 것이지 골딱서니엔 똥만 가득한 놈이 웬

시비야 시비는 ....."

갑송이는 아직도 분간이 안되는지 벌겋게 부풀어 오른 무릎을 내려다 보다가 이번에는

자신있게 감동이의 허리를 끼였다.

"허리를 삭정이 꺾듯 아주 분질러 놓을 테다."

"어어 ..... 이놈이 씨름에 지니까 생사람에게 행팰세." "저런 예의 없는 놈을 봤나. 풍퓨

잡치게 씨름판에서 싸움질이니." "저런 놈은 무리매를 놓아서 관가루 넘겨야 한다."

감동이의 일행이 소리치며 일어섰으나 갑송이는 이미 상대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고 있

었다. 박대근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끝난 승부다! 말을 내줘라."

"갑송아 내려놓아."

길산이의 말이 들려오자 갑송이는 노기를 참느라고 붉어진 얼굴로 상대를 거칠게 내려놓

았다. 감동이는 어지럼증으로 갈피를 못 잡고 비슬대면서 서 있었다. 갑송이가 길산이께로

다가들며 투덜댔다.

"내 무릎 좀 봐라. 저 녀석이 손에 돌멩이를 감춰 들고 있다가 박은거야. 이런 씨름판이

어디 있냐."

"알구 있었다. 물증이 없으니 네가 진 게야."

"노새를 내 줘야 잖아. 나한테 건 사람들게 면목도 없구 말야." "정 그렇다면 나중에 골

탕을 먹이자."

씨름판이 끝났어도 사람들은 내깃돈 헤아리기에 흩어질 줄을 몰랐고, 감동이 일행은 청노

새를 끌고 장터 가운데를 헤치고 나아갔다. 그들은 읍내의 주막으로 갔는데, 역시 장사치 차

림의 사내가 두 사람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손짓하여 불렀다. 술상머리로 끼여

앉으며 감동이가 말했다.

"그 녀석 곰처럼 힘만 셌지, 새대가리더군."

"그예 지분덕거려놓았군."

"화해가 되면 사귀어서 길동무가 되란 말야. 그리군 사처에도 같이들고 주막에도 함께가

구..... 안악까지만 동행을 하란 말야."

"길마다 포교들이 좍 깔려서 오가는 사람 기찰이 자심하답디다." "걱정없네. 어디 사람

얼굴에 표가 싀어 있다든가. 우리께 담뱃짐이 있으니 그거 다 싣구 슬슬 뒤쫓아가지."

"장사치루 꾸미구 화연봉 쪽으로 먼저 떠났네. 거 봉수대 마루턱에 후미진 골이 있네." "

잘 되겠군 양산마루를 타구 배고개만 무사히 넘어가면 자취두 없을테니." "이자들이 아마

신천으로 빠지든지 아니면 이 길로 안악으루 들러서 봉산 황주 가서 짐을 풀어 송도루 보낼

텐데 그때 들이치는 게 낫지 않을까." "봉산부터는 우리 구역이 아니구, 또한 자비령 패거

리들께두 의리가 아닐세. 더구나 월당 나루를 무슨 수로 넘나들겠나."

"진에서 군졸들이 모조리 풀려나오고, 각 현마다 포졸을 풀었다는데....." "까짓 거 마주

치면 배어 죽이고 달아나지 뭐 대수야." "하여튼 우리는 감동이 자네만 믿구 화연봉으로

뒤쫓아갈 테니까....." "염려 마슈. 내 꾀가 들어맞을 테니."

앉았던 두 사내들은 술잔을 놓고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리더니 주막을 나갔다. 감동이

가 중노미에게 소리쳤다.

"여보 술상 물리구..... 장국밥이랑 탁주 너 되 너비아니 두 근 구워 내오슈." 그들이 밥에

술에 부지런히 먹고 났을 때 죽령방에선 파장이 되었는지 장꾼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자네는 나가서 상단이 어느 객주에 묵는가 알아보게" 감동이가 지시했고, 한 사람이 주

점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얼마 후에 돌아온 자가 말했다.

"그자들은 건너편 찔레 울타리의 초가하구 그 옆집에 나누어 들었는데, 시방 저녁 먹는

중이데."

"알았어"

감동이네들은 담배 한 대씩 담아 피우고 나서 사방이 제법 어두컴컴 할 때 일어섰다.

"슬슬 가보까."

그들은 일행이 남겨둔 장사보따리를 노새 등에 얹고서 길을 건너갔다. 길게 연이어 달린

방마다 보상 차인패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식사중이었고, 길산이, 갑송이, 대근이 등이 술

청에 나와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게 쉽게 눈에 띄었다. 감동이는 노새를 마당의 말뚝

에 매고 일부러 행보에 거드름을 피우며 술청으로 들어섰다.

"어어 피곤하다. 술이나 한잔 걸쳐 볼까아....."

국솥에 젓고 있던 주모가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예, 손님 모셔라아."

마주 내다보던 갑송이가 술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감동이는 그들이 앉아 있는 방의 건너편 대청으로 올라 앉았다. 술잔을 내려놓고 씨근대

던 갑송이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이놈아, 술을 처먹겠으면 조용히 마실일 이지, 네놈이

이 주막을 온통 샀다더냐?" 길산이도 놈이 답삭대는 꼴이 같잖아서 상대를 지그시 노려보

고 있었는데, 박대근이만은 노새 한 마리는 잃었을 망정 그자의 영리해 보이는 짓거리가 재

미있었다. 그는 두고 보겠다는 심정으로 양편을 관망했다. 감동이가 갑송이의 거친 시선을

피하며 술을 날라오는 중노미에게 말을 걸었다.

"얘 주막에다 갓난애를 키우면 어쩌느냐, 규중에 재워야지." "애기라닙쇼?"

"거 애기가 똥을 쌌나 본데..... 그러니까 강아지가 핥을려구 방안에 들어갔지." "강아지

요..... 점점 모를 소린뎁쇼."

"저 건넌방에서 깨갱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똥은 뒷간에 많으니 거기 가서 포식하라구 일

러라."

중노미는 감동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눈을 흡뜨고 사나운 기세로 벌떡

일어서는 갑송이를 보았다.

"강아지가 아니구..... 손님인뎁쇼."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술청 안의 손님들이 중노미의 고지식한 말에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두 사람의 감정이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연유를 씨름판에서부터 보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송이가 문지방을 넘어 툇마루로 해서 대청 쪽으로 곧장 걸어왔다.

"아, 이놈이 욕을 하네!"

"인제 잘 보이는군. 아까 청노새를 내게 바친 장사로구먼. 허긴..... 참 서글픈 생각이 드는

구만."

갑송이는 여차직하면 당장 개다리 소반을 발길로 걷어찰 기세를 하고 서 있었으나 감동이

는 여전히 마당 쪽을 향한 채 주절거렸다. 갑송이가 감동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야, 잠깐 내려가자. 이번네 정말루 겨뤄야겠다."

"허허, 슬프다 슬프구나."

"니 애비가 급살탕이라두 맞았느냐 무에 슬퍼, 슬프긴....." 감동이가 한 숨을 푹 쉬고 나

서 갑송이를 쓰윽 올려다 보았다.

"노여움을 푸시우, 한번 실패는 병가의 상사라구 했수, 헌데 내 요속눈썹 보이지요?" "눈

깔이 실지렁이 꼬랑지로 째진 녀석에 눈썹두 있데?" "글세 아무튼, 요 속눈썹 가운데 흰털

한 가닥이 있을 거요. 흰털의 내력을 듣겠수?" "그래 지껄여봐라."

"내 일찍이 백두산 기슭에서 사냥을 업으루 지내온 사람이우.너구리, 오소리, 산토끼, 노

루, 멧돼지 닥치는 대루 잡아 고기는 먹고 털은 벗겨서 팔았지요. 그렇게 삼년을 지냈는데

하루는 그믐날 밤에 산신이 내려왔습니다."

"산신이면 호랑이 말이지....."

"암, 허연 도포를 입구 와룡관을 쓴 신선으루 둔갑하구 와서 호통을 친단 말야. 네 이놈!

이 무엄한 놈, 네가 삼년 동안 이골 저골을 뒤지며 내 먹이를 쓸어가는 통에 내 때아닌 기

근을 만났은즉 이젠 하는 수 없이 네놈의 멱통을 끊어놔야겠다. 한단 말이지." 성질 단순한

갑송이는 어느덧 감동이의 노는 꼴이 밉질 않아서 상머리에 털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술청

안의 손님들도 모두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산신께 꼼짝없이 물려 죽게 생겼데. 그래서 애걸복걸, 저는 지금 과수댁이던 모친상을 입

구 채 여섯 달두 못되었습니다. 더구나 혈육이라군 이 몸 하나이니, 제가 죽고 나면 제사는

누가 드릴 것이며 묘막은 누가 지킵니까. 사정했지."

"산신은 효자에 약한 법이라니."

"산신이 상을 찡그리고 한참이나 생각중이더니..... 좋다, 그러면 너를 고이 살려줄 테니 이

길로 산을 떠나거라. 그러고 평생 사냥질해처먹을 생각은 말아라. 큰일났네. 배운 버릇이 덫

놓고 함정 파고 활 쏘는 짓인데, 그래 꺼이꺼이 통곡을 하며 연유를 말했지. 산신은 그놈 참

말썽 많고 사연 많은 놈이라며 제 눈썹 한 가닥을 쓱 뽑더구만." "그 녀석 제법 옛말 잘하

누나."

"이 눈썹이 무슨 소용이 닿습니까. 음, 그 눈썹을 붙여줄 테니 청맹 판수질이나 해쳐먹고

다시는 애꿎은 짐승을 때려잡을 생각은 말아라 이르더군. 그래서 요 내 속눈썹에 백털이 끼

여들었단 말이야."

"흰 눈썹이 점쟁이짓에 무슨 효험이 있는데."

"이 백털이 눈가에 달라붙고 나서는 세상이 다르게 보여." "어떻게.....?"

"사람의 전생이 훤히 보일뿐더러 내생두 또렷이 보이데. 그뿐야, 저자에 나가면 거북이가

떡을 팔구 있잖나..... 잔나비가 저울을 달구, 메기가 쌀됫박을 되는가 하면, 참새가 술을 팔

구 말이지."

"예끼, 이 사람."

"그래 아까 씨름판에서 자넬 쓱 보니까, 전생이 본래 종로 도자전 태생이더구만." "아니

고작 장신구였단 말야."

"성질내지 말구 들으라구. 어떤 물건이었지. 헌데 어느날 별궁에서 꽃 같은 나인이 찾아와

자넬 사갔네. 그래서는 향내나는 치마폭에 감춰두고 요긴할 적마다 자넬 써먹었지. 수십 년

을 쓰다가 물리고, 또 물려져서 그러니까 자네가 태어나기 꼭 일년 전에 자넬 애지중지했던

궁녀는 선왕과의 관계가 있은 뒤라, 곧 상복 벗자마자 승방에 들어 죽고 화장되었지. 그때에

자네도 함께 탔거든."

"이 사람아 도대체 그 물건 이름이 뭐여?"

"화낼까봐 말 못하겠군. 어쨋거나 자네는 염라대왕께 호소를 했지. 이거 남들은 최소한 가

이새끼나 염생이라두 태어나 가는데 내리 수백 년을 음침한 데나 드나들며 오수로 목욕하고

천덕꾸러기로 지냈으니, 이제는 제발 광명천지에 두 발로 걷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그랬

네. 딴은 그동안에 갖은 곤욕을 치렀으니 사람으로 나가거라. 자넬 떡 보니까 그 눈물겨운

과거지사가 한 눈에 보인단 말야. 그래서 내가 슬프다고 탄식한 걸세." "그 물건이 뭐냐니

깐."

"말해줄까 말까. 술 한잔 따르게나."

다른 이들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고개를 갸우뚱댔고, 더욱이 장본인 갑송이는 은근히 애가

달았다. 성급히 술 한잔을 따르는데 반 잔 쯤 넘쳐 흘러버린다.

"내가 물건 이름을 말해주기 전에 한가지 약조를 하세그려. 점잖고 풍류있게 웃을 것. 허

고..... 마음에 들면 동무삼아 한 잔을 살 것..... 어떤가?" "망할 자식, 그래 좋다."

감동이는 나직하게 낄낄 웃고 나서 말했다.

"그것이 바루 도자전에서 파는..... 참나무로 깎은 각좇이여!" "이놈아, 그따위 욕지거리가

어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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