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개가 남은 꿰미를 인심 쓰듯 건네주니, 주모는 호들갑을 떨었다.
“어이구, 참으루 대인이셔. 이 많은 돈을 선뜻 내주시네. 염려 마슈, 내 과부를 호려내라
두 해낼 테유.”
“술이나 좀더 주우.”
“예, 알이 통통 밴 자반아치를 맛나게 구워 올릴 테니, 술은 탁주루 하실라우 화주루 드
실라우?”
“화주 반 되 주시오.”
주모가 자반을 굽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막개에게 물었다.
“우서방을 잘 아슈?”
“듣긴 여러번이나 만난 적은 없소. 힘깨나 쓴다면서요?”
“그 임대인이 부리는 뱃사람 중에 제일 힘꼴이 세답디다. 연평 사람이지요.”
“까짓 놈, 뱃놈이 뭍에 올라오면 별거 있겠나.”
“수군 다니다가 임대인이 군적을 빼주었답디다. 술 잘 먹고, 성질이 개차반인데, 약한 사
람들께는 아주 부드럽지요. 댁두 용댕이 와선 그 우서방과 인사를 해둬야 편리하겠구먼. 헌
데 전하라는 얘긴 도대체 뭐유?”
“가만 있수. 어련히 내가 알릴 때가 되면 말하지 않을까봐?”
“문을 닫아야겠네.”
“문을 닫으슈. 가만있자...... 우대용이가 틀림없이 포구에 있을까.”
“걱정 마시래두. 내일 배가 한양으루 올라간다구 버얼써 낮에 선적이 끝났어요. 아마 투
전이나 벌이구 있겠지.”
한편, 인시쯤에 덕이는 광석내를 따라 결성골로 내려갔다. 임유학의 커다란 기와집 지붕이
내려다뵈는 언덕빼기에서 그는 성내와 부근의 각 절에서 들려올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은 불빛 한점 없이 캄캄했다. 닭이 여러 차례 울고 나서 먼 데서 종소리가 들리더니, 잇
달아 산사의 동종 때리는 소리가 간격을 두고 울려퍼졌다. 덕이는 검은 보자기로 얼굴을 감
싸고 두 눈만 내놓았다. 그리고는 고양이걸음으로 임유학의 담을 향해 내려갔다. 담이 한키
반이나 되도록 높아서 맨손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가 없어 보였다. 그는 긴 담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안채와 바깥 사랑채, 행랑채 사이에는 다시 중문과 담장이 있
겠으니, 사랑채에 가까운 곳으로 넘어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덕이는 사랑채의 처마끝이 삐
죽이 올라간 옆에 섰는 소나무 가지를 눈여겨보았다.
그는 품안에서 닷 발짜리 삼승줄을 꺼내어 돌멩이를 매달고 휘휘 돌려 나뭇가지에 걸었
다. 매듭을 탄탄히 지어서 여러번 당겨본 뒤에 서너 번 끌어당겨서 담 위에 올라섰다. 담장
의 기와가 밤이슬에 젖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는 줄을 담 아래로 넘겨두고는
사뿐히 미끄러져 마당에 내려섰다. 행랑채에 불빛이 보였는데, 코고는 소리가 높직하니 수직
하는 하인들도 이제는 잠든 모양이었다. 그는 허리춤에 찔러넣고 온 짤막한 쇠몽치를 꺼내
들고 사랑채의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그는 미닫이를 조용히 열었다. 어둠에 익은 눈으로 아
랫목에 누운 임유학의 흰 수염과 그 머리가 들어왔다. 단매에 쳐죽이는 일이 아니라서 설맞
고 소리를 지를 것이 걱정이었다. 우선 머리를 치면 혼절할 테고 이어서 척추 허리께를 내
려갈길 작정을 했다. 그는 쇠몽치를 번쩍 쳐들었다. 잠든 사람을 스스로 인기척을 느꼈음인
지 끙하면서 돌아누웠다. 덕이는 주저하지 않고 쇠몽치를 가볍게 내리쳤다. 잠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자는 헉하는 소리만 내고는 꼼짝하지 못했다. 이어서 덕이는 이불자락을 젖히고
임유학의 허리께에 곧추세운 쇠몽치로 지끈지끈 내려박았다. 통나무도 부저졌을 텐데 육순
이 넘은 노인의 허리뼈쯤이야 부러지다 못해 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찍짹 소리없이 일이 끝
났다. 덕이는 이불의 임유학의 머리끝까지 덮어놓고 잠시 바깥 동정을 살폈다.
파루가 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막개는 잠든 주막집 노파을 깨웠다.
“보슈, 할멈 일어나요. 일어나. 시방 우대용이께 말 좀 전해주어야겠어.”
“하필 신새벽에 심부름시킬 건 또 뭐유.”
“우대용이께루 쫓아가서 임대인을 때려 죽이려던 놈이 방금 달아났다구 전하슈.”
“아, 아니...... 누, 누가 맞아 죽어요?”
“임대인 댁에서 도망친 놈이 지금 용댕이고갤 넘을 테니 광석내 앞에서 목을 지키면 된
다구 전해주면 됩네다.”
“광석내요?”
“그렇지 방금 결성골에서 나왔을 테니까. 내 여기서 기다릴 테니 냉큼 다녀오슈, 또 닷
냥을 더 드리지.”
사색이 되어 있던 주모가 닷 냥이란 말에 발걸음이 떨어져서 꽁지에 불 달린 들쥐처럼 뛰
어나갔다. 갯가에는 배에 매어단 불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었고, 해창과 어계방 쪽에도 관솔
횃불이 대낮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모가 방문을 벌컥 열었을 때, 제각기 손에 쥔 패에 열
중한 장정들은 아무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주모가 우선 소리를 질렀다.
“여보아요! 큰탈났수, 큰탈이 났어.”
장정들이 일제히 어리둥절해져서 문 밖에 섰는 주모를 쳐다보았다. 입빠른 자 하나가 실
없는 소리를 던졌다.
“어, 죽은 영감 귀신이 찾아와서 합환하자구 졸라댑디까?”
“미친 녀석 같으니, 농하자구 달려온 줄 알어? 우서방 어디 갔수?”
좌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검은 배자 받쳐 입고, 머리는 검은 수건으로 질끈 동였는데
빰에 기다랗게 상처가 났으며 콧수염이 뻣뻣하게 곤두서서 입술을 덮고 있었다. 걷어올린
다리에는 털불숭이가 무성했는데 바닷바람에 그을려 몸 전체가 벼룻돌처럼 단단하고 시꺼먼
몰골이었다.
“왜 그러우?”
내뱉는 목소리가 섬술깨나 좋이 마실 듯 싶게 거칠고 탁했다.
“댁네 대인 어른을 언놈이 죽이려다 방금 달아났대요. 광석내 쪽으루 갔다구요, 빨리 쫓
아가 보라잖아요.”
우대용이가 우물쭈물하지 않고 후닥닥 뛰쳐나오며 제 등뒤에다 소리쳤다.
“빨리들 가보자.”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우대용이는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고기잡이 작살을 찾아
들고 있었다.
“주모, 정말이지?”
“압다, 거짓 소리 했다간 외상값 다 떼이게?”
“외상 정도가 아니라, 우릴 놀렸다간 초가삼간에 불을 확 싸질러버릴 테여.”
그들은 갯가에서 광석내를 향해 달려 올라갔다. 우대용은 결성골서 나오는 자가 어느 길
을 택하는지는 제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우대용이네 뱃놈들은 광석내의 물이 겨우 발목에 차오르는 얕은 목을 건너가서, 용당포와
해주성 밖의 경계가 될 언덕을 막고 지켜 잇었다. 낯선 고장의 갯가에서, 타관 뱃놈들과 무
수한 싸움을 치러온 그들인지라, 누가 말하지 않아도 숨소리마저 죽인 채 엎드려 있었다.
결성골에 들어온 자는 누구든지 이제는 보쌈 항아리 안에 들어오는 피라미새끼였다. 들어
올 적엔 쉬이 들어왔으나, 아무도 용댕잇개 앞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은 목소리
를 낮춰 수군거렸다.
“임대인 나릴 노리는 게 언놈들이겠어...... 신가놈들이 온 모양이야.”
“억지 채무로 마인을 주었다던데, 그놈 아닐까.”
“복동이패는 원래 용댕잇개로는 넘어오지 않기루 되어 있어. 잡아봐서 틀림없으면, 이번
엔 우리가 주내방 신씨 여각으루 쳐들어가야지.”
“웬일일까, 지난 이태 동안 서루 아무 말썽이 없었는데.”
“이봐, 감사가 갈렸잖나. 우리 임대인께 줄이 닿던 양반은 경부루 올라가셨단 말야.”
그때 광석내 건너편에 희끗한 사람의 자취가 나타났다.
“쉿, 저기 누가 온다.”
나타난 자는 허리를 굽혀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더니 내를 건너오는 것이었다. 그가 내를
건너 고갯길로 들어서는 참에, 장정들이 후다닥 양쪽에서 뛰쳐나갔다. 우대용이가 질그릇 깨
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위협했다.
“이눔, 게 꿈쩍 말고 섰거라!”
“허?”
덕이가 놀라서 발을 멈추고 두리번대는데 벌써 상대편의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덕이도 피
해 뒷걸음치면서 쇠몽치를 꺼내들었다.
“느이들 왜 이러느냐?”
“네 이눔...... 임대인 집에서 도망 나오는 길이지?”
“그래, 빚돈 받으러 갔었다.”
“잡아랏!”
서너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데, 덕이의 쇠몽치 쓰는 솜씨도 제법인지라, 머리와 어깨를
제각기 얻어맞고 에쿠지쿠하면서 되떨어진다. 덕이가 이리 뛰고 저리 피하면서 쇠몽치를 휘
둘러대건만 워낙 상대의 수가 대여섯 되고 보니 달아날 길이 막연했다. 더구나 우대용이가
작살을 내던지고서 달려드니 그 우악스런 기세에 덕이는 우선 기가 죽어버렸다. 덕이가 쇠
몽치를 휘두르며 내달으면 우대용이는 몸을 유연하게 흔들어 피하면서 오히려 몽치 자루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틈을 노리던 우대용이가 앞발을 널름대더니 덕이의 정강이뼈를 콱
내질렀다. 덕이가 휘청하면서 무릎을 꿇는 사이에 우대용이의 억센 손아귀가 덕이의 몽치
든 손목을 조여잡아 이끌면서 배때기의 허릿바를 틀어 힘을 썼다. 덕이가 버둥대면서 공중
에 쳐들렸는가 싶자,
“에라잇, 니미랄 거.”
우대용이가 투덜대면서 땅바닥에 메태기를 쳐버렸다.
“어이구......”
얼굴을 왕모래에 갈고 처박혀서 버르적대는 덕이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린 우대용이가
우선 박치기로 상대의 면상을 으깨놓고 주먹으로 연신 가슴팍을 쳐올렸다. 상대가 늘어지자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작살을 들어 등을 겨낭하고 번쩍 쳐들었다.
“여...... 참아.”
한 사람이 우대용이의 팔을 붙들고 또다른 사람이 그의 허리를 껴안아 뒤로 끌어냈다.
“사람 죽이겠다.”
말린 사람이 핀잔을 주니, 우대용이는 씨근거리면서 침을 퉤퉤 내뱉었다.
“까짓 놈 죽으면 대수야. 발목에 돌이나 두어 개 달아 바닷물에 내 버리지.”
“그래두 죽으면...... 살인이다.”
“아따, 아무리 고리게 굴었어두 임유학은 우리 주인이여. 시방 이놈이 죽였는지두 모를
텐데...... 살인자를 쳐죽인들 어떨라구.”
“사유를 알아야 쟁송에 유리하지.”
그들이 이렇게 다툴 적에 덕이를 끌어올리던 장정이 소리쳤다.
“여보게들, 이리 와보게.”
“뭐야, 왜 그래.”
“이놈이 죽은 모양이야. 축 늘어졌어.”
모두 달려들어 덕이를 더듬는데, 우대용은 다시 성을 내며 발길로 호되게 걷어찼다.
“이놈, 엄살 떨면 속을 줄 아느냐.”
그러난 늘어진 놈은 꼼짝도 않는다. 그뿐 아니라 구린내가 고약하게 풍겼다. 방분해버린
모양이었다.
“어이 구려, 이거 무슨 냄새야.”
“허 변을 놓쳤으니...... 틀림없이 절명했네. 여게 불을 켜봐.”
그제사 우대용이는 만져보기 시작했고, 한 사람을 부시를 꺼내어 마른 잎을 모아 불을 붙
였다. 불빛에 드러난 덕이의 몰골은 끔찍했다. 눈을 흡뜨고 있었고 코는 으깨져 콧날개가 찢
어져 너덜댔는데, 입도 터져서 흘러내린 피가 목덜미를 타고 저고리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쳇, 그놈 어이없이 뒈졌네.”
우대용이가 꺼림칙해졌는지, 얼굴을 돌리면 투덜거렸다.
“단매 석 대에 뒈어질 놈이 설치기는 왜 오줌 맞은 개구리새끼처럼 폴짝거려......”
“자, 이 일을 어찌한다.”
“뭘 어찌해. 지금 서둘러서 바다에 내다 버려야지.”
우대용이가 주장했으나, 처음부터 말리던 자가 짜증을 냈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사람 죽인다구 그랬잖아. 자넨 그 성미 때문에, 언제나 일을 그르
쳐놓는단 말야. 자네 벌써 이게 몇 번째야, 네번째지. 여긴 타관이 아니란 말야. 이제 어쩔
테야. 이놈이 신가놈의 수하라면, 가만있지 않을 게야. 우선 대인 댁으루 가봐서, 대인이 죽
지 않았다면 자넨 이 고장서 달아나야 해. 만약에 나리가 죽었다면, 자넨 자수해서 곤장이나
맞구 두어 달 옥살이나 나오는 게 나을 테고. 하여튼 나리 댁으루 가보자.”
“이놈은 어떡할까?”
“끌구 가야지.”
“젠장맞을...... 누가 그리 쉽게 뒈질 줄 알았나.”
우대용이는 침을 퉤 뱉고 나서 덕이의 시체를 등에 짊어졌다.
“재수 옴 붙은 날이네. 어유 망할 자식 같으니. 웬 똥냄새가 이리 구리냐.”
그들이 한데 몰려서 광석내를 건너고, 결성골로 들어가는데, 한떼거리의 사람들이 횃불을
켜들고 마주 달려오다가 주춤 서버렸다.
“누구야......”
“대인 댁 하인배들이로군.”
“웬인들이냐?”
하인들은 그제사 마음을 놓았는지, 마주 다가왔다.
“큰일났고. 웬놈이 집에 들어와서 주인나리를 패구 달아났소.”
“그래, 돌아가셨나?”
“시방 식구들이 의원을 부르러 보냈는데, 어찌된지는 자세히 모르겠소.”
그들 틈에서 청지기 사내가 나섰다.
“돌아가시지 않구 숨은 붙어 계시네. 그래 그놈을 잡았나?”
주상단의 총대 선인 되는 자가 근심스럽게 말하면서 우대용을 돌아보았다.
“잡긴 잡았는데...... 자네 곤란하게 되었구면. 신가네 패가 잠자쿠 있진 않을 걸세.”
청지기가 우대용이께로 횃불을 비추다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에키! 이게 뭐야. 송장 아녀?”
“쳇, 주먹으루 두어 대 패니깐 뻐드러지잖어. 정말 송장 치구 살인났다니까.”
청지기가 총대 선인에게 물었다.
“그래, 어쩔 셈인가들?”
“인제부터 의논을 해봐야지. 어이 누가 이 사람들 따라가서 주인나리 어떠신가 알아보구
와. 우리는 대용이 처신 문제를 생각해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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