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이 분원 앞에서 초조히 서성대고 있자니 살림하지 않는 일꾼들의 밥을 붙여주고 있는
박씨 과부가 그 뚱뚱한 몸을 흔들며 달려왔다. 그 여자는 한 오십쯤 먹었는데 언청이의 노
처녀인 딸 하나를 데리고 월송골로 들어와 남의 전답을 부치며 먹네 마네 하더니 경순의 후
의로 분원에 밥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뒤로는 초가삼간이나마 두 채를 지어 늘려놓
고, 일하는 계집아이도 하나 들여서 아주 그럴 듯이 풍족한 살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처지
인지라 박씨 과부는 경순의 말이라면 머리털로 미투리를 삼으란다 하여도 들을 지경이었다.
"자네네 뒤채가 어찌... 좀 조용한가?"
다짜고짜로 물으니 박씨 과부는 영문을 몰라서 그 물음을 되씹어보았다.
"조용하다닙쇼?"
"우리 아이들이 게서 밥을 붙여먹지 않나?"
"조용할 적두 있고 시끄러울 때도 있습지요. 저녁나절에 제일 시끄럽습니다. 술들을 마시
니까요."
"자네와 처지가 비슷한 여자루 혼자 사는 이가 있거든 천거하게."
박씨 과부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경순의 말에 불안해져서 입을 비쭉이 내밀었다.
"뭐하시게요? 쇤네가 무슨 잘못한 일이라두 있습니까?"
박씨 과부는 혹시 경순의 마음이 변하여 밥 붙이기를 떨구려는 줄 알고 벌써 눈물이 글
썽해지는 것이었다. 경순은 그런 양을 알고서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잘못한 일이 뭐 있겠나. 내가 누굴 데려왔는데 잠깐 의탁시킬 데가 없어서 그러
네."
"아유 그러시면 저희 건너방을 치울 테니 어서 모시구 오셔요."
"그 방은 우리 아이들이 몰려들어 술을 마시는 곳인데... 실은 사내가 아니라 여일일세."
박씨 과부는 멀뚱하더니 이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서 키릴거리며 끄덕였다.
"아, 이제 원주님 말씀을 알아들었소이다. 씨받이를 데려오셨구먼요. 진작 제게 부탁하시
면 광주서 삼 대째 내려온 아낙을 불러왔을 텐데. 그러잖아두 아씨께서 말씀이 계셨습니다."
"수다 떨지 말게. 씨받이가 아니여. 우선 자네 방에다 데려다 놓고서 저녁 전에 거처할 곳
을 주선해보게."
"한군데 있긴 있습니다. 고개 하나 넘어 연못골이라구 십여 채쯤 있는 외진 동네가 있는
데, 저희 시숙이 살구 계십니다. 초가이지만 집두 깨끗하구 쓸모가 있습니다. 마침 전장이
멀어서 창골에 나가려구 하시는데, 그 집을 사시면 맞춤이겠습니다."
경순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연못골은 아주 조용하지. 잘되었다. 소문나지 않게 하여라. 내 수고비는 톡톡히 낼 테니
까. 이사하려면 며칠쯤 걸릴까?"
"넉넉 잡고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이틀만 자네 안방에 두어두고..."
"암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가 창골에 나갔다가 저녁 뒤에 은밀히 들름세."
"뒤채가 좋겠습니다요. 제 오셔서 우리 딸년을 부르십시오."
박씨 과부는 분원 주인의 이렇게 막중하고 은말한 일을 맡게 되어 신이 났는지 연방 희죽
대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외팔이 전생이가 묘옥을 데리고 박씨 과부네 집으로 모셔갔고, 방
을 치워놓고 기다리던 과수댁 모녀는 정중히 모셨다. 묘옥은 양인의 안방에 드는 것이 황공
해서 여러번 사양하였으나, 모녀가 너무 정중하여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새로 깐
자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불안하기만 하였다. 밖에서는 과부가 신이 나서 인물평을 하는
데,
"하유 조렇게 이쁜 각시를 어디서 업어왔을꼬. 우리 원주님이 사람 대하는 건 데면데면한
게, 도타운 맛이 없지만서두 계집 후리는 재주는 또다른 모양이니 참 대장부이셔."
언청이 딸이 샘이 나서 주둥이를 내밀었다.
"흥... 미인은 박명이라는데, 복 없이 생겼더만."
"예끼 이년, 고런 방정맞은 소리 했단 봐라, 당장에 주둥아리를 꼬매놀라. 이년아, 원래가
귀부다남하는 상은 눈초리가 갸름하구 거위나 벼룩상이어야 하는데, 어깨는 둥글고 가슴이
두터우며... 가만있어 옷을 벗겨봐야 다 알겠구나."
경순은 창골로 나아가 제 집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앞의 사기전에는 그의 차인배들
이 안성으로 내보낼 짐들을 쌓아올리고 있었으며 경강에서 내려올 상인들과의 흥정이 한창
이었다. 그의 살림집은 사기전 뒤에 조촐하게 올린 기와집이었다. 계집 하인이 하나요, 늙고
젊은 하인이 각각 셋이엇다. 경순의 아내는 그가 서울서 도장 노릇을 다닐적에 번수의 소개
로 얻은 양인의 여자였느데, 성미가 온순하고 침착하긴 하였으되 고집이 세어서 그도 제 아
내를 꺾기가 힘이 들었다. 여주 내려와 처음 가마를 지을 때엔 아내가 조역이요 가마꾼이며
흙짐까지 지어 날랐다. 이경순의 아내는 그보다 다섯 살이나 위였으니 이제 폐경이 얼마 남
지 앟았건만 피가 고르지 못하여 태기가 있을 가망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마당에 섰던 하
녀 갑이가 안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마님, 원주님께서 오십니다."
안방 문이 급히 열리면서 초췌한 얼굴로 아내가 마루로 뛰어나왔다.
"아니 소리두 없이 불쑥 나갔다가, 이제 어디서 오시는 길이우.?"
"음, 그럴 일이 있었네."
경순이 마실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처럼 맨상투에 동저고리 바람인 것을 보자 아내는 더욱
기이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그 주제가 무었이어요? 아주 볼이 움푹 꺼지셨구려. 얘야 병아리에 수삼하구 찹
쌀 넣어서 푹 고아 활개를 내어라."
"내 당신께 이를 말이 있소."
경순이 아내에게 침울하게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여자답게 눈을 흘기면서 방문을 열었다.
"저두 당신꼐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제 말씀을 먼저 들으셔야 해요."
경순의 아내는 양반댁 규수처럼 법도와 예절을 가려 꼭 막힌 부도를 가진 아낙네가 아니
었고, 양인 나름의 활달한 성품에 말씨도 엇구수한 여자였다. 마주 앉자마자 경순이 말을 거
내기 전에 먼저 장죽을 끌어다가 물려주고 부시를 쳐주엇다. 경순의 아내는 말하였다.
"드릴 말씀이 꼭 두가지입니다."
경순은 안성으로부터 당진을 헤매고 돌아온 제 행동이 다소 미안하긴 하여서 고개를 숙이
고 아내의 말을 기다렷다.
"첫째는 송파나루에서 씨받이 처녀를 데려오겠단 것입니다. 그의 어미도 또한 아들을 넷
이나 낳아주었다는데, 이번에는 십팔세 먹은 딸이 씨받이로 나섰다는 거예요. 비록 처음이라
서 오백 냥을 주어야 하니 비싸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자손이 바른 집안에서 어쩔 도리가
있겠수? 택일하여 단자를 들입시다. 백면포루 경혈을 받아 그 색을 보면 아들을 밸 날짜를
안답니다. 합방한 뒤에 태기가 있으면 제가 뒷방에다 데리고 지내지요. 아들을 낳아주면 돈
을 주어 송파로 돌려보내면 됩니다. 저두 배를 싸안구 있을 테니, 남들이 알겠어요?"
경순은 묵묵부답 장죽만 빨고 앉았다.
"여보... 제 얘기 듣구 계셔요?"
"씨받이라..."
"그리구요, 유이방이 오셨었는데요, 이 골 사또를 통하여 공명첩을 사두라고요. 무관직이
라는데 선달이랍디다. 이제는 정말 아니꼬워 못 살겠어요. 우리를 드러내놓고 상놈 취급하는
이가 여주서는 없지마는, 그래두 생원네가 제게 또렷이 반말 지껄이는 것을 당신두 들으셨
지요?"
아내의 할 얘기란 전부터 가끔 경순을 졸라대던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내게 할 말이란 그건가?"
"제가 한두 번 말씀드렸나요."
경순의 아내는 이윽고 눈물이 글썽해지더니 배어나온 눈물을 옷고름으로 씻었다.
"제가 박덕하여 당신께 걱정만 끼쳐드려 미안해요. 후사가 걱정이시니 집에 들어오셔도
찬바람만 일지요? 이번 장삿길루 나가신 게 아니었으니, 아마 바람을 쏘이시러 나가셨겠지
요. 집에서 재롱 부리는 아이라두 있으면 당신이 밖으로 떠돌겠어요? 출타하구 안 계신 동
안 저두 여러 가지루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경순도 돌이켜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또한 월송골에 데려다 둔 묘옥의 일로
더욱 면목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무덤덤하게,
"내가 잘못했소."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양자를 들인다는 것두 그렇지요. 애초에 제 핏줄이 아니면, 지각이 들어 입신하게 되면
자연히 정이 되돌아간다 합디다. 양자에 효자 없답디다."
경순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내가 도장 출신으로 무과도 안한 터에, 공명첩이나 사서 선달을 딴다는 것은 이 나이에
당치 않은 일이야. 비록 벼슬은 없으나 재물이 약간 있으니 양인으로서 분수에 맞는 일이
요, 남에게 책잡힐 일을 저지른 적두 없으니 공연한 능멸은 당하지 않아요. 신분을 고치기
위해 족보를 사는 장사치들이 많건마는, 제 조상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근원 없는 자를
만드는 짓일세. 그보다두 내가 당신과의 상의없이 저지른 일이 있으니 너그럽게 양해하겠소?"
경순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중에는 알게 될 일이고, 아내가 먼저 꺼낸
말이 아닌가.
"실은 내... 안성 다녀오는 길이오. 거기 가서 여자를 데려왔지."
"여자요...?"
"음, 묘옥이라구 사당을 하던 여자인데 성품이 착하니, 당신하구두 상하를 가려서 가도를
잘 지킬 게야."
아무리 먼저 말을 꺼낸 터였으나, 겨웃ㄴ의 아내로서는 충결이 아닐수 없었다. 씨받이라는
것은 생산해주고 돈냥을 받아가려는 짓이니 아들을 보자는 뚜렷한 목적이 있음이요, 정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과 같이 아
무리 활달한 성품이라 하나 경순의 아내는 순간 가슴이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신의 마음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야. 하지만 당신은 내 조강지처가 아니요."
경순의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치마 끝만 만지작거렸다. 남편이 안성까지 행보하여 몸소
데려온 여자. 사당이라니 남자를 후리는 것을 직업으로 하던 여자일 테고, 남편은 지금 그
치마폭에 정이 푹 들어 있을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사당을..."
"사당이라 하나 진실한 마음이 있는 여자요. 당신의 부덕으로 친동기간같이 지내구려."
섭섭하고 돌림받은 듯한 괴로운 심정으로 앉았으나, 경순의 아내는 제 남편 또한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식을 낳지 못하여 마흔이 넘도록 아이의 울음소리 한번
들려오지 않는 집구석을 얼마나 고적하게 느끼겠는가 싶었다.
"어디에 데려다 놓으셨습니까?"
"월송골 박씨 과부 집에..."
"어서 가셔서 데려오셔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경순에게 웃음을 보였다.
"가구는커녕 이불도 없을 테고 옷도 변변하게 없을 테니 얼마나 심란하겠습니까. 제가 데
려다 놓고, 하인들과 장만을 해놓겠어요. 저 뒷방을 도배두 해놓고 치장두 할 테니까요."
"당신이 그렇게 마음을 쓰니, 내가 더욱 면목이 없군. 당분간은 월송골서 지내도록 하지."
경순의 아내는 속으로 더욱 야속한 마음이 들었으나, 꾹 눌러 참고서 오히려 쾌활하게 말
하였다.
"아니... 제가 데려다 놓고 투기하여 못살게 굴까봐 걱정이셔요?"
"그런 게 아니여. 실은 앞으로 귀찮은 일이 있을지두 몰라서, 그애를 남의 눈에 띄지 않도
록 하려는 게요."
"왜요... 그애의 거사가 몸값이라두 받으러 온답디까? 까짓 듬뿍 떼어 주시구려."
경순은 아내가 놀랄까 하여 당진서 화승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꺼내지 못하고,
"몸값두 없구 서방 거사두 없는 아이니까 그런 것을 걱정한 게 아니라, 그애의 모가비가
죄를 지어 사당패들 모두를 관에서 잡으려 한다오. 당신두 당분간은 입 밖에 내지 말어."
경순의 아내는 잠시 앉았더니 장롱을 열고 비단과 무명 등속의 피륙을 꺼내어 펼쳐놓았고
패물함도 꺼냈다.
"소실 치레는 원래 큰댁이 해주어야 한답디다. 아무리 소문없이 한다더라도 격식이 있는
법인데, 당신의 자식을 낳을 애를 그냥 벌거숭이루 데려올 수야 있겠어요. 내가 오늘 그애와
상면두 할 겸 의복 지를 옷감두 가져갈 겸 하여 월송골에 가봐야겠어요."
경순이 오늘은 그대로 혼자 나가보고 싶었으나 이치가 그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아따가 날이 저문 뒤에 같이 가보도록 허지."
밖에서 삼계탕이 들여졌다. 경순의 아내가 손을 담가 일일이 삼과 고기를 찢어주었다. 경순
의 아내가 방물과 경대 등속을 보겠다고 나간 뒤에 경순이 가게에서 올린 장부를 들취보며
손익을 따지고 앉았는데, 하녀가 퇴창 밖에 와서 고하였다.
"유이방 어른 오셨습니다."
기침소리와 이도장 계신가 하는 여주 이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순이 급히 마루로 뛰어
나가며,
"아이구 어서 오시게나."
하는데 비슷한 나이 또래의 유이방이 마당에 서 있었다. 원래 이방은 중인이지만 직책이
있어 장사치가 감히 말을 맞놓는 법이 아니었다. 하나 경순은 여주의 사분원을 경영하는 부
자이며 또한 사람됨이 공명정대하니 자연히 관청의 아전 소리들도 마구 대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유이방은 경순에게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언젠가 상납전에 차질이
생겨서 횡령죄로 탈직, 죽게 된 것을 경순이 대신 납부하여 구해준 일이 있고부터 친구지간
이 되었던 것이다. 장사치와 이방이 한통속임은 지방마다 흔한 일이었고, 팔이 안으로 굽는
다고 이방은 양반보다는 돈냥 있는 아랫신분 사람들게 통하게 마련이었다. 자연히 이방의
백성에 대한 횡포가 자심해지는 거도 사실이었으나, 유이방은 제법 하리의 요령을 아는 자
였다. 방안에 서로 좌정하자마자 유이방이 경순이게 물었다.
"이도장, 어디에 다녀왔나?"
"갑자기 그건 왜 묻나. 하두 답답해서 바람 좀 쐬구 왔지."
유이방은 경순의 말을 듣자 눈을 빛냈다.
"자네 당진 안갔었나?"
"당진이라? 글쎄 무슨 일루 그래. 이건 꼭 국문하듯 하는군."
유이방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사람아 나를 속일 생각은 말게. 나한테 숨김없이 말해주어야 수습이라두 해줄 게 아
닌가. 설마하니 내가 자네를 관에 고발하겠는가. 지금 각 고을마다 용모파기와 도적 잡으라
는 파발이 돌구 있네. 안성은 발칵 뒤집혔다네."
경순은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처음에 잡아뗀 바 있는지라 얼른 뒤집지는 못하고서,
"안성 적경이 있단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방은 고개를 저으면서 혀를 찼다.
"당진서 동지 댁을 돌입하여 재물을 탈취했던 도적들이 잡혔다네. 헌데... 안성 고뭣인가
하는 모가비가 그 조모인 모양일세. 그자들은 행방이 묘연하다는데, 총포를 가지구 있다는
걸세. 두 차례나 도적들이 그 댁을 돌입하였는데, 처음에 들어갔던 자가 하인 두 사람을 총
포루 쏘아 죽이고 잡혀 있던 사당을 빼내어 달아났다구 하데."
"허허, 안성 사당패를 잡아 족치면 되겠구먼. 내가 안성에 들른 적은 있지만, 그런 소문
은 처음 들었는걸."
"내가 방금 당진과 안성 관아에서 돌린 기별을 접수하구, 짚이는 바 있어서 오는 길일세."
경순은 짐짓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밖을 향하여 외쳤다.
"얘들아, 술상 들여오너라. 술은 이방 어른 좋아하시는 송엽주로 하여라."
"딴전 부리지 말게. 나중에 안성에서 온 기별에 의하면 양성 객줏집을 거쳐온 남녀가 음
죽을 거쳐서 우리 고을로 들어왔다구 하데. 안성서 세마를 뛰는 마부 하나가 발고를 하였다
네. 청룡사 사당골을 뒤져서 남아 있던 거사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중에, 그런 발고가 있었
다지. 총포를 가지고 있었고, 용모파기가 자네와 비숫하네. 그래두 나를 속일 터인가?"
경순이 묵묵부답인 중에 조촐한 술상이 들어왔고, 그는 상을 끌어 이방의 앞에 놓으면서
중얼거렸다.
"천천히 술이나 마시면서 내 얘기를 함세."
"내가 빨리 알았으니 망정이지... 일가 구몰될 뻔 하였네."
경순은 술을 따라 권하면서 안주를 집적거리고 잇다가 작심하고 말을 꺼냈다.
"실은 내가 안성 나갔다가 사당패와 동행하여 당진까지 갔었네."
하고 나서 경순은 일의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묘옥을 구해내려고 담을 넘어 들어갔다가
부득이 하인 하나를 쏘아 상하게 하고, 다시 쫓아오는 자들 중에 하나를 쏘아 죽였다는 것,
그리고 항곶포까지 배를 타고 와서 양성 물상 객주에 들렀던 것, 마부와 시비를 하였을때,
화승총으로 협박했던 일들을 얘기하였다.
"이 사람아,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남의 재물이나 탐내는 도적질을 하겠
는가. 다만, 아들 하나 보았으면 원이 없어 보아 두었던 사당 아이를 데려오려던 걸세."
이방은 심히 못마땅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앉았다.
"하여튼 당분간 귀찮게 될 걸세. 자네 분원에서 화승총을 만들 수가 있음은 대개의 장사
치들이 아는 일이고, 자네 총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두 잘 알려져 있지. 더구나 도적의
일당으로 보이는 자가 여주로 들어왔다니, 잘못하다간 꼼짝없이 잡히구 마네."
"당분간 한양 올라가서 피했다가 잠잠해지면 돌아올까?"
"아니야, 아직 그 정도루 급박한 것은 아닐세. 고무엇인가 하는 모가비와 그 패거리들을
잡으려고 인근 고을이 법석댈 걸세. 그자들이 강도 살인을 했다니까. 사당패가 피할 만한 곳
을 알면 가르쳐 주게. 그자들만 잡히구 나면 자네 건은 곧 지워지구 말겠지."
"내가 어찌 아나. 나는 그저 좋아하는 아이를 빼내어 달아난 일뿐인데."
"그애가 지금 여기 있나?"
"아니... 월송골에 데려다 두었네."
"절대루 읍내 데려내올 생각 말구, 몇 달 동안 말 나지 않도록 숨겨두게. 내가 알아서 조
처할 터이니..."
"참... 내가 후환을 염려하여 마부에게는 경강을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는 양을 하였네."
"잘했어. 나중에 누가 묻더라두 출타했던 시늉은 하지 말구 중병이 들었다구 소문을 내놓
구 집에서 꼼짝두 말게."
"오늠밤에 마누라하고 월송골 나가보기루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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