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4 1998. 10. 1 (목)
태풍.
퍼붓듯 비 쏟아지다.
축제라는 대학 캠퍼스는 오히려 더 적요하고.
극심한 변비로 째지는 뒤꽁무니의 아픔.
그러나 그 혼곤한 자기방기의 도피의식에 젖지 않아야겠다는 의식의 각성은 나로서는 얼마나 위대한가.
명절, 닷새후로 닥아왔다.
그러나 원념의 상처는 내처 그대로인데
스스로의 치유 능력은 갖고있지 아니하니.
18865 1998. 10. 2 (금)
폭풍후 찬란한 태양.
태풍이 쓸고간 세상은 드맑고 찬란하다.
흰구름은 더욱 커트라스트 강하여 눈부시다.
국군의 날.
그 행사를TV로 보면서 아들놈 생각.
LW규 와 통화, 딸네미 10월 25일날 시집 보낸다는.
내 딸녀석 생각치 않을을수가 없는 소식이다.
둘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제 명절이고.
피흘림은 여전한데.
새벽
기도
18866 1998. 10. 3 (토)
추석밑.
어쩐 일인지 학교는 휴무가 아닌데도 학생들도 뜨아하고 C교수 L교수도 뵈지 않는다.
그래 그런지 거리도 쓸쓸.
'IMPRESS' 과월호 사가지고 돌아온다.
18867 1998. 10. 4 (일)
이윽고 날 저물어.
어슬렁 서면으로 나간다.
N영 H근 S곤 만난다.
만나면 늘 술, 술과 함께 흐드러지는 언어들은 그리고 무엇일까.
함빡 취한다.
취함 속에 있는 알맹이는...
아, H근아.
나는 알겠구나.
그것을.
세상은 그리하여 나를 살해하려고 저토록 안달이었구나.
18868 1998. 10. 5 (월)
한가위.
끝모를 쓸쓸함.
어머니 가고.
그리하여 종장에 다다르는 곳.
그 어디멘가.
18869 1998. 10. 6 (화)
한가위.
형네 집.
가야숙모와 동은이 부부, 부쩍 자란 헌이.
말없는 나.
묵묵히 비우는 술잔.
꽉 막힌 도로.
국도로 빠져나와 신불산 까지 서너시간이나 소요.
어머니 무덤.
묘원에는 축제처럼 명절의 사람들로 들끓는다.
죽은자와의 만남, 한가위.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다시 길을 도파 사직동.
또한 명절이면 모이는 피붙이들.
학처럼 하얗게 늙으신 장인.
택기 부쩍 큰 모습으로 휴가.
하루.
한가위.
둥글고 둥근 달이 둥실 중천에 떴다.
죽은 어머니 의 젖가슴, 나 만져 보는가....
무덤의 붕긋함은 젖의 수사인가.
그러나 그것은 젖가슴. 그 부드러움의 촉감은 될수 없지 아니한가.
18870 1998. 10. 7 (수)
J는 성민네 부부와 금정 산행.
英이는 종일 집에 있다.
생각 생각.
무엇 천착하여 이룰 것에 관한 생각 생각.
18871 1998. 10. 8 (목)
늪 속으로 서서히 침몰.
허우적대보아야 늪에 잠겨서는 부력이 생길리 없다.
뻗대고 있어봤자 진흙 수렁이 딱딱하데 굳어져서 굳건한 발판이 될리 또한 없다.
그저 가라앉을 뿐. 서서히.
사념은 우울의 늪으로 가라 앉으며 곱씹는 것은 쓴 쓸개조각.
감정모체는 한줌 맑은 것 찾지 못한채 시궁창의 쥐새끼처럼 도망갈 곳만 찾는다.
누구보다도 범속하고 누구보다도 천박한 품성을 소유하고 있는 스스로를 더 이상 벗어날수가 없다.
뉘를 원망하랴.
뉘에게서 위로의 적선을 바라랴.
경제가 죽는다.
죽는 것은 경제만이 나니다.
사람이 죽는다.
"변변치 못한 놈팽이들 삶에 지쳐 먼저 떠날 때 하는 말이 나중에 기꺼이 만나세"
도오까이의 협객이라는 지로쪼오의 노래.
이 도박꾼 깡패의 마지막 술회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나의 백조의 노래는?
새벽.
다시 날이 밝는다.
또 하루 회색의 늪.
18872 1998. 10. 9 (금)
며칠만에 오르는 동의대 양정 언덕길.
썰렁한 교정.
도피하듯 그곳으로 나가고는 있으되 어떤 의욕이나 불꽃은 있지 아니하다.
눈가리고 아웅하기.
가르치는 측이나 배우는 측이나 서로 눈가리고 아웅하기.
노동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나 훈련수당을 받는 수강생들.
어쩌면 이것은 정부 예산의 낭비이다.
맴도는 생각 하나.
새꼽잖은 나의 이야기를, 가슴 속 응어리를 컴퓨터에다 글로 쏟아내자는.
누군가 읽도록 하자는.
나의 우물을 누군가 들여다 보게 하자는.
그윽한 이해와 사랑의 눈길을 하번이라도 느껴 보자는.
재처럼 식은 열정의 삯은...
18873 1998. 10. 10 (토)
무의식의 바다.
일몰의 시각에 바다로 곧게 뻗은 방파제의 둑.
점점 밀물이 밀려와 찰랑대며 둑위를 넘치는데 저만치 뭍을 향하여 뛰어 도망가는 사나이.
그 이름은 카지모도, 꼽추 카지모도.
똥무더기.
변소의 구멍속으로 기어들어가 똥무더기의 바다를 헤엄치는 사나이.
그 이름은 카지모도, 그는 꼽추.
끝모를 깊이의 바다.
그 해면에는 선수 주둥이만 삐죽 솟아있고 배는 가라 앉는다.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나이
그 이름은 꼽추, 카지모도.
서울의 옛 동네, 그림자를 길게 끌고 걷는 사나이.
그 이름은 카지모도 그는 꼽추이다.
보생의원의 일실에서 마스터베이션에 탐닉하는.
그 이름은 카지모도, 추악한 꼽추.
남항동 어딘가의 원목더미에서 굉장한 능력이나 있는척 폼을 잡는 사나이.
그 이름은 카지모도.
놀지는 들녘, 순한 짐승의 콧김을 쏘이는 사나이.
그 이름은 카지모도, 꼽추 카지모.
카지모도. 그를 닮은 사람.
아, 그를 닮은 사람...
18875 1998. 10. 12 (월)
英이 교회를 다녀오고 나서 줄곧 집에 박혀있다.
J의 귀뜸.
A군과 결별하였다는.
결혼이 급한 그 녀석과.
그러나 아비와는 달리 英이는 너그럽고 대범하여 그 어떤 내색도 얼굴에 띄지 않는다.
英아, 英아.
좋은 것은 항상 내일에 있단다.
너는 청춘이다.
내 딸아.
18876 1998. 10. 13 (화)
주룩주룩, 제법 비같은 비가 종일 내린다.
이미 비에 젖은 감상은 소주에 서서히 젖고 있으므로, SJ엽이가 한잔 하러 나오라는데도 오불관언이다.
새벽.
여전히 비내리는 소리.
어둠 속에.
18879 1998. 10. 16 (금)
학교도 가지 않은채 종일 빈둥빈둥.
부쩍 산행에 취미를 붙인 J.
J로서도 기실 취미가 아니라 답답한 속달래기일것.
英이는 요즘 학원 근무시간 외에는 제 방에서 보내는데, 그 꼴이 아비는 안쓰럽다.
나의 정신은 어디 갔는가.
슈바이처의 정신은 어디 숨었는가.
무위의 나날...
18880 1998. 10. 17 (토)
꼭 2년전 오늘 俊이는 입대, 그 29년전 나는 39사단 황량한 정문을 걸어들어갔다.
俊이 새까만 쫄병이었던 작년 3월 나는 직장을 잃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토록 피폐하여 창백한 겁쟁이는 아니었는데..
11월초 그림가게 '가희'를 시작.
그리고 올 5월 어머니 죽었다.
그리하여 어머니 묻힐 때 나의 무엇이 함께 묻혔던가.
"손님, 이 배는 몰락자만을 태웁니다.
자, 북양으로 가자.
북양으로 가자."
N영 서라벌대학때의 習作詩의 일절.
이 새벽,
주님, 정신을 도우소서.
18882 1998. 10. 19 (월)
W이 아버지 술마시러 오라는 전화.
그러나 J를 통하여 극구 사양.
새벽 목욕하고 밥 먹은후 내리 너덧시간을 포토샵에 집중.
홀로 프로그램과 씨름하는 것이 학교에서 어줍잖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요즘 내게는 낫다.
J도 종일 집, 이제 휴일이 한가한 英이는 교회만 다녀와 비디오 영화에 눈을 팔고.
나는 俊이 방 책상앞 앉아 소주를 마신다.
10년 넘어 쓴 기록들을 뒤적인다.
10년전 그 때에는 나 순정하였던가.
순정하지는 않았을망정 적어도 한줌 열정과 한조각 사랑은 있었지 않았을까.
피붙이를 향한 애틋함은 사랑이었고 열정이었다.
그때 내게는 체홉의 어머니도 있었고.
이 10년 동안 나는 한발짝 한뼘 나아가거나 올라선 것이 있느냐, 있느냐.
아니 아니다.
열걸음 후퇴하여 이렇게 술을 마신다.
새벽 3시.
내게는 신이, 그래 신이 계신다.
주님, 나를 단순함으로 도우소서.
18883 1998. 10. 20 (화)
기온 급격 하강.
선뜻한 한기.
학교에는 벌써 쉐타를 꺼내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띈다.
18884 1998. 10. 21 (수)
'기독교 문답'
새롭게 그 오의를 , 하나님을 느끼고자.
우찌무라 간죠의 그 성실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데.
아, 주님.
당초 나를 사로 잡았던 그 신비한 빛.
한번만 더 그 빛으로 인도하소서.
새벽이다.
18885 1998. 10. 22 (목)
英이의 친한 친구 원주.
교통사고.
대학병원 입원.
식물인간 상태...
꽤 됬던 모양인데 英이, 그 소식을 듣고는 엉엉 통곡을 하며 병원으로 달려간다.
국산 영화 '넘버 쓰리'
질펀한 대사와 에피소드는 그럴듯하지만 그 풍자는 산만하다.
18887 1998. 10. 24 (토)
투명한 가을인데.
나는 미망에 헤매이는가.
무슨 노여움 풀지 못하고 이리 서성이는가.
남은 목숨.
사랑있음을.
사랑있음 증명될때까지 나는 죽지 못하리.
"만남과 헤어짐은 인생을 이어주는 고리, 인생의 사슬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역시 하나의 만남, 피할 수가 없는 만남이었다. 세상과 사람을 믿지 못해서 미움으로만 살았던 아버지의 낭비된 삶도 역시 흐르는 시간의 한토막이었다. 제대로 흐르지 못하던 흐름이었어도 그것은 흐르는 시간이었다. 가는 듯 가지 않고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인간의 삶" -안정효-
사랑있음이 사무칠때까지 나는 죽지 못하리.
18888 1998. 10. 25 (일)
LW규 딸네미 결혼식, 면면들 만나 어쩌구하는 것이 싫어 참석치 않고 부조봉투만 SJ엽 편에 보낸다.
나는 요즘 사람을 만나기 싫은 것이다.
홀로 태종대를 걷다.
적요한 숲.
가을 숲 그 나뭇잎 사이로 방사되는 아침 햇살.
그 태양의 분광을 받은 잎새들이 반짝인다.
까치는 상서로운 흑백의 연미복을 떨처 입었다.
오늘 英이 경주로 학원선생들과 소풍.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마는 어미.
18890 1998. 10. 27 (화)
그래픽과정, 교육생 점점 떨어져 나가 이제 고작 10여명 남짓.
KS동 씨.
그가 제발 전세 보증금을 내어 주었으면.
그동안 빈점포의 월세를 공제하는 선으로 배려를 하여 주었으면.
18891 1998. 10. 28 (수)
태종대.
전망대를 신축하였는데, 전보다 답답한 구조물이 한켠을 막아 버린다.
나오면서 하리 SJ엽 의 집에 들러 얘기를 나눈다.
곧 11월.
깊어가는 가을에 걸맞지 않게 한낮 양광은 이리도 따스한데 벌써 십일월...
18893 1998. 10. 30 (금)
CD희 교수, 느닷없이 PRESENTATION 작품 제출을 다그친다.
TV 부산시 국정감사 중계방송.
증인으로 나와 앉은 인사들, 시치미 뚝 딴 모습으로 인형처럼 도리질 할뿐이고 국회의원들은 자기과시의 쑈를 하고 있다.
문답에 등장하는 돈의 단위는 몇백억, 그 엄청난 단위는 내게는 아득하고 아득한데...
18894 1998. 10. 31 (토)
CD희 교수는 요즘 제법 진지하다.
종일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PRESENTATION 디자인 제작에 열중.
C교수가 스크린으로 잠시 시연해 준 3D STUDIO.
맛뵈기로 본 그 매력.
호기심.
팀 버튼 '화성침공'
여늬 진지한 SF 영화와는 사뭇 다른 감각의 영화.
빈정댐, 가벼움 넘치는 상상력..
오늘로써 가희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아, KS동 씨에게서 받아낼 돈, 그 생각을 하면 머릿속이 지끈지끈 아파온다.
어쨌건 오늘 1년째, 어디 가 음식을 대접하며 호소하려 한다.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