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8. 12

카지모도 2016. 6. 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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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5  1998. 12. 1 (화)


학교 마치고 H근 의 병실.

숟가락을 씻어 밥을 떠먹여 주다.

질질 흘리는 침.

그러나 녀석은 직수굿한 환자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다.


18926  1998. 12. 2 (수)


학교가기전 이른 시간 H근 의 병실.

말도 좀 알아듣겠고 상태가 제법 호전된듯하여 반갑다.


S규 가 알려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국비 무료교육,

부동산 컨설팅과정, 내년 4월 25일 치르는 공인중개사 대비 과정이라는데.

독학의 어려움을 경험한 내게는 눈이 번쩍 띄는 과정이다.


동의공대 수강 동료 박희상씨 차를 타고 찾아가는 새로 잘 지어놓은 노동청.

상담 결과,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교육을 받고 있으니 수료후 3개월 이내에 또다른 교육은 불가하다는.

아무리 사정해 보아도...

어쩔수 없지.

5년전 교재를 가지고 혼자 할수 밖에.

케이블 TV에서 강좌가 있다지만 그것을 수신하지 않는 내게는 또한 그림의 떡.


俊이 오다.

"파더!"

하고 아비와 악수를 나눈다.

왕고참의 여유 가득.


18927  1998. 12. 3 (목)


H근이 제법 좋아진 듯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병실에서 S곤이도 만나 함께 잠시 있는다.

S곤의 평인즉.

H근이는 기가 위로 올라오는 체질.

맞지싶다.

늘 얼굴이 벌겋고, 고집스런 성격.


S곤이는 금요일쯤 S규와 함께 우리집으로 俊이 보러 오겠다고.

집에서 뒹구는 말년 병장 녀석.


18928  1998. 12. 4 (금)


아침, 전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J의 고당봉 사진 뽑다.


그리고 문건을 만든다.

경위서를 작성하고 청구취지를 밝힌다.

일부러 딱딱한 소장의 형식을 피하여 평이한 문장으로 머리를 짠다.

민사조정신청서의 칸을 메꾸고.

현재 영업하고 있는 점포의 사진을 붙이고 도장을 찍어 2부를 만든다.


싸늘한 날씨.

법원.

인지를 사 붙이고 송달료 납부하고 본관 지하에 있는 민사합의부에 접수.

다음주 쯤 통보갈 것이라고.

경비도 적게 들고 생각보다 빠른 절차이다.


아, 알아야 면장을 하는 것이다.


민사법정 들어가 한시간여 방청.

장난같이 진행되는 재판절차.

그러나 그 판결은 한 인간의 살이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혼, 위자료, 파양, 친권등 방청한 한시간 남짓 수십건 판결이 나고 심리가 이루어진다.

이 사회살이라는 것은 온톤 법적살이에 다름 아닌가 보다.


18929  1998. 12. 5 (토)


S곤이 소고기를 한보따리 사들고 S규와 함께 오다.

俊이 방에 둘러앉아서 고기구워, 먹고 마신다.

이어지는 대화들.

사진, 그림, 영화, 문학을 넘나들다가 드디어는 H근의 뇌졸중을, 나중에는 정신분석에까지 이른다.

S곤 에게 빌려준 책.

'아하 프로이드' '조직신학'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취하다.


18930  1998. 12. 6 (일)


J는 요즘 친구가 운영하는 어디 업체에 다니는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수준.

아예 묻지 아니하는 아픈 남편짜리.


18931  1998. 12. 7 (월)


정대성 목사님의 새신자 교육반 교육.

오늘은 교회론.


본당의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 중에 문득 눈에 띄는 KH호 부인과 그 딸 미규.


J는 일요일 오후 예배도 빠지지 열성 신자다.


18932  1998. 12. 8 (화)


H근 병실.

의사는 만류하는데 퇴원하겠다는 고집이다.

녀석의 말대로 확연하게 호전도 되지 않는 상태로 병상에 죽치고 있는것보다 제 집에 요양하는 것이 어쩌면 낳을지도 모르겠다.

입원비도 만만치 않고.

H근 부부.

그 캐리커쳐도 행복한 그림은 결코 아니다.

병실에서 서로 극심하게 다투는 가시버시.

힘든 역정을 함께 헤쳐 나온 부부인데.

아서라 아서라.

늙마에 깨닫게 되리라.

인생에 별거 있으랴, 등 긁어주는 마누라 손이 가장 따뜻하다더라.

옛말 그른 것 없다.


법원 민사조정신청 건.

소환장 날아오다.

12월 30일 오후 3시.

이것을 받았을 KS동 은 어떤 마음일까.


18933  1998. 12. 9 (수)


H근 에게 들렀다 학교로.

종강에 들어가는 과정.

정부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 디자인 지원 사업, 서너시간 일하고 일당은 3만원.

그러나 40넘은 늙다리는 해당 무.


俊이 내일 귀대.

그리고 한 보름후 푸른 제복을 벗는다.


18935  1998. 12. 11 (금)


손끝이 얼어붙는 추위, 부산서는 흔치 않은 추위다.

俊 떠나다.


俊이 몇 년의 군대생활에 여기저기 꾼 돈이 없을리 없다.

쪼들리는 어미는 11만원을 쥐어준다.

나도 고래심줄같은 돈 5만원을 쥐어주고.

열흘 남짓, 떨어지는 낙엽에도 몸조심한다는 말년병장.

무사하게 열흘을 보내고 돌아오너라.


18937  1998. 12. 13 (일)


스웨덴 영화 '아름다운 청춘'

유부녀인 여교사와 사춘기 제자와의 관능적인 사랑.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사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그 에로티시즘은 대단한 엑스터시를 제공한다.

노골적인 성애영화보다 몇배나 더 성애적이다.

그러면서도 화면은 시종 품위를 잃지 않는다.


호정횟집.

S곤과 S규.

끝도없는 담론.

소주를 마신다.

다음날 산에 가기로 하였다는 S곤 N영 S규.

나는 교회 출석을 이유로 한사코 사양하여 친구들에게 핀찬을 받는다.


상곤의 후배 KY권 이 운영하는 동광동 가죽옷 가게.

그곳에서 부산의 사진쟁이들 얘기들이 이어진다. PM기 서껀...

어제 조선일보에 큼직하게 난 기사, '부산은 사진이다'라는 전시회.

그들중 상당수가 S곤의 직계 후배들이다.

바바리아 호프- 열두시가 넘도록 생맥주를 마시며 짐짓 예술이라는 돈안되는 얘기들에 취하다.

S곤이 과용하였다.


18939  1998. 12. 15 (화)


동의공대.

종장에 접어드니까 난리다.

교육비를 대는 노동청에서는 감사랍시고 실습실까지 나와서 설치고, C교수 L교수는 막바지 실적 만들기에 정신없다.


수요일 저녁 수료 회식하기로 한다.


18941  1998. 12. 17 (목)


학교 마치고 백조아파트 S곤의 집에서 낮시간을 개기다.

저녁 6시 모임때까지 시간을 죽이려고.


S곤의 두아들 J석과 J호.

의젓한 녀석들.

아들이란 아비에게 있어서 듬직한 바위.

양 쪽에 앉히고 컴퓨터를 가르쳐 준다.


숯불갈비집.

제법 술꾼들인 CD희 교수와 LJ덕 교수.

한 열명 남짓 둘러앉아 고기와 소주.

2차는 단란주점.

잘들 부르고 잘들 춤추고 잘들 논다. 흐드러지게.

두명의 교수는 날보고 형님 형님하며 앞으로 깎듯이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과장된 우의를 과시한다.

CD희 교수가 들려준 얘기.

교육 초반 때, 오십줄의 실업자 하나가 이른 시간 등교하여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을 제 연구실에서 훔처 보았는데, 그 쓸쓸한 실업자가 바로 나였다.

내 모습에서 IMF 속에 서있는 한 가장의 의미를 읽었다는.


그들의 놀이판, 나는 12시가 되자 거둔 술값에다 얼마를 더 얹어 총무인 KY희 에게 주고 먼저 빠져 나온다.


18942  1998. 12. 18 (금)


법원으로부터 등기 우편.

나의 신청에 대한 KS동 의 답변서이다.

내가 제시한 사항들을 죄다 부인하고, 기가 찰 노릇은 자기가 내게 폭행당하였다고 치료확인증이라는 것까지 첨부하였다.

아, 그 교활한 사람의 얼굴만 생각하여도 지끈지끈 머리가 아픈데.

나는 하릴없이 그에 대한 반박을 구상한다.


俊이 제대하였다는 전화.

12월 15일부.

어김없는 26개월.

하루의 편차도 허용치 않는 군대의 엄격함을 느낀다.

아들 놈은 무사히 명예제대를 한 것이다.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새벽 4시 30분.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俊이다.

예비역 육군병장 俊.

2년 2개월의 야전의 풍진을 털고 집 현관을 들어선 것이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18943  1998. 12. 19 (토)


俊이 제대.

하나의 비젼이 창출된 것이며 동시에 다른 하나의 과제가 부과된 것이다.

2년2개월이라는 세월의 두께는 결코 만만한게 아니다.

내면의 무엇인가를 俊이는 획득하고 있을 것이다.


동의공대 컴퓨터 그래픽스 6개월 과정 수료식.

수료증 받아들고 악수들을 나누며 헤어져 양정 언덕길을 내려온다.

무언가 허전함이 없을수 없다.


세모의 서면거리는 여전히 바글거리고.

취업정보센터 들러 부동산공법책을 한권 산다.

공법은 너무나 많이 바뀌어서 새 교재가 필요하다.


18944  1998. 12. 20 (일)


커다란 덩치 하나 버티니 집안이 꽉 차는 느낌이다.

스산한 공간에다 난로 하나 들여 놓은 듯 따스하기도.

제 책상 앞 앉아서 컴퓨터 교재를 펴들고 공부하기도 하고, 문짝의 고장난 장석들을 깨끗이 고쳐 놓기도 하는 아들 놈.

다음주에는 동회에 가 전역신고, 주민등록신고, 의료보험신청등 행정 문제를 처리하고 큰집 외갓집서껀 돌며 제대인사 드리겠다고.


18945  1998. 12. 21 (월)


동삼교회.

정식으로 새신자 올랐다.

J와 나란히 서서 새신자 교육의 수료증을 받고 성경과 꽃다발을 받는다.

그리고 목사님의 축복의 기도를 듣는다.

쑥스럽고 어색하여 죽을 맛인 것은 내 믿음이 부박한 탓.


변하고 변하여.

가난한 가시버시의 영혼에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의 빛이 비추이기를.

그리하여 목숨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되기를.


한밤중.

장사 俊이는 그 무거은 피아노와 책장들을 어영차 어영차 이리저리 옮겨서 제 방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8946  1998. 12. 22 (화)


도서관 문을 열지 않는 월요일이라 공인중개사 공부는 그 핑계로 시작을 하지 않는다.


김순동- 신발가게를 철수시켰다는 J의 전갈.

내려가 보니 장사를 하지 않는다.

KS동의 술수이다.


18947  1998. 12. 23 (수)


법원에 제출할 김순동의 반박에 대한 이의서를 작성.

나름대로 조목조목 반박논리를 세웠으나 판사는 어차피 추정하여 판단할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법적인 해석은 이러한 나의 논리를 간과하지 않을거라는 믿음.


영도도서관.

이제부터 공부시작이다.

이른 아침부터 열람실의 좌석은 하나하나 메꾸어지고 11시경 되자 빈 좌석은 없다.

오전을 집중하여 민법을 뒤적인다.


법원에 등기 발송.

정오지나 돌아와 俊이와 태종대를 걷는다.

부자의 산책과 빈터에서의 소주.


18948  1998. 12. 24 (목)


계속 포근한 날씨.

영도도서관.

기억력의 문제, 이해한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

이해하는 것이 백번 중요하다.


자료실 들어가 서가 사이를 걷는다.

책의 냄새들이 먼지가 되어 콧가를 떠돈다.

내가 좀더 젊었더라면, 이 많은 지식들을 조금씩이라도 섭취하겠건만.

덧없다. 이제 와서.

俊이도 지금 아비가 느끼는걸 느껴 보았으면.

젊어 공부하라....


18948  1998. 12. 25 (금)


도서관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일락의 하루.

그예 소주를 마시고.


18950  1998. 12. 26 (토)


성탄절 예배.


고등학교 동창들.

부부동반으로 모인다.

J는 한사코 가지 않으려 하여 나 혼자만 참석.

송정의 횟집.

KG탁 부부, KI용 부부, SM성 부부, OY재 부부.

나만 싱글이다.

모여 앉았으니 고등학교때의 얘기꺼리가 좀 많은가.

과장된 우정은 과장되어 즐겁다.

옛이야기 또한 과장되어 즐겁다.

단란주점 들러 놀다가, 그곳에서 내어준 봉고타고 돌아오려는데 무성이 내 주머니에 무엇을 찔러 넣어준다.

꺼내보니 한웅큼의 돈이다.

하, 이럴때 돌려 주려하는 것이 오히려 구차하다.


18952  1998. 12. 28 (월)


S곤 S규와 성지곡 산을 오르다.

백양산 정상.

가파른 하산길, 이번에는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어린이 대공원 근처의 중국집.

탕수육과 소주.

지하철타고 구서동 태평양아파트 H근의 집.

한결 나아진 H근이.

비칠거리면서도 친구들 왔다고 파전을 굽는 녀석.

N영 이도 와서 모처럼 다섯친구 둘러앉는다.


18953  1998. 12. 29 (화)


저녁, 英이 俊이와 함께 형네.


새벽.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 뒷부분을 읽는다.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로라, 로라의 촛불을 꺼요. 그럼 안녕."


18955  1998. 12. 31 (목)


오후, 법원의 정문 앞.

S곤이 힘이 될 것 같아서 만나기로 하여 서 있는데, 징그런 사나이 KS동, 법원으로 들어선다.


민사조정의 재판관은 법원장이다.

아마 재판의 배당이 없는 법원장이라 그런 모양이다.

곱게 늙은 온화한 노신사.

법원장실의 소파 정면에 재판장이 앉고 나는 KS동 과 마주앉는다.

내 옆에는 서기가 앉았다.


합의를 유도하여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게하는 것이 민사 조정인 모양이다.

경위를 설명하고 쌍방의 주장을 들은 판사

판사는 한사코 계약대로 해야한다고 고집하고, 그 점포에서 다른 수익을 얻은 게 아니고 아는 불쌍한 사람에게 공짜로 빌려준 것이라는 KS동 에게서 역겨움을 느낀모양.

갑자기 KS동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피신청인은 법정에 올때에는 이빨을 좀 닦고 오시요!"


결정.

내년 4월말까지 피신청인 KS동은 신청인 이상헌에게 전세금을 반환 지급하고 그때까지 이행치 않을때에는 년 2할5푼의 이자를 계산하여 지급한다. 꽝. 꽝. 꽝.

통렬한 한마디 말씀으로 속이 후련하다.


법원장실을 나와 S곤과 계단을 내려오던중 KS동 의 독살스러운 표정과 마주친다.

"대법원까지 갈테니까!"

증오에 찬 한마디를 내게 퍼붓는 그.


4개월 후면 돈을 돌려 받을수 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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