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이방인>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3.10.15 05:47
알베르 카뮈 (英 Albert Camus, 佛 albɛʁ kamy, 1913~1960)의 ‘이방인’
이 소설만큼 식자(識者)들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작품도 드물지 싶다.
20대초반 즈음 읽었던 이 소설.
다시 읽는 나는. 그 옛날 나의 그것에 대하여 전혀 이방인의 낯설음이었다. (어제 책부족 추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 내가 읽었던 것은 순전히 지적허영에 들뜬 맹탕이었구나.
실존주의니 부조리니 반항이니 운운... 어디선가 주워들은 어휘들을 내 것인양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뫼르소’ 어쩌구 똥폼을 잡기 위한 독서였음이 분명하렷다.
그러나 늙어 읽으니 다르게 읽히누나. (알베르 카뮈의 오의(奧義)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산다는 것, 새삼 그에 대한 인식이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로구나.
예사 용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實存)이라는 것...
아, 심장이 서늘해 진다.
내 어린 아기들은 모쪼록 철학하는 인간으로 살지 말거라.
몽매(蒙昧)의 인생이 차라리 찬란하노니.
벗님들.
이 유명짜한 소설 아직 안 읽으셨다면 함께 읽어요.
재미도 없지 아니할뿐 더러 매우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니까 부담없이.
카뮈의 ‘이방인’
두 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3.10.15 05:54
다음은 알베르 카뮈의 연혁(沿革)입니다. (방곤 -경희대교수-)
++++
태양이 작열하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프랑스령 알제리의 몽도비라는 작은 도시의 빈민굴에서 태어난, 후일의 노벨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
그의 아버지는 본래 알사스 출신의 광산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스페인 계통 출신이었다. 친형이 하나 있었고, 외할머니와 다리가 불구인 통 만드는 직공인 외삼촌과 함께 살았다. 1913년 11월 7일에 출생한 그가 젖도 채 떨어지기 전인 제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아버지는 마른 전투에서 전사한다.
유년 시절부터 카뮈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극심한 가난이었다. 그는 '반항적 인간'(194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마르크스에게서 자유를 배우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
세계대전의 북과 나팔소리, 그리고 빈곤의 비참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소년 카뮈는 오메라가에 있는 국민학교를 마칠 무렵 그 학교 교사인 루이 제르망을 만나게 된다. 루이 제르망은 이 병적으로 보이는 허약한 소년 카뮈에게 흥미를 갖고, 과외공부를 시켜 중학교 진학을 위한 장학생 시험을 보게 한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카뮈의 삶의 길이 정해지게 된다.
13세에 그는 앙드레 지드의 '위조지폐꾼'을, 14세에 앙리 드 몽테를랑의 '레 베스티에르'와 앙드레 말로의 '동양의 유혹'을 탐독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그는 평생의 스승이며 이해자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된다.
훗날 사춘기의 카뮈에 관해 그르니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알제 고등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던 1930년에 졸업반(인문계) 학생이었던 그는 신학기에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끼여 있었다.' 천성이 버릇없이 자란 것 같고 어딘지 다루기 어려운 학생 같아, 맨 앞줄에 앉혀놓고 특별히 까다롭게 굴었던 모양이다. 얼마 안가서 그는 장기 결석을 한다. 걱정이 된 그르니에 교수는 카뮈가 사는 변두리 빈민굴의 그의 집을 찾아간다. 건강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방안에 앉아 있던 카뮈는 가까스로 나에게 인사를 했고, 그의 건강에 대해서 묻는 내 질문에 짤막하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말과 말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동행한 학생과 나는 그 집에서 나왔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하니 마치 내가 사형수에게 그의 상소가 기각되었다고 선고하는 일을 맡은 검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17세의 카뮈는 폐결핵을 앓았다. 불결하고 가난한 자기 집에서는 도저히 요양하기 어렵다고 느낀 그는 회의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고 백정인 다른 삼촌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것은 끝내 그가 독립 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알제 대학 레이싱 축구 팀에서 선수로 활동하면서 고등학교 수업에는 전념하지 않았다.
1931년에 앙드레 드리쇼의 '고뇌'를 읽고, 그는 문필로 입신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고 난 후 그르니에를 평생의 스승으로 섬기게 된다. '섬'에서 그르니에는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시적인 세계와 심각한 회의에 입각한 인간존재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알제 대학 철학과를 중퇴한 카뮈는 193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회교도를 대상으로 한 선전공작을 하지만, 1935년에 피에르 라발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탈당한다.
처녀작인 수필 '안과 밖'을 쓰기 시작했고 '노동극단'이라는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하여 극운동에 열중하면서도 그 이듬해에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통해 본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관계를 쓴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이라는 졸업논문으로 학사학위를 딴다. 그러나 재발한 폐결핵 때문에 그는 교수자격 획득을 위한 시험을 포기한다.
그동안에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단편집 '벽' 등이 계속 발표되는데 이미 그때부터 카뮈는 사르트르에게 반발을 느낀다.
1938년에 그는 희곡 '칼리귤라'를 썼고, 1939년에는 앙드레 말로와 만나게 된다. 1933년에 결혼했으나 1년 후에 파경을 맞은 그는 1940년에 재혼하여 두 아들을 두지만, 같은 해 프랑스 총독부의 북아프리카 정책에 불만을 품고 군부와 불편한 관계가 되어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그는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태가 그로 하여금 아프리카를 떠나는 결심을 하게 한다. 당시 '알제 레퓌블리캥'지의 주간이었던 파스칼 피아의 소개로 '파리 스와르'지에 입사하게 되어, 그의 표현대로 '그 어둡고 습기에 찬 유럽으로...' 오게 된다. 이처럼 질병이라든지 박해와 같은 장애가 그에게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 그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실력의 객관적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의대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서는 크게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강한 입장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부딪치는 현실을 해치우는 성격도 아니었다.
-아래 계속-
***동우***
2013.10.15 06:00
-위에서 받음-
1940년 5월에 '이방인'을 탈고했는데 바로 5월 10일에는 독일군이 침입하여 파리가 점령되자 '파리 스와르'지의 간부들과 클레르몽으로 피난하지만 그는 신문과 모든 관계를 끊고 집필에 전념한다. '시지프의 신화'의 제 1부에 착수했고, 이듬해 1941년 1월에는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으로 돌아와 그곳 사립고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시지프의 신화'를 탈고한다.
그는 멜빌의 '백경'에 크게 감명을 받고 '페스트'를 구상하게 된다. 오랑시가 바로 '페스트'의 무대가 되었고, 바다와 사막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는 그의 사상의 바탕에 깔린 명암의 세계를 상징하는 적절한 배경이 된 것이다.
그는 M.L.N(북부해방운동)의 기관지 '콩바'지에 합류하여 거기서 다시 그르니에와 말로를 만나게 된다.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하고 전쟁은 점점 가열해지면서 그는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부인과 만나지 못한 채 다시 폐질환이 악화되어 입원하게 된다.
1942년에 발간된 '이방인'에 이어 1943년에 '시지프의 신화', 희곡 '오해',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출간되자 일약 허망의 작가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지하저항운동의 기관지의 하나인 '콩바'의 편집진이 파리로 옮기자 카뮈도 파리로 진출하여, 그의 저서가 간행된 갈리마르 출판사의 감수위원으로 일하며 앙드레 지드의 아파트에서 기거하면서 거기에서 루이 아라공과 재회한다.
1944년은 모두에게처럼 그에게도 기념할 만한 해였다. 파리가 그리고 조국이 해방되는 해이기도 했고, 카뮈가 사르트르를 만난 해다.
"아니다.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 사르트르와 나는 둘 다 두 사람의 이름이 늘 짝지어져서 거론되는 데에 놀랐다. 우리는 심지어 조그만 광고를 내서 우리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고, 서로간에 아무런 부담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리자"고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사르트르-카뮈의 논쟁'(1952년 8월)으로 두 사람 사이의 불화가 표면화할 요소는 그때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1944년 5월 8일 지드와 함께 조국 해방의 소식을 듣는다. 이때부터 카뮈의 정치 활동이 활발해진다. 알제리의 세티프의 학살, 8월 6일과 9일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의 원자탄 투하 등은 그에게 인도적 측면에서의 반항과 의분으로 동분서주하게 만들었고, 9일에는 쌍둥이 남매 9장과 카트린느)를 얻는다.
그러한 와중에서 에베르토 극장에서 그의 희곡 '칼리귤라'가 상연되어 크게 성공을 거둔다.
1946년초, 처음으로 카뮈는 미국을 방문하여, 공안당국에 의해 푸대접을 받지만 대학생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그 해에 가까스로 '페스트'를 탈고하지만 출판까지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 해에 경제적, 이념적 난관으로 '콩바'지는 해산된다. 프랑수와 모리악과 논쟁이 벌어져 사이가 멀어지고, 르네 샤르와 두터운 정분을 맺고, 사르트르, 말로, 케슬러, 스페르버와 정치토론에 참가하는 등 분주한 생활은 계속된다.
1947년 마다가스카르의 폭동에 직면하여 집단적 억압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사실은 명백하고 끔찍하다. 우리가 독일인들을 비난했던 짓을, 바로 우리가 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프랑스의 연립내각에서 공산당이 빠져나가고 R.P.F(프랑스 인민연합)가 형성되자 레이몽 알랭, 파스칼 피아 등은 거기에 합류하지만 끝내 카뮈는 불참한다. 정치에 전념하기에는 그에게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더 할 일이 많았던 때문이었을까.
같은 해 6월 드디어 '페스트'가 출간되자마자,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다. 많은 비평가들이 '무신의 성성'으로 덕성의 면을 보인 카뮈를 호평한다.
이어서 '여름'(1947-48)이 발간되고, '계엄령'을 장 루이 바로와 공동집필하지만 실패한다. 1950년에 그의 정치평론 '악튜엘', 1952년 소설 '최초의 인간'(미완), 단편집 '적지와 왕국'이 나오자 같은 해 10월 프랑스 인으로서는 아홉번째로, 그리고 최연소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53년에 나온 '악튜엘 2'에 이어 1958년에 '악튜엘 3'가 나오지만 주요 일간지는 이에 대해 냉담했다.
1959년 1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의 각색을 하고 이의 연출을 맡았다. 그러면서 '최초의 인간'을 계속 집필하지만 탈고까지는 하지 못했다.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탄 자동차 사고로 빌레블레뱅에서 파란 많은 영욕의 일생을 마쳤다.
++++
***동우***
2013.10.16 05:43
인간은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붕괴된채 한 세상 살다 가는 존재이다.
자의식과 이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은 한마리 동물로서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아아, 갈수록 인간은 동물로 부터 멀어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인간은 비극적인 동물이다.
정신을 어찌 쫓아낼 수 있겠으며 육체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결코 정신과 육체라는 존재의 이분법(二分法)에서 벗어날수 없다.
궁극의 과학이 과연 무엇을 알아내어 우리에게 설명해 줄수 있을까.
생명의 온갖 부조리함(왜 토끼는 여우에게 먹혀야 하고, 왜 인간의 삶은 공평하지 않으며 삶에 깃든 뭇 모순을...)
인간이라는 존재에 깃든 불가해(不可解)하고 부조리(不條理)함.
그로 인해 인간의 정신은 절망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허망하고 불안하다.
불안이 곧 인간의 실존의 모습이다.
뫼르소.
그에게는 神이거나 희망이거나 도덕이거나 관습따위는 그 불안에 아첨하여 스스로 위무코자하는 신기루일 뿐이다.
실존의 본질에 무엇이라도 있는양 치장하여 그곳으로 도피하지 말라고 한다.
그는 추호도 삶을 과장(誇張)하지 않으려 하여, 삶의 허망함을 뚜렷이 인식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코자 한다.
실존의 알짜배기 본질로서만 한세상 살다 가려하는 사람이다.
그는 무릇 세상의 관념적인 것들과의 타협이나 위안 따위로는 실존의 본질을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국(알제)의 여름.
감각과 기분.
태양과 바다, 낮과 밤, 무더위와 서늘함, 건조함과 습기참...파도와 수영과 땀과 정사와...
그것 이외 무엇이 있는가.
1부의 뫼르소는 단지 그런 기질(氣質)의 생활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뫼르소는 권총 다섯발을 쏘아 아랍인을 살해하였다. 햇빛 때문에.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고 칼을 뽑아서 태양에 비치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하자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내 이마에 와서 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덮어버렸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져 내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칼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다가오는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은 내 속눈썹을 찌르고 고통스러운 눈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것이 흔들린 것은.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을 쏟는 듯했다. 나는 온몸이 긴장되여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꺾였고 나는 권총자루의 미근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밤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한낮은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특이한 침묵을 깨뜨린 것을 나는 느꼈다. 이어서 나는 그 굳어진 몸뚱어리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뫼르소(2부의)는 이제 홀연 세상으로부터 주목받는 ‘이방인’이 되었다. [1부의 평범한 생활인이 2부의 확신에 찬 철학가가 되는 비약은 소설적으로 좀 어떨까 싶기도...]
어떤 논리가 확신으로 귀결되어 방아쇠를 당기는가.
세상은 햇빛의 균형이 깨어진 뫼르소의 그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재판정은 그의 삶과 행위에서 맥락과 의의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행동양식에는 반드시 무슨 기승전결의 논리적 구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위계에 의한 살인’에 그의 부도덕이 가중되어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일련의 재판과정 모든 것이 뫼르소는 권태롭다.
사형선고 순간에도 그의 귀에는 법정밖의 아이스크림장수 호객소리만 들린다.
이를테면 이방인 뫼르소의 반항이었다.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 준 것처럼, 나는 이 징후와 별들이 드리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성취되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을 울리며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단애에 선듯한 써늘함.
나는 도저히 뫼르소처럼 용감할수 없다.
나의 실존을 직시하는 것이 무섭다.
나는 나약한 사람, 도피하련다.
그 분의 품으로.
***달리는말***
2013.10.16 17:04
가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는데
벌써 겨울이 다가온 듯 차가운
날씨로 변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졌습니다.
동우님.
건강에 유의하시고
보람차고 행복한
날들이시기를 기원합니다.
***동우***
2013.10.17 05:05
네, 고맙습니다.
-독서 리뷰-
[[알베르 카뮈]]
<어떤 손님> <티파사에서의 결혼> <페스트>
<<<어떤 손님>>>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3.02.25 05:41
<그가 그토록 사랑한 넓은 허허벌판에 그는 혼자 서 있었다.>
‘넓은 허허벌판에 그는 혼자 서있는, 그 모습 실존주의(實存主義)를 은유하는 그림일까.
그러나 그 벌판은 ‘그가 그토록 사랑한’ 벌판이었다.
카뮈는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유 양심 의무 명예..
헌병과 선생과 죄수(칠판에 복수의 글귀를 적은 사람 또한..)
느끼건대 저 개별적 갈등은 당위(當爲)롭고, 저 개별적 선택은 훌륭하다.
저것이 제각각 가야하는 인간의 길이다.
색깔은 다를지언정 저마다 우러나는 선의지(善意志)와 그에 기반한 행위는 인간이 지닌 고결한 힘이다.
나는 카뮈의 몇 인물에게서 거인 프로메테우스, 그 존엄함을 본다.
그들은 묻는다.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나태하려는가, 사랑하는 힘을 잃으려는가,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려는가, 타인의 양심을 신뢰하지 않으려는가....
저 ‘다뤼’와, 그리고 오랑시에 창궐한 ‘페스트’에 저항하여 쟁투하는 ‘리외’와 ‘타루’와 ‘랑베르’...
친구를 대신 인질로 잡혀 놓고 고향을 다녀오는 사형수 메로스는 숨이 턱에 차서 사형집행 순간 돌아왔다.
친구에게 말한다. ‘나를 쳐라! 잠시 딴 마음(도망)을 먹은적 있었노라’
친구 세리눈티우스는 말한다. ‘나를 쳐라! 잠시 너를 의심한적 있었노라’
이문열의 ‘새지 않는 밤’, 여인숙에 동숙하게 된 구두닦이 소년을 의심하여 몇푼 돈을 필사적으로 감춘 한 가난한 청년은 육신의 영락(零落)보다 스스로의 정신의 영락이 슬퍼서 눈물짓는다.
늙은이들.
생각건대, 노추(老醜)함이란 다른 이를 믿지 못하여, 모든 관심영역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점점 고착되는 그 성향을 이르는 말일 터이다.
타인의 고통에 아랑곳 않는 무관심 동굴.
욕심무더기.
의심암귀(疑心暗鬼)....
내 늙음.
아니 된다고, 가급적 그러하지 말자고..
그러나 나의 늙음은 추하다.
페스트, 그 질환 깊어간다.
***teapot***
2013.02.26 23:05
동우님의 코멘트를 읽으며 콧등이 시큰 해졌답니다.
간추려 주셔서 소설 이해가 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우***
2013.03.02 05:16
하찮은 코멘트에 콧등 시큰해지셨다는 티팟님.
오히려 내가 감사합니다.ㅎ
<티파사에서의 결혼>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6.04.08 03:43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티파사에서의 결혼' .
전에 야초님 댁에서 업어다 보관하고 있던 파일입니다.
카뮈가 25살 때 쓴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카뮈 전집 <1970년도에 츨판된 문조사의 책>에는 '티파사에서의 결혼'과 함께 '제미라의 바람' '알제이의 여름' '노우트' '사막' 등 몇편의 에세이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서로 주제의 맥락이 통하는, 모두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문들입니다.
번역이 좀 미흡한 느낌이지만 카뮈는 대단한 문장가라는데 이의가 있을리 없습니다.
'티파사의 결혼'에서는 자연에 대한 찬미와 존재의 희열이 넘실거리지만, 다른 에세이까지 다 읽고나면 그 배후에는 쇠퇴와 망각과 허무와 죽음에 대한 실존적 자각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카뮈에게는 젊은 나이에 이미 인간실존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가보지 못한) '티파사'는 카뮈로 인하여 내게 몽환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제미라'도 역시)
로마와 초기기독교의 폐허로 남은 유적들이 천몇백년의 고적함을 이고 누워있다는 도시 티파사.
그 아득한 과거의 시간 위로 알제리의 강렬한 햇빛이 내려 퍼부어 폐허의 돌들은 뜨겁게 달구어져 끓습니다.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와 야생의 푸른 하늘 그리고 대기에 진동하는 꽃의 향기.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삽니다.
그 신들은 형이상학의 신들도, 간섭하고 구속하는 신들도 아닙니다.
대지를 사랑하고 바다를 찬미하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신들입니다.
알제리의 바다는 자유이고, 뫼르소(이방인)의 태양은 현재의 순간입니다.
봄철에 티파사에 내려오는 신들은 이를테면 풍요의 데메테르와 도취의 디오니서스와 엘레시우스의 옷을 입었을겁니다.
티파사에는 영원 따위의 신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시간은 티파사의 폐허를 떠나버렸고, 햇빛과 바다와 꽃에 둘러쌓인 본연의 자기자신은 오로지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야생의 향기와 졸음을 몰고 오는 풀벌레들의 연주 속에 파묻혀서 열기로 숨막힐 듯한 저 하늘의 지탱하기 어려운 장엄함에 두 눈과 가슴을 활짝 열면' 느낄수 있습니다.
티파사는 과거가 현재에 용해되고 태양과 대지가 결혼하는 현장입니다.
그곳에서는 얼마든지 압생트(프랑스의 毒酒)의 환각에 젖어들어도 좋으리다.
신이라거나 관념이라거나 형이상학이라거나 그에게로 도피하거나, 물질이나 명예나 지위따위등으로 삶을 과장(誇張)해 봤자 그건 존재의 알짜배기 본질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여기서는 그 무엇이든 내 본연의 모습을 그르치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나를 온통 휩싸는 것은 자연과 바다의 저 위대한 무분별의 사랑이다.>
<우리들은 이 세계와의 결혼 그 나른한 행복을 한껏 펼친다.>
<오늘날에는 바보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향락을 두려워하는 자를 나는 바보라고 부른다.>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저 신비한 기쁨.
일체감으로 그 기쁨을 껴안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거침없이 사랑할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실존에 부여된 유일한 영광입니다.
내일 조카의 결혼식입니다.
좋은 봄날, 짝을 이루는 모든 사랑과 기쁨들에게 카뮈의 이 글을 바칩니다.
모쪼록 사랑을 기뻐하고 기쁨을 사랑 하십시오.
<리딩북> 내일과 모레 쉬겠습니다.
한양 올라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전시회도 가보려 하는데 어찌 되려는지..
좋은 주말을.
<페스트>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7.01.10 04:20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1913~1960)'의 장편소설 '페스트'
이 소설의 텍스트 파일을 구할수 있어 기쁩니다.
읽으셨을테지만 재독하여도 '페스트'의 가치, 다시 느끼시기에 부족함 없으리이다.
일곱번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함께 읽어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p.s
매년 이 맘때 쯤 내게 끼쳐주시는 버지니아 어느 가족의 따순 숨결.
올해도 어김없이 날아 온 크리스마스카드와 편지.
레이먼드와 민정과 도연 앤드류, 세 가족의 행복한 모습.
덩달아 행복한 할비, 사진 속 도연이 뺨에 입 맞춥니다.
Happy New Year, My lovely friends.
***동우***
2017.01.11 04:11
알제리의 도시 오랑.
권태로움과 삭막함과 무관심과 무미건조함.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원도 없는 중성적인 도시 오랑.
오랑이라는 도시는 카뮈의 인간실존에 대한 상황인식의 알레고리일듯.
그 도시에 내습한 페스트.
폐쇄되고 고립되는 도시.
재앙으로 인하여 존재인식에 이르는 사람들.
그들이 투척하는 삶의 양태...
리외, 타루, 랑베르, 그랑, 코타루, 파늘루 신부...
차츰...
***동우***
2017.01.13 04:45
페스트.
번역이 너무 직역인듯 싶어 좀 불만입니다.
얼마전 카뮈의 '이방인'을 전혀 다른 어프로치로 번역한 책이 나왔다고하여 화제가 된적 있었지요.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원문과는 다른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에 대하여도 인구에 회자되더군요.
나는 의역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원작을 곱씹어 모국어로 치환하는데 있어 원문을 어느 정도 변용시키는 것은 어쩔수 없을거라는.
나스메 소세키의 일화가 있습니다.
<I love you.>를 <달이 예쁘네요>라고 번역할수도 있다는.
페스트의 유명한 문장.
내가 자주 써먹는.
<"이것 봐요, 타루,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을 것 같군요."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하나의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눈에 뻔히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사람들에 대해서 신물이 난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것이다...
***동우***
2017.01.14 04:23
번역이 다소 난삽합니다.
이야기 진행을 이해하기 쉽도록 문장의 단락을 구분 정리하였으면 좋았을걸하고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언젠가, 좋은 번역을 기대하기로 하고 그대로 올립니다.
***동우***
2017.01.16 04:22
이것저것 어지럽게 읽어 얻은 풍월뿐, 실존주의가 무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하이데커의 실존주의는 무신론적 입장이었다고 하고 키에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입장에서 실존주의를 설파하였다고 하고 장 폴 사르트르에 이르러서야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고 합디다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카뮈의 부조리가 어떻게 다른것인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실존주의가 말하기를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운위코자 아니하고 인간의 어떤 存在態(존재양식)에 대하여 궁구하는 사상이라는 정도로 짐작할 뿐입니다.
실존(實存)은 현실존재(現實存在)의 약자입니다.
인간은 어떤 근원적이고 결정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 존재라는 사실.
이 명제는 분명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과거로 보아 결정적이고 미래로 보아 예정적인 존재라고 믿는 것.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고 확신하는 크리스찬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0세기에 그러나 신은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근원도 목적도 알수없는 가변적 현실에 내동댕이 처진 실존적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실존은 이유도 목적도 없으므로 부조리하다' -카뮈-
끊임없는 자유 속에 방임된 상황이 인간의 실존양식이 되었습니다.
자유로운 선택, 인간은 미지의 미래를 향하여 자신이 선택하여 자신을 투척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여 가는 존재, 자유라는 인식을 허여(許與)받은 존재입니다.
아, 그러나 그 자유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요.
자유는 불안의 근원이며 부조리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하는 것일테지요.
파시즘으로 나치즘으로 종교적 근원주의로 섹스로 쾌락으로 스포츠로 자본으로 탐욕으로 매저키즘으로 새디즘으로 집단으로 우정으로 노예근성으로.
살고자 하는 육체의 생명현상, 그리고 소멸을 인식하는 정신.
그 풀수없는 이원론의 골짜기에서의 방황하는 인간존재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요.
불안의 메타포, 페스트.
부조리의 현장, 오랑.
이길수 없음을 뻔히 알지만, 낙관도 도피도 아니하고 오로지 그 허망함에 맞서 싸우는 인간상.
리외 타루 그랑...
그리고 사랑의 연대.
으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지요.
페스트.
자유를 감당할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 云云...
내 어쭙잖음이 감당치 못하여 이만.
-독서 리뷰-
[[알베르 카뮈]]
<이방인, 또는 한 사람의 행복한 남자> <자라는 돌>
<이방인, 또는 한 사람의 행복한 남자>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7.04.04 03:56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또는 한 사람의 행복한 남자'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실존적 행복....
난해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카뮈의 사상적 알레고리 느끼지 못할 바도 없을 듯 싶기는 합니다.
다만 번역에 있어서 좀 더 친절한 의역이었다면 하는 아쉬움...
두 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4.05 04:26
정신(생각)과 육체라는 이원론의 골짜기에서 방황하는 인간.
존재론적 모순을 안고 있는 인간은 자연의 기형아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났지만 동물(자연)로부터 떠나버린 인간에게는 이제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결코 전지전능의 존재(神)는 될수 없으며 아무리 죽기 싫다고 발버둥 처보아도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임을, 인간의 이성(理性)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아의 소멸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살고 있는 불안한 존재.
그와 같은 자의식(自意識)은 인간에게 주어진 천형(天刑)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위대한 사랑을 겪거나 불행한 정열을 간직한다는 것도 결국 좋은 일이야. 그런 것은 적어도 우리들을 짓누르는 그 이유 없는 절망에 대해 하나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인간은 관계이거나 사랑이거나 문명이거나 제도같은 장치를 마련해 놓는건지도.
그리하여 인간은 본질적 행복으로부터 더욱 소외된 존재일런지도.
인문적 덕(德)으로서 자연과 생명이 주는 진정한 행복은 쟁취할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우상(偶像)일런지 모릅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연의 본성은 고통스럽지 않고 자연의 궁극적 목적은 완전한 행복이라고 합디다.
상태적(常態的)인 행복감으로 얻어지는 마음의 평정감(아타락시아).
자그르는 뫼르소에게 있어서 스승이고 은인이었을테지요.
이심전심으로 뫼르소는 자그르의 관자노리에 권총 방아쇠를 당겼을겁니다.
<고맙소. 당신은 아무런 환상도 나에게 남겨주지 않을 것 같소.>
<만일 그 덕분으로 살아 있는 나 자신이 그 타오르고 있는 듯한 불꽃을 내 몸 속에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아직 불태울 수 있도록 해준 생명에 대해서 감사드릴 수 밖에 없다오.>
자그르의 대사들을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뫼르소, 당신같이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면, 당신은 산다는 것과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유일한 의무로 알아야 할 겁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인간답게 살 시간을 못 가졌어요. 우리들에겐 다만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간밖에 없어요.>
<그것은 모두 저 작은 조약돌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것이겠지요. 빗물은 돌을 씻겨줄 것이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언젠가 또다시 조약돌은 뙤약볕에 불타게 되겠지요. 나는 언제나 행복은 마치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록 사랑을 받고 있다 해도, 그것으로 나를 속박할 수는 없어요.>
<당신도 언젠가는 홀로 있게 될 거요. 그것이 전부요. 자, 당신의 육체야말로 당신에게 그와 같은 모든 것을 가르쳐 준 겁니다.>
<돈이 없으면 누구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전부입니다....어느 엘리트 중에는 행복해지는데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스노비즘이 있어요. 그것은 바보스러우며, 원시적이고 그리고 어느 정도 비겁하기까지 해요...다만, 행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많은 시간이죠. 행복은 또한 길고 오랜 인내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어요. 실은 돈으로 시간을 사야 하는데 말예요. 바로 그 문제가 내가 지금껏 관심을 기울인 단 하나의 문제였지요. 이것은 정확하고, 명백한 사실입니다.>
<분명 나는 인생을 실패했어요. 하지만 나는 정당했어요.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것은, 어리석음과 폭력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항하는 길이었지요. 뫼르소, 우리 문명의 모든 비열함과 잔혹함은 행복한 백성에겐 역사가 없다고 하는 그 어리석은 원리에 측정되는 것이죠.>
이 소설의 뫼르소는 '이방인'의 뫼르소와 동의(同意)의 인물일 것입니다.
음미해 볼 만한 아포리즘.
<그런데 뫼르소는 비엔나를 떠난 후 단 한번도, 자기 손으로 죽인 자그르를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는 어린이나 천재, 무고한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망각의 기능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게 되었다. 죄책감 없이 기쁨에 들떠 있는 그는 이제 자신이 행복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디어 이해하는 것이었다.>
<태양의 맛을 핥아 봐>
<나와 세계는 너희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 앞에서 난 옷을 벗어 봤어.>
<여기 있으면 나는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거야, 까트린느. 그렇게 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까트린느, 절대로 단념해선 안 돼. 너는 자신 속에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그리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행복에 대한 감각이야. 너는 오로지 남자에게만 기대를 걸어선 안 돼. 그것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속고 있어. 하지만 너는 너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야 해.>
<그는 초인간적인 행복을 꿈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가 그리는 곡선을 넘어서는 영원을 넘보지 않았다. 행복이란 인간적인 것이고, 영원은 일상적인 것이다. 요는 하루하루의 리듬을 우리들의 희망의 곡선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그날 그날의 리듬에 순응하도록 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 속에서 운명이 만들어내는 이와 같은 선택을, 그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에서 살아가는 행복과 죽은 행복의 모든 것이 있었다. 그 죽음을 그는 짐승의 공포로 이제까지 바라보고 있었으며,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그 탄생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무력함을 두려워하고, 또한 삶을 과시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관여하지 않던 삶에 죽음이 가져다 주는 심판 때문에 충분하게 살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은 갈증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는 여행자에게서 영원히 물을 빼앗아 버리는 손길과도 같았다.>
<오르는 열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최후의 순간까지 의식을 차리고 두 눈을 크게 뜬 채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자랑스러운 확신이 이제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자그르도 역시 그날 두 눈을 뜨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몫을 누리지 못한 사나이의 최후의 나약함이었다. 그러나 빠트리스는 그런 허약함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육체의 한계점의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서, 언제든지 정지해 버릴 그의 뜨거운 혈기의 맥박 속에서, 그는 아직도 그 나약함이 자기의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새삼 되새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의 임무를 이행했고 오로지 행복해야 한다는 인간의 유일한 의무룰 이행했고 오로지 행복해야 한다는 인간의 유일한 의무를 완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경리는 '욕망으로 사는 삶은 추하지만 의지로 사는 삶은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박경리와 정면으로 배리되는 듯한 카뮈.
그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지만 힘에 부처서 이만.
<자라는 돌>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8.10.08 23:52
알베르 카뮈의 '자라는 돌'
텍스트 파일 눈에 띄길래 얼른 업어왔습니다.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8.10.09 22:43
'카뮈'의 '자라는 돌'
프랑스인 기사(技士)가 공사 입찰권을 따서 브라질 오지로 가서 겪게되는 의미심장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텍스트 파일 눈에 띄어 업어왔는데, 오늘 찬찬히 읽어보니 번역이 너무 조악하여 올린걸 후회합니다.
교열 교정을 좀 했지만...
허지만 기왕 시작한거, 내일까지 마저 올려야지 어쩌겠어요.
***동우***
2018.10.11 04:42
번역이 좀 그렇습니다만...
'알베르 카뮈'의 '자라는 돌'
이 소설은 '적지와 왕국'이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여섯 소설 가운데 한 편입니다.
프랑스人 엔지니어(技士) 다라스트.
공사를 위하여 방문한 브라질의 오지마을 이과페.
그곳의 두 부류의 집단.
지배계급인 유력인사(백인)들과 가난한 자들(흑인, 원주민).
성 조르쥬 축제.
축제에 참가한 가난한 자들은 담배(마약 성분이 있는듯?)를 피우고 접신상채로 울부짖습니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광란의 춤을 추고 요리사는 무거운 돌을 질머지고 속죄자의 행진을 합니다.
<저 유럽에서는 치욕과 분노 밖에 볼 수 없었다. 이곳 말라빠져 떨며 쓰러지기까지 춤추는 그 미치광이 속에는 유적(流謫)이 아니면 고독이 있었다.>
요리사가 지쳐 쓰러지자 다라스트는 그 돌을 이어받아 질머지고 교회가 아닌 요리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는 몸을 쭉 펴고 일어나 가난과 잿더미 냄새를 마셨다. 그는 매우 통쾌하였다. 마음속에서 벅찬 기쁨이 구비치는 것이었다.>
벅찬 기쁨.
<형은 요리사를 약간 옆으로 밀어놓고 나서 다라스트 쪽으로 몸을 돌이켜,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우리와 함께 여기 앉으시죠.">
파토스적 합일, 다라스트는 그들과 '우리'가 된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
파토스적인 융화집단은 차츰 조직집단이 되고 그것은 이윽고 제도로 고착된다고 하지요. ㅎ
-독서 리뷰-
[[알베르 카뮈]]
<정의의 사람들> <벙어리들>
<정의의 사람들>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8.11.27 00:17
알베르 카뮈.
그는 소설가 사상가 평론가로도 위대하지만, 빼어난 연극인이기도 합니다.
여럿의 훌륭한 희곡을 썼을 뿐 아니라 연출 연기로도 일가견을 이룬 무대 예술가였지요.
카리큘라, 오해,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은 가장 유명한 카뮈의 희곡들일겁니다.
카뮈의 희곡 '정의의 사람들'.
5막 짜리, 다섯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함께 읽어요.
공치사.
업어 온 텍스트 파일, 중간 중간 이가 빠진 걸 책을 펴놓고 자판 두드려 채워 넣는 다소의 노고가 있었음을... 에헴!
***동우***
2018.11.28 07:22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매몰된 광부 한 사람을 위해 본 적도 없는 여러 사람이 기꺼이 목숨을 거는 거라고.
‘마이클 센댈’을 이리저리 펼쳐봅니다.
‘밀’의 ‘자유론’과 밴덤의 ‘공리주의’...
<개별적 독립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개인은 자신에 대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주권을 갖는다....그러나 내가 막연한 권리 덕에 남보다 유리한 입장에 선다고 판단된다면, 그런 이익은 공리와 무관한 것이어서 거부하겠노라고 말하겠다. 나는 공리가 궁극적으로 모든 윤리의 질문에 호소력을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때의 공리는 넓은 의미의 공리라야 하고, 진보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영원히 이익을 줄 수 있는 공리라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대목.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세 명이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의 측근인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이들이 찾는 인물은 140~150명의 중무장 세력을 지휘하면서 험한 산악지대의 어느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특수부대 팀이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직후, 아프가니스탄 농부 두 명이 약 100마리의 염소를 몰고 나타났다. 일행에는 열네 살가량의 남자아이도 끼어 있었다. 모두 무장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선택은 이들을 죽이든가 풀어주든가, 둘 중 하나였다.
한 사람은 염소치기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상관의 지시로 적의 전선 후방에서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우리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가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속에 또다른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풀어주자는 쪽에 표를 던졌다. 곧 후회할 결정이었다..... 곧 이어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탈레반 무장 세력은 실 대원을 구출하려던 미군 헬리콥터 한 대까지 격추해, 그곳에 타고 있던 군인 열여섯 명을 모두 죽였다......>
선택의 기로(岐路)
도덕적 딜레마로 고뇌하는 인간.
아, 벗이여. 곰곰 생각해 볼 주제가 아닙니까?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요.
***동우***
2018.11.30 04:40
칼리아예프와 스테판.
시인의 영혼이 바라보는 곳은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칼리아예프 : 다른 사람들이라고요? 좋소. 그러나, 나는 오늘날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도 바로 그들이고요. 내가 싸워서 죽기를 결심한 것도 그들을 위해섭니다. 나는 내가 확신도 할수 없는 머나먼 미래의 도시를 위해서 내 동료들의 뺨을 칠 수는 없읍니다. 동지들, 나는 동지들에게 솔직하게, 그리고 우리 농민들 중의 가장 순박한 농민도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린애들을 죽이는 것은 명예롭지 않은 일입니다. 언제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혁명이 명예를 저버리면, 나는 그 혁명에서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강철같은 이념의 혁명가의 눈은 오로지 도래(到來)할 미래를 향합니다.
혁명가에게 사랑이란 몽롱한 잠꼬대이며 명예란 마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갖고 있는 사치품일 뿐입니다.
<스테판 : 어린애들! 동지들 입에선 그 말밖에 안 나오는 것 같소! 다른 일은 이해도 못하오? 야네크가 그 둘을 죽이지 않았으므로 해서, 앞으로도 수천의 러시아 인민의 어린애들이 굶어 죽어 갈 것이오. 동지들은 어린애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본 일이 있소? 나는 본 적이 있소. 그런 죽음에 비하면 폭탄에 의해 죽는 것은 차라리 행복이오. 야네크는 어린애들을 보지 못했소. 그는 다만 대공의 두 귀여운 강아지만 본 것이오. 동지들은 인간이 아니오? 동지들은 순간 속에서만 살아가오? 그렇다면,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모든 악을 치료하는 혁명은 집어치우고, 자비를 선택하든지, 매일 매일 그날의 악이나 치료하시오.>
나와 같은 인간은 죽었다깨나도 이르지 못할 저 이념적 인간...
***동우***
2018.12.01 00:12
카뮈는 역사적 사실을 빌어 이 희곡을 썼나봅니다.
그 내용을 검색하여 찾아 봅니다.
저 사건은 1905년 2월 17닝 모스크바에서 실제로 일어난, 러시아 제국의 대공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본문의 발음은 세르쥐)가 사회주의혁명당 계열의 테러리스트에 의하여 암살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20여일 전에 이른바 그 유명한 '피의 일요일'이 있었군요.)
本文의 대공비 역시 실제인물인 독실한 크리스찬인 엘리자베트, 그녀 역시 1918년 볼세비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대공비는 칼리아예프에게 말합니다.
<죽는다고요? 당신은 죽고 싶나요? 아니예요. 당신은 살아야 해요. 그래서 살인자가 되어야 해요. 그이를 죽이지 않았나요? 하느님이 당신의 죄를 밝혀주실 거예요.>
그러나 칼리아예프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합니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의 손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무참하게 빼앗은 것은 명확한 사실로 부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가 정의가 되기위하여는 반드시 자기도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념이 살인과 상쇄할수 있는 가치가 되기위하여는 그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칼리아예프는 인생을 사랑하니까 혁명에 뛰어든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상적 낭만주의자일테지요.
반면 스테판은 말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땅 위에서 노예상태에 있는 한, 이 땅의 자유란 것도 하나의 감옥에 지나지 않소...나는 인생을 사랑하지 않소. 차라리 인생보다 더 고귀한 정의는 사랑하지만>
그는 초월적인 이상주의자이며 냉정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스테판이야말로 이념을 위하여 미련없이 자신을 현실에 투척하는, 강철같이 굳센 혁명가의 면모입니다.
우리가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동물의 살덩이.
만일 자기가 먹을 고기를 직접 도축해야한다고 하면 쉽사리 동물을 죽일수 있을것 같습니까?
살아있는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인간임에랴.
스테판이라고 고뇌가 없었겠어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다를바 없을겁니다.
정의의 사람들.
그렇지만 스테판에게도 칼리아예프에게도 카뮈는 정의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서 대등한 정신의 긴장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칼리아예프를 사랑하는 도라.
그녀는 칼리아예프이기도 하지만 스테판이기도 합니다.
++++
[도라] (창가로 걸어가며) 사랑하라, 그래, 하지만 사랑 받는 것---! 아니야, 나아가야 해. 사람들은 멈추고 싶어하지. 걸어나가! 앞으로! 사람들은 두 팔을 벌리고 되는 대로 맡기려 하지. 하지만 더러운 부정은 우리 몸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들보다 더 위대해지도록 선고받은 몸이야. 사람들, 얼굴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이지. 정의보다는 사랑을! 아니야, 앞으로 걸어나가야 해. 나아가자, 도라! 나아가라, 야네크! (그녀가 운다) 하지만, 그에겐 죽음이 다가오고 있어요.
[도라] (정신없이, 약간 변한 음성으로)울지 말아요. 아니예요, 울지 말아요! 오늘이 정의(正義)의 날이라는 것을 잘 알잖아요. 우리들, 반항적 인간들의 증거인 어떤 일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어요. 야네크는 이제 살인자가 아니예요. 무서운 소리! 그는 무서운 소리로 충분해요. 이제 다시 행복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거예요. 그의 웃음이 생각나세요? 그는 가끔 이유없이 웃곤 했어요. 참 젊었지요. 그는 지금도 웃어야 해요. 땅바닥에 얼굴을 대고 말이예요!
[도라] 내게 폭탄을 주는 거지요? 내가 던지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추운 밤에---.
[아넨코프] 던지시오. 도라.
[도라] (울음을 터뜨리며) 야네크! 추운 밤에 당신과 같은 밧줄로! 이제 모든 것이 더 쉬워질 거예요.
막이 내린다.
++++
머지않아, 앙시앵레짐을 향하여 폭탄을 투척하는 도라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도라의 모습에서 카뮈의 입장이 어렴풋 읽혀질듯도 합니다만....
함께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벙어리들>
-알베르 카뮈 作-
***동우***
2019.03.05 10:08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1913~1960)'의 '벙어리들'
대한민국.
나는 생생하게 그 때 나의 현장을 기억합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의 직장,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노동쟁의.
그 이전까지 빙하속에 꽁꽁 얼어붙어있었던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이 나라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벙어리들'이었지요.
<주인은 품삯을 올리지 않았다. 작전이 서툴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하긴 홧김에 일으킨 파업이었으므로 그들도 이를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조합측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한 것도 일리가 있었다. 하긴 15, 6명의 노동자가 일으킨 파업이 그리 큰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조합 측으로선 이 파업에 합세하지 않은 다른 통(桶)공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소득없이 끝나버린 파업.
고용주와의 대립에서 그저 벙어리일수 밖에 없는 약자, 노동자들의 서글픈 모습들.. (그들을 부리는 라실이 그닥 악덕기업주같지는 않습니다만)
위독한 라실씨의 아이에 대하여 동정의 마음을 갖고있는 선량한 사람들...
아, 사회적 인간상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궁구하여도 모자랄.
그러나 나는 얼마나 사적(私的)인 인간인지.
얼마나 비좁은 세계관으로 죽음을 맞을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그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밍웨이 1.2.3 (1,4,3,3) (0) | 2019.11.09 |
---|---|
은희경 1.2.3 (1,4,3,3) (0) | 2019.11.09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1,4,3,3) (0) | 2019.11.09 |
김훈 <칼의 노래> <명태와고래,저만치혼자서,고향의그림자> (1,4,3,3) (0) | 2019.11.03 |
김훈 1.2.3 <화장.언니의폐경.영자.머나먼 속세.손> (1,4,3,3) (0) | 2019.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