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화장>
-김훈 作-
***동우***
2015.05.08 05:17
삶 속에 잠복하고 있는 죽음...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에 이어 김훈(1948~ )의 소설 화장(火葬)을 올립니다.
리딩북에 김훈은 처음 올리는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임권택 감독에 의하여 영화로 만들어져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일겁니다.
이 빼어난 작품이 함축하고 있는 문학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영상화하였는지 나도 꼭 보려합니다.
가벼움과 무거움.
삶이 가벼운 것일까요, 죽음이 가벼운 것일까요.
삶의 이중성.
아, 화장(化粧)과 화장(火葬).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떠올렸습니다만.
차츰....
김훈의 화장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그리고 독후감 '아베일족', 생각이 글로 잘 써지지 않네요.
일간 마무리하렵니다.
대충.ㅎ
***동우***
2015.05.09 04:50
火葬 과 化粧
소멸하는 것과 피어나는 것.
허무함과 어여쁨이 이중노출로 투명하게 비추이는 순간, 언제나 나는 슬픕니다.
앙상하게 드러난 치골, 지리는 분변의 악취,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 아내의 고통.
그러나 아내의 저 고통 속으로 들어갈수 없습니다.
확인할수 있는건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고통 뿐입니다.
그리고 추은주의 성장(盛裝)한 육체
<추은주, 당신은 고유한 추은주 당신입니까? 당신의 이름 속에 당신의 여체도 함께 있는건가요? 당신의 깊은 몸속의 나라, 그 나라의 새벽 무렵에 당신의 체액에 젖는 노을빛 살들, 매몰된 지층 밑의 유적이나 풍문처럼 아득하고 모호한 나라, 그 나라는 당신의 이름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나라입니까?>
생명은 뒤섞이지 않습니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수 없고, 이 건너갈 수 없음은 생명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자아는 육체와 뒤섞이지 않는가요?
자아에서 육체로 건너갈수 없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 건너갈수 없음이 생명현상이 아니라면 무슨 현상인가요?
<남의 집에서 잉크를 엎질러 양탄자를 더렆혔다면 미안할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을터인데 여성은 월경으로 시트를 더럽히면 왜 부끄러워 하는가요? 여성의 기관들을 만들어낸 게 여성의 책임인가? -밀란 쿤데라->
다른 얘기지만.
어쨌거나 여성의 치마 속에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에로티시즘, 살아있음의 메타포.
이 나이가 되어도.
++++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동우***
2015.05.10 05:23
<"이봐, 지금 지지고 볶을시간이 없잖아. '가벼워진다'로 갑시다 '내면여행'은 아무래도 너무 관념적이야. 그렇게 정하고, 내일부터 예산 풀어서 집행합시다.">
아내는 죽고 보리도 죽고 추은주도 떠났고 카피는 ‘가벼워진다’로 결정되었다.
그날 밤, 주인공은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죽음와 삶, 둘 다 무거움이고 또한 가벼움이다.
가벼움이 내포된 무거움이거나 무거움을 지고 있는 가벼움이거나.
오줌이 가득 채워진 방광도 무겁지만 소변을 뽑아낸 몸뚱이 역시 가볍지 아니하다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늘 인식론적 무거움으로 존재의 현실을 살고있다.
化粧과 火葬.
비쩍 마른 등짝과 마른 살비늘과 푸석한 머리칼과 이윽고 한줌 재로 남은 아내와, 매끄러운 피부와 향기로운 살내음과 흑단같은 머리칼의 추은주와...
어머니의 비린 젖냄새를 풍기는 햇빛처럼 완연한 몸과,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를 알아볼수 없이 흩어져 있는 뼛조각과.
추은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 아내와 동일한 사람이어도 무방하다.
나는 김훈의 문장을, 저 담담한 허무를 진저리나게 좋아한다.
***eunbee***
2015.05.09 21:46
노트북에서 다음 연결이 여의치 않아 결국은 모바일로 들어와야 했어요.
이집 인터넷 문제인지, 다음 문제인지..
이곳에 오면 작은 사위 휴대폰을 사용해요.
사위가 타국에 있으니, 그의 폰이 놀고 있지요.
어제밤 읽은 김훈 님의 화장 중 3.
김훈 다운 섬세한 표현, 좋았어요.
동우님 댓글과 문정희님 시도 좋구요.
오늘 밤 10시에 읽을 글이 기대 되어요.^^
평온한 밤 되시어요.
***동우 ***
2015.05.10 05:38
쏟아져 내리는 사쿠라 꽃잎 아래에서 여자생각에 쩔쩔매는, 열려지는 관능.
인간이라는 종과 속을 벗어난 보편적인 암컷과 숫컷, 문명을 인문을 벗어난 세계와의 소통과 합일..
'화장'과는 다른 색감의 수필이지만, 김훈의 사유 한조각 댓글란에 올립니다.
++++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
-김훈-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
어느 해 4월 벚꽃 핀 전군가도(全郡街道, 전주-군산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꽃잎 쏟아져 내리는 벚나무 둥치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나는 내 열려지는 관능에 진저리를 치면서 길가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아주 작게 웅크리고 쩔쩔매었다. 온 천지에 꽃잎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둥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라보면, 만경 평야의 넓은 들판과 집들과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이 쏟아져 내리는 꽃잎 사이로 점점이 흩어져 아득히 소멸되어 가고, 삶과 세계의 윤곽은 흔들리면서 풀어지면서, 박모의 산등성이처럼 지워져 가는 것이었는데, 세상의 흔적들이 지워져 버린 새로운 들판의 지평선 너머에는 짐승들의 어두운 마음의 심연 속에서 희미하게 가물거리고 있을 호롱불 같은 관능 한 점이, 그러나 명료하게도 깜박거리고 있었다. 그 관능의 불빛 한 점은 쏟아져 내리는 꽃잎 사이를 꺼질 듯 꺼질 듯 헤치면서 지평선 저쪽으로부터 인간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점점 크고 뚜렷하게 자리 잡아, 이윽고 태양처럼 온 누리를 드러냈다. 숨을 곳이라고는 아무 곳도 없었다.
그 관능의 불빛이 자전하고 공전함에 따라 이 세계 위에는 새로운 낮과 밤과 계절이 드나드는 듯했다. 꽃잎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의 삶은 시간에 의해 구획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시간 속에서는 태어남과 절정과 죽음과 죽어서 떨어져 내리는 시간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태어나자마자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서 죽고, 절정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시간은 삶이나 혹은 죽음 또는 추락 따위의 진부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절대의 시간이었다. 꽃잎 떨어져 내리는 벚나무 아래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 문명사는 개똥이었으며, 한바탕의 지루하고 시시껍적한 농담이었으며, 하찮은 실수였다.
잘못 쓰인 연필 글자 한 자를 지우개로 뭉개듯, 저 지루한 농담의 기록 전체를 한 번에, 힘 안 들이고 쓱 지워버리고 싶은 내 갈급한 욕망을, 천지간에 멸렬하는 꽃잎들이 대신 이행해 주고 있었다. 흩어져 멸렬하는 꽃잎과 더불어 문명이 농담처럼 지워버린 새 황무지 위에 관능의 불빛은 추억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육신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으며 여자에 대한 그리움도 아니었으나, 그 그리움의 대상이 인간의 여자였다 하더라도 무방했으며, 들개나 염소의 암컷이라 해도 역시 무방했다. 무방하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종(種)과 속(屬)으로 구획되기 이전의 만유(萬有)의 ‘♀’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며, 내가 그 그리움을 감당해 내기 위해서라면 굳이 인간의 ‘♂’이 아니라도 또 한 번 무방하였다.
내 벗은 몸을 내던져 이 난해한 세계와의 합일에 도달할 수 있다면 나는 수캐라도 좋았고 염소라도, 수탉이라도 좋았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있는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 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 만유혼음의 그리움이 인간의 종과 속을 거쳐서 한 여자에게로 와 닿는 여정(旅程)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계통 발생의 여정만큼이나 장구하고도 외로운 것이리라. 그리고 또 말하건대, 인간의 여자에게로 향하는 그 여정에서 짐승의 호롱불 같은 만유관능을 떨쳐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챙겨서 거느리고 우리는 가는 것이리라.
꽃잎 쏟아져 내리는 벚나무 둥치 밑에서 나는 내 모세혈관 속을 흐르는 저 짐승의 피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또 다른 어느 해 4월에, 나는 남태평양의 한 절해고도에서, 바닷가의 저편에서 이편을 향해 걸어오는 한 토인 여자를 보았다. 나는 그 토인 여자에 의하여 내 헤매려는 만유관능의 충동을 인간의 종과 속으로 확실하게 편입시킬 수 있었다.
하루의 답사 일과를 마친 저녁이었다. 나는 바닷가 호텔 방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저무는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흐린 날의 그 큰 바다는 한마디로 불가해했다. 그 너머의 대안(對岸)에 또 다른 인간의 흔적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남태평양의 흐린 바다 앞에서는 불가능했다. 물과 하늘과 수평선과 그 너머의 아득한 공간까지도 거대한 어두움 속으로 빨려 드는 것이어서, 바다는 무한대로 뻥 뚫려진 허당일 뿐이었고, 몇 개의 가물거리는 등불로 버티어 있는 섬과 문명은 바다 앞에서 곰팡이나 버섯일 뿐이었다.
물결 높은 해안선이 호텔의 유리창 밑으로 바짝 달려들고 있었고 파도가 인간의 생각의 화살을 튕겨내 버리는 것이어서, 생각의 화살들은 해연(海淵)의 캄캄한 깊이에까지 닿지 못하고 바다의 표면에 부딪쳐 무참히도 꺾어져 버리곤 했다. 그때 한 토인 여자가 해안선의 저편에서 나타나 호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여자의 진행 방향에 따라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했다. 여자는 해초류를 따는 여자였던 모양이다. 맨발에 바구니를 끼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익명의 여자였으며 나로부터 문명의 수세기와 지리의 수억만 리로 격절된 여자였다. 시선이 닿지 못하는, 목측(目測) 너머의 미지의 공간으로부터 그 여자가 내 시선의 안쪽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옴에 따라 나는 저 낯선 바다, 그리고 시선과 생각의 화살이 가 닿지 못하는 해연의 캄캄한 깊이와 해풍에 멸렬하는 낯선 시간들이 마침내 나에 의하여 감지되고 인식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위에다 내가 하나의 삶이나 의미를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바뀌어 오는 것을 느꼈다.
저 익명의 여자를 축으로 삼아 회전하는 세계와 시간의 공전(公轉)은 따스하고 포근했으며, 비릿하고 달았고, 서늘하고 축축하였다. 여자는 그 하루하루의 살아가기에 지쳐버린 듯, 느린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내 호텔 쪽으로 접근했다. 여자가 한걸음씩 접근함에 따라 공전으로 바뀌어 드는 세계와 시간의 저 오련한 질감이 먼동처럼 느리고 느린 확실성으로 굳어져 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이윽고 여자가 내 호텔 유리창 바로 밑을 지날 때 나는 여자의 푸대 자루 같은 옷 속에서 젖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맨발의 뒤꿈치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아마도 그 굳은살에는 그 여자가 세계의 표면을 디디고 살아온 노역이 갈라진 금으로 파여 있을 것이었고 그 실핏줄 같은 금마다 때가 끼어 있을 것이었다.
그 토인 여자는 문명이나 교육에 의하여 형성된 여자는 아니었다. 그 여자는 오직 종족의 유전자만으로 형성된 여자였고, 해풍에 실려 오는 낯선 시간들을 생명 속으로 받아들여 그 시간들을 새로운 피륙으로 짜냄으로써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발뒤꿈치 굳은살과 갈라진 금과 때들은, 연민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연민이라 말해도 무방했다. 발뒤꿈치의 굳은살로, 인식되지 않은 불귀순의 시간과 공간을 헤치고, 세계의 표면을 걸어서 한 걸음씩 내게로 가까이 오는 여자는 내 종족인 인간의 여자였으며, 인간의 젖가슴과 인간의 목소리와 인간의 성기를 가진 여자였다. 여자는 내 호텔 유리창 밑을 지나서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계의 질감(質感)은 또다시 공전했다. 따스함과 축축함이, 이제는 등을 보이고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여자의 등에 실려 서서히 사라지고, 가을 숲의 잘 마른 오솔길처럼 바스락거리는 서늘함이 세계의 공간 안에 가득 찼다. 나는 그 서늘함이 인간 쪽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서늘함임을 느꼈다.
-아래 계속-
***동우***
2015.05.10 05:39
-위에서 받음-
여자는 어둠의 저편 끝으로 사라지고 날은 캄캄하게 어두웠다. 나는 커튼을 여미고 자리에 누웠다. 뇌수가 쏟아져 내리는 해조음이 밤새도록 세계의 변방에서 으르렁거렸지만, 그 인기척 없는 바닷가 호텔 방에서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는 깊고 편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날 밤의 잠은 깊고 아늑했고, 빠져 죽을 듯이 곤했다. 세계와의 무섭고도 영원한 작별을 나는 잠 속에서 이루었다. 그날 밤의 잠에 관하여 나는 말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을 겨우겨우 말하기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한다. 하여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보다 먼저 나를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신선하고 반가운 시간의 손님이었다. 나는 그 손님을 맞아 수줍고도 친밀하게 사귀었다. 우리는 예절 바른 벗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내 팔다리 속에는 내가 모르던 새로운 힘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신생(新生)했다. 그 힘들은 솜병아리의 부드러움과 귀여움, 그리고 독수리의 강력함과 정확함을 갖춘, 경이로운 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웅크리고 앉아 나는 이 전율과도 같은 힘을 끌어안고 진저리를 치면서 쩔쩔매었다. 한 개씩의 개별적인 음(音)이 사라지고 다가오면서 선율을 이루듯이,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힘에 의하여 부드럽게 엉기고 연결되는 시간 위에서의 삶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느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저 토인의 여자가 내 방을 찾아와서 시간 속에서 출렁거리던 그 젖가슴으로 나를 안아주고, 그리고 내가 잠에서 깨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깊이 잠들어 있었으므로 그 여자가 다녀간 기척을 알 수 없었지만, 그 여자가 다녀가지 않았다고도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찾아온 새로운 힘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름 붙이고 나서 나는 혼자 좋아서 웃었다. 말린 조개를 끓인 수프가 그 바닷가 호텔 식당에서 가장 비싼 아침이었다. 나는 내 시간의 손님을 맞아서 그 조개수프를 주문했다. 나는 빈 의자를 앞에 놓고 혼자서 먹었다. 그 빈 의자에는 내보이지 않는, 그러나 만유에 미만한 젊은 시간의 손님이 나와 마주 앉아 수프를 맛있게 떠먹고 있었다.
사랑을 이룬다는 저 속된 말에 의지해서 인간이 희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문명을 통해서 세계와의 합일, 삶에 대한 직접성, 시간과 더불어 짜이면서 흐르기에 도달하려는 꿈은 문명을 제거함으로써 거기에 가려는 꿈과 나란하다. 그리고 사랑 또는 여자, 여자가 아니라면 그저 ‘너’에 대한 내 사유의 전체도 이 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저 나란함이야말로 내 삶 속의 말하여지지 않는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아마도 당신들의 비극과 동질의 것이되, 서로 소통되지는 않는 비극이리라.
++++
***동우***
2015.05.10 05:43
화장, 마지막 분 올렸습니다.
아, 참 은비님.
웹하드에 '화장' 영화가 파일로 올라와 있던데, 다운받아 보내드릴께요.
***김인주***
2015.05.10 17:30
좋은 안내에 따라 <화장> 소설과 영화를 하루 안에 맛볼 수 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고맙습니다. 동우님.
문학에 비해 영상이 역시 못하다 혹은 어렵다고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채플린, 히치콕, 빌리 와일더 어느 영화작가도 마지막 작품을 수작으로 남기진 못했습니다.
요새 영화로는 긴 분량이 아니지만, 글에 없는 것을 불려서 만드는 이야기는 혹처럼 느껴졌고, 소설에 비해 주인공들이 묘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부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시체의 표현대로 썸을 타는 남녀의 심리를 원작에 비해서 과도하게 소비하는 게 아닌지, 조금 더 담백하게 마무리하는 작가의 여운이 더 낫다 싶습니다.
***동우***
2015.05.11 04:42
목사님은 내 겪은바 최고의 영화애호가이며 최고수준의 영화지식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영화 필모그라피에 있어서는 목사님 당할자 없을겁니다.
노컷뉴스에 소개된 목사님에 대한 기사 읽었습니다. (작년 5월 기사더군요)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셨으면서 다시 신학을 하시어 독일 본에서 종교개혁사와 칼뱅을 전공하시고 고향 제주에서 목회를 하시는 연유도 대강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영화까지 그렇게 섭렵하셔서 영화 컬럼니스트로 활동하시는지, 나의 영화편력기가 마냥 부끄럽습니다.
제주선교역사, 기록문화에 대한 관심, 제주방언으로 쓰고 싶은 성경, 영화를 중심으로 신앙관점 포인트를 기독교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을 쓰고 싶으시다는 열망 또한.
영화 '화장'은 나도 곧 감상하려 합니다.
화장에 관하여는 연후에 말씀 나누기로 합니다. ㅎ
***동우***
2015.05.13 04:48
'화장' 보았습니다.
<요새 영화로는 긴 분량이 아니지만, 글에 없는 것을 불려서 만드는 이야기는 혹처럼 느껴졌고, 소설에 비해 주인공들이 묘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부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시체의 표현대로 썸을 타는 남녀의 심리를 원작에 비해서 과도하게 소비하는 게 아닌지, 조금 더 담백하게 마무리하는 작가의 여운이 더 낫다 싶습니다. 요새 영화로는 긴 분량이 아니지만, 글에 없는 것을 불려서 만드는 이야기는 혹처럼 느껴졌고, 소설에 비해 주인공들이 묘한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부분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시체의 표현대로 썸을 타는 남녀의 심리를 원작에 비해서 과도하게 소비하는 게 아닌지, 조금 더 담백하게 마무리하는 작가의 여운이 더 낫다 싶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
火葬에다가 化粧을 떡칠하여 粉粧을 넘어 變裝을 시켜 놓았더군요.
'닿을 수 없고 모호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
그 대상성으로서의 추은주라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만들어.
김훈의 문학언어와 임권택의 영상언어는 그 지향하는 바가 서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영화 '화장'에 대하여 기회나면 따로 얘기하지요. ㅎ
***eunbee***
2015.05.10 06:01
김훈의 -화장-오늘 올려 주신 것 읽었어요.
이 소설, 단숨에 읽어지는 어떤 긴장, 속도감, 빠른 호흡으로 읽히는데, 끝에 시원한 느낌이 끼어드는건
뭘까요. 아래 이분의 다른글 읽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네요. 나중에 다시 쓸게요.ㅎㅎ
영화.
메르시 보꾸~
***동우***
2015.05.11 04:23
'화장'은 오늘 다운 받을 작정이고, 좀 있다 우선 '국제시장' 영화 전송하겠습니다.
천만관객짜리 영화라는데 영화적으로 세련된 영상은 아닙니다.
신파가락의 유치함과 오버 멘탈(?)스럽지만, 이 나라에서 비비대며 살아온 우리 연배로서 한조각 감동 없지 않습니다.
남포동, 광복동, 부평동 국제시장 일대의 풍광과 더불어 나는 대목대목에서 콧등이 시큰합디다. ㅎㅎ
'화장'은 다운받는대로 곧 전송하겠습니다.
내키실적 전번 알려주시고. ㅎ
***eunbee***
2015.05.11 05:57
동우님,
이제 막 저녁식사 마치고, 설거지 끝.ㅎ
유럽, 열시가 넘도록 푸른저녁 하늘...^^
오늘이 이곳 어머니날이에요.
은비는 자기엄마께, 내 딸들은 또한 자기들 엄마께...
바쁘고 즐거운 하루였어요.
지금 컴을 열어보았자 인터넷 먹통이니,
보내주신 영화 내일 볼거예요. 은비엄마랑 봐야쥐~~ㅎㅎㅎ
지난번 분당있을 적 보내주신 영화 두편도 이곳에서도
볼 수있을테니, 큰딸 오면 보여줄래요.
은비에미는 며칠전 리스본행 야간열차 보라했더니
자기는 책이 더 좋대요, 글쎄~ ㅠ
오늘은 올려 주신 소설이 무언지 이제 읽으러 가요.
이글 쓰는데 정신 팔려,^^ 오늘 포스팅된 글도 안봤어요.
모바일 창의 맹점.ㅎ
어제 김훈의 에세이, 잘 읽었어요.
귀한 것, 좋은 것 ,읽고 볼 수있게 해주셔서 진짜 많이 감사해요. 동우님.
***동우***
2015.05.12 04:44
프랑스에도 어머니날이 있군요.
아버지 날은 없어요? 거기도 아버지는 찬밥신센가? ㅎ
참. 국제시장은 보셨을라나?
-독서 리뷰-
<언니의 폐경>
-김훈 作-
***동우***
2016.01.18 04:17
김훈의 '언니의 폐경'은 2005년 제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50대의 두 자매 이야기.
놀 속으로 스미듯 사라지는 비행기, 언니는 무연한 한강 하구를 무연하게 바라봅니다.
늙어간다는.. 사랑이라는.. 배우자라는.. 자식이라는..
그리하여. 자매는 자기 앞의 生을 조용히 껴안습니다.
잔잔한 허무 속에 관조적 아름다움이 있는 소설입니다.
김훈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잠시 여성이 되었던가 봅니다.
폐경기에 이른 여성의 심리는 물론 여성의 생리적 신체적 현상이나 습성, 신변용품이나 의상등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리도 정치(精緻)하게 묘파할수 있었을런지요.
김훈은 천상 소설가 팔자로군요. ㅎ
이 소설, 어머니로써 잠시 우울한 친구에게 드립니다.
***mayblue***
2016.01.18 17:07
남자에게서 듣는 여자의 페경이야기 라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동우님..ㅎㅎ
김 훈 작가, 말씀처럼 천상작가십니다.^^
두 자매 이야기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으로 읽어 내립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소슬하고 서느러운 정서...
언니의 황혼은 더욱 서느러울 듯 합니다.
혼자된다는 것 생각만해도 이리 아득해지는걸요.
수다스러워진다는 것
혼잣말 하는 것
하나마나한..
바람처럼 나비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말들
저 또한 나이들수록 새록새록 그 의미가 짚어집니다.
동우님...어젠 해운대 나갔다 예상치못한 우박이 쏟아져 깜놀했어요. ㅎㅎ
편안한 저녁맞으시길요^^*
***동우***
2016.01.19 11:40
그러게요, 천상 소설가 팔자. ㅎㅎ
김훈이 항상 주창하는 말이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 입니다.
자신 주변의 삶을 똑바로 관찰하지 않고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해석하여 글쓰는 자들을 그는 경멸한답니다.
이 소설을 위하여 김훈은 여성의 몸을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문의하고 연구하고 공부하였을겁니다. ㅎㅎ
해운대에 우박이 쏟아졌어요?
부산서 우박 만난지가 언제였더라...
오늘 부산도 제법 춥습니다.
이런 날은 따뜻한 집안에 방콕하시는게 최고일듯.. ㅎㅎ
***동우***
2016.01.19 11:32
여자의 몸이라는 것.
아스라히 초경이 오고, 남자의 몸을 겪고, 아이를 잉태하여, 아이를 낳고, 이윽고 폐경이되어..
여자의 몸은 남자의 몸에 비할바 없이 신비한 것입니다.
그 매카니즘은 거미줄처럼 정교하고 장미잎처럼 섬세하고 개미 촉수만큼 예민하여..
김훈은 저토록 해박한듯 섬세하게 늘어놓지만 남자인 그로서는 어차피 피상일수 밖에는 없을겝니다.
그러나 관념과 궁구(窮究)와 상상이 건져내는 그의 언어는 남자를 입은 나의 몸으로써도 절절합니다.
나이 먹어도 섹스는 남을터이나 여체의 성징(性徵)이 사라진 삶의 느낌을 남자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헤아릴수 없을겁니다만.
무미건조한 결혼생활.. 눈치채지만 내색 않는 남편의 외도.. 시집 쪽에는 여전히 며느리 노릇에 빈틈없는.. 딸이 떠나자 남편이 꺼내는 이혼 제안.. 여자는 함께 살아야 하는지 대답할 수 없었으므로 왜 헤어져야 하는지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두 자매의 저 담담한 받아들임..
산다는 것.
어딘가로 부터 어떤 쓸쓸함이 적셔옵니다.
오늘 북녘의 체감온도는 영하 26도랍니다. (부산은 영하 5도)
영하 26도...
비수같이 감각을 쪼개고 의식을 찌르는 그 추위를 남녘 부산에서는 상상할수 없지요만 옛날 정능의 추위는 기억 속에도 찌릿합니다. (부산 오늘 영하 5도)
건강들 유의하십시오.
***mayblue***
2016.01.19 16:41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고들을 법한 이야기가 내 인생 스토리가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ㅠ.ㅠ
두 자매의 담담한 받아들임...
나 자신을 아무리 객관화시킨다 해도
그게 나의 스토리로 내 눈앞에 펼쳐질 때
여자로서의 생이 아마득히 멀어져갔답니다.
폐경처럼요....
내겐 결코 불행한 결혼 생활은 없어야한다고
내 아이에게만은 연주처럼 가슴 아픈 일은 보이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앙다물고 참고 살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고 말더군요.
언니 못지않게 동생이 겪는 삶도 참으로 스산하기 이를데 없네요.
그리고 그것이 나일줄은요.
여자로서의 인생살이 참으로 모질다는 생각들어요.
어쩌면 연한 순같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깊고 깊은 한겨울 매서운 한파를 견뎌내는 것 같은..
제겐 결코 담담하지 않더군요.
죽음처럼 웅크리고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기 전까지는요.
위험천만한 풍랑을...
원수가 원수로 여겨지지 않는 담담함이 내 것이 되는 것
제 경우엔 제 힘으로 이겨낼 여력이 없었어요.
동우님...
오늘도 소설 속의 여자가 제 삶을 투영하고 반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제가 의지하는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 다시 회복할 수 있었지만요....
테라스 건조대가 세번이나 쓰러지고 이웃집 빨래가 새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아연하게 바라보며
아, 작년 이 맘때쯤 전학한 딸아이 교복을 어렵게 구해 널어놓았다
밤새 사라져서 도둑맞았나 하고 황당해 했는데
알고보니 그 도둑이 바람이었다지요?ㅎㅎ
바닷바람이 거센 부산에서의 두번째 겨울을 동우님 말씀처럼 얌전히 방콕하며 지켜보는 하루랍니다.^^*
***동우***
2016.01.19 22:24
메이블루님.
‘여자의 일생’과 ‘테스’와 ‘선택’과 ‘춘향전’과....그리고 ‘버지니아 울프’
그녀들을 사랑하고 공감합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남성, 나의 페미니즘은 가시에 걸립니다.
메이블루님의 어떤 역정... 섯부른 말씀 지껄일수 없음을..
다만 짐작하고 아플 뿐입니다.
내 딸아이의 리얼리즘이 나의 고통이었음에도.
나는 그걸 감히 메이블루님에게 토로할수 없습니다.
딸아이의 여성을 아비인 내가 어루만지지 못하는 부분...
그나저나.
메이블루님.
부산 겨울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라오.
부산의 봄바람을 본격적으로 겪어보시면.
나는 매년 투덜거립니다.
부산은 봄이 없는 도시라고.
***mayblue***
2016.01.19 22:53
부산의.겨울바람
밤마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더군요.
특히 비가 주절거리는날
정적을 깨고 부산하게 달려가는 싸이렌 소리가
어릴 때 두려움에 떨며 듣던 음산한 슈베르트의 마왕만큼이나
제 심장을 할튀는 듯 하더군요.
봄이 없는 부산의 봄른 다 어디로 갔을까요?
동우님 걸어오신 삶의 구비구비 언덕에 잦아들어.숨어버렸나 봅니다.
그래도 어설픈 부산 풋내기에겐
부산의 봄이 조금만이라도 꽃들의 미소에 머물다가기를 고대해봅니다
***동우***
2016.01.19 22:15
재능과 영리함, 그리고 여기저기서 편갈라 제 목소리만으로 짖어대는 이 사회에서 그래도 처세(處世)를 고루 가늠하는 작가 김훈.
삶을 해석하는, 아니 삶을 느끼는 (김훈은 정의하지 않지요.) 그의 문학적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일겝니다.
사람의 한살이 삶의 근원은 생각도 아니고 관념도 아니고, 몸으로 문대며 밀고나가는 그 구체적인 꿈틀거림 그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관계에 대해서 그의 몸짓은 애매한 것일런지요.
김훈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실망시키지 않는 소설작법...
영리한 작가입니다.
스스로 탐구하여 체득하고 심득하는 사실력(?) 그리고 그가 기자시절부터 닦아온 능란한 문장력으로..
더물어 인간에 대한 그의 관찰력과 천착력과 통찰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연민하여, 자기 앞의 生을 저처럼 지긋하게 받아들이는 두 자매.
여자(동생)가 정부(情夫)로 삼는 남편의 부하직원은 멸종위기를 느끼게 하는 후줄근한 전형적인 루저입니다.
폐경 즈음 저토록 담담하고 스산한 언니도....
저 자매는 자식이나 남편, 가차운 누구에게라도 욕망하라고 다그치지 않는군요.
그들은 알아서들 욕망하니, 이 자본사회에서 어쩌면 스스로 욕망하지 않아도 좋을 저 자매의 식물성은 선택된 사람들의 행운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시댁의 시골 사람들도 그리고 동생의 情夫까지도 우리의 속물적 구체성 속에서 익숙한 인물들입니다.
출세주의와 끼리끼리주의와 혈연주의와 평판주의와 저잘난주의와 뽐냄주의와 소심주의와 아부주의와 눈치보기주의와 루저주의와 도피주의와 패배주의와....
그런데 저 두 여자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쓸쓸합니다.
<다리 긴 새야, 내게로 다가오지 말고 시베리아로 날아가라. 거기에 그렇게 한쪽 다리로 서 있지 마. 거기는 너 있을 자리가 아니야..>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애 앞에 펼쳐지는 시간의 풍랑을 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자의 고요함..
월경에 왜 경 경(經)자를 쓰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몸의 질서야말로 삶의 구체적 경전(經典)일진데..
누가 우리 몸 앞에서 형이상학을 논하나요?
그렇지만 꼭 그런가... 하하, 한번 되물어 봅니다그려.
이 소설을 읽고 한참을 쓸쓸함에 젖었습니다.
투명한 쓸쓸함... 슬픔따위 없는 끼끗한 느낌의 쓸쓸함 말입니다.
술 한잔 하여, 수면유도제 한알 삼키고 일찌거니 자렵니다.
굿나잇.
***정하***
2016.01.22 23:33
이 소설, 동우님 느낌처럼 다 읽고나니 쓸쓸하였습니다.
거기에 보태어 나는 조금은 차가운 그 어떤 기운마져 겹쳐왔지요.
특히 동생의 그 조용하고 차분함이 가져오는 낯섦에서
차라리 투명하게 맑아 차가움이 배인 푸른그늘이 만져졌어요.
나무랄데 없지만, 왠지 덥썩 안아주고 싶지는 않는...그런...
초경의 신비로움도 폐경의 착잡함도 별로 짙거나 심각하게 감지하지 않은 나는(그러고보니 일생이 맹초였습니다 ㅠㅠ)
억지로 꾸며붙이는 말이 아니라 차라리 요즘이 사춘기이며 갱년기이며
폐경을 맞는 매우 복합적인 그러한 상태가 아닐까합니다.
동우님이 웃으셔도 어쩔 수 없답니다.
그나저나 소설가 김훈 님은 매력이 없습니다.
여인의 디테일한 그 무엇들에 너무 빠삭해서....ㅋ
'수면유도제 한알'
저 날 저 글귀를 읽고, 표현키 어려운 감상에 젖어...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목이 아파 침을 삼킬 수 없을만큼 목감기가 심하게..
언제적 걸려본 감기인지요. 삼대구년만인가 하옵니다.
뱅쇼는 전혀 효험이 없었던가 보옵니다. 아직 열나고 기침나고...열나 맥빠짐이지요.
***동우***
2016.01.23 05:46
정하씨.
사춘기의 풋풋함 끼쳐오고,
갱년기에 이른 완숙미 물씬 느껴지는.
매력적인 여성...
내 아내 이름 비슷한 이름의, 당신은 누구십니까?
-독서 리뷰-
[김훈]
<영자> <머나먼 속세> <손>
<영자>
-김훈 作-
***동우***
2016.03.02 05:05
9급행정직 9급법원직 9급세무직 9급경찰직 9급소방직 9급보건직..
'흙수저'가 꿈꾸는 것은 '고작' 9급이고 '무려' 9급이다. <뒷받침 막강한 '금수저'는 5급(고시級)을 꿈꿀수 있으므로 그에 비하면 고작이고, 한 강의실 2백명중 두어명만 붙게 되어 있다니 '무려'라는 것이다.>
노량진.
구준생 (9급공무원 시험준비생)
그들은 고시텔이나 원룸에서 잠자고 트레이닝바지에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고 내려와 이천원짜리 컵밥을 먹고 강의실에 올라가 쪽집개강사의 강의를 듣는다.
공부하는 틈틈이 알바이트를 하여 먹고사니즘도 해결하여야 한다.
그들의 시간은 메말라서 푸석거리고 반죽되지 않은 가루로 흩어지는, 매일 반복되는 건조한 시간들이다.
<내 학과성적은 항상 4.0이 넘었고, 토익점수도 900점 이상이었다. 나는 성격도 원만했고, 나름대로 창의적인 인간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처음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원래 몇번씩은 다들 떨어진다잖아?’하고 생각했다. 두번째로 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혹시 자격증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싶어 운전면허를 땄다. 또 한번 서류심사에서 떨어지자, ‘혹시 내 인상이 안 좋나?’해서 사진을 다시 찍었다. 열번 넘게 떨어지자, ‘혹시 내 전공이 국문학이기 때문이 아닐까’생각 했다. 그런데 영문과에 다니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영문과도 마찬가지야. 요새 영어는 아무나 하거든.” 철학과에 다니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네가 나보단 낫지 않니?” 그 말을 똑같이, 법학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하자 그는 꽁초를 힘껏 빨며 웅얼거렸다. “그것도 옛날 얘기지. 요샌 고시도 잘사는 집 애들이 잘 붙어. 고시는 장거리경주라 누가 뒤를 받쳐줘야 하거든.” 시험에서 한 스무번쯤 떨어졌을 때, 나는 ‘내가 너무 눈이 높은 것이 아닐까’생각했다. 그래서 작지만 건실한 회사에 원서를 부지런히 넣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서른번째 낙방을 했을 때,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안고 중얼거렸다. “혹시 나는 정말 괴물이 아닐까?”> -김애란의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 中에서-
김애란이 그러하더니, 김훈의 '영자'는 더욱 내게 암담하구나.
이 나라 젊은이들, 정녕 저것이 현실인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손녀를 안도하는 친구의 한숨이 십분 이해가 간다.
바칼로레아 (들은 풍월로 아는바, 암기가 아닌 사유능력을 평가하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 준비에 여념없으면서 스키 바캉스를 보내는 외동손주에 대한..
프랑스에서는 적어도, 事자와 士자의 쓰임새라던가 연대순 정렬하기라거나 사육신이 읊었다고 하는 싯구의 의미따위를 묻는...변별력놀이, 형식놀이, 껍대기놀이, 기억놀이, 관념놀이의 공부가 아닌지라.
그런걸로 어느놈은 인삼뿌리(5급)를 먹이고 어느놈은 무시뿌리(9급)을 먹이는 세상이 아닌지라.
무시뿌리도 먹지못한 (200명중 두어명 합격하고 나머지 198명) 청춘들은 또 어떻게 방황하다가 어디에 고단한 발을 붙일 것인가.
그리고, 저 섹스의 모습은 참으로 슬프다.
요즘 청춘들의 성적자유로움의 풍조는 분명한듯 하지만 그걸 뭐라하는게 아니다.
노량진 어름의 저 섹스의 무참함이 슬프다는 말이다.
섹스라면 적어도 자웅(雌雄)이 만나 서로 나누어 즐겨야 할게 아닌가.
"넌 니꺼만 알면 돼."
저건 사랑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라 타산적 마스터베이션일 뿐이다.
구준생의 강박적 의식 속에는 청춘마저 증발해 버리고 만 것인가.
남자와 여자사이 그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감정은 성적인 것이어야 할텐데, 섹스가 일상의 모든 것보다 부차적인 것이어야 하다니..
정말 가여운 청춘들이다.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님의 요청으로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
그렇게 부록처럼 섹스를 나누고 익명으로 가뭇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문득 그것이 사랑일지라도 말이다.
노량진에는 사육신의 묘가 있다.
그 옛날 부당한 왕조에게 찢겨 죽었던 그들의 진하디 진한 생명.
그토록 굳건한 불사의 신념의 형해라도 노량진에 깃들지 말라는 법은 없을터인데..
노량진의 청춘들, 구준생에게 물어보자.
네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무엇이냐.. 네가 도모하는 바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냐.. 너의 보람은 어디서 찾을테냐...
이런 질문들 너무 어려울듯, 한마디로 묻자.
'네 소원은 무엇이냐'
이 소설 읽노라니 이 질문에도 대답하기 어려워할 것 같다.
그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헬조선'. 괜한 말이 아니로구나.
한 십년 후면 청춘의 현실로 맞닥뜨릴 우리 비니미니. (그 애들도 금수저는 아닌데.)
안타깝고 부끄럽다. 그리고 슬프다, 이 나라.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젊은이들을 살만하게 할 길을 모색하고 모색하여야 한다.
근데 누가?
내 아들아
그러나 너의 의기소침 도대체 무어란 말이냐.
무서워 피하는거냐 숨는거냐
<머나먼 속세>
-김훈 作-
***동우***
2016.03.21 04:33
김훈의 '머나먼 속세'
<공이 울렸다. 관중석에서 함성이 일었다. 빈 몸속을 바람이 쓸어가는 듯했다. 강력 조명이 쏟아져들어왔다.>
죽여라 죽여! 으깨버려라! 사각의 링안에서 벌어지는 격투에 관중은 열광한다. 그러나 날 것의 그 폭력은 관중 즤들 것은 아니다. 남의 섹스를 훔처보는 관음증의 헐떡임이다.
선수에게는 상대의 머리와 상체만이 보일 뿐 그 너머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관중의 함성은 머나먼 우레소리일 뿐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상대에 대하여 수련한 권투이론으로 가득차 있고 몸은 그에 따르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릴 뿐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억지로라도 적개심을 끓어 올려야만 한다. 상대를 향한 적의가 빠져나가려는 뒷다리를 줄곧 수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권투과학적 원칙이다
어쩌면 속세살이의 어떤 알고리즘이 거기 숨어 있을법도 하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빈 등대에는 풍행계만이 이리저리 돌고있는 외딴 섬 풍도, 퇴락한 절간 난각이라는 법명의 주지스님. 이름없는 개 한마리, 연못에 홀로 잎새를 떨구는 왕버들 한그루. 낙싯꾼을 따라온 여인들, 선착장에서 교미하는 새카만 염소..
권투선수는 주지스님이 갓난아이를 주어다 키운 사미승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발 디딜 곳 없어 보였고 멀고 낯설어서 교신되지 않았지만 필경 끓어오르는 욕망을 감당할수 없었을 것이다.
절에 의탁하러온 수배자를 고발하여 그를 숨겨준 주지스님도 함께 체포케 되자 파계승이 되어 절을 떠났다.
삶과 소멸, 육체라는 것의 그 난망함. (김훈의 '화장')
그리고 이 소설, 절깐과 사각의 링, 사미승과 권투선수...
순차적으로 교차되는 승(僧)과 속(俗)..
사람살이 세상살이 난망함에 대한 메타포가 게 있을까. <수배자 장일식의 혁명이론 '유무전환론'이라는 어휘도 의미심장한듯 하다>
종장에 그는 쓰러졌다.
링 바닥 한복판 NIRVANA의 V자의 계곡 사이에.
그리고 카운트 텐을 다 헤아린 후에도 일어서지 못했다.
그에게 링 바닥의 마루는 흔들리지 않아서 편안했다.
떠나는 순간, 나는 승(僧)일런가 속(俗)일런가.
짐작건대 이냥저냥 비승비속(非僧非俗)의 흔들림 속에 가리로다. ㅎ
<손>
-김훈 作-
***동우***
2016.04.27 04:16
옛날 '마당깊은 집'인가 '샘이 깊은 물'인가 하는 잡지에서 박경리의 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취재하면서 손만을 클로즈 업하여 찍은 사진들을 여럿 올렸던. 박경리 손의 표정들이었습니다.
노동에 단련된 주름진 손이었는데, 사람의 신체중 손이라는건 참 아름다운거구나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김훈은 손수 연필을 깎아 손으로 글을 쓴다는데, 소설은 어쩌면 머리에서 풀려 나오는게 아니라 손의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건대.
마음을 은유하는 것이 얼굴이라면, 손은 마음의 언어나 행위일거 같습니다.
행동하는 폭력 희생 욕망 사랑 야만 봉사 기도....
아들을 진술하는 저 어미의 시선은 냉정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나 모정이 약해서가 아닐테지요.
아무리 어미라도 아들의 생애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아득합니다.
사람마다 손바닥에 제 팔자를 움켜 쥐고 있다고 하는데, 혹 손금 불줄 아시나요?
김훈의 단편소설 '손'
오늘 내일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6.04.28 08:17
뼈대와 체면따위 코끝에 건 할머니나 아버지에게는 사랑이 없었나 봅니다.
먼 남녘땅으로부터 서울까지 고작 열살짜리가, 물어물어 어미 냄새 좇아 찾아온 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정도 그다지 절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들의 특이한 취향, 섬세한 감각, 불면증 같은건 애정결핍 때문일테지요.
어미는 예술가를 기대하였을까요마는 아들은 범죄가가 되어,10년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에 수갑되었습니다.
어미는 아들이 구속돼서 재판을 받는 동안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고, 편지도 쓰지 않습니다.
아들의 생애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어미는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는군요.
젖을 빨던 입질의 느낌이 젖 언저리에 남아있고, 아들이 거처하던 방에서는 자신이 낳은 가엾은 수컷의 냄새가 떠돌고 있습니다만
<태어나지 않은 존재처럼 모든 인연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이 모두에게 편할 것이었다... 철호의 형기가 종신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 마음의 먼 곳에 숨어 있었다.>
1인칭으로 얘기하는 어미, 담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외양은 저리 차거울지라도 관계는 목숨으로서 뜨거운 것일까.
가슴을 두드리며 울고불고 통곡하지 않더라도.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천지간에 홀로 울부짖는 개...
목수가 데려온 분홍색 혀가 날름거리는 영롱한 생명의 개....
아들에게 강간당하고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한 연옥이.
<여자는 오른팔로 대원의 목을 끌어안고 왼손으로 대원의 겨드랑 밑을 움켜쥐고 있었다. 여자의 아귀힘은 강했다. 신참 대원이 여자의 움켜쥔 손을 폈다. 손금에 물이 잡혀 있었고 손가락은 무언가를 자꾸만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연옥의 아버지 목수는 그래서 자신의 딸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한사코 믿고 싶습니다.
아버지 마음에는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자살이거나 자살아닌 딸의 죽음의 의미가.
아마 생명과 사랑에 대한 무엇일듯 싶습니다만...
<제7한강교를 건널 때마다 강물로 몸을 던지던 연옥이처럼, 아직 죽지 않아서 구조대원의 겨드랑 밑을 손으로 움켜쥐던 연옥이처럼, 그리고 이 세상을 벗어나는 맨 끝 쪽으로 오토바이를 질주하던 철호의 그 공범들처럼, 죽은 연옥이의 아버지인 그 목수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말이 되어줄 수 없는 말이라 하더라도. 무슨 말이든지 우선 던지고 싶었다.>
여자는 목수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영롱한 생명에 대해서 말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미완의 뒷부분, 느껴지건대 여자는 목수와 여자와 남자로서 합쳐질듯 싶습니다.
생명에 대하여, 생명끼리의... 실체적 관계의 화해와 속죄.. 그 이상 어디 있겠어요.
'손'이라는 메타포는 명확하지 않은채로, 여인의 허무주의는 내게 짙습니다.
김훈의 것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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