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김훈 <칼의 노래> <명태와고래,저만치혼자서,고향의그림자> (1,4,3,3)

카지모도 2019. 11. 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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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칼의 노래>

-김훈 -

 

***동우***

2017.11.22 03:26

박완서가 그랬나요한국문단에 벼락같은 축복이라고.

김훈의 '칼의 노래'

10회 정도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함께 읽어요.

읽으셨을테지만김훈이 그리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한번 더... 

 

작가가 쓴 <충무공 연보> <인물지> 1,2회 앞에다 올립니다.

 

***달새***

2017.12.02 19:19

덕분에 깨어있는 밤이 심심치 않겠네요감사합니다.

 

***동우***

2017.12.03 04:39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새***

2017.12.02 19:14

허락도 없이 선생님을 제방으로 모십니다.

 

***동우***

2017.12.03 04:39

얼마든지.

근데 달새님곧 본문은 삭제될 터이니 빨리 스크랩하시기를.

저작권 관계로본문은 친구공개로 <리딩북카테고리에 옯겨 놓거든요.

이 점 양지하시기를

 

***동우***

2017.11.26 04:03

이순신이라는 한 개별적 인격이 저토록 삼업하듯김훈이 문장을 대하는 자세 또한 삼엄합니다.

김훈의 말.

<"칼의 노래"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썼는데그 전에는 "꽃은 피었다"라고 써놨어요다 써놓고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고심참담한 끝에 "꽃이 피었다"로 고친 거예요. '꽃은 피었다' '꽃이 피었다'가 어떻게 다른 것인가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것은 'Flower bloom'이라는 물리적 사실을그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고, '꽃은 피었다'는 것은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에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주관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그러니까 '꽃은 피었다'라고 말할 때 그 말하는 자의 정서의 내용이 무언지는 알 수 없어요그것은 그만 아는 거예요. '꽃이 피었다'라는 것은 사실을 진술하는 문장이고, '꽃은 피었다'는 것은 의견이나 정서를 진술하는 문장인 것이죠그러니까 조사 한 마디에 따라서 세계가 달라져버리는 것이죠내가 쓰고자 원했던 문장은 '꽃이 피었다'였어요내가 이걸 만약 '꽃은 피었다'라고 썼으면 나는 망하는 것이에요완전히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죠이런 조사 하나하나를 짚어 넘어가자면 정말 힘든 문장이죠. '꽃은 피었다라는 문장을 나는 뽕짝이라고 생각합니다뽕짝이것은 트로트인 것입니다내가 원하는 문장이 아니에요내가 원하는 문장은 조사 ''에 있는 것이죠그러면 나머지 정서인간의 주관의견느낌 이런 것들은 그럼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난 그런 것들이 이 사실 안에 이미 들어와 있기를 바랍니다그것이 가망이 없다 하더라도 ''라는 조사를 단념할 수는 없는 것이죠그것이 가령 문체라고 할 때 문체의 체는 '' ''이냐이 사이에서 대부분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언어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언어를 다루는 자의 치열함.

그리하여 나의 언어에 대한 절망감.

곁의 사람들에게마저 짖어대고 있을 뿐이니.

마음을 말할줄 몰라서.

 

***동우***

2017.11.27 10:01

戰場 이순신에게는 희망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빠른 리듬으로 이순신의 절망과 허무를 그려내는 솜씨.

김훈은 이 시대의 문장가입니다.

 

아래 김훈의 이야기들이 소설 읽기에 도움 보태리다.

<한국어를 쓴다는 것은 조사를 쓴다는 것입니다한국어를 읽는다는 것은 조사를 읽는다는 것이죠한국어는 조사에 의지합니다조사를 읽지 않고는 문장을 이해할 수 없어요형법에 보면, “타인(他人)을 기만(欺瞞)하여 재물(財物)을 편취(便取)하는 자를 사기(詐欺)라 한다란 표현이 있는데한국어는 조사 뿐입니다남을 속여서 돈을 뺏어먹는 자를 사기라 한다고 하면의미 규정력이 떨어집니다.>

<허무적이 아니냐는 비난에 대한 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나는 이념적 당파성의 편은 아닙니다...난 임진왜란을 쓰더라도 이순신을 씁니다편협하죠인간은 계급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라는 전제가 인류 보편에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개별적 존재라는 전제를 충족하지 않는 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문체는 처음에는 긴문장을 썼어요한 문장이 원고지 5-6매에 해당했습니다한 센텐스가 완벽한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칼의 노래에는 짧은 중중모리를 썼습니다나중엔 힘이 빠져서 중모리밖에 안됐죠진양조로는 어림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휘모리나 자진모리로 나가자는 전략을 썼어요.>

<나는 한자의 긴장감을 좋아합니다. “최근접 거리란 말이 갖는 긴장감은 “가장 가까운 거리라는 말과는 다릅니다나의 편견은 올바른 것이 아니길 바라는데나는 그렇게 씁니다. “칼이 들어가 적을 살()하였다라고 쓰지 “칼이 들어가 적을 죽였다고 쓰지 않습니다. “죽였다고 말할 때는 연민이라든지 죽임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인간의 정서가 느껴집니다조선시대 병법은 다 “()”이라고 나옵니다()하는 것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동작을 의미하는 기술용어입니다이걸 비난하더라도 그걸 쓸 수 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을 가지는 것이죠.>

 

***동우***

2017.11.28 04:19

교착된 전쟁.

거대하고 완강한 추상의 입니다.

추상이지만 그 살기(殺氣)는 찬란하고 영롱합니다.

허깨비 임금은 사무치게 울고임금의 언어는 다만 울음의 헛된 변용일 뿐입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보이지 않았지만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끼니같은 것들은 칼로서 베어지지 않습니다.

그 상황 속이순신은 칼로써 울 따름입니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다. -김훈-"

 

***동우***

2017.11.29 00:26

전쟁의 리얼리즘.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태스크 포스)의 맨탈리티.

명분론만의 무능과 망상적 야욕으로 몸이 단조선의 임금(인조)과 일본의 간바쿠(히데요시)

그들이순신에게 추상이듯 사무라이에게 있어 또한 그러할 것.

호리(毫釐)도 개별적 은 없으리.

소실점으로 소멸하는 칼날의 끝.

이 잇다면 오로지 그곳에 있을 것...

일본 드라마.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저 무렵.

사무라이들의 모습들.

내재적 접근이 아니더라도내 연민 또한 보편이리이다... 

 

***동우***

2017.11.30 06:16

이순신 후임 통제사가 한산으로부터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옮긴 곳이 통영입니다.

통제영의 약자 統營이 도시이름이지요.

고풍스러운 거대한 목조건물 세병관(洗兵館)에 갔더니 그 옆에 12공방을 복원하여 조성해 놓았더군요.

군수품을 비롯한 각종 공산품을 제작하는 공방들, (무기제작 야장방,상자방,소목방,은방등...)

유명한 통영 공방그 기원이 바로 이순신의 한산통제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앙정부로부터 병참공급 한줌 기대할수 없으니 모든 것을 자급(自給)할수 밖에 없는 전쟁. (병참 뿐입니까병력 또한)

이순신은 그토록 어려운 전쟁을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거꾸로저처럼 징징 짜대는 임금에게 물산을 보내기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이순신이야말로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불세출의 인물입니다.

싸움하는 테크니컬 스킬사람을 통솔하는 휴먼 스킬핵심을 파악하여 처리하는 컨셉추얼 스킬뿐 아니라그 너머까지.

보통보다 월등하게 큰 사람이 내려다보는 세상그가 느끼는 허무...

 

***동우***

2017.12.01 04:21

이순신에게는 죽이되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없었습니다.

집체적(mass) 개념만으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이순신은 늘 개별성 앞에서는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칼은 중언부언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적들은 다들 각자 죽었을 것이다적선이 깨어지고 불타서 기울 때 물로 뛰어든 적병들이 모두 적의 깃발 아래에서 익명의 죽음을 죽었다 하더라도죽어서 물 위에 뜬 그들의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적어도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그리고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나는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았다포로들은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그들을 울게 하는 죽음이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우는 그들의 울음과 그 울음이 서식하는 그들의 몸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였다.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그때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나의 적은 전투 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적에게 물어보아도 적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임진년의 여러 연안포구의 골짜기와 갯벌에서배가 깨어져 육지로 달아난 적들은 무수히 뒤엉켜 울었다썰물이었으므로 뭍까지 쫓아 올라가서 죽이지는 못했다부대를 잃고 퇴로를 잃은 적들은 갯벌의 바위틈이나 물고랑에 게처럼 모여서 울었다무수한 적들이 울어대는 울음소리는 여름날 논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처럼 서로 비벼지면서 갯벌을 넘어왔다그때적들은 죽기로 작정한 자들처럼 필사적으로 울었다적의 울음의 기세는내 함대의 정면으로 들이닥치던 적의 공세를 닮아 있었다그 울음은 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울음을 모두 소진한 뒤에울음의 끝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맹렬한 울음이었다싸움을 끝낸 기진한 함대가 대열을 돌려 모항으로 돌아갈 때그 울음은 포구 어귀까지 들려왔고 적들의 울음 위에서 갈매기가 울었다적들의 울음이 개별적인 울음이라는 것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칼로 베어지지 않는 그 개별성이 나의 적이라는 것도 임진년에는 알지 못했다벌목 작업중 포로 2명이 압사한 산비탈에서 나는 허리에 찬 환도가 무거웠다.>

 

***동우***

2017.12.02 04:17

수급(首級)

전공(戰功)을 평가하는 지표가 잘린 사람의 머리통이라니.

추상의 적을 향해 단추 하나 눌러 대량 학살하는 현대전과그 야만성(野蠻性)의 정도를 운위(云謂)할 수는 없겠으나 실제적 느낌은 끔직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코와 귀를 잘라 오라했답니다일본에는 조선인의 귀무덤(耳塚)이 있지요.)

살육의 광풍 속에서는 사람 머리통 쯤이야 돼지대가리와 다를바 없었으리다마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는저 형식적 평가주의 관료주의의 폐해.

더구나 해전(海戰)에서야 한두개 수급 따위가 전황(戰況)과 무슨 상관이리까.

수천 수만이 한꺼번에 물에 빠져 몰사(沒死)하는 海上戰에서.

"공로를 세우더라도 이익을 탐내어 다투어 먼저 적의 머리를 베려다가는 도리어 해를 입어 죽거나 다치는 자가 많게 되는 예가 있으므로 사살만 하면 비록 목을 베지 못하더라도 힘써 싸운 자를 제일의 공로자로 정하겠다너희들의 용전 여부는 내가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이순신-"

이순신의 實事求是.

"네번을 싸워 화살에 많은 수의 왜적이 죽었는데도 머리를 벤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경상우수사 원균은 싸우고 난 이튿날 협선을 타고 왜적의 시체에서 머리를 베었고경상도 연해의 뱃사람들이 화살에 맞아 죽은 왜적을 머리를 많이 베어서 신에게 가지고 왔습니다그렇지만 신은 다른 지방의 장수로서 그것을 받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원균에게 바치라고 일러 보냈습니다" -이순신의 장계-

"비록 머리를 베지 않았더라도 마땅히 힘써 싸운 자를 제 1공로자로 정한다고 여러번 강조했기 때문에 목을 벤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경상지방의 공로를 세운 장수들의 경우작은 배를 타고 뒤에서 관망하던 이들이 왜적선 30여 척을 부수자 떼를 지어 머리를 베었습니다." -이순신의 장계-

 

***동우***

2017.12.03 04:35

오래 전 부산시청 강당강연과 작가와의 대담에서 한 김훈의 말을 대충 기억합니다.

그의 대학 3학년때 난중일기를 처음 접했을적한 장수의 병영일지를 읽으면서 느낀 전율 云云...

<난중일기그 안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게 아니다매일의 싸움을 감당해낼 수밖에 없는 무인이 있을 뿐이다문장가도 아니요전쟁터에서 적을 죽이고 아군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그럼에도, '그분의 문장이 무척 좋았다.'..슬픔비통함이 적지 않았을 것이나무인의 고통이 그 문장 안에 다 있다깔끔하고 냉엄한무인이 칼 한 번 휘두른 것 같은 문장이다... 나는 그런 문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칼의 노래'에서 그 문장을 흉내 냈다...이순신 장군은 부하를 죽이는 날도 선명하게 글을 썼다... 무자비한 것이 아니라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해야 했던그는 장군이었다...'거듭이 나오면 무서웠다거듭 군율을 어겼다이런 식이다그러면 죽을 거거든그분은 부하를 베었다라고만 썼다딴 말이 없다그리곤저녁에 바람이 불었다로 끝났다... 그 글이 미치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군은 바람이 불면 뻘 위로 배를 올려놔야 한다배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그러니 개인 정한이나 원한이 없다... 저녁에 바람이 불었다,에는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나는 그런 문장을 지향하고자 했다...그는 빠뜨리지 않고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일찌기 나 또한 난중일기를 읽고 김훈의 어름에는 못미치더라도 나름 감동하였던 사람입니다.

김훈 역시 문장으로 중언부언하지 않습니다만, '칼의 노래'의 컨텐츠는 얼마나 몽롱한 것입니까?

권력폭력제도... 關係本能僞善貪慾....

세상사와 한살이 삶과 개별적 인간성이 일호정연(一毫整然)한 모습이라면 그건 거짓입니다.

부조리와 모순.

단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버리는 알렉산드로스.

그러나 이순신의 고르디우스 매듭은 난마처럼 줄줄이 얼킨 것이라 단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건 칼로 벨수 없는 추상의 것들입니다.

칼로 벨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마음 뿐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호쾌함과는 전혀 다른 깊은 슬픔으로.

자신의 마음 속 그것들을 베어버려야 하는 고통그곳에 이순신의 실존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 칼은 보이지 않는 적을 벨 수 없었다나는 두개골 속이 가려웠다나는 맑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이 세상과의 싸움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헛것은 칼을 받지 않는다헛것은 베어지지 않는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한산 통제영에서 그리고 그 후의 여러 포구와 수영에서 나는 자주 식은땀을 흘렸고때때로 가엾고 안쓰러워서 칼을 버리고 싶었다.>

<눈으로 본 것은 모조리 보고하라귀로 들은 것도 모조리 보고하라본 것과 들은 것을 구별해서 보고하라눈으로 보지 않은 것과 귀로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조정을 능멸한 죄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는 죄.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물러설 자리 없는 자의 편안함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사지에서는 본래 살길이 없었다그러자 몸의 깊은 곳이 자꾸 뜨거워져 갔다성욕 같기도 하고배고픔 같기도 한 것이 자꾸만 내 속에서 끓어올랐다.>

<히데요시는 그러하되물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그 죽음의 물결은 충()이나 무()라기 보다는 광()에 가까웠다때때로 내 지휘의 위치가 진의 후미일 때 내 부하들의 창검에 풀처럼 베어져나가는 적병들의 모습과 깨어진 적선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던 피의 물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그 죽음 너머에서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히데요시를 생각했다그때도 히데요시는 또 다른 길삼봉이었다알 수 없었고 별 수 없었고 조준할 수 없었다벨 수 없는 것들 앞에서나는 다만 적의 종자를 박멸하려 했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나는 고쳐 쓴다나는 내 생물적인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바다에서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죽음을 가로지를 때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여진의 몸 속은 평화로웠다평화롭고 뜨거웠다산 것의 몸 속에는 울음 같은 것이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나의 적의 공세 안에 적의 죽음이 내포되어 있기를 바랐다달려드는 적의 살기 속에 적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내가 적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적에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더라도 나는 적에게 이미 내포되어 있던 죽음만을 죽일 수 있었다.>

<그 날 저녁에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나는 갈 것이었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난중일기와 여러 옛 기록들을 섭렵하면서김훈에게는 이순신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긴 모색의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 속 인물이 아닌하나의 고독한 캐릭터를 완성해 갔을테지요.

김훈의 칼의 노래.

함께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좋은 휴일을.

 

***최미경***

2017.12.03 22:52

칼의 노래를 다시 읽으며 하루하루 행복했습니다.

동우님의 댓글이 달린 날은 더더욱이요.

이제야 용기내어 인사드립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동우***

2017.12.04 08:23

어쭙잖은 리딩북 읽고 행복하셨다니 다시없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고맙습니다익명의 애독자 최미경님.

자주 들러주십시오.

 

***눌언***

2017.12.04 07:40

고맙습니다읽었던 책을다시 부분 부분 나누어 읽는 재미참 좋았습니다.

 

***동우***

2017.12.04 08:24

고맙습니다.

변함없는 오랜 애독자 눌언님...

 

 

 

-독서 리뷰-

 

[[김훈]]

<명태와 고래> <저만치 혼자서> <고향의 그림자>

 

 

<명태와 고래>

-김훈 -

 

***동우***

2016.08.08 04:41

 

김훈의 '명태와 고래'

북녘의 어래진과 남녘의 향일포.

두 곳 모두 배들이나 모양이나 냄새가 다 마찬가지여서 배들이 선적지가 아닌 다른 포구로 들어가도 낯설지 않은 그런 곳입니다.

바다에 무슨 고향과 타향의 구분이 있으며 바다를 가로질러 무슨 경계선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부 이춘개가 어디 한번이라도 이데올로기를 넘나들은 적 있나요.

13년 동안의 감옥에서 풀려난 이춘개.

<향일포의 기억은 희미했으나벼락치듯 갑자기 교도소를 나가라고 하니 천지간에 가야 할 까닭이 있는 곳은 없었지만 연고지는 거기 밖에 없었다끌려와서 갇힌 것과 풀려나서 돌아가는 것이 모두 난데없어서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헛것처럼 보였다.>

 

예전 아들이 힘 센 아이의 폭력에도 그림을 그렸듯이춘개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의 제목은 모두가 '바다와 마을'입니다.

<긴 가로그림 속에서봉우리들이 일어서고 잦는 산맥 아래로 포구의 시설물들이 일출의 빛을 받고 있었다흰 겨울 산맥이 뼈를 드러내며 이춘개의 화폭 위쪽으로 흘러갔다아침바다는 빛과 어둠이 섞여서 출렁거렸다빛 한 가닥이 향일천 물줄기를 거슬러서 상류로 올라가며 고래 그림 바위 쪽을 향했다화폭에 보이지 않지만바위 속의 고래들이 깨어나고 있을 것이었다이춘개의 화폭 가장자리에서작살을 쥔 사내가 고래 등 위에 올라서서 일출의 바다로 나아갔다작살은 사내의 키보다 크게길게 그려져 있었다고래떼의 항적이 빛의 궤적을 그리며 길게 이어졌고마을이 시간 위로 말갛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저 떠밀리고대가리와 내장까지 모두 다 내어주고순하게 아가미 덮개를 닫고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눈빛만은 오래 살아 있는 명태...

명태는 이춘개에 대한 은유일까요.

그리하여 고래의 항적(航跡)은 그의 이데아를 향한 길이었을까요.

이춘개는 고래를 그리고 선창의 바다 속에 몸을 빠뜨려 죽습니다.

그 바다는 폐유가 엉긴 시커먼 물이었습니다.

 

소설의 초반지형과 바다와 고래와 암각화를 작가는 공을 들여 묘사하였군요.

유구하게 긴 세월과 절실하게 짤막한 현실.

잡힐듯 말듯 어느 쪽이 헛것인지 흐릿한채로김훈의 문장은 역시 좋습니다.

 

뉘라 우리 실존을 무릇 시공(時空)으로부터 따로 떼어내어 이거라고 규정하고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설명할수 있으리까

김훈의 글을 읽고나면 그냥 몽롱한채로 쓸쓸하고 헛헛하고.... 그렇습니다.

얼근한 명태(생태)찌개 안주하여 쐬주 한잔 생각나기도 합니다그려.

<더위와 추위는 사람의 것이었고...>

눈에 띄는 문장입니다.

 

무더위는 오로지 사람의 것사람의 것은 필경은 스러지게 마련이지요

 

***송현***

2016.08.08 11:46

 

더위를 잊는 김훈의 소설입니다

소박한 어촌의 어부로 살아가기도 각박한 한살이네요

 

아마도 김훈님은 반구대암각화를 보신듯        

동해안포구로 달려가 ...

우리의 아무것도 아닌 슬픈 이데올로기까지

침향 미륵불까지....

우리의 오밀조밀한 반도 그중에 고래와 북어가 다니는 동해안 길

제가 좋아하는 먹물까지

그 모래알 같은 비애 사유 세계는 무한입니다

그 여운은 애립니다

 

***동우***

2016.08.10 04:37

 

송현님.

그렇군요.

이 소설의 모티프반구대암각화도 작용하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쭙잖은 리딩북으로 더위를 좀 잊으신다니리딩북의 기쁨이올시다

 

 

<저만치 혼자서>

-김훈 -

 

***동우***

2016.07.11 04:32

 

십년도 더 전이었나아랍 무장단체에게 붙잡혀 참수되었던 김신일씨.

'나는 살고 싶다나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던 그를 두고서 어느 유명목사가 설교랍시고 씨부렸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예수를 증거하면서 의연하게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라고.

그 얘기를 듣고서 나는 고개 숙여 간절하게 그 목사를 향한 저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에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도그마의 입술을 나는 혐오합니다.

삶의 구체성 속에서 종교적 흠결을 찾아 정죄하려는 사제(司祭)의 부릅뜬 눈초리를 나는 경멸합니다.

형이상학으로부터 삶의 구체성 속으로.. 제단으로부터 세속으로.. 내세로 부터 현세로..

'하비 콕스' '세속도시'를 가끔 생각합니다.

가속화되는 과학기술주의의 실증적 현상에 의존한 작금 우리 삶의 양태.

종교적 진리의 축은 차츰 그런 쪽으로 옮겨지는게 아닐까 한느 생각을 문득 하고는 합니다.

그리하여 정처(定處)잃은 영혼의 비극은 더욱 스산하여지더라도 말입니다.

생각건대 캘비니즘의 서슬퍼런 근본주의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질듯 싶습니다.

세속화의 유도리가 어느 정도 허여된 캐톨릭에 비하면 더욱.

 

옆길로 샜습니다만아득한 허무가 한살이 목숨의 슬픔으로 아름다운 이 소설.

김훈의 사상적 기질이 여실하게 만져집니다.

가슴이.. 영혼 어딘가가 먹먹하고 허무하고 쓸쓸하지만마음은 고즈넉하게 푸르러집니다.

김요한 주교도 장분도 신부도 늙어 죽어가는 수녀들도 아름답습니다.

죽음 앞에 성()과 속()의 구분은 허망합니다.

손안나 수녀의 의식 속에서 이름들은 겹쳐집니다.

기지촌에서 몸팔다 죽은 여자의 이름들과 수녀원에서 죽은 수녀의 이름들이.

이엘리나 브리지트김 박크리스티나.... 그리고 박루시아 오수산나 김막달레나...

김요한 주교는 손안나 수녀의 그렇게 착란된 의식을 흔들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그는 장례미사를 합동으로 드리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립니다.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고유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인간의 예절이며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죄를 짓는 것도 죄를 고백하는 것도 죄의 사함을 받는 것도 개별적인 것입니다.>

김요한 주교는 장례미사 때 강론에서 말합니다.

삶은 죽음을 배제할 수 없지만죽음은 치유불가능한 몸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구원의 문이라고.

 

모든 죽음은 개별적인 죽음입니다.

집단의 죽음이란 없습니다.

전장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재앙으로, 사고로 함께 죽는 여럿의 죽음도 낱낱이 그것만의 개별적 죽음입니다.

아아그리하여 죽음은 개별적으로 존엄한 것입니다.

저만치 혼자서..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는 것일테지요.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소월-

 

***eunbee***

2016.07.13 07:17

 

곳곳에 아름다운 문장이 포진된 이 소설,

참으로 깊은 울림으로 읽혀졌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혼에 젖어(특히 김요한 주교님)

잔잔한 힐링으로 변환되는 그 어떤 정서.

 

동우님의

'가슴이.. 영혼 어딘가가 먹먹하고 허무하고 쓸쓸하지만마음은 고즈넉하게 푸르러집니다'

그래요슬픔 끝에 저만치서 가만히 흔들리는 고즈넉하게 푸르러지는

평온함...고결한 영혼에게서 끼쳐오는 안온과 감사...아름다움... 그런...

이 소설은 내게 아련한 영상으로 흔들리는 한 편의 영화로 보여지기도 했답니다.

 

가져가서 다시 읽었고,

다시 읽을 거랍니다.

 

그런데동우님.

끄트머리...

새들마져 얼씬 거리지 않는 바람맞이 언덕에

김루시아 수녀님의 도라지꽃씨를 심어두지않고서...

노수녀님이 간직했던 그 씨앗은수녀님의 사랑소망그 어떤 꿈이었으며

소녀같은 어여쁨...이었을터인데.

그러나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 작가의 깊은뜻이 따로 있겠지요.

 

지수화풍으로 사라져갔다해도몇 알 씨앗을 간직하던 아름다운 노수녀의 흔적(평생의 헌신)

해풍에 젖는 도라지꽃으로 '저만치 혼자서피워올렸더라면. 어줍이의 괜한 투정...

 

'죽은 여자보다 더 가엾은 여자는 잊혀진 여자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가물거리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맴돌아요.

 

연일 폭염

어제는 베란다 방충망에 매미 한마리

올여름 첫손님으로 벙어리 매미가 다녀갔답니다.^^

 

***동우***

2016.07.14 04:42

 

은비님바로 이것.

<수녀원 직원이 수면제와 씨앗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안을 소독했다.>

김훈 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바로 이런 문장일겁니다.

 

저 써늘한 단절...

존재의...무위로운... 허무....

단애에 선듯한,

 

은비님이 어줍이라니요.

방금 'なるほど !' 하고 중얼거렸답니다

 

 

<고향의 그림자

-김훈 -

 

***동우***

2019.01.02 06:49

 

'김훈' '고향의 그림자'

부모형제동앗줄로 꽁꽁 묶어 깊숙하게 파묻힌 관계의 터가 고향일 터.

'내게는 고향이 없다'고 줄곧 뇌이는 아스팔트킨트내 무의식에도 끈질기고 끔찍한 고향이란 존재가 없지 않을 것...

 

김훈의 고향의 그림자.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한해의 시작.

좋은 출발을.

 

***동우***

2019.01.03 06:

 

고향의 그림자.

고향은 지리적으로 어떤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유년의 집합기억의 이미저리일런지 모른다.

그대 기억 속 고향은 밝고 따뜻한 색감인가 아니면 어둡고 차가운 것인가.

무엇보다 내 손주들에게 스며있는 그 애들의 고향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고향은 끊어버려야 할 족쇄이거나 헤어나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었다.

고향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은 몽롱했으나 몽롱할수록 끈끈해서 도려내지지 않는다.

전선(戰線)은 도시 외곽의 강언저리까지 밀려내려왔고 바다를 건너는 여객선은 운항이 중단되었다피난민의 자식들이 깡통을 차고 끼니때마다 밥을 구걸했다남의 집 문 앞에서 밥 좀 줘어를 외쳐대는 목소리는 애달프고도 끈질겼다집 안에서 밥을 다 먹고 치울 때까지 문 밖에서 외치는 밥 좀 줘어는 계속되었다.

역전 광장에서 하루 종일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사내들은 얼어죽은 송장들이었다레이션 박스를 압정으로 눌러서 지은 판잣집들은 포탄껍질로 굴뚝을 박았다.>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은 스스로 범인체포를 포기하고 위에는 허위보고를 올린다.

...나는 조동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건 자기연민이었을까.

 

고향관계의 늪 속에 가라앉아 있는 숙명의 동앗줄.

치매에 걸려 배설물을 지리는 어머니의 거무튀튀한 성기와 오줌을 누일때 들여다보는 딸아이의 발그레한 성기.

부모형제자식...그 관계를 바꾸거나 버릴수 있는가.

어쩌면 삶이 터잡은 가장 주요한 근거가 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불가해함을 끌어안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