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아내의 상자>
-은희경 作-
***동우***
2013.01.12 06:08
은희경(殷熙耕, 1959~ )의 ‘아내의 상자’
199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
먼저 잡설을 좀 늘어 놓는다.
후기자본사회가 무르익어 과연 어떤 양태의 미래사회가 도래할런지지, 나는 가끔 엉뚱한 ‘역사의 변증’을 몽상한다.
국가의 형태라던가 지구촌 팍스적평화(패권국가에 의한 편화질서, 이른바 Pax Romana, Pax Americana 할때의 그 팍스)는 어떤 식으로 존속할런지는 알수 없지만, 미래사회는 신자유주의 가치가 지배하는 지극히 개별적 이기주의로서 유지성립되는 사회거나 변증법적 역사발전 운운의 공산주의적 집단사회는 아닐 것으로.
인류가 선택하는 삶의 양태는 부족사회적인 공동체(部族社會的 共同體)가 아닐까 하는 생각(예감이거나 희망이거나.)을 나는 가지고 있다. (책부족의 어느 독후감에선가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단순하다.
인간성 속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집단적 사고에 의탁함으로 안도하는 실존적 태도)도 있고 집단으로부터 도망가 개별적 고독 속에 침잠하려는 태도 또한 공존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 지극히 개별적(오타쿠나 히키코모리) 특성의 세대같지만 내 보기에 그들이야말로 집단을 벗어난 세계관으로 독립할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에게서 집단적 혹은 도회적 트렌드를 박탈하여 보라(스마트 폰이거나 현대적 성격의 어떤 무형의 것이거나), 생각건대 단 한시간을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개성을 추구하는 듯 하면서도 집단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는 듯한 모순.
그 양 극의 최대공약수가 말하자면 ‘부족적 공동체’가 아닐까하는 순진무구한 내 생각이로다.
이 부족적 공동체는 반드시 혈연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취향이라거나 영혼(?)이라거나, 뭐랄까 함께 함으로 자아의 일체감이나 안도감 같은 그런. (블로그의 친교도 말하자면 그와 같은 본성의 지향하는 바가 아닐런지?)
사랑과 믿음과 목숨(?)의 의탁감(依託感)이 있는, 말하자면 농경사회와 같은 평화로움과 일체감이 있는 삶의 양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아름답게 임종할 수 있는 그런 삶.
생각건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죽음, 불쾌하지 않은 죽음을 꿈꿀수가 없기 싶다.
필경 나의 마지막도 인간성에 내재된 본성이 꿈꾸는 그런 죽음은 아닐 것이다.
고독한 도회적 우울한 그림속(금속성 창백한 의료시설에 둘러 쌓인채)의 최후가 그려진다.
그 외로움의 터널을 나는 겪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물론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는 상징성 짙은 인상적인 작품이다.
여러 방향으로 사유의 비약을 가져다 주는 소설이었다.
남편은 집단 가치관의 규격 속에 반듯한 사고와 행위를 영위하는 사람이다.
보편 편만한 이 시대 이 나라 이 도회지의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
아내를 알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었지만 그가 아내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최선을 다 했다고 스스로 위무한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
<그렇다. 나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그것을 아내는 어떻게 갚아 주었던가. 아마 지금쯤 그녀는 자고 있을 것이다.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전까지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나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녀는 내 동의없이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그녀는 아주 잘 있다. 내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일로 내 사랑에 보답하고 있다. 오늘 그녀의 방은 없어졌다. 멀리에 늘씬한 포장도로가 나타나 있다. 이윽고 시야가 뚫린다.>
아내의 내면 속에 한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남편은 부부관계의 결속성을 추호의 의심없이 맹신하고 있었는데.
부부란 무엇인가.
부부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인가.
윤리인가 법률인가 섹스인가 사랑인가.(안나 카레니나가 떠올랐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위장된 관계 속에 본원적 자아는 어디에서 숨을 쉬고 있을까
아, 부부끼리 ‘본원적 자아’의 결합은 어느 지점에서 맺어지고 있는 것일까.
집단의 규격에서 벗어나 있는 자아가 자아내는 아내의 열등의식.
그 자아는 파괴된 자아, 열성 유전자를 가진 열등한 자아란 말가.
그 자아는 우성인자생존과 열등인자소멸이라는 적자생존의 생물학적 본능으로 임신까지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현실이란 다만 상자곽 속에 칸칸 가지런히 유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규격화되어 상자 속에 정리된 것은 전혀 그녀의 자아가 아닌데.
그렇게 살다 죽는 삶의 양태를 우리는 그대로 방기하여도 좋은가.
겉으로만 살다 죽을랑가, 오오 무릇 호모사피엔스들이여.
<무덤으로 가득 뒤덮인 거대한 산. 그리고는 낮은 하늘과 귀기 어린 정적뿐이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길을 따라간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젖기 시작한다. 화장터와 마을이 갈라지는 길에서 팻말이 나온다. 급하게 마을 쪽을 향해 운전대를 꺾었지만 숲은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무덤만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져 있다. 등 뒤에서 와이셔츠가 땀으로 달라붙는다. 얼굴로도 땀이 흘러내린다. 차창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먼지들이 수북이 몰려와 엉겨 붙는다. 차는 비틀거리듯이 산길을 달리고 달린다.>
내 두 손주, 비니미니의 세상은 그러한 세상이 아니기를 기원할 뿐이다.
***eunbee***
2013.01.12 09:46
모처럼 제시간에 기상한 내가
이 글을 맑은 정신, 집중할 수 있는 정신으로 잘 읽었답니다.
그런데, 아래 댓글난의 동우님 글까지 읽을 수 있으니....
오늘 내 독서는 내 스스로 만점!이라고 점수 매깁니다.ㅎ
좋은 하루. 동우님.
***동우***
2013.01.13 05:55
보아하니, 은비님.
어제 아침 대추 생강차 몽땅 태워버리셨더구만.
아니, 그래 자신이 최우수 블로거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우? 참 내.
그 노랑 왕관(리본이었나?)을 재작년 일년 동안이나 쓰고 계셨으면서..ㅎ
근데 작년에는 어쩌다 왕관이 사라졌대요?
daum에서는 대관식도 없이 씌어 놓고서는 소리소문도 없이 벗겨 가버렸군요. 하하하
은비님. 외국 체류하실적 보다 블로그질 소홀한 까닭, 내 좀 알란가?
다음 달 파리 들어가시면 다시 로코코의 현란함 뽐내실 은비님 궁전인줄도 내 좀 알지요.
(나는 크라운에는 전혀 전혀 오불관언이지만 은비님 파워블로거 되시는건 기쁘다오. 은비님의 컨텐츠를 많은 사람 접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오.)
맑은 정신, 집중할수 있는 정신까지는 필요없을 터인데 그렇게까지.
내 다시 은비님께 권하건대, 재미를 느끼는 만큼만 글읽기 몰두하시기...
소설 글읽기가 무슨 공부리까. 스스로 점수꺼정 매기시고.ㅎ
다만 나의 답글 하나는 꼼꼼 읽어 주시기. 이건 내가 점수매기리다. 우핫핫.
좋은 휴일, 은비님.
***eunbee***
2013.01.13 13:27
그러게요. 내가 블로그 친구님들의 댓글 읽는 실력도 참 부끄럽더라고요.
동우님이 답글쓰는 것을 읽어가며 '아 답글을 이렇게 쓰는 것이로구나.'하며 나를 되돌아본 적 한 두번이 아니라우.
나는 댓글 내용과는 무관한 아무 쓰잘데기없는 딴소리만 늘어놓는것으로 댓글아래 떡하니...주저리주저리...ㅠㅠ
왜 그렇게 살게 되었나 몰라. 에잉~ 슬픈일이에요.
그것이 바로 국어공부를 소홀히 했거나 독해력과 작문에 근본적으로 모자라거나..
그렇기만 하다면 다행이게요? 본문 글을 잘못읽거나 댓글을 잘못 해석해서 엉뚱모드로 빠지는 일은 부지기수예요.
어느날엔가 [노루님] 댓글을 얼른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은비엄마에게 이메일로 그 내용을 써보내면서, 너는 이글을 어떻게 해석해? 하면서 묻기까지 했더랍니다.
나 못살아~~~ㅎㅎㅎㅎㅎ
내 국어선생님이 동우님 처럼 실력파 거나 자상하신 분을 만났어야 하는데....ㅎ
동우님 댓글이나 답글은 잘 읽어요. 매매~ 꼼꼼이~
그렇게 읽어도 반응은 또 삼천포행 아니면 엉뚱모드로....하하핫.
배냇병인가,하고 슬픔을 달랩니다.ㅎㅎ
그렇다고 그간 동우님 답글, 댓글을 잘 살펴 읽지 않아서 동우님이 '나의 답글 하나는 꼼꼼이 읽어 주기....'이렇게 쓰셨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답니다.
맞아요. 소설이니 장편이니 단편이니..하면서 골아프게 잘 새겨읽으려고 애쓰지 말고 즐기면서 그냥 읽혀지는대로 술술~
동우님 답글은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박히니 꼼꼼이 읽어도 머리 안아프니까..ㅎㅎ
아들내외가 아침에 와서 브런치를 함께 하고 지금 갔습니다.
다 태워먹은 대추차 다시 끓이고, 오징어 통구이 굽고, 닭꼬치 굽고,
그리고 내가 별로라서 생전 요리해보지 않았던 '순두부찌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울아들에게 엄마가 난생처음 만든 순두부찌개인데 아들이 워낙 좋아하니까 용기를 내봤어, 했더니, 맛은 그럴싸한데, 국물이 너무 많어, 국물을 이것보다 반만큼되게 끓이면 정말 짱!!이겠다. 하지 뭐예요. 그 순두부라는 재료 자체가 반은 물인지도 모르고, 여늬 찌개 국물만큼 육수를 부었으니.....이렇게 살아요.ㅠㅠ
대추차 태워먹으면서, 급조 포스팅 올린 그 크라운인지 리본인지...ㅋㅋ
동우님 말씀대로 3년이나 이고 있었어도 대관식은 커녕, 어느날 벗겨 버렸다우.
파워블로거 그것은 또 뭣에 쓰는 물건인고? ㅎㅎㅎㅎ
오늘 날씨 포근해요. 이제 일요명화를 보고, 산책을 떠나겠습니다.
동우님도 활기로운 하루 되세요.
***동우***
2013.01.14 06:28
하하, 은비님께서 내 답글을 오독한다던가 한는거 전혀 전혀 아니올시다.
숨어 있는 내 마음속 언어까지도 적확하게 읽어 내시는 은비님이랍니다. ㅎ
은비님의 과공(過恭-지나친 공손함)이 내게 괫씸죄(?)로 작용하여 한마디 한거라오. ㅎ
'다음'의 최우수블로거 3년씩이나 하셨군요.
내 보기에 작년에도 은비님의 블로그질(?실례) 그닥 게으르신것 같지는 않건만 왕관 거두어 가버리다니. 에잇.
순두부찌개는 좀 뻑뻑하게 끓여야지욧. 은비님
아드님 맛있다고 하신건 어머니께 드리는 입발린 상찬일 것.ㅎ
순두부찌개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좋아하던데, 좀 더 분발하시어 파리사람들 입맛에 한번 소구하여 보심이 여하?
***eunbee***
2013.01.14 10:14
ㅎㅎㅎ~
아들 말이 엄마의 의기소침을 걱정한 것인줄 눈치챘어요.ㅋ
분발하겠슴이얏! ㅎ
파리사람들 입? 우선 내입부터...
나는 그 순부두라는 물커덩하고 느끼한 그 음식을
음식점에서 시켜먹는 사람들 입맛이 매우 궁금한 사람이걸랑요.^^
여하?
재고!!! ㅎㅎㅎㅎ
***성연***
2013.01.13 01:03
동우선생님.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리딩북의 의미는 선생님의 코멘트로 인하여 저와 옆지기에게 너무나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제 옆지기 글솜씨 없다고 대신 감사 드려달라고. ㅎㅎㅎ.
다른 독자분들께서도 마찬가질겁니다.
감히 댓글 없더라도 언제나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읽고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
감사합니다. 동우 선생님.
사랑해요~ ♥♥
***동우***
2013.01.13 06:03
성연님.
내외분 손잡고 언제나 떠나는 주말여행, 위 댓글은 어디서 쓰셨을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내 어줍잖은 포스팅은 일단 나를 위한 것이라오. 성연님.
읽어 주시는 분들 계셔서 내가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랍니다.
성연님 제의로 댓글로 코멘트 쓰는 것도, 생각사록 잘하였다는 생각입니다.
나 자신 한번 더 생각할수 있는 필터링으로 역할하니까,
내가 감사합니다. 성연님.
언제 부산 스쳐가는 기회있으면 전화 한번 주시우.
두 내외분 시간되시고 나 또한 물 때(?) 맞으면 자갈치 씨원 쏘주 한잔 쏠 용의 있으니까.ㅎ
부군께도 인사 전합니다.
좋은 휴일을.
-독서 리뷰-
[[은희경]]
<타인에게 말걸기> <인 마이 라이프> <서정시대>
<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作-
***동우***
2014.10.22..05:12
은희경(殷熙耕, 1959~ )의 ‘타인에게 말걸기’
人間은 관계입니다.
인간의 삶은 관계의 삶입니다.
관계맺기에 필사적이건만 실패하는 여자.
그리하여 지독하게 외로운.
여자가 굶주리고 있는 것은 '다정함(친절함)'입니다.
비현실적일 만큼.
그러나 꼬리를 흔들며 부벼대는 불쌍한 강아지는 곧잘 발길에 차입니다.
외로움은 너무나 쉽게 들켜버리니까요.
상처, 피해의식.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쿨하게 살기, 그렇게... 타인에게 말걸기.
친절할 것 같지 않은 냉정한, 관계를 냉소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여자는 좋습니다.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어떤 방어기제의 동병상련일까요?
여자는 남자에게 묻습니다.
<"사실은 너도 겁이 나서 피해버리는 거 아니야?">
뜬금없이 떠오르는데, 혹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외딴 섬, 끔찍한 학대의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여자가 어느날 섬사람들에 대하여 무참한 살륙극을 벌이는 피비린내나는 영화...
"넌 너무 불친절 혀!" 하면서 친구에게도 낫을 휘두르지요.
타인에게 말걸기.
그 말씨와 반사되어 오는 상대의 말씨...
아아, 인간의 삶은 관계의 삶입니다.
그리하여 관계는 목숨입니다.
<인 마이 라이프>
-은희경 作-
***동우***
2014.10.23 04:37
<"나한테는 손님들이 다 똑같이 보여요. 슬플때만 살아있는것 같거든요. 나도 한마디 대꾸했다. 슬픔을 느낄때만 진정한 자기자신인가 봐. 그래서 다들 슬픈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거고. 혜린이 덧붙였다. 그래요, 살아있고 싶어서.">
남자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여자는 슬픔과 사랑으로 남자에게 울었다.
'인 마이 라이프'는 슬픔의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거(居)하는 곳이다.
여자가 그곳 사람이 아닌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다.
잘 있거라.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이여...
전혜린은 내 젊은 날의 통속(通俗)이었다.
통속, 그 속살이야말로 사랑이고 추억이고 슬픔이다.
깊어지다. 가을.
가을비는 통속이다.
나 늙어 이제는 그곳의 이방인, 허지만 그 통속에 젖는다.
추레함일까마는.
궂은 비 내리는 날에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서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라도 들어 보렴.
손글씨로 쓰여진 작은 간판, 인 마이 라이프.
There are places I remember
All my life, though some have changed
Some forever not for better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All these places had their moments
-비틀즈 '인 마이 라이프'-
<서정시대>
-은희경 作-
***동우***
2014.10.21 05:01
은희경(1959 ~ ).
두어번 올린적 있습니다.
<그 나이라면 불행을 느껴도 되고 어쩌면 약간 빗나가도 될 만큼은 문제 의식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만 진지했다.>
온순하고 여성적이고 어른스러웠던 처녀적, '진지하였던' 자신의 한시절을 작가는 '서정시대'라고 이름지었나 봅니다.
이를테면 그 '진지함'을 인생에 대한 '서정적인 태도'로써 회억하는 것인듯 한데, 서정적인 태도가 진지한 것이라...
어딘가 패러독스와 해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원형탈모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진지함은 내가 계속 삶을 철저히 오해하도록 도왔고 고지식함은 그 오해를 바꾸지 못하도록 벽을 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겐가요.
땜통을 의식하는 여자와 의식하지 못하는 여자.
땜통을 감추려는 여자와 내보이는 여자.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일본말이 떠오릅니다.
속마음과 다르게 표현되는 일본인의 양식적(樣式的) 태도.
그건 위선이라기보다 타인에 대한 일종의 형식화된 예의일 터이지만.
<"아아, 너무 웃긴다. 웃겨. 내가 농담을 좀 안다는 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지?">
우리의 심리기저에는 자의식(自意識)이 있고, 그것과 상반되게 진지한척 씨부리는 입술을 의식하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는데, 前者(자의식)는 後者(입술)를 비판하고 질책하는게 아니라 키득거리면서 바라봅니다.
키득거리면서 말입니다.
아하, 저와 같은 '서정시대'가 어디 청춘에게만, 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었겠어요?
예나 지금이나 너나나나, 다름없지 싶습니다. ㅎㅎ
은희경의 대학시절 연애상대 저 녀석은 키득거리는게 아니라 완전 위선이지요.
좀 보세요.
여자의 인물이랑 돈이랑 집안이랑 그런걸 셈하면서.. 속으로는 앞에 앉은 여자를 어떻게 요리하면 감각의 즐거움을 얻을수 있을까 오만가지 잔머리 굴리면서.
무어라구?
"난 여자에 대한 원칙이 뚜렷해요. 첫째 명랑, 둘째 솔직, 셋째 겸손..." 이라구?
인간의 자유가 어떻다구? 미증유 음참마속이 어떻게 되었다구?
에라이!
옛날 막걸리집에 여자 앉혀놓고 내가 저러했거든요.ㅎ
-독서 리뷰-
[[은희경]]
<빈처> <멍>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빈처(貧妻)>
-은희경 作-
***동우***
2013.09.27 07:13
'현진건의 소설 ‘빈처(貧妻)’의 궁핍한 아내가 물질적인 것에 기인한다면 '은희경'의 '빈처'는 정신적인 결핍감이다.
현진건이 문사(文士)로 출세하여 돈을 벌면 그의 아내는 함박 웃음을 웃을터인데, 은희경의 貧妻(199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는 그것이 아니니 더욱 황량하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 (전에 포스팅)와 같은 살벌함은 뵈이지 않지만>
남편짜리들이여.
무슨 근거로 부부의 결속관계를 맹신하는가.
아내의 내면 속으로는 한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면서도.
법률과 윤리와 섹스로서만 합당하면 장땡이 아니다.
옛 '노라'(입센 '인형의 집')의 각성은 늦었지만, 요즘 '노라'는 늘 각성된 '노라'이다. <뛰처나갈 용기는 부족하더라도>
가정의 속성(안락함, 행복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내와 어머니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건다.
남편과 자식.
삶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은 自我가 아니노라고.
역사나 사회나 제도나 관습이나 생물학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여성성이라는 것.
저 남편은 아내의 일기로 인하여 행운아였다.
자아로써, 개성으로써 살아내고자 하는 아내의 삶의 진지함을 들여다 보았으니.
<나는 손에 펴들고 있던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고향***
2013.09.27 22:50
재미있군요.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남성분들은 정말 실감하기 어려우실듯.^^^
나이 먹으니 결혼한 딸에게 연민에 동지애까지 더해진답니다.^^^
***동우***
2013.09.28 05:03
고향님.
여성이 아니되어 보았으니, 저 여성적 심리는 실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느낌은 진합니다.
보통 그러합디다.
모녀간의 동지애적 친밀감.
어머니와 나이 든 딸과는 어쩔 땐 똑 친구들 같습디다.
아버지짜리들이 소외감 느낄 정도로. ㅎ
<멍>
-은희경 作-
***동우***
2016.04.25 04:36
은희경 (1959~ )의 '멍'
조그만 상자 속에 첩첩이 몸을 구겨넣은 서커스의 거인.
살이의 규격을 이탈하지 못하는 존재는 부자유함으로 끙끙 신음한다.
그리하여 무엇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타박(打撲)인가, 푸르스름한 멍 자국.
늘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생, 삶의 엄숙한 형질변화를 꿈꾸기에는 너무도 짧은 한살이, 관계들의 허허함...
오죽이나 많은가.
소설속, 심영규 자네가 던지는 '포즈(pose)'는 진부하이.
산소가 부족한 수족관 속의 열대어.
'나'도 소설가 '정환'도 마찬가지일 것일세.
살이의 테크닉으로 수렴하여 그렇게 일반화된 멍을 지니고 가끔 잊혀진 통증을 반추하면서 사는게지.
자네에게 사랑하는 한현정을 빼앗긴 정환처럼.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 똑같이 악다구니를 쓰다가 한편 서로 불쌍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늙어갔겠지. 데려다 고생시키기는 지금 마누라나 마찬가지였겠고... 마누라가 나한테 하는 잔소리를 그 여자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해. 차라리 뺏기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말을 끊더니 정환은 한참 동안 다시 물끄러미 술잔을 내려다본다. 술잔에 비친 제 얼굴에 당황하는 표정같기도 하다. 갑자기 쓸쓸하게 웃고는 잔을 쳐들어 술을 기울이는데 뺨에 홍조가 어려 있다. "그래도 한번 같이 살아봤더라면 하는 생각은... 지금도 같아. 그런 건 죽을 때까지 안 변하는 모양이야." "그것도 일종의 멍 같은 건가?" "멍?">
심영규 자네 따위는 치지도외하고, 나는 자네의 아내 한현정이가 사무치도록 부럽다네.
이런 꼬심에 다소곳하게 넘어가 주는 그녀가 말일세.
<나에게 그는 복사씨 같은 사랑을 주마고 말하곤 했다. 너에게서 복사씨 살구씨 같은 단단한 아름다움을 본다고 했고, 나는 너의 나무 아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음계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고, 나는 너를 만나 콧구멍이 넓어졌나봐, 숨이 너무 잘 쉬어져, 라고 했다. 나는 그와 결혼했다.>
못난이로 살다 죽은 남편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여 주는 아내.
<다들 그이를 나약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이는 자신을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마지막 선까지요. 그거 강한 것 아닌가요. 저는 못 그래요. 제가 그이만큼 강하고 솔직했다면... 벌써 헤어졌겠죠." ..."그이는.... 열심히 살았어요.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 감당한 거라구요.">
띵까띵까 한세상 아무런 근심걱정없는 매처학자(梅妻鶴子)의 풍류적인 삶.
그도 팔자소관이렷다마는. 심영규 자네는 한현정으로 인하여 행복한 사람이었을세.
아무렴, '나'도 '나'를 모를세.
주어진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살이, 자기 존재의 알갱이를 뉘라 쉬이 만져가면서 살수있을손가.
<"나 자신이라고 해서 나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요. 그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결정하기가 훨씬 쉬웠어요. 의사도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빨리 잊어버리라고 하던데, 그말이 옳은 것 같아요.">
'내'가 '나'를 탁 놓아버릴수 있다면 자유로우련만.
이 길에서 벗어나기.
아, 그 포기가 그 이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나같은 쫌팽이가 감히.
이 詩를 여기서 만나네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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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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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은희경 作-
***동우***
2017.03.24 04:43
'은희경(1959~ )'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성공한 출판사 사장의 맨너리즘에 빠져버린 삶.
세상사 그다지 놀랄 일도 없고, 세상에 별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와 인생에 무슨 변수가 있을라구요.
더이상 자신으로부터 미지와 신비를 끌어낼 건덕지는 없습니다.
세상일에 두려움도 없지만 설레임 또한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젊음으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해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는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람들은 자기연민이 많고 따라서 점점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 젊음은 치기와 가난으로만 기억된다.>
그에게도 버스비까지 모두 털어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 모두 불가능한 꿈을 꾸자’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지요.
1991년 유리 가가린은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봅니다.
<지구로부터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깊은 암흑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가가린은 이미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로부터 이탈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둡고 가벼워서 거의 허무에 가까웠다. 불안하고 고독했다. 그때에 유리 가가린의 눈앞에 빛을 머금은 행성이 나타났다. 검은 허공으로 가득 찬 우주 한가운데 신비롭게 떠 있는 아름다운 별. 가가린은 전율했다. 나는 저 별을 보기 위해서 우주를 뚫고 그렇게 먼 거리를 가로질러왔던 것일까. 마침내 유리 가가린은 자신이 떠나왔으며 그리고 다시 태어나게 될 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구는 푸른빛이다.>
후배 J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보고자 미국으로 떠납니다.
<지구가 푸른 것은 물의 행성이란 뜻이다. 로스앤젤레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J도 팜 트리 사이로 보이는 풀장의 푸른 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리 가가린처럼 J는 자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그 멀리로 떠나갔다. 자신의 청춘과 담배는 내게 맡겼다. 자기의 지나간 시간과 완전히 대면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발굴되는 청춘의 무덤.
<지워져버렸던 청춘의 어느 하루가 선명하게 되살아나면서 오히려 현재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자살한 K, 독일에서 돌아오지 않는 M, 그리고 한때 사랑하였던 은숙.
그 옛날 한강에 던져버렸던 원고, '1991년의 코스모나츠'도 부활합니다. (아마 후배 J가 쓴 것이고, 떠나면서 선배인 '나'에게 다시 읽히려 한 것일테지요)
<아마 끝문장은 자못 비장하여 먼 훗날 차마 기억난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 우주의 고독한 코스모나츠. 우리의 귀환지점 리버 쎄느에서 쓴다. 잘 가라, 내 청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여.잘 가라, 내 청춘.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여.>
세월의 힘.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과...
나이에 따른 크리세, 섯불리 규정지어 버리는 삶.
시간은 블랙홀에서는 무력합니다.
<J로부터는 내일 오전이 되어야 도착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고도1만 미터 상공의 J와 나는 완전히 단절돼 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의 시간과도 단절돼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의 모든 날과도 단절돼 있다. 오늘밤의 시간은 내 인생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외적인 미지의 시간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다. 봄밤이 신비로운 빛으로 거리를 감싼다. 골목 깊숙이 꽃향기가 가득 차 있고 별들은 차갑고도 명료하다.
내 입에서 시가 흘러나올 때마다 내 가슴은 자꾸만 아파온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발밑으로 떨어지며 사랑의 종말을 애도한다. 술에 취해 오줌을 누러 나온 친구들의 입김으로 골목 안은 눅눅하다. 티셔츠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던 높은음자리표가 비틀거리며 끊임없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어느 술집에선가 술잔이 깨지고 여자의 숨죽인 울음소리 너머에서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는 구석에서 붉은 펜으로 띄어쓰기 없는 편지를 쓰고 싸움이 끝난 친구들은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다가 어느덧 함께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있다. 유리 가가린의 아름답고 불안한 청춘도 거기 함께 있다. 1992년 봄밤, 우리의 귀환지점 리버 쎄느에서 쓴다.>
본문에 나오는 김수영의 시.
++++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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