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카프카 1.2.3 (1,4,3,3,1)

카지모도 2019. 11. 2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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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변신>

-프란츠 카프카 -

 

***동우***  

2013.05.10 05:16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1883~1924)

카프카는 나의 실존에 있어서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음울한 톤의 흑백사진..

그 뒷편에 어른거리는 다자이 오사무그리고 내 자의식의 어떤 그림자심지어 그 이미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까지도 어슬렁거립니다.

 

'변신(變身)'.

귀에는 익었을 터이나 아직 읽지 않으신 벗님네들께 권하오니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어쭙쟁이('어줍잖다'가 아니고 '어쭙잖다'가 맞는 말이랍니다.)의 중언부언은 부질없어아래에 어느 분(未詳)이 쓰신 해설을 업어 왔습니다.>

 

++++

카프카라는 거대한 문학현상(文學現像)을 다룬 비평사의 끝없는 논의(論議)와 열기는 1050년대의 '카프카 유행'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오늘날에는 1950년대의 카프카 유행은 사라졌지만그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당시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또한 카프카 연구의 침체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지금까지 그의 신비한 언어 세계에 대한 연구 문헌이 '5천여 권'의 방대한 양에 달하고 있지만 그 논지(論旨)들이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이다. '카프카그는 끝이 없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한 카프카 문학에 대한 미련과 사랑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이러한 미련과 사랑에 관계없이 카프카 문학에 대한 연구가 항상 벽에 부딪치는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카프카의 언어 구조와 표현 세계가 지니는 미로적(迷路的)특성 때문일 것이다카프카 문학의 언어와 표현이 미로이듯이카프카 문학의 수용사와 비평사 또한 미로사이다카프카에 있어서는 미로가 곧 그의 미학(美學)의 전부인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카프카 문학의 본령을 찾는 것은 피라미드의 전설을 찾는 것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이다.

프란츠 카프카(Kafka는 체코 말로 'Kavka'는 까마귀를 뜻한다) 1883 7 3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체코에 정착한 유태인이었는데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프라하 태생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의 예술과 사상에 깊은 함수 관계가 있다프라하에서는 수세기 전부터 독일의 신비주의슬라브적 경건성그리고 유태의 비교사상(比較思想)이 자유롭게 융합되어 있었는데이와 같은 환경과 분위기는 카프카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또 유태인이라는 혈통적인 숙명은 그의 고독감을 심화시켜서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므로유태교에 대한 관계는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했기 때문에 늘 질병이 잦았고일찍이 폐병으로 각혈했으며밤마다 꿈과 불면증으로 고생했다만년에는 후두 결핵에 걸려 언어 장애를 일으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폐병은 마치 오늘날의 암처럼 불치의 천형병이었기 때문에그가 안고 있던 질병이 그의 작품 활동에 많는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부친 헤르만 카프카는 인구가 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보섹이라는 곳에서 정육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유태인이 자유를 얻게 되자 그곳을 떠나 프라하로 이주했다부친 헤르만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젊었을 때 잡화 행상부터 시작하여 궁핍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여 직물 도매상을 경영하는 중간 계급으로 상승하였다.

부친 쪽의 형제 자매들은 모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었는데그의 부친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두 어깨가 떡 벌어진 당당한 체구를 지녔다그래서 아들 카프카는 평생 동안 이 부친의 위압적인 풍채에 눌려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카프카는 부친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Brif an den Vater>라는 글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프로이트(Freud)파의 정신 분석학적 입장에서는 부친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의 작품을 이해 하는 열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장편 <>을 분석하여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의 증거로 내세오고 있다.         

카프카의 외가 쪽은 친가 쪽과는 대조적으로 학자종교가몽상가모험가그 밖에도 기인(奇人)들이 많았다그의 모친은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에다가 감정이 섬세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뛰어난 예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지혜와 재치가 넘치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그러면서도 완고하고 봉건 보수적인 남편에 대한 내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카프카의 천부적인 총명한 재질은 주로 외가 쪽을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는 6남매 중 장남이었는데남동생 둘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 셋(엘리발리오틀라)과 함께 자랐다어린 시절의 그는 성격이 내향적이고 신경질적이며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그림자를 가진 소년이었다그의 모친은 온종일 남편의 시중과 어린 여동생들의 뒷바라지로 바빴기 때문에상대적으로 큰아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가정 교사와 학교 담임선생에게 맡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따라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심한 외로움과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냈다.

카프카는 유태계였지만 독일계 국민학교를 거쳐 역시 독일계 시립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주로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다그러나 동시에 그는 체코 어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그 지식을 습득했으며체코 문학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갖게 되고 조예도 깊었다.

1901 7월 국가에서 실시하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합격한 다음 카프카는 프라하에 있는 칼 페르디난트(Karl Fedinand)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그가 법학을 택한 것은 부친의 간곡한 소망에 의한 것이었을 뿐그 자신은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의 원래 희망은 뮌헨 대학에 들어가서 독문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카프카는 젊잖고 몸가짐도 신중했으며취미와 오락도 건전한 것을 좋아하였다문학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그의 정신 상태와 성향이 기이하고 엽기적인 것병적인것 비정상적인 것으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젊은 시절의 카프카는 그의 작품이나 일기 또는 편지 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병적이고 극도로 신경 쇠약적이며내면적인 실망이나 낙담절망그리고 열등감패배 의식피해 망상증에 사로잡힌 인간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학시절의 카프카는 졸라헤세플로베르디킨스의 작품을 일고 감격하고토마스 만의 작품 <토니오 크뢰거>에 매혹되었다이어서 그는 에밀 슈트라우스빌헬름 셰퍼한스 카로사헵벨폰타네슈티프터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벤자민 프랭크린과 발작의 작품을 일고 감탄하는가 하면극작가 클라이스트를 좋아하여 그의 문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만년에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에 심취했다.

-아래 계속-

 

***동우***  

2013.05.10 05:18

 

-위에서 받음-

카프카는 1906 6월 페르디난트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사법 실습을 마쳤다. 1908 6월 카프카는 유태인으로서는 파격적으로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 취직하였다그 곳에서 그는 관료기구의 무자비성노동자의 가혹한 처우비참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그 후에 나온 그의 작품 가운데서 그는 풍자와 해학을 섞어서 관료기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이 당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이 동안의 카프카는 자신의 생활을 온통 직장 근무와 창작에만 바친 것은 아니었다휴일이면 브로트와 함께 교외로 산책하기도 하고 또 파리루가노바이마르 등지로 여행을 하기도 했다때로는 극장이나 음악회에 가서 연극.가극음악 등을 감상하는 일도 있었다.

1912 8카프카는 친구 브로트의 집에서 우연히 베를린에서 온 펠리체바우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그녀는 프로시아 계와 유태계의 혼혈아로서 체격이 큰 아가씨였다현모양처 형의 이 아가씨는 첫 눈에 카프카의 주목을 끌었고그 후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펠리체와의 사랑은 그의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쳐그는 계속 새로운 테마를 발견하여 주요한 작품을 창작했다이 무렵 <사형 선고>를 비롯하여 <아메리카>의 제1장과 2, <변신>이 완성되었다.

<변신>은 펠리체와의 애정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한 현대인이 변신을 통하여 겪는 소외 과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묘사했다한편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듯한 소재의 선택 역시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충격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실한 채 기능화된 인간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변신>의 내용이 주는 사색의 영역은 무한히 깊고도 넓다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좀더 확실하게 표현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펠리체와의 관계가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일진일퇴를 거듭하던 그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하여 1914년에는 약혼할 단계까지 이르렀는데갑자기 그것을 파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카프카는 결혼이 자신에게 있어 딜레마이고마지막 구제인 동시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녀도 절망한 나머지 그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그러나 동시에 카프카는 그녀가 없으면 스스로 파멸해 버린다고 주장하고그녀와의 관계를 끈질기게 계속하려고 했다이와 같이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부활을 거듭하면서 3번이나 약혼했다가 결국 모두 파혼해 버리고 만다.

펠리체와 관계를 맺는 동안 카프카는 양친의 집을 나와 독립해서 생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1915 2월에 셋방을 얻어 양친의 집을 나왔다.

<심판>의 원고는 점차 진전되었지만 그는 심한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했다당시 그가 탐독했던 서적들은 성경과 스트린드베리도스토예프스키파스칼크로포트킨과 키에르케고르 등의 작품들이었다.

1917 8카프카는 처음으로 각혈을 했는데그 자신은 각혈의 원인이 정신적인 것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여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조차 거부했다브로트의 권유로 진찰을 받은 결과, 3개월간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그러나 그는 요양소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막내 누이동생 오트라가 살고 있는 취다우로 가서 시골의 대자연 속에서 요양했다장편<>에 나오는 마을의 상황 그중에서도 농민들의 모습은 바로 이취라우의 풍토가 소재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그러나 이 때 페리체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카프카의 취라우 체류는 폐병이 치료에 퍽 좋은 결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그 후 병세는 다시 악화되었다병세의 악화에도 불구하고단편 <시골 의사>를 비롯하여 <유형지에서>를 출판했다. 1919년 가을에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부자간의 딱한 사정을 부각시켜 부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의식을 똑똑히 밝히는 동시에스스로 최후의 독립적인 입장을 주장하려고 기도했다.

1920년에는 다시 프라하에서 직장에 근무할 수 있었는데그 때 그는 동료의 아들 구스타프 야누우와 알게 되었다야누우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1951)는 에카만의 <괴테와의 대화>와 쌍벽을 이루는 대화집으로 카프카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가까운 티롤 지방의 메란이라는 곳에서 요양하다가 여류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던 밀레나 예젠스카 여사를 알게 되었다그녀가 그의 작품을 체코 말로 번역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녀는 이성과 정열을 함께 지닌 슬라브계의 체코 명문 출신으로 카프카보다 12세나 연하였지만카프카가 폐결핵 환자였던 만큼 그 사랑의 정열은 꺼져 가는 불의 마지막으로 되살아난 불꽃과 같았다하지만 그녀에게는 에른스트 폴라크라는 유태계 은행원인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2년간이나 열렬했던 두사람의 사랑은 비련으로 끝나고 말았다카프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중에 출판되어<카프카와의 대화>와 함께 카프카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밀레나를 사랑하게 된 시기를 전후해서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이런 상황에서 카프카는 1922 3 15, <>의 첫부분을 브로트에게 읽어 주었다브로트는 밀레나가 <>에 나오는 프리다의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23 7월 그는 부친과 전적으로 인연을 끊고 도라와 함게 베를린에서 동거하기로 결심하고 프라하를 떠났다부친이 지배하는 전제적인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여 그의 세력권을 벗어나려고 열망하고 있었던 카프카의 숙원이 비로소 달성되어 두 사람은 베를린 교의 슈테글리츠라는 곳에 거주했다비록 신체는 극도로 쇠약하고 건강은 말이 아니었지만카프카는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고 즉흥적인 낙천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아래 계속-

 

***동우***  

2013.05.10 05:20

 

-위에서 받음-

창작 활동도 계속하여 <> (혹은'소굴'로 알려지기도 함), <가수 요제피네>등 몇 편의 단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방한 독일에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밀어닥쳤다때는 마침 겨울이어서 카프카와 도라는 식료품과 땔감 등 생활 필수품의 부족으로 빈곤과 고난 속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그러나 어렵게 마련한 독립 생활의 보금자리가 간섭과 위협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는 부친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그러다가 1924 3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프라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할 수 없이 귀향했다가빈의 요양소를 거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부근에 있는 키를랑요양소에 입원했다이 때 목구멍에까지 결핵균이 침범하여 후두 결핵까지 발병하여 그는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처럼 마지막 요양 시기에 그는 경건한 태도로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아마도 도라에 대한 만년의 사랑이 카프카로 하여금 그토록 끈질기게 삶에 대해서 집착시켰던 것 같다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도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문학의 천재 카프카는 1924 6 3일 마침내 숨을 거뒀다.

일주일 후유해는 프라하에 있는 슈트라슈니츠 유태인 묘지에 매장되었다그는 지금도 그 곳 가족묘지에 양친과 함께 고이 잠들어 있다.

카프카의 가족 가운데 누이동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스에게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서 희생당했다그의 만년의 연인 도라만은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여 1949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가다시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살다가 그 곳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카프카 문학 세계의 배경을 이룬 정신적 풍토를 단적으로 말한다면1차 세계대전 계기로 하는 중산계급의 몰락이고충실하고 참다운 삶을 잃은 사람들의 전쟁과 혁명시대에 있어서의 불안과 절망이다특히 위기 신학의 입장에서 그를 형이상학적 허무주의자라고 보는가 하면카톨릭적 입장에서는 그를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유태인의 비극이라고 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두 사람의 프라하 출신 작가 카프카와 릴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그중에도 카프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작가인 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카프카야말로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20세기 후반의 세계 문학에 있어서 거대한 쌍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프카처럼 현대 작가로서 문학철학신학심리학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된 문제 작가인 예도 드물다카프카야말로 현대인의 정신 상황과 정면 대결한 작가이다.

현대에 있어서 인간은 그 실존으로 말미암아 유죄이기 때문에 인간이 오성의 힘을 빌어 스스로 고독을 극복하려고 모든 통로는 폐쇄되어 있다따라서 인간에 관한 한실존의 의의는 영원한 수수께끼의 베일에 쌓여 있다.

++++

 

 

 

-독서 리뷰-

 

[[카프카]]

<트기> <시골의사><작은 우화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공동체>

 

 

<트기>

-프란츠 카프카 -

 

***동우***  

2013.11.12 04:12

 

'프란츠 카프카' '트기'

지극히 사실적으로 기술된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쓰인 소설인데어렵구나 어려워.

상징이 은유가 무엇이든 간에그러나 느낌은 강렬하다.

변신존재가 벌레라고 여겨지면 벌레로 만들어버리는 카프카.

 

양의 영혼을 지닌 고양이.

피동성의 불안이고 공격성의 불안인가.

이라는 양()과 필멸(必滅)이라는 음()의 대비인가.

 

어쨌거나 그것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느껴지는어떤 손길에 직수굿이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가엾지만 어쩌랴.

그도 그것의 운명을 관장하는 구체성(具體性)이 아니라 모호함인걸.

푸주한의 칼은 있지도 아니한걸.

 

불안과 고통.

존재함에 깃든 시니컬한 비애.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지만.

어쩔 것이여기다려야지.

자기 앞의 생.

실존을 견디면서 굳세게 한세상 살다 가야지.

그래.

나는 줄곧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노라.

 

댓글란에다 카프카의 짧은 글 하나 올립니다.

 

++++

<프로메테우스>

-카프카-

 

프로메테우스에 관하여서는 네 가지 전설이 있으니,

그 첫째에 따르면 인간들에게 신의 비밀을 누설하였기 때문에 코카수스 산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였고 신들이 독수리를 보내어 자꾸자꾸 자라는 그의 간을 쪼아먹게 하였다고 한다.

둘째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쪼아대는 부리가 주는 고통 때문에 점점 깊이 바위에 몸을 눌러 마침내 바위와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셋째에 따르면 수천년이 지나는 사이 그의 배반은 잊혀져신들도 잊었고독수리도그 자신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네 번째에 의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에 사람들이 지쳤다고 한다신들이 지치고독수리가 지치고상처도 지쳐 아물었다고 한다.

++++

 

***홍애(虹厓)***  

2013.11.13 17:44

 

동우님.

프란츠 카프카.

쉬운데 어려워요 ^^ 

 

 

<시골의사>

-카프카 -

 

***동우***  

2014.01.15 04:31

  

카프카(Franz Kafka) '시골의사' '심판두 편의 소설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였다고 합니다.

 

'시골의사' (Ein Landarzt)

명료한 어휘를 사용하여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인데도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겨울밤의 한바탕 악몽같은무릇 꿈이 그러하듯 비약과 느닷없음과 뒤죽박죽으로 갈피를 잡을수 없습니다.

기괴한 불안을 안고 어딘가 암담한 공간에 갇힌듯한 느낌허무로운 어떤 분위기의 인상은 강력한데 말입니다.

으흠어쩌면 카프카가 전달코자 하는 바도 그와 같은 존재론적 상황인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물과 상황에게 명확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해석하여논리적 맥락을 설정해 가면서 읽는 독법이 썩 훌륭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소설이 무슨 수학인가요분석적으로 접근하면 머리에 쥐가 날지언정 문학적 감흥은 건조해집니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집에 돌아가지는 않겠다나의 번창하는 의사생활은 망했다후임자가 내 자리를 넘본다그러나 소용없는 짓그가 날 대신하지는 못하니까 말이다내 집 안에서는 구역질나는 마부가 날뛰고로자는 그의 제물이다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벌거벗은 채이 불운을 극한 시대의 혹한에 맨몸으로 내던져져지상(地上)의 마차에다 지상의 것이 아닌 말들로늙은 나는 나를 이리저리 내몰고 있구나내 털외투가 마차 뒤에 걸려 있다하지만 내 손은 거기까지 닿지 않고 변덕스러운 환자 주위의 불한당들 중 어느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속았구나속았어한번 야간 비상종의 잘못된 울림을 따랐던 것-그것은 결코 보상할 수가 없구나.]

 

의사의 저 초현실적인 내적현실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실존의 모습입니다.

실존을 규정짖는 절대적 가치와 보편적 진리는 우리의 개별적 삶에는 있지 아니합니다.

미지의 죽음을 향하여 누구나 자신의 실존을 견디면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기뻐하라환자들아의사를 너희 침대 속에 눕혀놓았다.]

 

사는 것그것이 구원이고 또한 희망입니다.

삽시다기쁨으로.    

 

, '유튜브' '카프카 시골의사'를 검색하여 동영상 하나 감상해 보시기를.

'코지 야마무라'가 만든 애니메이션 '시골의사입니다.

 

 

<작은 우화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카프카 -

 

***동우***

2017.05.31 04:24

 

카프카의 짧은 두편의 소설.

'작은 우화'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빠른 리듬으로 끊기는 짧은 소설지만 의식에 접수되는 바 깊은 울림의 상징성이 있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느낌의 층위는 다양하겠지만

 

태허(太虛)로부터 허허벌판에 내던져진 하나의 실존비좁은 곳을 지향하여 시나브로 타자의 살을 부비고 인믄(人文)을 향유하며 행복하기도 합니다.

 

질주하는 말잔등 올라타 고삐를 당기고 박차를 가합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의 풍경들땅을 두드리는 말굽소리쏜살같이 바람은 귓가를 스칩니다등짝에는 땀이 흐르고 가속의 쾌감에 희열합니다.

 

이윽고.

박차도 고삐도 잃고 미로(迷路)의 출구를 찾아 더듬어 헤메이는데...

 

"목표는 있지만 길은 없습니다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은 망설임일 뿐. -카프카-"

 

내 나이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고 읊조리나요?

아니올시다서산에 뉘엿뉘엿 해는 지는데 갈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둘러보아도 현금(現今)의 정처(定處)도 알수없고.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고 있어'

외마디 소리나 질러댈 뿐입니다그려

 

 

<공동체>

-카프카 -

 

***동우***

2018.01.04 09:05

 

'프란츠 카프카' '공동체(Gemeinschaft)'

 

오래전 직장을 그만두고 먹고사니즘을 위하여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느낀 것은업종의 장르(?)마다 이너 서클(Inner circle)의 빙벽이었습니다.

우리 밥그릇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완강함.

 

그렇다고 그 공동체는 끼리끼리 그토록 견고한 것일까요.

 

가족에게마저 소외된 '그레고르 잠자'는 한마리 벌레로 죽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측량기사 'K'는 결코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카프카의 '')

 

해체되는 공동체.

이제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일반화된듯 합니다.

 

관계에서의 소외로서 살아가는 현대인.

sombody가 아닌 nobody, 그 익명성의 실존...

 

 

 

 

-독서 리뷰*

 

[[카프카]]

<율법 앞에서> <단식광대> <사냥꾼 크라쿠스>

 

 

<율법 앞에서>

-카프카 -

 

***동우***

2018.02.08 05:24

 

카프카의 '율법 앞에서'

 

내 수준의 사유로서는 율법이 무엇인지 문지기가 누구인지 알 바 바이 없으나 저 시골사나이라는 시니피앙이 ''임은 느낄수 있겠습니다.

해석의 자유라기보다 느낌의 자유.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추상의 어떤... 활짝 열려있는 율법의 문.

그러나 문지기의 허세와 공갈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들어갈수 없다는.

 

문지기를 박차고 들어갈 용기는 없고(앞으로 더 힘이 센 문지기가 있다니까 더욱일생을 문 앞에서 맴돌다 죽는 사나이.

 

스스로의 실존적 결단을 유보한 채 변죽만 올리다 마는....

나의 삶이 그러합니다그려.

 

 

<단식 광대>

-카프카 -

 

***동우***

2018.06.04 23:42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의 유명한 단편.

'단식 광대( Ein Hungerkunstler,  A Hunger Artist)'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어엿하게 사전에 등재된 단어인데 <카프카적>이라는 형용사입니다.

 

카프카의 문장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대상을 관념적으로 추상화하지 않습니다.

주관적 감정 따위는 배제한 채 객관적이고 명료하고 건조합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사건과 분위기는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고 암울합니다.

<카프카에스크>는 이를테면 그런 의미일테지요.

그러니까 카프카는 너무 다의적인지라 늘 새롭게 읽힌다고 하지요.

 

작가 로맹가리의 '마지막 대담'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지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여기던 것이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문학 영역에서는 대단히 희극적인 방식으로 그걸 확인하게 됩니다. 15년마다 새로운 세대가 카프카를 발견하고최근엔 내 친구 알베르 카뮈를 재발견했고또 생텍쥐베리를 재발견합니다모든 새로운 세대가 앞선 세대를 필요로 하지 않고앞선 세대들을 믿지 않고그들의 가치를 믿지 않고자기들 스스로 그 세대를 다시 발견한다는 일종의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손주녀석들 이 담에 카프카를 읽으면 할비와 여일한 느낌 한 조각 있을까...

 

'단식 광대'

세상에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어 굶을수 밖에 없는 단식그건 카프카 자신의 문학행위를 은유하는 걸까요?

단식은 그러니까 예술적 삶에 대한 자기확인인겐지요,

굶는다는건 통속적 인간의 존재론적 삶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의 발로는 아닐까요?

단식 광대가 죽고 난 후 그의 빈 우리는 젊고 싱싱한 표범으로 채워졌습니다.

 

카프카의 단식광대.

난해합니다.

그러나 강렬하게 엄습하는 느낌... 그 정체는 무엇일까....

 

 

<사냥꾼 그라쿠스>

-카프카 -

 

***동우***

2018.09.10 22:39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

'사냥꾼 크라쿠스(원제: Der Jager Gracchus, : The Hunter Gracchus)'

 

그라쿠스는 현세의 물위를 떠도는 중음신(中陰神)인지..

이야기는 심플한데 분위기는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합니다.

역시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카프카적'이란 형용사)한 소설입니다..

 

이미 죽었지만 죽음에 속하지 않은 사냥꾼 그라쿠스.

그는 저승의 사람인지 이승의 사람인지.

 

그라쿠스가 들것에 실린 배가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도시의 시장과 아이들만이 그를 맞이합니다.

 

카프카가 얘기하고자하는 주제는 죽음의 문제일까또는 소외의 문제일까요.

미확정미해결의 존재.

그 실존적 인식을 통해서 허무를 극복하자는 것인지...

 

라틴어 'graculus'는 독일어로는 'Kavka'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냥꾼 그라쿠스는 바로 카프카 자신일테지요.

 

카프카의 소설.

느낌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련한 인식으로.

사람마다 느낌의 층위가 다양한만큼해석의 여지도 넓겠지요.

그리하여 영원한 카프카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