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로맹 가리]]
<우리의 고매한..> <역사의 한 페이지> <폭풍우>
<우리의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로맹가리 作-
***동우***
2016.05.11 04:32
로맹가리의 '우리의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Gloire a nos illustres pionniers)
작가의 만화적 상상일테지만, 끔찍하기 짝이 없는 디스토피아의 세계입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폭발시킨 백메가톤급의 핵폭탄.
인류의 원자기(原子期)시대의 시작입니다.
원자기를 살아가는 덕(德).
인간은 이제 유익한 방사선으로 지표면과 대기가 비옥해진 덕택에 생물학적 침체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야흐로 생물학적 종(種)의 다양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지요.
가속화된 진화는 돌연변이에 의하여 놀라운 개별화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마다 중구난방의 개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생물학적 갈등기를 어떻거든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곧 더이상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거북이 게 거미등의 유전자와 섞여 괴물로 변모되어가더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내면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엄청난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작금 생물학적 변혁을 겪고 있는 우리의 고매한 새로운 인간 종(種)의 선구자들.
그들에게 영광 있으라.
으흠, 호모 사피엔스.
도래시기(到來時期)가 문제일 뿐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멸종할 테지요.
진화생물학자는 자연선택에 의한 종(種)의 멸종을 몇십만년 단위로 본니다만.
그러나 요즘 회자(膾炙)되는 책, '사피엔스' (원제 From Animal to God, 나는 아직 읽지 못하였음)를 쓴 '유발 하라리'교수는 말한답니다.
'21세기는 현생 인류가 살아가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고.
유전공학과 나노기술과 사이보그 기술로 인하여 인간의 몸과 마음은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변이된 새로운 종(種)의 탄생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네요.
그는 진화의 주요 원리가 자연선택보다는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로 대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21세기의 끝물이라면 '수명이 늘어난' 내 손주 비니미니의 말년 즈음일 터인데...
아아, 과연 그러할까요.
<역사의 한 페이지>
-로맹 가리 作-
***동우***
2016.09.12 04:22
'로맹 가리 (Romain Gary,1914~1980)'의 '역사의 한 페이지 (Une page d'histoire)'
로맹 가리 특유의 은유 깃든 풍자적인... 아름다운 문장.
우리말로도 느껴집니다.
<빛은 거기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라본다. 즈보나르가 웃어 보이자, 빛이 그에게 화답한다.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수줍은 분홍빛 미광 같은 것으로.>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데는 분노만 한 것이 없다.>
<그의 눈길은 맞은편 벽 위를 지나 바닥으로 내려와 마침 감방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쥐에게 고정된다. 쥐는 서두르지 않고 품위 있게 감방을 가로지르고 있다. 심지어는 걸음을 멈추고, 미할릭에게 누가 봐도 모욕적인 눈길을 던지기까지 한다. 미할릭은 몸을 굽히고 신발 한 짝을 집어들고는...."그 쥐를 내버려두시오!" 어떤 목소리가 말한다. "여기는 그의 집이잖소!">
<새벽 다섯 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발치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빛, 창백한 빛, 정복당한 빛, 지친 빛을 세르비아 총독은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그가 장화 신은 발로 발길질을 해도, 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더 분명하고 더 맑고 더 오만해지기까지 한 것 같다.>
신랄한 아이러니입니다.
당(當)하는 자의 낙천과 가(加)하는 자의 비관.
중요한건 몸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알레고리일까요.
<처형은 개개의 정치범에게서 특히 혁명적인 부분이자 국가사회주의의 불구대천의 원수, 곧 영혼을 해방시킬 뿐이다.. 저 위(하늘나라)의 우리 경찰 조직과 해당 관청과 수용소나 감옥이 충분히 조직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가 유럽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점령했다 하더라도 저 위에는 각자 홀로, 비록 총통이라도 홀로,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끝장이다.>
인간이란 아직도 전신(前身)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완성된 존재가 되리라...
진정한 인간은 아직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문제, 그것은 모두가 연루되는 치사한 문제다.>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지기는 아득하고, 세상의 부조리 비합리 비인간적인 똥뒤깐이 역겹고 지겨워서...
로맹 가리의 실존적 자아가 선택한 것이 그러니까 권총자살이었을까요.
아, 그리고 그가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사람들은 사랑없이도 살수가 있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물론 살수는 있지.
대답하고나서 하밀 할아버지는 부끄러움에 겨워서 고개를 숙입니다.
모모는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티토’의 항독(抗獨) 지하운동.
얘기 난 김에 잠시 옆길로.
70년대 즈음, 강철벽으로 나뉘어진 미소 양극의 블록.
사회주의에 조금의 관심이 동했을적 세계에는 미국이나 소련의 블록에 속하지 않는, 비동맹이라는 제3의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비동맹의 맹주 티토,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이 비동맹의 존경받는 지도자로서, 소련의 괴뢰로서 취급할수만은 없는 인물임을.
스탈린의 앞잡이, 빨간 뿔이 돋아난 괴물은 아니었던 겁니다.
수백만을 죽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폴포트가 꿈꾸었던 농경사회의 꿈 자체가 악마의 꿈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체제 속에서 변질되고 왜곡되어 시나브로 이상론과 방법론의 본말이 전도 되니 탈이지요.
중국의 문화혁명을 보십시오.
애초 시발하였던 이념의 본원(本原)은 어느새 앙시엥 레짐이 되고맙니다.
체제를 위하여, 앙시엥 레짐을 말살하고자 하는 방법론은 갈수록 처절하고 잔인하여지지요.
엊그제 북한의 핵실험.
생각건대, 99%의 북한 인민은 호모사케르(정치적 사회적 삶을 가지지 못하고 생물학적 삶만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떼거지로 굶어죽는 판에, 인민들에게 무슨 이념 따위가 있겠습니까?
아니 나는, 저 북한사회의 0.1%의 이너 서클마저도 이념수호 의지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들이 헌신하는 가치는 오로지 체제수호일겁니다.
3대 세습.
근데 생각보다 굳건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죽었을 적에 북한은 곧 붕괴운운 말이 많더니.
불과 몇년전 박근혜대통령도 통일대박이니 어쩌니 통일기운 무르익은 듯 분위기를 띄우더니.
북녘의 저 닫힌 세상에는.
우리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어떤 별개의 체제유지의 작동원리가 있는듯 싶습니다.
<폭풍우>
-로맹 가리 作-
***동우***
2016.12.28 04:39
로맹가리(1914~180)의 '폭풍우'
이 소설은 작가가 1935년도에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첫소설이라고 합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
목이 타고 숨이 턱턱 막히는 참을수 없는 더위.
바람 한 점 없는 대기,죽은 듯 정지되어 있는 풍경.
4년 전부터 이 섬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의사부부와 낯선 침입자.
열대의 태양은 남편에게서 남성을 앗아가버렸고 아내로부터는 사랑을 앗아가버렸습니다.
기다리는 폭풍의 징조는 아직 없습니다.
페슈는 이제 곧 죽을 터였고 엘렌은 그가 품에 안아볼 수 있는 마지막 여자였습니다.
곧 죽을 인간이 남은 자들의 앞날을 염려하는 건 웃기는 일입니다.
여자는 그의 절망을 향하여 몸을 열어줍니다.
드디어 폭풍이 내습합니다.
태풍의 중심, 곧 닥쳐올 미지의 카오스에 대한 숨막히는 기대와 예견되는 위험에 대한 공포.
극도의 긴장을 내포한 그 적막을 나도 좀 알고 있습니다만...
<파르톨은 서늘한 빗방울들이 얼굴을 때리고 목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그는 나병에 걸렸어. 퓌지 섬 원주민에게서 옮은 거지. 그 섬에서는 그게 아주 흔한 병이니까. 그런데, 엘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갑자기, 둔탁한 우르릉 소리에 방갈로는 지붕까지 흔들렸다.>
외딴 섬, 무더위, 허무하는(?) 인간, 절망하는 인간, 그리고 폭풍우.
시니피앙은 그렇다치고 시니피에는 각자 다른 것일 테지요.
로맹가리의 첫소설에서 1980년 권총자살한 그가 오버랩되는 것은 내 이미저리의 근거없는 비약일겁니다. ㅎ
-독서 리뷰-
[[로맹 가리]]
<류트> <마지막 숨결>
<류트>
-로맹 가리 作-
***동우***
2017.08.01 04:19
'로맹 가리 (Romain Gary, 1914~1980)'의 빼어난 단편 '류트'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아껴 읽고 싶어서.ㅎ
잡설은 내일.
***동우***
2017.08.02 06:15
<그랬다. 그의 손, 그의 손가락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손은 마치 자신의 꿈, 그로서는 알 길 없는,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갈망을 품고 있는 듯 했다.>
예술적 재능과 열정.
외교관이라는 외피 속에 억압되어 있는.
그 광포한 예술적 갈망은 길고 섬세한 두 손으로 형상화되어, 하나의 알레고리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때로 그의 손은 거의 생리적인 갈망과 초조와 공허로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역시 뭔가 부족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조차 그것이 부분적으로 포착했을 뿐인 더 멋지고 더 총체적인 완벽성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일종의 무력감과 함께 그는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어떤 조각품을 보고, 그것을 만든 예술가의 영감이 그에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형태를 손가락으로 더듬을 때면, 그는 갑자기 엄습하는 깊은 서글픔에, 모두가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침착하고 품위있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때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백작은 '달과 육펜스'의 '스트릭랜드'처럼 삶의 껍질을 깨부수고 뛰쳐나가지 못합니다.
그의 기질도 그러하거니와 또한 그의 아내가 필사적으로 남편의 열정을 누르고 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평생 해온 걱정 중의 하나는 자신이 이따금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보내는 숭배의 시선을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들켜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혼생활 삼십오 년에 아이들도 다 자라고, 자신이 말없는 애정-내밀한 부부생활에서도 표출하지 못하는 은밀하고 고통스러운-으로 감싸고 있는 그를 아무것도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며 모범적인 삶의 절정에 오른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스탄불 페라 호텔 내에 있는 프랑스식 소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레이스 손수건을 쥔 채, 운명이 인간의 마음속에 탄생과 동시에 장치해두곤 하는 시한폭탄이 그의 내부에서 갑자기 터지지 않게 해달라고 몇 시간이고 기도하곤 했다.>
<또한 손님들을 초대하고 선행을 베풀고 연회를 여는, 사교상의 고역에도 정성을 다했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그만큼이나 그런 일을 싫어했음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그에 대해 유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랑과 헌신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을 숭배하고 진실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남편에게 들킬까봐 두려워 합니다.
사랑이라는 파토스를 접하게 되면 남편은 사회적 지위를 박차고 광포한 예술적 열정에 영혼을 맡기게 될까봐 그런가봅니다.
그렇게 되면 안온함으로 구축되어 온 가정은 여지없이 파괴되어 버릴테니까요.
류트.
<그후 그는 황홀한 두려움 같은 것에 차서 소파에 앉아 그 악기를 골똘히 응시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손 안에서 커져가는 공허감, 혼란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어떤 갈망, 만지고 싶은, 솟구쳐오르게 하고 싶은,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와 싸웠다. 점차 그의 전 존재가 그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제멋대로일 만큼 강압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류트를 쓸어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시간 관념을 송두리째 잃고 책상 앞에 서서 서투른 손가락으로 되는 대로 현을 뜯고 있었다.>
서재에서의 류트 교습.
어느 날, 집안 가득 침묵이 들립니다.
점점 커져가는 침묵.
이 침묵이라는 메타포를 나는 명확하게 이해할수는 없지만 나의 직관은 그 침묵의 의미를 느낍니다.
<하지만 주위의 침묵은 매순간 무시무시하게 커져갈 뿐이었다. 침묵은 집안을 가득 메우고 계단을 내려가 방문들을 모두 열어젖히고 벽을 지나 아이들의 귀에까지 들릴 것 같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하인들의 얼굴에는 이미 어리석은 조소가 떠올라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방문을 잠그고는 구석에 놓인 중국식 장롱으로 달려갔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장롱을 열고 류트를 꺼냈다.>
그녀는 남편을 대신하여 그 침묵을 깨뜨립니다.
<그 관능적이고 부조화스러운 곡조가 그녀의 손 아래에서 은밀히 울려나오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할 터였다. 아마도, 아마도 그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스캔들 없이 정년을 맞을 수 있을 거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이제 몇 년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이다. 곧 파리나 로마로 전임될 테니까. 험담과 소동과 구설수 없이 조금만 더 지내면...... 아이들은 이미 장성했고, 어쨌든 처음으로 대두된 몇몇 의혹들이 그 동안 쌓아온 존경의 벽을 허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게 아닌가. 손가락으로 현을 뜯던 그녀는 때때로 잠시 연주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곤 했다. 반 시간 후 백작의 방에서 다시 음악이 울려퍼졌다.>
<부인은 일어나 류트를 장롱 속에 도로 넣었다. 그런 다음 돌아와 앉아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눈 앞의 글자들이 서로 뒤섞이는 바람에, 그녀는 울지 않으려 애쓰면서 손에 책을 든 채 똑바로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면의 진실을 혹은 열정을 혹은 재능을 스스로 기만하면서 살아가야하는 한살이 삶.
아아, 내게도 한줌이나마.
로맹 가리의 류트.
참 기품있는 소설입니다.
<내 눈은 다른 사람의 흔적을 뒤쫓는 데 지쳤어. 아름다움과 생명의 기적을 재료에서 직접 끌어내야 해. 강한 욕구불만의 감정과 더불어 느껴지는 이 당혹감, 손가락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 기묘한 신체적인 향수, 고통스럽기까지 한 이 공허감, 이 짜증스러움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두 손이 자기 몸을 떠나 상점의 후미진 구석으로 가서는, 그가 막연히 느끼고는 있지만 의식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두 손의 삶, 기어가는 듯 더듬더듬 나아가는 신비로운 삶을 살아낼 것 같은 느낌으로, 자신이 또 하룻밤을 새우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作-
***동우***
2018.11.08 07:32
'로맹가리 (Romain Gary,1914~1980)'의 '마지막 숨결 (A bout de souffle)'
그의 또다른 필명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썼던 '자기 앞의 생'
그 떄가 가을이었던가.
읽고나서 고개들어 바라보았던 보생의원 5호실 창문밖의 붉은 노을을 기억합니다.
레지옹 드뇌르 약장을 옷깃에 단 쉰 셋 짜리 어느 사내.
LA 선셋스트립의 햄버거 스낵바에 들어섭니다.
끔찍한 혼돈의 세기를 온 몸으로 살아왔던, 그 사내는 '퍽버거(fuckburger)'를 주문하여 먹습니다.
비극적으로 장엄한 바로크.
그리고 아메리카 신세대 키치문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는 죽기위하여 이 도시에 온 것입니다.
로맹가리의 마지막 숨결.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8.11.09 03:32
이 소설은 영어로 씌어진, 로맹 가리의 미발표 유고작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작가와 이름도 비슷하고 이력도 비슷합니다.
시대의 뒷편으로 밀려난 50대 구닥다리 프랑스인.
아메리카나이즈한 전후세대 속에서 그는 어차피 꼰대입니다.
1차대전과 프랑코와 스페인내전과 히틀러와 아우쉬비츠와 2차대전과 스탈린을 목격하고 또는 겪었던 꼰대 세대.
그리고 냉전과 베트남전쟁과 히피와 말콤엑스와 락음악을 관통한 전후 세대.
그 둘의 세계관이라거나 절망의 색감이 같을수는 없겠지요.
카사블랑카의 잉글릿 버그만과 퐁네프 다리의 줄리엣 비노쉬의 로맨스 또한 같지는 않을겁니다.
그러나 모모가 하멜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나요?"
그는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킬러가 방문할 시각인 4시를 기다립니다.
로맹가리 역시 1980년에 권총자살하였지요.
<그런데 그 순간, 나 같은 인간이 죽기 바로 직전에 가장 어울리는 책은 전화번호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결국 나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려 애쓰고 그 누군가에게 희망을 걸면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오든과 성서와 푸슈긴보다... 긴밀한건 전화번호부...
익명의 60억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
그는 총구를 향하여 몸을 돌립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킬러가 아니라 주근깨 아가씨가 서 있습니다.
로맹가리의 마지막 숨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처럼 저릿합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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