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공선옥 1.2 (1,4,3,3)

카지모도 2019. 12. 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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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공선옥]]

<꽃같은 시절> <정처없는 이 발길> <명랑한 밤길>

 

 

<꽃같은 시절>

-공선옥 作-

 

***동우***

2011.10.07.

 

사회적 연대, 이념의 연대, 생각의 연대.

월전(月前),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의 소금꽃.

'소금꽃’은 아무나 벙글게 할수 있는 꽃이 아니다.

‘소금꽃’은 집단이 피우는 꽃이다.

그런 연대의 받침이 있어야 ‘소금꽃’이 피는 것이다.

 

'사람꽃'

그렇지만 누구나 ‘사람꽃’은 피울수 있다.

‘사람꽃’은 개별이 피우는 꽃이다.

사람이라는 성정(性情)에 바탕한 인정(人情)이 피우는 꽃이다.

그 꽃의 받침대는 연민(憐憫)의 연대로써 족하다.

작디작은 연대, 소곤소곤의 연대, 오순도순의 연대.

‘물같고 풀같은’ 연대.

공선옥의 소설 ‘꽃같은 시절’은 바로 물같고 풀같은 그 연대(連帶)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의 소리 풀의 소리에는 목청이 있을리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다.

손톱만큼의 이슈도 만들지 못한채 스러질지언정 '꽃같은 시절' 한껏 피는 이쁜 꽃이다.

‘꽃같은 시절’, 한철을 누리는 아름다운 꽃이다.

인정이 피우는 '사람꽃'이다.

 

노인들만 남은 시골의 한적한 마을.

쇄석공장이 들어서 굉음과 돌가루를 농촌 마을에 퍼부어 댄다.

정식 허가도 득하지 않은 공장의 불법 가동이다.

업체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영업을 계속해 막대한 이득을 남기고 있었다.

한달 수억의 이익을 내는 업체와 100만원의 벌금으로 합법적 땜빵을 하는 관(官).

관(官)과 업(業)은 유착하여 눈가리고 아웅들을 하고, 군수도 도지사도 국회의원도 인권위원회도 오불관언.

 

<바위를 깨서 잘게 부수는 최악의 공해업체인 쇄석기가 유정면 한가운데 버젓이 밀고 들어왔는데 순양군청은 문제가 없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것을 단속하는 공권력은 없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죄인 취급하는 공권력만 있으니 천불이 났습니다.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나 단체마저도 지역의 작은 사건이라고 무관심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살아 움직이며 아프고 고통받는 구체적인 삶에 기반하지 않은 생각이나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주민들이 물같고 풀같은 싸움을 시작한 지 네 계절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 봄날,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여린 풀들처럼 영차영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농사지으랴, 데모하랴, 라면으로 끼니 때우랴, 할머니들이 너무 힘드십니다.>

 

<유정면 할머니들이 물 같고 풀 같은 데모를 하십니다. 이름 석자도 잘 못 쓰시지만 시절 인연과 사람의 도리는 잘 아시는 할머니들....>

 

할머니들이 불쌍하여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영희’.

그녀는 타지(他地)에서 유정면 농촌 빈집에 들어와 사는 어린아이 하나 있는 젊은 주부이다.

횟집 하다가 재개발로 철거된 후 오죽하여 농촌 빈집에 들어와 살겠는가, 그리 많이 배운 여자도 아니고 남편 철수는 고정된 직업도 없다.

오직 명랑하고 착하고 정직하고 불쌍한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품성의 여인일 뿐이다.

 

<“할머니들을 실실 약올리며 협박까지 하는데 열불이 나더라구요.” 영희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솟았던 것은 단지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이라고. 그 몹쓸 햇빛 때문이었다고. “햇볕이 너무 뜨거웠어요, 길바닥에 말없이 앉아 있는데, 그 뜨거운 햇볕 그 숨막히는 침묵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더라구요. 위에서는 불볕이 쏟아지고 아래서는 숨막히는 지열이 올라오는 아스팔트에 너무나 순박한 할머니들을 앉혀두고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뭐라고 야유를 퍼붓는데 이 쪽은 누구 한마디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와 버린 거예요.”>

 

가장 젊은이가 64세이고 가장 고령은 93세의 할머니들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이영희는 언제나 종달새처럼 명랑했고 할머니들 앞에서는 언제나 해사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노인들을 대신하여 빙벽같은 집단과 싸우려니 오죽이나 힘들었을까.

서울 감사원, 예제 관청, 재판정 어디로 쫓아다니면서 영희는 너무나 힘에 부친다.

어린딸 복주도 엄마처럼 깜찍하게 이쁘다.

<“복주야 사는게 왜 이렇게 힘드냐?” “뭣이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까아?”>

 

남편 철수는 볼이 부었다. (영희와 철수는 이름이 인연되어 부부가 되었다)

그런 남편과 복주에게 영희는 말한다.

 

<“노인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어. 우리는 동지야. 여기서 못버티고 떠나 버리면 나는 어디 가서도 못살아, 여기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편히 못살아.">

 

<“나도 싸우는게 힘들어. 허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 나는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거야. 나는 지금 순양석재하고 싸우는게 아니고 그, 뭐야. 어, 그니까, 그래 맞아, 내 속의 패배주의하고 싸우는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하며는,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며, 말하자면 긍게,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산다는 것이여. 주체적으로 산다는 거라고, 알겠지?”>

 

이 곳 유정면을 떠나자고 애원도 협박도 폭력도 써 보았지만 영희는 할머니들을 두고 떠날수가 없다.

철수는 그런 영희가 안스럽다.

 

<철수가 영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좋냐?” “할머니들 생각하면 눈물이 나.” 철수는 영희를 꼬옥 안아줬다. 잠에서 깬 복주가 두 사람 사이로 파고 들었다. “둘이만 뽀뽀하고잉.” 이불 속에서 세사람이 한덩어리가 되었다.>

 

사람 사는 곳.

공선옥이 그리는 소설 속 전라도 할머니들과 전라도 사투리와 전라도 정서들은 정겹기 그지없었다.

이 소설은 전라도가 이쁜 소설이다.

해징이댁, 무수굴이댁, 난남이성, 한강쟁이댁, 시앙골댁, 살푸쟁이댁 김채선이, 밤실댁, 오류골댁, 용수막댁....

 

<김채선이 탱탱하게 약이 오른 장구를 토옹하고 건드려보고 나서 가는 어깨와 허리에 장구끈을 질끈 동여매고 빙글,나서면 그 어여쁨에 포옥, 눈물이 나왔다.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곱게 낭자를 한 김채선이 하얀 버선코 사뿐사뿐 들어 올리며 드디어 당글당글당글당글 장구를 치기 시작하면 마음이 통개통개통개통개 뛰기 시작했다.>

 

아랫집 시집 온 베트남 며느리가 들려준 시.

영희가 읊는 그 시도 소박하고 여려서 이쁘다.

이념이라면 이런 것이 이념이다.

 

<물소야 내가 너한테 할말 있다. 나하고 논에 가서 경작하자. 모를 심고 경작하는 것은 원래 농민의 일이다. 여기 나 저기 물소 누구도 힘든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벼 한포기 있으면 그 때는 물소 네가 먹을 풀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이쁜 이영희인지.

이런 여자가 내 어머니나 내 마누라였다면 나는 좀 더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서울서 순대장사하는, 이영희가 공짜로 살고있는 농촌 집주인의 억척 마누라도 영희의 말씨나 행동거지를 보고서는 감탄한다.

 

<“우리집에 참 이쁜 사람이 들어왔네이. 당신 사람 참 잘 들였그만.” 건너편 주방에서 이영희가 해사하게 웃고 있다.귀옥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워미워미, 저 웃는 것 좀 보소! 꽃 꽃송이 한가지네이.” “괜히 뿌듯해서 만택이 물었다.” “뭔 꽃?” “사람꽃!”>

 

그런 이영희가 지쳐 쓰러졌다.

사경을 헤맨다.

93세의 시앙골댁, 밭에서 일하다 고대로 엎드려 죽었는데 저승길에서 뒤돌아 보니 이영희가 따라 오려 기를 쓴다.

 

<“우리 복주어매가 이 저승으로 나를 따라 올라고 기를 쓰고 있네. 이를 어쩌나. 쟈를 돌려 보내야 할텐데 이를 어쩌나” 저승 선배가 이야기한다, “노래를 하씨오. 이영희가 못 오게 할라면 이영희 마음 속에 사는 애기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요.” 시앙골댁은 노래한다. “아가아가 얼뚱아가,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우지마라, 우지마라. 아가아가 얼뚱아가, 삼단같은 머리채로 비단이불 지서주께 우지마라, 우지마라.”>

 

시앙골댁의 저 노래가 애기 영희의 눈물을 닦아 주었을까.

눈물 지우고 그리 이쁘게 살았으면 좋을텐데 소설에서는 영희의 생사는 불명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 ‘해정’이가 아마 작가 공선옥일 터이고, 이 이야기의 배경은 공선옥이 직접 부딪쳐 체험하여 취재한 실화일 것이다.

‘물같고 풀같은’ 영희와 할머니의 디모(데모)는 과연 얼마쯤이라도 먹히기는 하였을까.

작가는 후기에서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얘기해 주었다.

 

<2011년 1월 13일, 주민들이 낸 공장업종 변경 승인처분을 취소 해달라는 항소심에서 법원은 기각 판결. 쇄석기 불법가동하게 된 경위, 불법가동된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장을 적법하게 운영할 기회를 영원히 박탈하는 것은 지나치다, 재량권 남용으로 보기 어렵다.>

업체의 영업행위는 공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공선옥은 분하여 입술을 깨문다.

 

<그 순한 조선 아비어미들의 눈빛 포정 말투 내게 나눠 줬던 밥을 떠올렸다. 그 순한 사람들을 원래의 성정대로 순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돈벌이의 욕망 앞에 사납게 찢긴다. 간단히 무시된다.이 이야기는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순하고 약한 항거에 관한 얘기다. 조용히 간단히 무시되는....그 잘난 공익을 위하여! 너무도 조용히 너무도 간단히!>

 

소설은 끝났지만 허무하지는 않았다.

분노라기 보다, 절망이라기 보다 어떤 따스함이 가슴속을 적셨다.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의 분노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분노였다.

‘도가니’의 분노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켜 떠들썩 하지만, ‘물같고 풀같은’ 저 약한 것들의 항거에 대하여는 어찌해야 하는가.

목청 작아 묻혀 버렸으니 제도에 의탁하여 물어 볼 밖에.

 

이 사안을 이 나라 최고의 재판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라도 내어 한번 물어 보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26조 :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제35조 : ①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37조 :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무식한 나이지만 헌법을 들여다 보건대 이 사안은. 제35조 제37조의 조항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항변이 기각된 것은 엄연한 위헌이다.

 

아아, 이 나라.

목청 큰 놈만 장땡인가.

목청 큰 놈만 장땡인 세상은 올바른 세상이 아니다.

 

 

<정처없는 이 발길>

-공선옥 作-

 

***동우***

2015.03.25 04:31

 

공선옥(1963~ )의 '정처없는 이 발길'(2002년 作)

수몰되는 마을, 늙은 갑생이 내외는 갈 곳이 없습니다.

몇푼 보상금은 농협 융자금에서 걷어 가 버리고, 마누라 도망가고 사고로 누워있는 서울 아들네, 빨간 딱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전주 딸네가 노인들의 정처(定處)가 될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갑생 어르신, 넋을 놓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품자고, 희망을.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날까정은 사람이 가슴에 희망을 품고 살아야 허는 것이여. 시절도 희망찬 새천년이여, 이 사람아.">

 

갑생 어르신, 그리고 양재기의 커피를 꿀떡꿀떡 마십니다.

인생길이 '나그네 설움'인데 흘러간 노래 가락이나 육자배기 쪼로 뽑지요.

천진스러움이 한세상 가난을 살게 하는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라비카, 아메리카노만 커핀가요. 양재기에 타서 벌컥벌컥 숭늉처럼 마시는 그것도 커피랍니다.

 

 

<명랑한 밤길>

-공선옥 作-

 

***동우***

2016.06.26 11:54

 

반지빠르고 쾌락적인 날라리 도회지의 속물 사내.

스물한살 짜리 시골 처녀 연이는 그에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렇지만 연이는 징징거리지 않습니다.

 

<나를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나는 이제 겨우 스물한살이에요. 스물한살 처녀한테 이러시면 죄받겠죠? 더군다나 당신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고 비록 노트북 없으면 못 쓰지만 이런 집도 구해서 글도 쓰고 하는 사람이잖아요?”>

 

돌아서 칠흑같은 밤길을 걸어오지만 무참하게 버림받은 처녀 가슴이 온전할리 있겠습니까?

 

<나는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그날 밤 뼈저리게 체험했던 것이다. 나는 소리없이 뛰었다. 그때서야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 발을 헛디뎠다. 신발이 벗겨지고 뭔가 날카로운 것이 발바닥을 찔렀다.>

 

두 사람의 동남아 근로자가 뒤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시커먼 동남아 사내들은 언제나 무섭습니다.

연이는 방앗간으로 몸을 숨깁니다.

 

네팔 사람 싸부딘과 뱅글라데시 사람 깐쥬.

 

<“난 사장님, 돈 줘 소리 못하겠어. 사장 돈 없어, 몸 아파, 어머니 아파, 사장 슬퍼.”>

 

그들은 한국 가요를 부릅니다.

연이도 가만가만 따라 부릅니다.

 

<“싸부딘, 난 한국에서 슬플 때 노래했어. 한국 발라드야. 사장이 막 욕해. 나 여기, 심장 막 뛰어. 손가락 막 떨려. 눈물 막 흘러. 그럼 노래했어. 사랑 못했어. 억울했어. 그러면 또 노래했어. 그러면 잠이 왔어. 그러면 꿈속에서 달을 봤어, 크고 아름다운 네팔 달이야.”>

 

이제 연이는 그들이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라지고 연이는 빗속에서 소리쳐 노래를 부릅니다.

연이의 눈에 네팔의 설산에 더오른 달이 보입니다.

연이는 비를 맞으며 달을 향해 천천히 뚜벅 뚜벅 명랑하게 걸어 갑니다.

아아, 명랑한 밤길입니다.

 

없이 사는 자, 세련되지 않은 자, 뒤처 진 자, 당하는 자, 순박한 자, 세련되지 않은자..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울고불며 고함을 지르고 구호를 외치고 주먹을 내지르지 않습니다.

사람의 성정(性情)에 바탕한 인정(人情)의 동질성, 그 연대감으로 위로를 받고 현실을 이겨 낼 용기를 얻습니다.

 

작디작은 연대, 소곤소곤의 연대, 오순도순의 연대... 물같고 풀같은’ 연대.

슬픈 건 나뿐이 아니야.....

연이는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노래를 부르면서 밤길을 걸어갑니다.

 

공선옥(孔善玉, 1963~ ), 그녀는 전에 '꽃같은 시절'에서도 따뜻한 그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꽃같은 시절'에서 영희가 그리 이쁘더니 이 소설에서는 연이가 이리도 이쁩니다.

 

 

 

 

 

[[공선옥]]

<영희는언제우는가> <내생의알리바이> <멋진한세상> <지독한우정> <폐경전야>

 

 

<영희는 언제 우는가>

-공선옥 作-

 

***동우***

2017.02.02 04:57

 

'공선옥(1963~ )'의 '영희는 언제 우는가'

 

<나는 쪼글치고 앉아 영희 아이들을 바라본다. 부럽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울음은, 저 확실하게 이유 있는 울음은 얼마나 잘난 울음인 것이냐. 얼마나 힘센 울음인 것이냐.>

 

천진한 서러움.

잘난 울음, 힘센 울음, 건강한 울음...

그러나 팔자의 고단함, 관계의 척박함, 삶의 신산(辛酸)함 등에 깃드는 순진함 같은건 없습니다.

그냥 뭉뚱그린 추상의 서러움으로 우는 것입니다.

 

<얼핏 맡아지는 어떤 냄새, 오래된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냄새가 바로 남자의 옷에서 났기 때문이었다. 내게 한번 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가버린 그 냄새, 더욱더 기이한 것은, 그 냄새인 것 같다가, 차츰 그 냄새라고 단정을 짓고 나자 욕망인 것도 같은 혹은 분노인 것도 같고 그리움인 것도 같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어떤 감정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이민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야말로 그 냄새가 나는 옷의 주인에게 매달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몹시 힘드니, 당신이 당신 옷으로, 그 다정한 냄새 나는, 그 평화롭고 온순하고 모든 정상적인 것의 냄새가 나는 옷으로 나를 감싸서 어디론가 데려가줘야 한다고 애원하고 싶은 것이었다.>

 

세상이 몹시 힘들적 아무리 둘러보아도 저 따순 냄새가 맡아지지 않을 때의 서러움.

그런 따위 기억의 서러움으로 통곡하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아래 입술을 꼬옥 깨물면서 눈꼬리에 눈물 한방울이면 족합니다.

 

<하면, 영희는 지금 살려고 우는 것인가 살려고 우는 거라면 그러면 나도 울 수는 있다.

우는 것이 목숨줄이라 했겼다, 그러면 나도 울어야겠다. 이제야말로 정말 울어야겠다.

쪼글치고 우는 울음말고 온옴 버둥대는 울음 울어야겠다. 세상천지 집어삼키고도 남을 울음 울어야겠다.

나는 다리를 죽 편다. 혁, 드디어 첫 울음소리가 힘차게 터져 나온다.

때 맞추어 대숲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무릇 고통 무릅쓰고 살아야 하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

저리 울어대는 그대(소설속 화자)와 영희 곁에 퍼질러 앉아 나도 울고 싶습니다.

나도 살고자 하는 목숨이니까요.

 

세상에 나약하여 남보다 울음이 헤픈 나.

당신께 묻습니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울지만 벗이여, 그대는 주로 언제 우십니까?

 

 

<내 생의 알리바이>

-공선옥 作-

 

***동우***

2017.05.29 04:35

 

생각건대, 공선옥(孔善玉, 1963~ )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끼리의 따뜻한 연대(連帶)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물같고 풀같은 연대...

 

내 생의 알리바이.

 

<나는 태림을 잊은지 오래였다. 잊은지 오래였던 그가 그 두 시간의 술자리에서 우리가 안주로 먹고 있는 명태포 속에 잠복해 있는 가시처럼 내 폐부 깊숙한 어느 한 곳을 자꾸만 찔러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낙태 수술한 여자가 수술한지 두 시간 만에 술을 마셔도 몸에 괜찮은지 어쩐지만을 지극히 염려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문제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한눈팔기였다. 그냥 한눈을 팔아버리는 것이다. 본질을 들여다 보기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는 서로가 한눈팔고 있는 상태임을 잘 알아보았고 그 한눈팔기의 이면에 도사린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남이 태림이 애기를 한 것도 어쩌면 그런 한눈팔기의 일종이었다.>

 

아픈 것으로부터 한눈팔기.

위선적이고 표피적인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본원적인 것들.

비루한 기억의 아픔.

 

김태림이란 한 여성의 인생궤적은 소설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그녀는 작가에게는 명태포 속에 잠복되어 있는 가시처럼 가슴을 찔러대는 아픔일듯 싶습니다.

그 아픔에는 5.18의 광주도 있을테지요.

70여년의 삶, 어떤 인물을 떠올리면 아릿하게 아픈 그런 것 내게도 없지 않습니다.

 

공선옥의 '내 생의 알리바이' 두 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5.30 04:26

 

공선옥의 '내 생의 알리바이'

 

<나는 태림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도 없다. 아니, 내가 태림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 따위들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어느 한때나마 우리 관계가 긴밀했던 적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태림과 나와의 관계를 그렇게 느꼈다. 한때나마 긴밀한 관계에서만이 그 속에서 애증 따위 감정들도 파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애증의 감정이라든가 기타 다른 감정 들이 생겨날 수 없는 선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런 만남조차도 오 년 전 여름이 마지막이다. 또 한번 말하지만 내 생은 쭈욱 악화일로의 선상에 있었다.>

 

'나' (작가 자신일런지)에게 김태림은 누구인가요.

조금도 긴밀하지도 않았던 관계.

그런데 나는 왜 그녀를 떠올리면서 '내 생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하는 걸까요.

"처해진 상황을 나름 치열하게 나도 살아냈노라"고.

그런 것일까요?

 

소설 속에 김태림에 관한 아무 것도 구체적 진술은 없습니다.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입니다.

호수에다 사람을 밀어 넣어 죽인게 사실인지, 제 자식을 버리면서 왜 칭기스칸을 중얼거렸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척박한 삶을 살면서 세 남자를 만나 여러 아이를 낳았고, 도무지 종잡을수 없는 언행을 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암시가 그러한듯 합니다) 태림이.

 

<정신과 질환을 앓았나봐. 80년도부터 앓았는데 오래 됐나봐. 이웃집 아줌마가 그러대.>

 

골목 끝으로부터 들려오는 무서운 절규, 동물적인 섬뜩함...

태림이의 불행, 그 배후에는 1980년 5월의 광주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명태포 속에 잠복해 있는 가시처럼 내 폐부 깊숙한 어느 한 곳을 자꾸만 찔러대는' 존재.

'나'에게 태림이는 아프고 어두웠던 시대의 하나의 '메타포'일테지요.

'헤세'와 '앙드레 지드'로부터 '프랑스 혁명사'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페타고지'로.

현실의 즉자적(卽自的) 인식으로부터 현실의 배후를 들여다보는 대자적(對自的) 인식으로.

그러나 쁘띠 부르조아, '나'는 중얼거립니다.

<나는 사랑하지 않았는갑다. 태림아. 나의 친구여!>

 

느닷없이 옛 친구 도깨비(전문호)가 생각납니다.

대자적 인식은 커녕 열등감과 자의식에 겨워 허덕대었던, 1960년대 후반 내 한시절 청춘.

그 때를 회억(回憶)케 하는 어떤 압축적 상징성이 그에게 있는듯.

나 군대 있을 적 죽어버린 도깨비인지라 더욱.

 

예전 KBS의 '이산가족 찾기'에서 곽순옥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려봅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멋진 한세상>

-공선옥 作-

 

***동우***

2018.01.15 04:11

 

공선옥(孔善玉.1964∼ )의 '멋진 한세상'

그녀의 자전소설(自傳小說)입니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객설은 내일.

 

***동우***

2018.01.16 04:35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즈음의 삶.

버스 안내양, 식모, 공순이, 80년의 광주, 교황의 방한, 아웅산 폭파사건, 완행열차, 선데이 서울, 서울역, 용산역, 국제 빌딩...

 

시대를 관통하여 공선옥은 줄곧 핍곤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가난이 그녀를 작가로 내몰았겠지요.

궁핍했기 때문에 그녀는 세상을 알고 삶을 알고 그리하여 자신을 알게 되었을겁니다.

 

공선옥의 문학은 그녀의 삶에 굳건하게 근거하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얼뱅이 관념론자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그래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공선옥의 소설이 좋습니다.

아름답고 건강하여...

 

생각건대 '멋진 한세상'은 반어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멋진 한세상'입니다.

 

<왜 사람들은 타인의 눈물을 싫어할까. 그러다가 내린 결론인데요. 타인의 눈물을 통해서 혹시 자신의 눈물을 보게 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닐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얻었지요. 그 결론을 얻은 뒤부터는 내 눈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그리 밉지가 않더라구요. 아니 오히려 그들에 대한 따스한 연민 같은 게 솟아나기도 하더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진심으로 타인의 눈물을 닦아준다거나, 아니면 같이 울어준다거나, 아니면 타인이 울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사람만 있는 세상이라면 정말로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세상이 되겠지만요, 그렇지 않고 겉으로만 눈물 닦아주는 척 속으로는 하나도 타인의 눈물에 공감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더 무서울 것 같지 않으세요? 타인이 울면 신경질 내는 사람이 오히려 더 타인의 눈물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닐까, 타인의 아픔에 제 마음도 아픈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타인의 눈물.

소설은 공감이고 이해이고 용납이고 또레랑스입니다.

그리하여 소설은 민주주의올시다그려. ㅎ

 

 

<<<지독한 우정>>>

-공선옥 作-

 

***동우***

2018.06.03 23:41

 

'공선옥 (1963~ )'의 '지독한 우정'

 

공선옥은 언제나 약하고 상처받은 자의 편입니다.

뇌성마비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장애가 있는 아저씨와 연애를 합니다.

임신한 어머니.

 

<엄마, 제 동생 낳아주세요. 그래도 이번 아이는 사랑해서 생긴 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젠 사랑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요.>

 

딸은 비리고 짜고 쓰고 그러고도 달콤한 듯한 냄새가 풍기는 건어물 가게에서 미역을 삽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오면서 맺은 우정의 냄새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편견과 멸시와 상처 속에서 살아왔던 두 모녀.

엄마에게 딸은 우정으로 엮어진 세상천지 누구보다 든든한 동지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

중증 뇌성마비장애자 문소리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건달 설경구의 사랑.

그들의 섹스를 세상은 제대로 바라볼줄을 모릅니다.

강간범이 되어버리는 설경구...

 

'지독한 우정'

장애인을 느끼는 아릿하고 불편함 없지 않지만, 그 속살은 건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소설의 기능.

민주주의, 또레랑스, 휴머니즘 그리고 이해와 사랑의 눈길을 깊게 하는...

 

 

<폐경전야>

-공선옥 作-

 

***동우***

2019.02.15 00:19

 

공선옥(1963~)의 '폐경전야'

 

고비를 지나 저물무렵, 남자라고 폐경기(閉經期)가 없었을랑가.

저처럼 옛일이 애틋하고 현실이 심란하고 육감이 요상한 감수성...

 

시대를 치열하게 사유하였거나 시절을 감각으로 희락하였거나.

갱년기는 대략 비슷한 감수성의 계절이런가.

生이 대체로 그러한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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