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외투> -고골리-
<스페이드의 여왕. 그 한 발> -푸쉬킨-
<외투>
-고골리 作-
***동우***
2013.02.23 05:43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솔로호프등 비교적 현대작가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푸쉬킨(1799년생 37세로 사망), 투르게네프(1818년생 64세로 사망), 도스토예프스키(1821년생 59세로 사망), 톨스토이(1828년생 81세로 사망), 체홉(1860년생 43세로 사망)...
기라성같은 러시아 작가들.
모두 러시아의 보석같은 작가들이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주춧돌이라는 '니콜라이 바실리예프 고골리' (1809년생~ 42세에 정신착란으로 사망),
그의 소설 '검찰관(희곡)', '죽은 혼', '타라스 부리바'도 좋았지만 외투를 강탈 당한 어떤 못난 사나이의 이야기 '외투'
소설적 구성과 문장(내게는 번역문), 인물과 사회상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을 묘파(描破)해 낸 솜씨하며...
내게 최고의 단편소설을 꼽으라면 단연 '외투'다.
러시아라는 사회의 위선과 부도덕성과 욕망과 야비함와 치사함과 인색함과 우스꽝스러움...
거기 등장하는 불쌍한 사람들.
고골리의 '죽은 혼'을 읽고서 푸쉬킨이 한숨지었다고 한다.
"아, 우리 러시아는 어찌 이다지도 슬픈가" 하고.
창의성 적극성은 커녕, 오로지 왜소하고 기괴하고 희극적인 패배자.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라는 사나이.
그를 보고 웃으려는가. 웃자.
뭉클한 눈물과 더불어 웃자.
<"나를 좀 내버려두시오.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요!">
그를 좀 내버려 두자.
필경은 유령이 되었지 않는가.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러시아만의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를 나는 알고 있다.
그에게서 나를 본다.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그는 내가 뚫어지게 들여다 보는 내 실존의 어떤 모습이다.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이건 좀머씨의 목소리다.
***eunbee***
2013.02.24 14:29
'나를 좀 내버려두시오.' 이 글 정색하고 앉아 읽으려는데... 나를 내버려 두지않네요. 엉덩이 떼고 일어나야하니
다음에 다시 와서 읽어야 겠어요. 겨우 7-8분지 1이나 읽었으려나? 이렇게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읽고, 다시 읽고...
그런 독서가 될텐데요.ㅎㅎㅎ
잘 읽어야 하는 권장 목록을.ㅋㅋ
***동우***
2013.02.25 06:10
파리의 은비님을 뉜가가, 무엇인가가 내버려 두지 않음을 즐기시는 것 내 다 알지요. ㅎ
아시다시피 내 늘 강조하는바 있잖아요?
소설읽기가 무스 공부인가, 소설은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있게 읽어야 한다.
고골리의 외투.
느긋하실 적 천천히 읽으세요.
우리 곁의 사람처럼 묘사한 캐릭터들이라던가, 상황묘사, 당시 러시아의 풍경화나 풍속같은 것..
의외로 재미있답니다.
'잘 읽어야 한다는'운운, 은비님의 그런 언급은 내게도 부담스러운 말씀. ㅎ
은비님으로서는 그냥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임을 내 보장할께요.
외투는.
***eunbee***
2013.03.06 23:30
카톡을 할 수 없는 먹통 스마트폰으로(큰애가 나를 위해 가져온 것인데, 연속극이나 보는...ㅎㅎ)
동우님 독서방에 와서 좋은 글 '외투'읽었답니다.
한 번으로는 성이 차지않는 이내 독서, 다시 읽을 것을 스스로에게 기약해 두었답니다. 공원에 앉아서도 읽을 수 있으니 좋습니다요.ㅎ
파리의 봄이 불쑥 옆에 와앉았습니다.
동우님의 봄도 화사하고 포근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우***
2013.03.08 06:02
요 며칠새 내 블로그는 뜸하였지만 쏘공원 나들이는 은비님과 함께 하였다우. ㅎ
스마트폰으로.
지나치게 귀여운 은비아씨의 고스프레에 미소를 짓기도.
큼큼 냄새를 맡아보면 한반도 대기에도 아련한 화향(花香) 맡아진답니다.
차츰 봄얘기나 나누기로 해요.
봄. 봄. 봄.
***송현***
2013.02.24 14:36
약한 인간, 저의 모습을 보듯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하는 업이 그런지라 저는 전시회에 초대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픈 날은 잘 못나가는 편이랍니다.
이유는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하기에.
관에서 하는 행사, 우스꽝스러운 것은 목소리 크고 옷만 잘 입고 있으면 초짜배기 문외한도 정치가 옆에서 대표인양 테이프 컷팅도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오픈식 지난 날 감상하는 편이 훨씬 좋거든요
위선과 욕망.
러시아의 관료주의.
어느곳이나 언제나 그렇군요
***동우***
2013.02.25 06:15
하하, 송현님.
고골리의 외투.
다른 방향에서, 적실하신 비유에 하하 웃습니다.
전시회의 오프닝에는 성장을 하여야 하는 모양이지요?
전에 '입는 옷 숨는 옷'이라는 글을 쓴 적 있는데, 그것이 상기되는 군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 속에 숨는 세태..
그 또한 이 시대 위선과 외관에 연연하여야 하는 아까끼의 슬픔과 일맥상통한바 없지 않은듯. ㅎ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필경 슬픈 유령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려.
++++
<어쨌든 이 고관은 친구네 집 계단을 내려와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에게 곧장 말했다.
"까롤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가자!"
그는 마차 안에서 따뜻한 외투에 몸을 감싸고, 러시아 사람 특유의 지극히 즐거운 기분에 빠져들었다. 즉 일부러 무얼 생각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끊임없이 달콤한 상념이 떠올라, 그저 기분좋고 편안한 그런 상태 말이다. 그는 더없이 기분이 흡족했고, 방금 떠나온 파티에서의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계속 떠올랐다.
그는 자기가 익살을 부려 친구들이 배를 붙잡고 웃게 만들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익살을 혼자 입 속으로 되풀이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역시 그 익살은 재치 있고, 사람을 웃길 수밖에 없었어... 그는 자기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큰 소리로 웃어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따금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찬바람이 그의 달콤한 기분을 방해했다. 무엇 때문인지 바람은 갑자기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없게 불어닥쳐 차디찬 눈가루를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외투 깃을 마치 돛처럼 펄럭이게 만들고,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이었다.
문득 고관은 누군가 뒤에서 자기의 외투 깃을 무서운 힘으로 움켜잡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다 떨어진 낡은 제복을 입은 작달막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고관은 그 사나이가 바로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관리의 얼굴은 눈처럼 창백해서 겉으로 당장 보기에도 죽은 사람, 즉 유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령은 입을 일그러뜨리며 송장 냄새를 내뿜으며 말했다.
"음, 이제야 네놈을 만났구나! 이제야 네놈의 목덜미를 잡았어! 난 네 놈의 외투가 필요하다!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나에게 호통을 쳤었지! 자, 이젠 네놈이 외투를 내놓을 차례야!"
고관은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딱하게도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는 평소 관청의 부하들 앞에서는 언제나 늠름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자 애를 썼다.
또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거 참, 위풍당당한 사람이로군!" 하고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 호걸다운 풍모를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지만 -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당장 발작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허겁지겁 자기 손으로 외투를 벗어 던지고 마부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자! 전속력으로 달려!"
마부는 주인의 이 목소리를 듣자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러 쏜살같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마부는 만일의 경우에 두 어깨 사이에 목을 잔뜩 움츠린 자세를 갖췄다. 왜냐 하면 주인의 이런 목소리는 뭔가 어떤 긴급한 순간에 나오기 일쑤인데다, 대개의 경우 목소리보다 훨씬 효과가 높은 어떤 행동이 뒤따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기껏 6분 정도 지났을까, 고관은 벌서 자기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외투를 잃고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까롤리나 이바노브나를 찾아가는 대신 자기 집으로 곧장 달려왔던 것이다.>
++++
***teapot***
2013.02.25 13:16
이 소설. 그 먼 옛날, 중학교 시절 외삼촌 댁에서 빌려다 봤던 생각이 어슴프레 나는 것도 같습니다.
그때가 아닌가?
암튼 줄거리가 생각이 나는데요~
동우님이 최고의 단편으로 꼽으시는 "외투" 잘 읽고 갑니다.
예전에 읽은 소설도, 안 읽어봤던 소설도 하나씩 이곳에서 읽는 재미가 정말 쏠쏠합니다~
동우님께 감사 감사.
***eunbee***
2013.03.08 14:56
새벽, 티티새가 울어요
어제 이 글 다시 읽엇어요
그리고는 한번 더 울더라구요.내가...ㅠㅠ
동우님 댓글엔...더욱...ㅠㅠ
우리의 낡은 시간을 슬퍼 말기요.
***동우***
2013.03.09 05:33
티티새의 울음소리.
자연과 어울어진 지빠귀의 울음소리(소로우?)를 읽은적 있는데 쏘의 티티새는 은비님의 어떤 심금의 현을 건드렸을꺼나..
은비님은 아까끼의 무엇이 가엾어서 우셨을꺼나. ㅎ
슬퍼 않을테니 은비님은 <낡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말기요.ㅎ
색채 현란한 은비님의 주말...
[[푸쉬킨]]
<스페이드의 여왕> <그 한 발>
<스페이르듸 여왕>
-푸쉬킨 作-
***동우***
2013.09.23 05:39
노름.
한가위 명절, 친척들 둘러앉아 벌인 고스톱판에서 좀 따셨나요들? ㅎ
푸쉰킨의 소설은 처음,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837)의 '스페이드 여왕'을 포스팅합니다. (카드 '스페이드의 여왕'은 '숨겨진 악의'를 뜻한다고 하네요)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는 푸쉬킨은 우리에게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하는 시와 '예프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등의 소설로 우리와 친숙한 작가이지요.
'스페이드의 여왕',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오페라로 작곡(푸쉬킨의 '예프게니 오네긴' 역시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유명한 오페라..)하였고 여러번 영화로도 만들어졌을겁니다. (나는 한번도 못 보았습니다만)
요즘도 문상(問喪)갈라지면, 곧잘 벌어지는 노름판.
노름에는 광적인 매혹이 있다고 합니다만 (늘 후회하면서 토스토예프스키도 앨런 포도 노름판에 미쳤더랬지요) 나는 노름을 한사코 피합니다. (잔푼 판돈자리 심심풀이 고스톱 정도는...)
윤리적으로 무슨 생각 따위 내게 었어서가 아니랍니다.
스스로에게 노정(露呈)되는 자신의 비천한 품성이 끔찍하여 그렇습니다.
필사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하지만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카오스의 감정밭이 스스로 참 싫은 것입니다.
판돈을 향하여 끓어오르는 그 탐욕, 돈을 쓸어가는 자를 향하여 부글거리는 미운 마음, 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그 표정의 경박함, 뒷꽁무니 옴질옴질하는 그 불쾌한 짜릿짜릿함...
남보다 몇배나 비천하고 가벼운 감정밭을 갖고 있는 놈이 바로 나로구나 하는 자각 인식이란 몹시 끔찍한거랍니다. ㅎ
진정한 노름꾼은 나와 같지 않아요.
나처럼 눈 앞 이익과 게임운영에 있어서 천박스럽고 경박스러움이 있지 아니합니다.
정중여산(靜重如山).
싸움에 임하는 장수처럼 무겁습니다.
노름이야 패가망신의 지름길, 권할바 바이 없지만 그들이 갖춘 품성이나 진중한 마음가짐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소설얘기하려다 또 옆길로 빠졌습니다.
명절연휴 끝나고 새로이 맞는 월요일, 건투를.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죄의식이 만든 환상>
이 [스페이드 여왕]은 특별히 환상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에 걸치는 시대의 정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 장마다 앞머리에 서시나 서언을 배치한 게 그러하고, 사건의 도입 전개 발전 결말의 순서가 정연한데다 친절하게 후일담까지 곁들인 게 또한 그러하다. 낭만주의적 요소는 주로 게르만의 어둡고 비뚤어진 열정의 묘사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환상과 기상]편에 넣은 까닭은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에 본 환상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그 순간, 스페이드의 여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는 것같이 느껴졌다.' -오래 전 그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는 듯한 괴기스러움과 공포를 느꼈다.
주인공이 백작 부인의 장례식 다음 날 새벽에 보고 들은 것은 아마도 그의 아직 채워지지 못한 열망과 괴로운 죄의식이 어울려 빚어낸 환영과 환청이었을 것이다. 그가 미치기 직전에 본 스페이드 여왕의 섬뜩한 눈웃음도 심리학은 마침내 절망과 공포로 변한 죄의식이 이끌어낸 착시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환상적이고 신비한 내용을 다룬 것으로 내 젊은 기억에 깊이 새겨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읽는 지금 세찬 감동은 옛 그대로 되살릴 수 없어도 이 작품이 그렇게 인상지워진 원인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꿈과 착시가 불가사의한 백작 부인의 전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무명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불우한 문청(문학청년)이 주인공의 어둡고 비뚤어진 열정에 느끼는 동정과 그 비극적 결말에 보내는 연민이 감동을 배가해 이 작품을 더욱 환상적이고 신비한 것으로 기억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작가 푸쉬킨은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라는 명칭 못지 않게 천재적인 소년시절로도 유명하다.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수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그는 열두 살 때 이미 몰리에르를 본딴 프랑스어본을 써서 주위를 경탄케 했으며 열여섯 살 때 시 [짜르스코예 셀로의 추억]을 발표하여 당시 최고의 시인이던 제르자빈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또 스무 살 때는 장편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발표, 러시아에 로맨티시즘이란 말이 일반화되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낭만적 기질과 자유주의 사상은 관이 그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탄압하도록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계속된 비극의 진원지였다.
줄기차게 쓰고 읽으며 작가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하는 사회와 맞서던 푸쉬킨은 서른여덟 살에 갑자기 죽었다. 그를 시기하는 세력의 음모에 말려들어 시작된 결투가 한 탁월한 재능을 한창 나이에 꺾어버린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시인으로서보다 [대위의 딸]이라는 장편의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그 한 발>
-푸쉬킨 作-
***동우***
2016.02.11 04:26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云云..
대위의 딸.. 예프게니 오네긴등과 차이코프스키 음악으로도 귀에 익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837)
그의 작품은 '스페이드의 여왕'에 이어 두번째 올리는 것 같습니다. (장편 '대위의 딸'의 텍스트 파일도 있지만 언제 올리게 되려는지..)
'그 한 발'
이 소설 역시 푸쉬킨의 낭만주의적 면모가 여실합니다.
결투, 감연히 죽음과 맞서는 사나이의 명예와 용기라는 것.
요즘에사 저와 같이 순수한 감정영역으로 처형이 가능한, 사적자치(私的自治)가 허여(許與)될 여지가 없을테지만 당시에는 신사의 명예란 목숨으로 지켜야 할 가치였을테지요.
유예된 한발의 총탄.
죽음 앞에서도 그토록 태연한 상대를 향한 모욕감은 오랜 세월동안 한 발의 총탄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
<"그는 권총을 꺼내 겨냥을 했습니다... 난 일 초 일 초를 속으로 셌습니다... 속으로 아내를 생각했죠... 무서운 일 분이 지났습니다! 시리비오는 손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미안하지만, 이 권총에 장전된 것은 버찌 씨가 아니야... 총알은 무거운 거야. 난 지금 결투가 아니고 살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난 무기도 갖지 않은 자를 쏘는 것은 익숙치 않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누가 먼저 쏠 것인지 제비를 뽑읍시다."
"난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난 그때 싫다고 거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다른 권총에 총알을 재고 제비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 내가 쏘아 뚫은 그 군모에 집어넣었습니다. 이번에도 또 내가 첫번을 뽑았습니다. '백작, 당신은 악마처럼 운이 좋군.' 그가 엷은 미소를 띠며 말하더군요. 나는 그의 그 미소를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가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는지 난 전혀 모르겠어요... 어쨌든 난 다시 쏘았습니다. 그리고, 저 그림을 맞추었던 겁니다."
백작은 총알이 뚫고 지나간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얼굴은 불처럼 타는 것 같았다. 백작 부인은 손수건을 비틀어 쥐고 있었다. 그 얼굴은 손수건보다 더 창백했다. 난 감탄의 외침을 참을 수 없었다.
"난 총을 쏘았습니다." 백작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총알은 빗나갔습니다. 시리비오는... 그 순간 그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었습니다. 시리비오는 나를 겨냥했습니다. 그때 별안간 문이 열리고 마샤가 뛰어들어와 비명을 지르며 내 목에 매달리는 거에요. 아내가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완전히 기운을 회복했습니다. '여보!'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장난을 치는 것일 뿐이오. 그렇게 놀라다니! 어서 가서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와요, 옛날 친구를 당신에게 소개할 테니.' "
"마샤는 그래도 반신반의하더군요. '남편의 얘기가 사실입니까?' 아내는 험악한 표정을 한 시리비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두 분이 장난을 치고 계신다는 게 사실이에요?' '바깥 양반은 늘 장난을 칩니다, 백작부인.' 시리비오는 아내에게 대답했습니다. '한 번은 장난 삼아 내 따귀를 때리고, 또 장난 삼아 이 군모를 쏘아 맞추었고, 지금은 장난 삼아 날 빗맞췄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장난을 치고 싶군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나를 겨냥했습니다... 아내 앞에서요! 마샤는 그의 발 밑에 몸을 던졌습니다. '일어나, 마샤, 부끄럽지도 않아?' 나는 자제심을 잃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 '그리고, 여보게, 가엾은 여자를 조롱하는 짓은 그만두지 못하겠나? 대관절 쏠 건가, 안 쏠건가?' '아니, 안 쏘겠어' 시리비오는 대답했습니다. '난 만족했어. 난 당신의 당황한 모습, 겁을 집어먹은 것을 보았어. 난 당신에게 날 쏘게 했지. 난 만족해. 당신은 아마 평생 날 잊지 못할 거야. 난 당신을 당신의 양심에 맡기겠어' 그는 말을 남기고 나가려다 문득 문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가 쏘아 뚫은 그림을 향해 거의 겨누지도 않고 한 방 쏘더군요. 그리고 나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
아, 드디어 그 상대(백작)는 아름다운 부인 앞에서 그예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시리비오는 승리한걸까요.
이순신 장군께서 전투에 임하는 장졸들에게 일갈하셨습니다.
'정중여산(靜重如山).. 산과 같이 무겁게 하여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시리비오에게 모독일테지만 결투를 나는 노름판에 비유해 봅니다.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
상대에게 절대로 가진 패를 읽히지 않는 표정, '포커 페이스'
그 역시 정중여산의 마음가짐이 없으면 안될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름꾼을 존경한답니다.ㅎ)
나와 같은 위인으로서는 탐욕과 초조감과 불안감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한 포커페이스, 예전 노름판에 끼었을적 나는 내 비천한 품성에 절망하였습니다.
하물며 나를 겨누는 총구 앞에서 '정중여산'은 언감생심...
푸쉬킨도 당대 최고의 미인과 결혼하였고, 그 미인 아내를 둘러싼 악의적 추문 때문에 결투를 하여 그 총상때문에 서른 여덟의 나이로 죽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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