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2 (1,4,3,3,1)

카지모도 2019. 12. 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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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

 

***동우***  

2013.11.26 04:39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연재 시작합니다.

 

이데올로기가 내포(內包)할 뿐더러 표방하는바 캐치프레이즈는 다름아닌 이성(理性)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이성이란 오르가즘으로 진저리치는극도로 흥분한 이데올로기다.

이성은 커녕 파토스를 넘어선 카오스의 광기(狂氣), 이념이 노정(露呈)되는 모습은 미친 피바람이다.

 

그 이데올로기의 현장에는 정연한 잣대도 없고짐짓 숙고(熟考)함 따위도 없다.

사는 것을 위하여 살아내야 하는비이념적 인간성들은 무차별적으로 난도질 당한다.

당하는 자들은 순전히 운명론적인 것이다.

 

광기(狂氣)가 실리지 않은 열정이란 나약한 이상주의선무당의 칼바람 앞에서는 전전긍긍 비루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만다.

예전에 그토록 자랑스러워하였던 오빠인데이제 박완서는 오라비가 혐오스럽다.

 

["기 기 기...깃대빼기에 무슨 기가 꽃혔는지도 안 보여누 누 누... 눈깔이 멀었냐?" 좌익에도 못 붙고 우익에도 못 붙고좌익한테도 밉보이고 우익한테도 밉보이고순전히 그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다 이 지경이 된 오빠에게 이데올로기의 억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황홀경이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깃대빼기에 꽂힌 태극기거나 인공기(赤旗).

나부끼는 깃빨에 따라 적절한 보호색을 갖추지 않았다가는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이 되는 현장(現場).

무시무시한생사여탈이 똑 장난같기도 하였을 그 현장.

 

지금을 살고있는 자들의 한 두 세대전우리 선대(先代)의 시공(時空)이었을.

어쩌면 우리의 지금 모습을 결정지었을.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4)]

-이남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박완서에게 완벽한 하늘이었던 오빠의 상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오빠 입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어쩌면 배신감이었을지도 모른다오빠는 나에게 천성의 생각하는 갈대였다그런 그가 지금 살찐 돼지가 되려고 열심히 자신과 식구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말이 많아지면서 표정도 과묵하던 때의 준수한 모습은 간데없이,소심하고 비루해지고 있었다오빠가 넘어온 이데올로기의 전선은 나로서는 처음부터 상상을 초월한 것이긴 했지만 이런 오빠를 보고 있으면 그 선의 잔인하고 음흉한 파괴력에 몸서리가 쳐지곤 했다오빠 같은 한낱 나약한 이상주의자가함부로 넘나들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오빠가 얼굴을 잃고 돌아왔다고 해도 지금의 오빠보다는 유사성을 발견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이제 오빠는 없어졌다.

오빠의 상실은 시대적으로 보면민족적 가치 질서의상실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일제 시대에는 그래도 할아버지로 상징되는 구시대의 질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또 그에 대신할 새 시대의 질서의 싹이 믿음직한 오빠로 상징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념의 대립과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민족상잔의 전쟁은 그러한 새 시대의 질서의 싹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박완서에게 있어서 오빠의 상실은 보호받고 의지할 수 있는 세계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박완서는 더 이상 미성년자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이제 그녀 자신이 법이 되고 질서가 되어 세상의 힘과 부딪쳐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보호자가 되어 엄마와 오빠를 보호해야 할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박완서는 스무 살이란 나이 때문에 저절로 성년이 된 것이 아니라상황의 변화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년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되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또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기간은 6.25 전쟁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박완서는 가장 혹독한 시련의 세월 동안혼자서 모든 시련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오빠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이후박완서는 혼자서 세상과 부딪힐 뿐 아니라 혼자서 생각하고판단하고 괴로워하고 또 가족의 생존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극한 수난 속으로 몰아간 전쟁이라는 괴물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한다.

 

그러므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는 달리 성장소설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정신적 파탄의 공간속에서 참혹한 전쟁이라는 야마의 시간을 견디면서 한 인간이 어떻게 고귀한 생명을 유지하고또 인간적 존엄을 최소한이라도 지키려고 몸부림 쳤는가에 대한 눈물겨운 증언이다.

 

필자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으면서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떠올렸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야만적인 전쟁이 인간적 가치를 어떻게 무자비하게 파괴하는가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내 인간적 위엄과 인간적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 한 젊은 영혼이 어떻게 고통 당하고 끝내는 파멸되는가를 감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계속-

++++

 

***홍애(虹厓)***  

2013.11.26 11:18

 

회색이 생각나는 동우님의 댓글입니다.

저 무렵무슨 색깔인지 꼭 편을 갈라야 하는 획일이 무시무시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비슷한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혐오도 살짝 생깁니다만.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가 읽고 싶어집니다

읽고 싶은 것은 많고 읽어낼 시간이나 체력이나 상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요새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인데도 그렇습니다

 

박완서의 이 소설은 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씩 읽을게요.

종이 책과 달라서 화면으로는 보기 힘든 제 눈이지만 ㅎㅎㅎ.

이렇게 가끔씩 읽을 거리를 환기시키는 동우님 계셔서 좋습니다.

요새는 동우님과 저만 책부족인 것도 같구요

둘이서 살짝이런 책부족도 좋아요 ^^

 

***동우***  

2013.11.27 07:14

 

내가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바가 바로 그 점이랍니다.

이 땅 이 시대의 양극화 문제.

사람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일테지만 살아가는 생각들이야 하늘과 땅 차이는 아닐터인데.

어쩜 생각하는 것들이 그렇게들 극과 극인지.

 

회색으로는 견딜수없게 하는 광야.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립니다.

 

***oeljsxozy---  

2013.11.27 06:32

 

선생님.

좋은글 잘 보고 댓글 한줄로 인사 남깁니다.

 

***동우***

2013.11.27 06:53

 

[은유(隱喩)나 상징이 전혀 없이 의도만이 하도 뻔뻔스럽게 노출돼 있어 마치 공산주의가 벌거벗고 서 있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었다벌거벗은 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는 구경꾼이라도 시선을 돌려야지 어쩌겠는가.

무용 순서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줄봉사 노릇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올케한테 미안했지만 말로 나타내진 않았다뭐라고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거의 자정을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온몸이 남루처럼 지쳐 있었으나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나는 이불 속에서 외롭게 절망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는 덜 무서울것 같았다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 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약탈과 강간등나도 들은바 당시 인민군대는 적어도 국군이나 미군보다는 엄정한 군기(軍紀아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를 어쩌랴.

사람 사는 것의 본질을 전혀 다른 것으로 오도(誤導)하고 있는 그놈의 이념이라는 것.

저들의 지선(至善)의 가치관에 있어서 먹고사니즘이란 차선의 가치이다.

아무리 굶주리더라도 변증의 역사 진행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반동이다.

그 도그마는 은유나 상징으로 치장할 것도 없다.

아무리 뻔뻔스럽게 노출되어 있어도 무방한 만고의 절대가치인 것이다.

 

TV는 거의 안보지만 차넬 A '이제 만나러 갑니다'는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탈북꽃제비수용소... 북한의 현실이 내게는 아프디 아프다.

북녘의 땅은 이도저도 아닌 극도로 변질된 이데올로기의 나라.

맑스도 레닌도 아랑곳 없이오로지 스탈린의 스차일만이귀신형용으로 변형된 공산주의의 망령만이 춤추고 있는듯 하다.

 

인간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백성의 먹고사니즘을 챙기지 않는 정권의 존재가치란 도대체 어디 있더란 말인가.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5)]

-이남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역시 단순한 전쟁 체험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적 위엄과 인간적 가치를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스무 살 처녀의 젊은 영흔이 좌절과 야만의 소용돌이 속에서 흘로 몸부림친다.

야만의 세월을 기록한 글들은 많다.

그러나 어떤 영흔의 문체가 그 세월을 기록했는가에 따라서 그것들은 큰 차이가 난다.

야만의 세월을고발했기 때문에 훌륭한 글이 되는 것이 아니라야만의 세월 속에서도 인간적가치를 버릴 수 없어 더욱 큰 고통을 당했 던 영혼이 그 야만의 세월을 기록할때 훌륭한 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보아 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 대목(위에 내가 인용한 대목)은 박완서가 인공치하의 서울에서 기아와 불안과 초조 속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이 인민 위원회 일을 좀 도와 주게 되는데어느 날 방소 예술단이 위문공연을 하니 모두들 가서 봐야한다는 강압에 못 이겨 박완서는 올 케를 데리고 그 곳에 간다.

전기가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온대도 켤 수 없는 캄캄한 밤거리를 서로의 뒤꽁무니를 잡고 한줄이 되어 공연장으로 가는데만약 일행을 잃어버리면 어둠 속에서 어떻 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떤 지하실에서 카바이드 불빛을 희미 하게 밝히고 공연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 공연내용은 너무나 치졸 하다.

이 공연을 보고 온 날밤의 분노와 좌절을 박완서는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박완서를 절망과 분노에 떨게 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너무나 치졸한 노래와 춤이 위대한 예술의 탈을 쓰고 있고자신의 영혼은 그것에 거짓으로나마 감동해야만 하는 상황의 야만성이다.

다른 하나는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사이비 예술을 강요하는 상황의 야만성이다.

이러한 야만적 상황은 기아와 살육의 상황보다 더욱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것은 선의 이름으로 인간의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참혹하게 농락하기 때문이다.

 

-계속-

++++

 

***동우***  

2013.11.28 03:47

 

천지사방 온갖 것들 비참함과 잔혹함과 피폐함만이 가득한 춥고 어두운 회색빛 전쟁 속에서.

아아꽃망울의 부풀음.

화사한 봄의 징조.

생경하여 놀라워 하는 그 여심은 전율같은 것일까.

꽃망울쟤가 미쳤나봐미쳤어!

으흠아니다.

홀연 꽃물 든 여심이 갑자기 세상을 전율하는 것이다.

세상이 시방 미쳤구나미쳤어!

 

[목련나무였다아직은 단단한 겉껍질이 부드러워 보일 정도의 변화였지만 이 나무가 봄기운만 느꼈다 하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 미친 듯한 개화를 보지 않아도 본 듯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얘가 미쳤나봐하는 비명이 새어나왔다그러나 실은 나무를 의인화한 게 아니라 내가 나무가 된 거였다내가 나무가 되어 긴긴 겨울잠에서 눈뜨면서 바라본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 경악의 소리였다.]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6)

-이남호-

 

이 외에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다 보면박완서의 절망과 고통과 분노가 직설적으로 표현된 대목이 많다.

그만큼 어렵고 절박한 시절이었음을 말하는 것이겠지만박완서가 참으로 괴로워한 것은 인간적 가치의 훼손과 전도였던 것 같다.

임진강 쪽으로 피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어느 집 담벼락에 너무나 멀쩡하게 핀 하얀 목련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미쳤어!' 라는 독백을 하게 되는 심리도 이와 관련된다.

그것은 야만의 시대를 체험하는 마음의 방식이다.

이 마음의 방식 때문에 비길 데 없는 참흑한 고통의 기륵이 아름다운 글이 되고 또 더욱 읽을 만한 글이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소설이 지닌과거 기록으로서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무엇보다 6.25전쟁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6.25 전쟁과 같은 거대한 대상의 기록은 기록자의 시점씨 따라 여러가지 모숩을 띨수 있다.

스무 살의 박완서는 그 중심에서 6.25를 체험했다.

이러한 기록자의 위치는 기록의 의의를 한층 높여 준다.

3년에 걸친 전쟁기간 동안 박완서가 서울과 그 주변에서 보고듣고 체험한 일들은 보통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던 시대적 면적보다 횔씬 넓고 또 그 접촉 강도와 민감성에 있어서도 훨씬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박완서의 체험 자체가 6.25전쟁의 기록자로서의 유리한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억의 치밀함과 솔직함이 아닐까 한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박완서는전쟁 기간중 서울의 풍경이 어떠했는지그 속에서 사람들은 무얼 먹고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일을 당하면서 살았는가를 세세하게 증언한다.

심지어는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었는가까지도 증언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소설이기 이전에 기록이다.

 

-계속-

++++

 

***구동회***  

2013.11.29 05:00

 

선생님.

안녕하세요~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동우***  

2013.11.30 04:34

 

어떤 소설 대목이 어렴풋 떠오르는데누구의 무슨 소설이었더라.

피난중에 폭격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비통한 젊은 부부.

피난지의 하꼬방 한칸 겨우 얻어 구석에 누웠다.

아내는 남편의 품을 파고들면서 속삭인다.

죽은 아이 대신 새아이를 만들자고... (대충의 기억..)

 

전쟁.

비상사(非常事)의 나날이라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양식(樣式)이야 다름있으랴.

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고 이뻐하다가도 빼쭉하고 싫어하다가도 헤헤거리고..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정녕 그러하리라.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

 

***ayfbdogy***  

2013.11.30 05:37

 

꾸준히 올려주시는 좋은 글 감사드려요

선생님의 늘 건안하심을 기원합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박완서 -

  

***eunbee***  

2013.12.01 20:19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 소설을 읽지도 못했으면서, '싱아'라는 말에 아련한 그 무엇엔가 사로잡혀 문득문득 떠오르던 책.

이제 동우님 덕분에 그 책을 읽어냈습니다싱아박완서님의 '싱아'가 내가 먹던 그 '시금'이 아닐까 상상하던 그분의 싱아와 나의 시금은 조금은 달랐지요그러나 같은 신맛인걸 보니그것이 그것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반가웠어요그분의 싱아는 보랏빛을 띄는 줄기를 벗겨서 먹으면 새큼한데내 시금은 토끼풀처럼 생긴엷은질감과 엷은 녹색의 시큼한 잎을 먹는 것이었지요손톱에 물들일 때 백반이 없으면 시금을 뜯어와서 봉숭아꽃과 함께 빻아서 봉숭아물을 들이던....백반 대신 촉매작용을 해줄 만큼 시큼했걸랑요.

 

박완서님은 내 언니보다도 너댓살 위이니나와는 13년쯤 차이가 나지만할아버지 이야기를 할때는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했어요.

외할아버지 곁에서 먹을 갈던 나외할아버지 나막신은 항상 우리집 마루밑에 있었고요외할아버지 제자들이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으며그분들은 내 오빠의 선배들이기도 하지요교육열 높은 어머니내 어머니도 소설속의 어머니도...

강하고 영민하고 교육열 높은 점이 비슷했지요그분들의 삶의 역사는 이나라의 역사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다면우리집의 역사는 변방?^^에서 그냥 평온하게 살아도 되었던 가족사피난갈 때 내언니는 몸속에 명주(언니 시집갈 때 준다고 마련해 뒀건거랍니다.)를 감고 가고내엄마는 엿을 고아서 이고 갔다고해요.

나는 걷다가 발이 부르트고문경새제넘어 큰댁으로 피난한 우리는 잘 먹고 잘 지내다 왔기에 피난인지 뭔지도 잘 모르고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집을 지키고 계셨다지요여름피난에서 돌아오니마당 한켠 가득 피었던 꽃들...

소설속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고또한 더러는 겹치기도 해서읽는 재미가 한결 더해졌어요그집의 오빠나 삼촌 이야기는 우리집과는 너무도 다른우린 그냥 별 의식없이 살아지는대로 살았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얼마나 다행이에요(이 의식없고 개념없는 평민의식이라니...ㅋㅋ암튼 폐병으로 죽거나남 북의 갈림길에 시달리지도 않고소설을 읽는 동안 자꾸만 우리가족의 삶과 비교가 되더라구요. 해방 전에 교직에 있던 우리 외삼촌이(양자로 들인육이오 때 자진 월북하셨지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역사의 질곡속에 변하고 사라지고 무너지고 파괴된...ㅎㅎㅎ~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잘 읽고 있어요술술그냥 읽어요그러나 <그 많던 싱아...>는 내가족이 살아온 옛날과 오버랩되는 부분도 많으니 재미있게 읽었어요바로 그 시대를 나도 내 언니도 내 엄마도 관통해 왔으니까요.

 

***동우***  

2013.12.02 04:55

 

찾아보았는데은비님의 '시금'은 박완서의 '싱아'와 동일한 식물이랍니다.

한 연배 조금 더 차이 나는 박완서와 KJH님이지만어린 날 아름다운 정서를 두 분은 공유하고 있는겝니다.

보라빛 시큼 새큼한박적골과 청주 어느 산야의 두 소녀.. 푸르디 푸른 감성.

미각과 냄새처럼 과거와 직방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다지 않아요?

나는 싱아의 맛이 어떤건지 도무지 떠올릴수 없어요. (정능의 산야를 아이들과 몰려다니면서 먹어보았을텐데)

아카시아 꽃잎의 맛은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나는 박적골의 푸르름보다는 도회 변두리 현저동 정서의 회색빛 사람인가 봅니다만

 

외삼촌 한분이 월북하셨을 뿐저 변란을 은비님네는 비교적 평온하게 겪어내신듯 합니다만 은비님의 유년시절인지라 평온한 그림으로 남아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언니는 명주를 몸에 감고서어머니는 엿을 고와서 이고발 부르트면서 문경새재 넘어 가는 피란어른들의 고난 왜 없으셨겠어요.

여름피난에서 돌아와 은비님의 눈을 환하게 맞아주는 꽃떨기들.

내 좀 알거니와본시 은비님의 심성이란 어두컴컴한 현실의 색채를 비극적으로 수렴하시는 편이 아니신지라.

 

그러나 나도 그러하지요.

지는 놀 바라보면서 휘휘 둘러봅니다.

없어요옛날 그토록 지천이던 시큼 새큼한 싱아가.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어 버렸을까요.

저기 덩그렇던 푸른 동산하나 어디로 가뭇 사라져 버린걸까요.

 

초원의 빛 스러져 사뭇 적막합니다만은비님.

슴겨진 또다른 오묘한 빛이 있을터.

함께 찾아요.

그냥 주저리주저리 말씀하셔도 얼마든지 훌륭하신 언어들무슨 용기꺼정핫핫핫.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내일 마지막회..

많은 분들 읽어주셔서 뿌듯합니다.

무엇보다 이토록 진지하게 읽어주시는 은비님 계셔서..

 

***동우***  

2013.12.02 05:20

 

'신토불이'같은 개념을 나는 많이 긍정하는 편은 어니지만 지방에 따라서 사람들의 특질은 없지 않은듯도 합니다.

풍토와 기후와 물산이 만들어주는 지방색.

작가 오영수가 예전에 '특질고(特質考)'라는 소설을 썼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지요.

전라도 사람을 폄훼하였다고.

 

박완서를 비롯한 삼촌 숙모그녀의 가족들.

장편소설(3권에 이르는) '미망'에서도 여실하였지만이 작품에서도 개성사람들의 기질적 특징이 부각되어 있는듯.

실사구시의 정신실리주의 실용주의상업적 재능가족간 유대...

 

소설 속 등장하는 화가일시 분명한 박수근.

그의 작품은 지금 몇십억을 호가한다지요?

당시 박수근의 그림 한점은 얼마나 하였을까.

저와 같은 형편에서아마 쌀 한가마 값이면 뒤집어 썼을겁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보생의원에도 많은 그림이 있었는데약제실 문위에 걸려있었던 그림.

 20호쯤 되었을까물동이 이고 시골 담벼락 옆을 걸어가는 아낙네를 그린 그림인데 어린 눈에도 어떤 인상이 깊었는데.

나는 그걸 김환기의 그림으로 가끔 떠올린답니다. (내 멋대로의 상상..ㅎㅎ)

그 그림들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짐짝처럼 쌓여있었던 일본 책들과 함께 어떤 고물상의 손에 넘어갔을터.

그것이 아쉬워 한숨을 쉬는 속물의 한계여.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7)]

-이남호-

 

필자는 많은 이야기와 책,특히 소설을 통해서 6 . 26의 모습을 나름대로 알고 있다.

어떤 6.2s소재의 소설보다도 [그 산이 정 말 거기 있었을까]가 더 진실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자 는 6.26 미체험세대이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가늠할 체험적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진실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들은 이야기로 또는 짐작이나 상상으로는 쓸 수 없는 세세한 퐁경과 장소와 인물과 사건과 감정들이 가득하다.

정확하고 세세한 기록들은 그 자체로 진실의 힘을 갖는다그것의 기록적 가치나 의의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가령 수복 직후의 서울 돈암동 시장과 회현동 미군 피 엑스 앞 거리 풍경을 모사한 대목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돈암동 시장에서 난전을 벌이고있는 사람들이나회현동에서 설치던 양아치와 얌생이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기록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단순한 과거 풍경의 재생은 그자체로는 사료적 가치가 크지 않을지도 모른타.

그러나 이것의 의의는 크다.

이러한 소소한 풍경들의 진실성은 크고 중요한 역사적 이해를 바르게 원격조정하는 숨은 힘으로 작용한다.

이런 구체성을 무시한 삶과 시대에 대한 이해는 대개 잘못된 것일 수가 많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지닌 체험적 진실의 힘을 짐작할 수 있는 홍미로운 대목으로 또 하나 예로 들고 싶은 곳이 있다.

 

그것은 박완서와 올케가 인민군의 강요에 의해 북으로 거짓 피난가서 체험한 일이다이들은 북으로 향하는 국도를 벗어나 파주 쪽으로 갔다.

파주군 탄현면이라는 산골마을에 묵게 되는데거기서 만난 주인마님은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다.

무자비한 전쟁 의 발톱도 차마 그 기세를 꺾지 못하는 의젓한 인간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물론 피난민에게도 큰 위안이었겠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도 위안을 준다.

 

스무 살의 박완서는 참혹한 전 쟁의 와중에서 야수같은 인간과 걸레처럼 망가진 인간들을 체험 했다.

그러나 때때로 끝까지 인간적 기품을 잃지 않는 인간들을 만나 도움을 받곤 하는데그 인물들은 이 작품을 아름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어쨌든그네들은 주인마님의 고마운 도움을 받고 또 그녀의 충고대로 다시 교하라는 마을로 피신한다.

그런데 교하라는 마을은 두 줄기 큰 강이 만나는 곳으로 넓고 비옥한 고장이었다더구나그곳은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전쟁의 냄새가 나지 않고 살씸의 냄 새가 남아 있는 포근한 곳이었다.

피난민들이 많이 있었지만인심까지도 후한 그런 곳에서 박완서와 그의 올케는 아주 편하게 있다가 거기서 거짓말같이 바뀐 세상을 맞이한다.

만약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완벽한 허구라면이런 포근한 마을이 그 당시 남아 있었다는 것이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가 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 교하면을 필자가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곳이 풍수학자 최창조가 통일수도의 자리로 가장 적당한 곳이라고 지목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최창조가 통일수도 자리라고 교하면을 지목했을 때여러 가지 지세나 입지조건으로 보아 그럴듯한 정도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박완서의 교하면 피난체험을 읽고나니교하면이라는 곳이 정말 신비한 기운을 간직한 땅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박완서가 겪은 체험적 진실의 힘은 유능한 풍수학자보다 먼저 교하면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있을 것이다.

 

이렇듯 체험적 진실의 힘은 무서운 것이고그 무서운 힘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숨기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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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3.12.03 05:46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 의례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듬어 긴 터널을 함께 헤쳐나온 저 母女는 저렇게 따로따로 울음들을 터뜨림으로 스스로들을 치유하는 의례를 치루는 모양이다.

 

또 뇌인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삶의 플룻은 드라마가 아니다어디 기승전결이 있던가.

인간의 존재양식은 논리에 의한게 아니다어느 구석 인과(因果)법칙이 적용되던가.

 

악과 선기쁨과 슬픔홍소(哄笑)와 통곡가해(加害)와 피해(被害).

동일한 시공(時空)에서 서로 배리(背理)하는 부조리함이 공존한다.

아니한 인간이라는 객체 속에서도 그와 같은 동시성(同時性)의 부조리는 존재한다.

 

삶이 그러하고 인간이 그러하다.

무슨 감회의 연관이 있는지뜬금없이 '소피의 선택' (윌리엄 스타이런)이 떠오른다. [박완서의 전쟁에 비하면 엄청나게 끔찍한(픽션이므로전쟁비극을 그린 소설인데]

책장을 펴 그 소설의 종장을 옮긴다.

 

[소피와 네이선은 물론이고에바와 얀에바의 외눈박이 곰 인형에디 파렐바비 위드내 어린 흑인 구세주 아리스테마리아 헌트냇 터너반다무크호르흐 폰 크레추만구타 당하고 배신 당하고 학살 당하고 순교 당한 이 시대의 희생양들나는 600만명의 유대인이나 200만명의 폴란드인들혹은 100만명의 세르비아인들, 500만명의 러시아인들을 위해 울지는 않았다인류 전체를 위해서 울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선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고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내 흐느낌은 어느새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그리고 깨어났다애드가 알란 포의 시가 홀연 마음에 새겨졌다. “차가운 모래 아래서 나는 죽음을 꿈꾸었으나 새벽녘에 깨어나 보니 밝은 샛별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날은 심판의 날이 아니었다아침일 뿐이었다아름답고 빛나는 아침...]

 

으흠사는 것인지 살아지는 것인지....

사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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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8)]

-이남호-

 

우리 문학은 많은 6.25소재의 소설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50년대에 씌어진 작품들과 70년대 이후에 씌어진 작품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50년대에 씌어진 작품으로는 염상섭송병수황순원김동리선우휘 등의 작품들이 주목되는데 특히 염상섭의 ‘취우가 인상적이다.

취우 5개월간의 인공치하의 서울생활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취우를 비롯한테 50년대 6. 25소설들은 사실성은 있으나 객관적 거리를 둔 시점의 설정에는 어느 정도 취약점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의 6.25소설들은 6.25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점의 설정에는 충실하나 그 시점에 얽매여 작위적인 공간설정이 많은 듯하다.

박완서의 기존 소설들까지도 이 약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50년대 6.25소설과 70년대 이후 6.25소설의 장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적 구체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둥시에 6.25를 객관적 거리를 둔 시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6. 25체험의 탁월한 기록이라고 해서기존의 6.25전쟁에 대한 이해를 뒤집거나 새롭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 기록의 내용은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 기록은 우리의 과거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재생시켜줌으로써 보다 진지하고 큰 시야로 우리의 현재 모습을 재인식하게 해 준다.

그것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인식과 이념이라는 정치적 인식그리고 퐁요롭지만 불만스러운 일상이라는 사회적개인적 인식을 두루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스무살의 처녀가 6.25전쟁의 중심에서 보고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을 진실되게 기록한 글이다.

박완서는 40여년 동안 기억 속에서 곱씹고 있던 그 과거를 탁월한 기억력과 용기 있는 솔직함으로 기록하였다.

거기에는 기아와 야만의 나날들피난민 보따리에서부터 포화에 불탄자리에 환하게 핀 목련꽃현저동 골목의 충충한 우물그리고 상처받은 내면의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재생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그 모든 야만과 좌절과 고통을 인간된 도리로 바라보는 마음의 방식이 작용하고 있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이 소설은그리하여 박완서 문학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수많은 6. 25소설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된다.

 

'그 산'은 그 동안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박완서는 기억의 힘으로 '그 산'을 되살려 내었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고 지치고 초조한 마음들을 '그 산'의 언덕에 기댈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기대고 있노라면, '그 많던 싱아'도 어쩌면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제3부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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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애(虹厓)***  

2013.12.03 20:43

 

토막토막 읽었는데 어떤 장면은 읽은 것이기도 한 것 같아

다른 소설과 겹친 것인지 이 소설을 읽은 것인지 애매합니다

댓글에 적어 놓으신 소피의 선택울림이 크던 소설이었죠!

 

리딩북을 보다 보면한 번 읽은 소설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읽으며 음미 해보고 싶게 합니다

 

***동우***  

2013.12.04 06:03

 

책부족, '소피의 선택'을 읽던 때가 생각납니다.

가끔 아들과 딸중 하나를 선택하였을 적의 그 소피가 생각나면 심장이 서늘하여 몸서리를 치게 되지요.

소피와 네이선의 절망적 사랑자신이 지닌 치명적인 독으로 파멸하고자 하는 사랑.

나는 여적 소피의 절망에 비하여 네이선의 절망은 사치스러워 네이선이 영 못마땅하답니다

 

박완서의 저 소설(자전적 기록이지만속 전쟁의 핏빛은 그만큼 짙지는 않은 대신내 선대와 내가 대입되는 액추어리티는 참으로 진합니다.

 

홍애님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문학의 기억력'에 대하여 말하였던게 떠오릅니다.

내용은 잊어도 의미는 남아있다는..

 

책을 읽고서한두마디 무어라도 기록을 남겨두는 것.

홍애님 블로그의 예전 독후의 기록들아무리 짧은 것이라도. (요즘 독후기록 좀 게으르시지만)

그도 아니라면 페이지에 그은 밑줄이라도.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미이거든요.

리딩 북의 내 댓글 기록은 그래서 내게 중요한 것이지요.

 

***계수나무***  

2013.12.04 07:48

 

동우님

권해주심 소중해서 탐독.

싱아편은 훈훈 하였으되 그 산편은 서울의 6.25 ..신설동 동우님 부모님 같이 느끼며 춥고 슬프게

새벽 방해 받지 않는시간 천천히...

어린 박완서의 진면목을 보며 결혼 이후의 모습

더 궁금..아쉽고..

그 남자네집 그 작품 나중 부탁 ㅎㅎ

동우님 댓글은 소설의 연속..

이 겨울 두 주간 주신행복

감사 두배입니다

 

***동우***  

2013.12.05 06:03

 

계수나무님.

박완서 읽으시면서 책읽는 행복 누리셨다니 내 기쁨 오히려 두배입니다ㅎㅎ

'그 남자네 집'은 텍스트 파일 구해지면 올립지요.

 

일단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한번쯤 읽고서 짐짓 철학적 폼들을 잡았을.... 

 

***강지윤***

2015.10.25 22:56

 

안녕하세요초면에 죄송하지만 혹시 전문 파일을 보내주실수 있으신가 해서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학교 독서퀴즈 책이라서요ㅠㅠ 가능하다면 gjy01321@hanmail.net 이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건승 건필을 기원합니다.

 

***동우***  

2015.10.26 04:34

 

강지윤님.

보내 드렸습니다.

아래 한글 파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