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에피쿠로스 (1,4,3,3,1)

카지모도 2020. 1. 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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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쾌락>

-에피쿠로스 作-

 

***동우***

2014.07.16 05:24

 

에피쿠로스(Epicurus, BC341~BC271)를 올립니다.

지긋한 사유로 읽으면 조금도 어려운 책이 아니랍니다.

함께 읽어요.

 

40대 초반 쯤이었나, 나이 든(지금 내 연배쯤이었을까) 어떤 사내가 떠오릅니다.

말단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였다는 분인데, 직장동료들과 가끔 가는 술집 (호스티스 두엇이 서비스하는 변두리 실비 맥주홀, 당시 제법 흔하였지요)에서 서너번쯤 조우하였던 사람.

그곳에서 그는 그러나 조금도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슬도 노래와 춤도 여자도, 무엇하나 세련된 깜냥이 되지 못하는 그는 언제나 혼자였지요.

마이크에다 대고 돼지멱따는 소리로 부르는 노래, 땀 뻘뻘 흘리면서 흔들어대는 춤사위, 한사코 싫다는 여자에게 마구 욕정을 들이대는 그 분의 모습.

그의 행태는 가히 필사적이었지요.

추하기도 하였고 한켠 눈물겹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때로 젊은 우리에게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토로하였습니다.

너무 억울하다.

자신은 젊어 여태까지 환락(쾌락)이란걸 한번이라도 맛본 적이 없었다.

이대로는 억울하여 죽지 못하겠다...

일생 한번도 누리지 못한 환락, 죽기전에 기필코 누리고 가리라.

슬과 노래와 춤과 여자... 그가 갈망하는 진짜배기 쾌락의 진면목이 과연 거기 있었을런지.나는 도무지 읽어낼수 없었습니다.

한줌 즐거움은 느낄수 없었고 그냥 발광하듯 소리치고 춤추고 싫다는 여자에게 비비댈 뿐이었지요.

 

늙은이의 추한 모습이었지만 내게 짙은 연민과 이상한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

추구하는바 있다면 나의 쾌락은 어떤 색감일까요.

 

오래 전부터 에피쿠로스의 '쾌락' 읽고 싶었습니다.

난삽한 부분 제외하고, 3번쯤으로 나누어 올리려고 합니다.

2400 년전 그리스의 철인(哲人)이 설파하는 진정한 쾌락.

함께 들여다 보아요.

어려운 책이 아니랍니다.

 

***동우***

2014.07.17 04:47

 

에피쿠로스의 '쾌락'을 '행복'이라고 하여 아니될 까닭이 있을까.

허긴 '행복'이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이지만 '쾌락'은 매우 실제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다.

 

에피쿠로스의 설파(說破)

자연의 본성은 고통스럽지 않은 것.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궁극적 목적은 완전한 쾌락이다.

모든 '감각'은 '참'이라는 명제.

그건 에피쿠로스의 자연학 연구와 깊은 사유에서 도출된 결론인 것이다.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

육체에 고통이 없을 것, 마음에 동요가 없을 것.

그것이 관건이다.

 

퀘레네 학파는 '쾌락은 순간이다'라고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다르다.

에피쿠로스는 상태적(常態的) 쾌락을 주창한다.

자연이 본시 그러하듯.

 

육체적 쾌락이란 육체적 결핍(고통)의 제거이다.

정신적 쾌락은 죽음에 대한 공포(고통)와 불멸에 대한 욕망(고통)을 우리의 사고에서 몰아내는 일이다.

 

육체적 결핍의 고통이 사라질때, 육체적 쾌락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그 형태가 바뀐다.

그때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아도 고통스럽지 않으므로 그것은 필연적 욕망이 아니다

그것이 고통을 야기하더라도 쉽게 몰아낼수 있기 때문이다.

몰아낼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헛된 생각때문이지 그것은 쾌락의 본성 때문이 아니다.

 

정신적 고통.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멸에 대한 욕망.

쾌락에게는 무한(無限)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결코 무한이 유한(有限)보다 행복한게 아니다.

쾌락에 무한이 필요치 않다는걸 깨닫는 것,

자연학의 오의, 인생의 한계를 배운 사람이 정신적 쾌락을 누린다.

 

진정한 욕망이란 쾌락을 향한 욕구이고, 그것은 자연의 본성을 향한 회귀본능이다

사려깊고...아름답고...정직하게..

 

염불외듯 중얼거린다.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정)

아타락시아......

 

***동우***

2014.07.18 04:29

 

육체적쾌락은 정신적쾌락과 더불어 진정한 행복의 필수요건이다.

 

우리는 자연에 거역해서는 안 되며, 자연에 복종해야 한다.

필연적 욕망을 충족시킬때 그리고 해로운 욕망을 완강하게 거부할때 우리는 자연에 복종할 것이다

 

자연의 목적은 고통이 없음, 상태적(常態的)인 편안함이다.

인간에게서 고통이 제거된 그 상태가 바로 즐거움, 쾌락이다.

육체적 감각이 느끼는, 마음이 느끼는 즐거움.

맛의 즐거움, 사랑의 즐거움, 듣는 즐거움, 美를 보는 즐거움..이것이 바로 善이다.

쾌락이 선이다.

 

쾌락의 가치를 지득(知得)한 자는 쾌락을 추구하는 철학을 구가함으로 탁월한 자이다.

그 철학이란 실제적인 도움닫는 우리에게 유용한 철학이다.

형이상학의 잠꼬대가 아니라 실사구시의 철학이고 탁월함이란 쾌락의 가치를 지득하는 자의 탁월함이다.

그 탁월함의 배후에는 사려깊음과 아름다움과 정직함이 있다.

 

몸의 고통없음의 육체적 쾌락과 마음의 동요가 없음의 정신적 쾌락.

에피쿠로스의 추구하는 바는 온순함과 자기만족, 곧 자족(自足)하는 삶일터이다.

정적(靜的) 쾌락과 상태적(常態的) 쾌락..

그가 배척하고자 하는 쾌락은 동적 쾌락과 찰나적 쾌락이다.

정적쾌락에 기여하지 못하여 추구하는 섹스의 찰나적쾌락은 진정한 쾌락이 아니다.

 

자, 눈을 감고 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사유해보라.

삶을 포기할 많은 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주 별볼일 없는 자, 쾌락의 오의를 모르는 자이다.

떠날 때가 되면, 우리는 쓸데없이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고, 삶으로부터 떠날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삶을 살았다"라는 승리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eunbee***

2014.07.18 08:41

 

동우님 올리신 에피쿠로스의 한구절.

 

우리는 젊은 사람을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산 노인을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젊은이는 혈기왕성해서, 운 tyche에 의해서 흐르는 물처럼 이리저리로 이끌려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마치 항구에 닻을 내리듯, 자신의 노령에 닻을 내린다. 그래서 과거에는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좋은 일들을 감사히 안전한 곳으로 가져온다 -

 

내가 새겨두어야 할 구절이에요.

배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생긴다 -은비에게 일깨워 줄

친구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우릴 돕는다 - 모두에게 하고픈.

 

철학은 하는척 할 것이 아니라 늘상 철학을 해야한다 - 철학을 어찌해야 할꺼나.

어제 읽고 새겨둔... 사려깊음, 아름다움, 정직함.

 

***동우***

2014.07.19 22:39

 

은비님.

우리, 이제 운에 부대끼는 배는 아니지요.

감히 닻을 내린 범선이라는.. ㅎㅎ

 

젊어 한 시절, 젊은게 너무 힘들었어요.

질풍노도 카오스의 폭풍우가 끔찍하였겠지요.

정말 은비님, 기도하였더랍니다. 빨리 늙게 해줍시사하고..

늙으면 안정되리라. 나를 찾으리라.

하하, 은비님.

이게 바로 못난 쪽 젊음의 도피의식, 열등의식, 자의식적 오류.... 겉늙음.

 

젊어 읽었던 책들, 늙어 읽는 책으로 읽혔더라면.. ㅎ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또한 은비님을.. 하하핫

 

***동우***

2014.07.19 22:28

 

죽음이란 열망할 것도 아니지만 또한 두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죽음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의 차이, 철학의 차이이다.

무엇이 걱정인가.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현자란다.

현자는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쾌락적(즐거운)인 삶을 지향한다.

쾌락의 부재로 인해 고통을 느낄 때에는 쾌락을 필요로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욕망이 충족되거나 죽음으로) 더 이상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쾌락은 그 본성이 자연적인지라 우리의 본성과 친숙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쾌락은 善이다.

그 善을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우리의 감각(느낌)이다.

몸의 감각과 마음의 느낌.

진정한 쾌락이란 몸의 고통에서의 자유함이고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함이다.

 

지속적(常態的)인 쾌락이 진정한 쾌락이다.

찰나적인 쾌락은 자연에 반하는 것, 반드시 부작용을 야기한다.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이 진정한 욕망이다.

자연적이지 않고 필연을 넘어선 욕망은 끊임없는 불만족의 고통을 야기한다.

 

중용(中庸)과 자족(自足)의 미덕.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른지 내 수준으로서 알리가 없다.

그러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에피쿠로스는 내게 무척이나 액추어리틱하다.

 

행복(쾌락)은 기를 쓰고 도달해야 할 어떤 지점이 아니다.

삶의 온 과정이 행복(쾌락)이어야 한다.

사려깊음, 아름다움, 정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