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사라지기 위하여>
-김정 作-
***동우***
2015.01.03 00:47
'사라지기 위하여'라는 이 중편소설을 우연히 접하였습니다.
좋은 소설,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텍스트 파일은 떠돌아 다니는데, '김정'이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출판된 소설인지 아무리 검색하여도 찾아지지 않네요.
소설내용으로 미루어 연배 지긋한 여성작가라고 짐작합니다만.
이처럼 빼어난 작품을 쓴 작가와 작품이 전혀 까맣게 낯설다니.
내 독서력(讀書歷)이라는게 실로 얄팍한 것이었구나 새삼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정'이라는 소설가가 쓴 '사라지기 위하여'
일몰(日沒) 고즈넉한 우리 연배 즈음의 마음 속 연민, 적시는바 없지 않으리다.
다섯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함께 읽어요.
***eunbee***
2015.01.03 08:47
그럴게요.
문학으로, 늘 고마운 동우님
***eunbee***
2015.01.05 16:28
아침마다 열심히 읽는데...
동우님은 어딜 가셨대요?
동우님 댓글없는 소설은 허전 허전... 쓸쓸.ㅠㅠ
<"당신 누구에요?"
잠시후 그게 나라는 걸 알아채긴 했지만 그 잠깐 동안의 낯섦과 당혹감은 대단한 충격이었어요.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이 나라는 사람과 동일화 될 수 없었던 그 짧은 동안의 단절감과 절망감은 그때까지 내가 꿈속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너무도 낯선 감정이었어요. 어린시절, 잡고 가던 어른의 손을 놓치고 소란스럽고 복잡한 시장바닥에 혼자 남겨졌을 때보다 더 단절된 느낌이었어요. 아마도 그때부터라고 생각이 되네요. 자꾸 나를, 내속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긴건요. 지금까지 살아온게 내가 모르는 나라는 생각, 또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나도 내가 잘 모르는 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울에 비친 내모습이 전보다 많이 늙었기때문이라거나 추하기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그 모습 자체가 낯설고 또 낯설다는 그 느낌은 다시는 갖고 싶지 않은, 내존재 자체가 무화되는 고절감 같은 거였어요. 너무도 낯선 것과 느닷없이 마주 서는 것, 아마도 죽음이 그런 것일까요? 그 경험이 있고나서 나는 함부로 살아왔던 내 삶이 무서웠어요. 어쩌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시간이 더 무서웠는지도 모르지요. 내가 있는데도 내가 없는, 내가 완전히 없어진 그런 상태, 정말 낯설고 무서웠어요.]> -오늘 읽은 뒷페이지의 글에서.
나로선 공감할 수 없는 심리 상황.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그리도 심하게 느끼는 단절감 절망감도 있나봐요.
'내가 모르는 나를 살아온 자신이었다는 생각, 다시는 갖고 싶지않은 내존재 자체가 무화되는 고절감..
함부로 살아왔던 내 삶...'
거울 속의 자기모습을 보며 그러한 생각과 느낌에 시달리는 여인의 심리상태.
한여사의 자학이 너무도 가엾네요. 나는 이것을 자기생의 일면을 스스로 부정하고픈 자학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 뒤에 이어지는 윤이와의 대화속에서도 나타나는 이 여인의 암담한 심적상황, 이국, 병든 육신, 늙고있는 세월...
그러한 그녀가 '사라지기 위하여' 노트에 적었거나 들려주는 마지막까지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궁금해요.ㅎ
***동우***
2015.01.06 04:44
동우란 작자 예 왔습니다. ㅎ
"당신 누구예요?"
거울 속에 비추인 자신이 너무나 낯선 느낌.
은비님 공감할수 없는 한여사의 심리상황.
영국땅에서 맞는 예정된 죽음, 그 정조(情調)로서 저 느낌을 이해토록 하십시다.
죽음 임박하여 향하는 정서는 자신의 근원적 존재의 땅 한국이건만, 죽음이라는 것도 낯선것이어늘 이방에서 맞는 죽음이 깃든 모습은 끔찍하게 생경할 것이라는.
삶이 행복하였던 사람이 정겨운 사람들 둘러싸인 곳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색감은 아무래도 좀 편안하게 안정된 것일까요마는, 결코 행복했달수 없는 굴곡의 삶을 살다가 고독하게 맞는 죽음이 깃든 자신의 모습...
<"이제 더 이상 죽는게 무섭지만은 않아요. 그러나 꼭 죽어야한다면 이렇게 흔들리면서 죽고 싶지는 않답니다. 요즘은 흔들림이 올 때 마다 눈을 꼭 감고 그걸 벗어버리려고 돌아 갈 수 있는 한 기억의 제일 끝으로 돌아가고자 안간힘을 써보죠.">
한여사는 죽는게 무섭지 않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선 인간의 불안과 공포는 다른 모습으로 여실합니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가녀린 비가 섞인 채 창밖의 수목들이 주는 그윽한 냄새가 지난날 어느 곳의 아련한 냄새와 겹쳐지면서 내 삶이 속으로 깊이 가라앉는 느낌. 더 이상 흘러나갈 데가 없이 이렇게 안으로 깊어진 내 안의 우물은 차고 맑은 물로 채워지는 기분이네.">
<"내 앞에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현실적 시간을, 이미 잃어버리고 놓쳐버려 내 것으로 온전히 만들 수 없는 시간에 다시 할애한다는 건 어리석어 보이지요? 그러나 이 시간마저도 이렇게 가두어놓지 않으면 어딘가로 흘러가 없어져버릴 거라는 두려움 앞에서 나는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가봐요. 내가 자꾸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해보는 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두어놓고 싶어 그러는 걸 거예요. 지금 나한테는 지나가 버린 어릴 적의 기억들이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현실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어요.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내게 별 중량감이 없는 반면 지난 시간의 기억들은 훨씬 더 무게를 가진 채 내게로 오고 있거든요. ... 어떤 사람의 인생도 어떤 하찮은 삶도 제 나름의 값은 있을 거라고 말이에요. 다른 건 다 제하고 나더라도 그게 시간의 축적이라는 의미에서는 그런 게 아닐까 하고서요.">
<“때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충동으로 기억에 허구를 뒤섞어 아픈 데를 슬며시 가리기도 하지요. ... 우리 자신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눈 먼 길들이 많은가 봐요. 그 숨겨진 내밀하고 좁은 길로 들어가 자신의 환상에 맞는 기억을 찾아 계속 그 속을 헤매는 거지요. 그렇게 혼자 가야 하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지요.">
아무도 동참할수 없었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죽음은 리얼리즘의 극점입니다.
"흔들리면서 죽기 싫다".
그렇다고 한여사의 '갈매빛 그늘'이 필경은 고요함일까요.
흔들리면서 죽기 싫다.
아,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진실로, 산만하지 않게 얌전하게 정직하게 죽고 싶습니다.
은비님.
그 순간까지 버리고 갈 것만 남겨 놓아야 할텐데. 참 걱정이올시다. ㅎ
++++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eunbee***
2015.01.07 01:26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나는 좀 더 늙어봐야 요런말 찾아낼 것 같아요.
아직은 '늙어서 편안하'지 못하거든요.
버리고 갈 것만 남겨 두지도 않은 상태일뿐더러. ㅎㅎㅎ
그러나 '흔들리면서 죽지는 않을 거야'는 아*마*도 단호할겁니다.
요렇게 시건방을 떨고 있다는 건, 아직도 멀었단 소리.ㅠㅠ (철들면 죽는겨~ㅋ)
오늘 교보문고(분당)에서 <김정>을 검색해도 찾지 못했어요.
물론 <사라지기 위하여>도 검색 불능.
교보문고 도서검색전용 PC에서 찾다가 그냥 포기했어요.
그냥 그랬다구요~~^^
***동우***
2015.01.08 04:57
찾았어요. 은비님.
이 소설, 제목을 달리하여 출판한 것 같아요.
'거울 속의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그러니 '사라지기 위하여'로 검색하면 나타나지 않을밖에.
++++
<작가 김정>
영국 런던 대학교 퀸 메리 칼리지에서 현대 영국문학을 공부했고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영국소설 전공으로 버지니아 울프와 최근의 영국소설가들에 대한 논문을 주로 썼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거울 속의 그림』 『20세기 영국 소설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공역) 『너는 내 아들』 『부엉이가 내 이름을 불렀네』등이 있다.
++++
***동우***
2015.01.07 01:13
오래전 나는 죽음을 집전(執典)하는 어느 목사님의 변설이 몹시 우스웠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셨을적 모란공원 무덤가에서 순복음교회 젊은 목사왈, "할머니는 지금 천국에 노닐고 계시다"라면서 "믿쓥니다!"를 연발하였지요.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톨스토이)'은 산자들에게 전혀 피상이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죽음으로서 그 피상성의 죽음을 끝장냈지요.
소설가의 상상의 리얼리즘은 적어도 목사의 저 우스꽝스러운 헛소리보다는 죽음에 더 정답습니다.
윤이와 한여사가 병렬된 이중구조의 소설, 사라지기 위하여.
젊은 친구들로서는 아득한 노을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윤이는 삶쪽에 좀 더 가까이 거하고 한여사는 죽음 쪽에 좀 더 가까이 거하는, 둘을 동일인물로 읽어도 무리는 아닐듯 싶습니다.
"그렇게 물처럼 태어나 살다가 죽었다"
잠자는 동안 잠자듯 죽었으면..아하, 그도 좋겠지요만 그렇다면 사고같은걸로 돌연사도 좋겠지요.
하하, 그러나 한목숨 한세상 살았다는 알리바이, 스스로 납득하여 편편하고 싶지도 않겠습니까?
<"살랑거리는 바람과 가녀린 비가 섞인 창밖의 수목들이 주는 그윽한 냄새가 지난날 다른 곳의 더 다정한 냄새와 겹쳐지면서 내 삶이 속으로 속으로 더 깊어지는 느낌. 더 이상 내 삶이 넓게 퍼져 나가지는 않지만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느낌은 애절하고 애틋하면서도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기분이네. 잎새에 살랑이는 바람소리도 깊어지고 비릿하고 향긋한 비의 냄새까지도 깊게 깊게 가슴으로 맡을 수 있는 이 아침이 왜 이렇게 서럽게 아름다운지. 지금 내게 있어 지나가버린 어릴적의 기억들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내곁에 가까이 있어요. 지금 내가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내게 별 중량감이 없는 반면 지난 시간의 기억들은 훨씬 더 무게를 가진 채 내게로 오고 있거든요.">
갈매빛 그늘.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 첫대목-
아무나 '아니 에르노' 처럼 기억의 진실을 토로할수는 없을겁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부끄러움과 고통을 감추려는 방어기제, 그 문학적 은유를 위선이라고 할수는 없겠지요.
뱀과 미친여자의 붉은 속옷과 계단에서의 어머니의 붉은 속옷과 신음소리와 초경과..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나는 박경리가 좋습니다.
소박한 유고집.
그의 갈매빛 그늘도 아련하게 소박하여 촉촉합디다.
친구에게 부쳤습니다.
***eunbee***
2015.01.08 02:32
읽고 싶던 박경리님의 유고시집을 선물 받아, 어찌나 벅차는지요.
조금 늦은 저녁에 귀가해서, 책상앞에 앉자마자 읽고는 살콤 한숨 잠이 들었어요.
파리로부터의 카톡소리에 깨어나니 10시가 넘은 시각. 다시 읽었답니다.
시집을 이렇게 내리닫이로 읽어내는 것은 성급한 독서태도지만,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를 접하는 동안, 엊그제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동우님의 '갈매빛 그늘'과 겹쳐, 읽는 깊이를 더해주더랍니다.
화가가 곁들인 그림도 좋지만, 특히 뒷페이지들에 실려있는 그분의 사진은 그분의 글만큼이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대가의 노년의 모습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소설 한작품의 무게만큼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던걸요.
고맙습니다. 동우님.
스산스런 나의 이 세월의 나날들이, 동우님 있어 따스하고 찬란합니다.
어제 새벽, 끝을 읽은 김정의 소설도 (특히 심란스럽던 그제 포스팅과 어제 올려진 부분) 마음 시리고 서글펐습니다.
갈매빛 그늘.
나의 그것을 더듬어 보렵니다.
요즘은 일주일이 흐르듯 지나가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은 점심 후 문화교실로 가서 이웃들과 차마시고 놀다가 라인댄스로 저녁 8시쯤에 귀가.
목요일은 더 늦게 그림반에서 돌아오고,
주말엔 애들이 오기도 하고... 영화랑 어울렁더울렁...ㅋㅋㅋ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이제 코~ 잘래요.
동우님도 따스하고 행복한 꿈 길 거니시길요.^^
***동우***
2015.01.08 05:07
연륜이 얼굴을 만든다기 보다, 어쩌면 축적된 기억이 표정을 만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굴 표정뿐 아니라 손이나 발이나 몸짓의 표정에서도.
예전 어느 잡지에 몇커트 박경리의 손을 클로즈업하여 찍은 사진이 실렸었는데, 손에서도 박경리가 읽히더군요.
나도 그래요. 스산한 내 세월에 은비님 있어 따스하고 찬란하다우. ㅎㅎ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만난 하나님 (1,4,3,3) (0) | 2020.01.14 |
---|---|
달과 육펜스 (1,4,3,3) (0) | 2020.01.13 |
대지 -펄벅- (1,4,3,3,1) (0) | 2020.01.11 |
에피쿠로스 (1,4,3,3,1) (0) | 2020.01.09 |
공지영 4.5 (1,4,3,3,1) (0) | 202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