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서머셋 몸]]
<레드> <점심과 여인>
<레드>
-서머셋 몸 作-
***동우***
2013.10.31 04:48
++++
<"그런데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글쎄 이름을 들어본 지 하도 오래되어서 나 자신도 잊어버릴 지경이오. 하지만 30년 전에 이 섬 사람들은 나를 레드라고 불렀소."
조용히,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웃으면서 그는 비대한 몸집을 흔들었다. 그것은 어딘가 추악하기까지 했다. 닐슨은 소름이 돋았다. 레드는 매우 즐거워했다.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닐슨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한 여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원주민 여자였다. 어딘가 범할 수 없는, 뚱뚱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살색이 검고 단단한 (원주민은 노쇠와 더불어 피부가 검어진다.) 하얀 머리결을 가진 여자였다. 검은 마더 하버드를 입고 있었는데 얇은 천을 통해서 묵직한 두 개의 유방이 보였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여자는 집안일을 두고 닐슨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대답했다. 자기가 느끼기에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으므로 그의 그런 침착하지 못한 음성을 그녀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고 그는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여자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는 별로 흥미도 없는 듯이 흘끗 보았을 뿐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아주 잠깐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닐슨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충동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말문을 텄다.
"어떻소. 함께 식사라도 하시죠? 매일 먹는 음식이라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글쎄요." 레드가 말했다. "나는 그레이라는 사나이를 찾아 물건을 넘겨주는 대로 바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게다가 내일 에이피아로 돌아갈 예정이어서."
"그럼 애를 시켜 길을 안내해드리도록 하지요."
"아, 대단히 감사합니다."
레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닐슨은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꼬마를 불렀다. 선장의 행선지를 말하자 꼬마는 앞서서 다리를 건너갔다. 레드가 뒤따라 건너가려 하자 닐슨이 말을 걸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뭐,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리를 건너는 그의 뒷모습을 닐슨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야자수의 숲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나의 행복을 방해한 사나이가 바로 저 사람이란 말인가? 긴 세월동안 샐리가 사랑하며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바로 저 사나이란 말인가? 기가 막힌 일이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그는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속았다. 완전히 속았다. 실제로 방금 두 사람은 재회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그는 웃기 시작했다. 서먹서먹한, 그러나 드디어 발작적인 웃음으로 변했다. 모든게 신들의 잔인한 장난이었다. 어느새 그들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모습뿐이었다.
샐리가 들어와서 식사 준비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와 마주앉아서 억지로 몇 숟가락을 먹었다. 만약에 아까 그 의자에 앉아 있었던 비곗덩이의 늙은 남자가 그녀가 젊은 날에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했던,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연인이라고 말했더라면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전에 그를 불행하게 만든 여자를 아직 미워하고 있었을 무렵의 그였다면 오히려 기꺼이 말해버렸을 것이다. 그때 그는 자기가 상처를 입은 것처럼 상대에게도 상처를 입혀주고 싶었다. 미움도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전혀 일지 않았다. 그는 울적한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분은 왜 오신 거예요?"그녀가 물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지금은 나이를 먹은 뚱뚱보 원주민 여자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나는 무엇때문에 이 여자를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했을까? 이 여자의 발 밑에 내 영혼의 모든 보물을 던졌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들에게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낭비! 이게 무슨 낭비냐! 지금 그녀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모멸감뿐이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범선의 선장이야. 에이피아에서 왔다더군."
"그랬군요."
"고향에서 전갈을 가지고 왔는데 말야, 큰형이 많이 아프대. 가봐야만 될 것 같아."
"오래 걸리시나요?"
그는 단지 어깨를 들먹일 뿐이었다.>
++++
서머멧 몸이 보여주는 인간상이란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그것이 진실이기에, 단애(斷崖)에 선 듯 등골이 서늘하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화무십일홍일지니 슬퍼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콧 가의 화향(花香) 싸그리 잊지는 말아라, 그 흔적으로 살아지리니.
<"사랑의 비극은 결국 죽음도 이별도 아니란 말이오. 그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요. 지난날에는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여자를 지금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그보다 무서운 비극은 없소. 사랑에 있어 진짜 비극은 무관심입니다. (The tragedy of love does not lie in departure or death, but in indifference.)>
인생...사랑...
허무하고 슬픈 아이러니.
모옴은 시니컬합니다.
참으로 짓궂습니다.
***eunbee***
2013.10.31 06:07
동우님의 댓글에 옮겨놓은 '사랑에 있어 진짜 비극은 무관심입니다.'를 읽으니 학창 시절 읽던 싯구가 떠올라요.
마리 로랭생의 시를 읽고는 가슴을 쓸어내릴 적 있었지요.
철없던 그때도 그 시는 그랬었나 봐요. 그 시의 끝 행이 아마도 이렇지요.
'죽은 여인보다 더 가여운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내곁에 있는 시집에서 동우님이 인용하신 저 시를 꺼내 들겠어요.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드-
한 때엔 그리도 찬란했던 빛이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는구나
돌이킬 길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서러워하지 않으며
뒤에 남아서 굳세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이 가슴에 품어서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서
죽음도 안광에 철하고
명철한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
시월의 마지막 날,
여행을 떠납니다. 남녘...아슴한 하품처럼 누워있을 몇몇 섬을.
서머셋 모옴은 여행길 위에서 읽으려합니다.
***동우***
2013.11.01 05:46
은비님.
어제 홍도의 밤.
나그네의 쇠주잔, 꽃같은 낭만이었을터. ㅎㅎ
***동우***
2017.07.03 00:34
'서머셋 몸'의 '레드'
오래 전 올렸던 것인데 본문을 지워 버려서 다시 올립니다.
사광님의 請도 있었거니와..
서머셋 몸의 저 시니시즘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만.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에게 유지태가 던진 세리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는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요.
전에 은비님은 댓글로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을 달았었지요.
나도 그 시, 그리고 서정주의 시 유행가 가사를 덧붙입니다.
브론치노의 그림 '비너스와 큐피드의 은유'를 화면에 띄어놓고 최백호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를 유튜브로 들으면서.
서머셋 몸의 ‘레드’의 은유이거나 패러독스이거나 反語일 법한 작품들... ㅎㅎ
***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드-
한 때엔 그리도 찬란했던 빛이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는구나
돌이킬 길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리는 서러워하지 않으며
뒤에 남아서 굳세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티없이 가슴에 품어서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달래서
죽음도 안광에 철하고
명철한 믿음으로 세월 속에 남으리라
***
<신부>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momo***
2017.07.04 12:50
동우님, 어제 오늘 오랜만에 와서 몇 편 읽고 나갑니다.
서머셋 모옴은 <달과 6펜스>랑 <인간의 굴레>밖에 모르는데
새로운 단편을 읽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지난번에 알려주신 스마트폰 앱도 다운 받았는데
폰으로는 잘 안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늘 이렇게 공짜로 읽을 곳이 있어서, 짱입니다!
거듭거듭 고맙습니다 동우님!
***┗동우***
2017.07.05 07:31
모모님의 愛讀이 바로 내 리딩북의 보람.
고맙습니다. 벗이여.
<점심과 여인>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2.18 06:53
옛날 어찌어찌하다가 나로서는 가당치 않는 정종집에서 묘령의 여학생과 마주앉게 되었습니다.
튀김안주와 따끈한 술이 어우러진 술좌석은 바야흐로 익어가는데 모자란 술값으로 마음 한구석은 좌불안석이었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지요.
화장실 가는척 후닥닥 전당포(그 시절 골목마다 흔하였던 전당포)로 달려가 시계와 바꾼 화폐 몇장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는데, 아 글쎄 이 착하디 착한 여성께서 이미 술값을 지불하였지 뭡니까?
복 있을진저.
자존심과 체면과 배려가 서로간에 그윽하던 시절, 우리나라에 저런 여성짜리는 (요즘의 된장녀..ㅎㅎ) 흔치 않았어요.
290 파운드라면 130 kg 쯤?
하하, 복수가 되었을까요.
***설레임***
2015.02.19 09:45
남자의 허세?
한달간 써야하는 생활비를 한번의 점심값이라 ㅎ
나도 딱한번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늘 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심함이여
서머셋 모음의 책을 읽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 얼른 읽어보았네요
지금 김포공항에 착륙했네요 ㅎ
즐거운 날 되세요
***동우***
2015.02.21 04:51
설 명절을 서울서 맞았던 설레임님.
도봉산은 오르셨는지. ㅎ
***무위당***
2015.02.19 11:27
감사합니다.
스크랩합니다.
***동우***
2015.02.21 04:53
무위당님.
스크랩 얼마든지.
이제야 말로 을미년 새해.
청련도관의 설명절은 어떠하셨을지?
복되셨기를.
-독서 리뷰-
[[서너멧 몸]]
<어머니> <호놀루루> <진주 목걸이> <고향>
<어머니>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5.11 04:13
서머셋 몸의 '어머니'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아들에 대한 병적인 독점욕.
청상으로 남편을 여의고 슬하에 아들 하나만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 특히 한국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회자되는 소재이지요.
아들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어머니.
윤소정 최지우 박용우가 출연하였던 영화 '올가미'가 떠오릅니다.
안다루시아, 칼멘, 집시, 코르시카, 보헤미안, 시칠리아, 아를르...
남유럽 여인의 광적으로 격렬한 기질.
모파상의 '복수'나 '야성의 어머니'에서도 여실하였던. (전에 리딩북 올렸던 소설들)
***동우***
2015.05.12 04:33
'로잘리아'의 목에 칼을 꽂는 '라카치라'.
붙들려가면서 그녀는 로잘리아가 확실하게 죽었음을 확인하고는 "하느님, 감사합니다."고 말합니다.
아들을 사이에 둔 연적(戀敵)을 죽인 기쁨일 것입니다.
분열되고 혼화된 사랑의 감정.
'라카치라'의 저 어브노멀은 끔찍하게 병적인 것입니다.
모파상의 소설('복수'와 '야성의 어머니')에서 아들의 죽음을 잔인하게 복수하는 어머니.
그 모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야만적으로 처절하게 어브노멀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D.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에 있어서의 母子, 그 비정상은 다소간 지성적이어ᅟᅡᆻ을꺼나. ㅎ
어머니와 아들.
그 관계의 색감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와는 사뭇 다릅니다.
핏빛 진한 신앙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
<아들에게>
-문정희-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
***eunbee***
2015.05.12 16:01
어제도 큰애랑 루이뷔통 재단이 만든 요상스런 현대식건축 안을 오르락내리락
그림보며 4시간을 돌고, 시장봐서 파김치돼서 집에오니
내려받기 실행중으로 두고간 컴이 임무수행을 못한채...ㅠㅠ
이제 다운받아 국제시장 보려구요.
어제밤 무척 피곤해서, 어머니도 안읽고 잤답니다.
ㅎㅎ 어머니, 하니까 생각나네~ 여기 아버지날도 있고 할머니날도 있대요.
온전히 각각을 위해 따로따로 정했나봐요.
어린이날은 없고 어머니 날이 맨 앞이에요.ㅎㅎ
***eunbee***
2015.05.13 03:45
동우님,
국제시장 영화 봤어요.
내가 좋아하는 황정민의 연기도 오랜만에 보았구요.ㅎ
우리 어릴적부터 주욱 겪어온 엄청난 역사들...
내 아버지, 오빠, 엄마, 나 자신까지도 몽땅 끼어들어 있는...
더구나 한국전쟁의 어렴풋한 기억 (단편적일망정)이 있는 내겐
그날들 속에 나를 세워둘 수밖에 없는 현실같은 일들을 영화로 보니
감회가 남다르던걸요.
그뿐인가요. 파독, 파월...모두 우리세대의 이야기.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보며 울던 나를, 동우님을...생각했구요.
따로 감상문 적으려다가 그냥... 이렇게.
인터넷 사정도 좋지않고, 요즘 뭔가가 바쁜것 같고. ㅎ
고마워요. 동우님.
늙은 황정민의 마지막 말, 아버지 이젠 오실 수 없지요? 너무 나이들어서..? 그 말 슬펐어요.
그런 세월을 겪으며 우리를 있게 하신
내아버지도 내어머니도 이젠 오시지 못하십니다.ㅠㅠ
영화 속 부산의 거리, 바다, 건물, 풍경들을 보며, 동우님 생각했어요. 그 풍경속에 계실...
특히 마지막 장면, 바다주변의 빌딩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아련하게 새겨지던걸요.
동우님과 사모님의. ㅎ
***동우***
2015.05.13 04:33
은비님.
드디어 뱅글뱅글이 멈추고 다운 성공하여 '국제시장' 보셨다니. 기분 좋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었던 '국제시장', 영화적으로는 세련되지 않았더라도 은비님이나 나나 공감이 되는 대목 제법 있을겝니다.
저 영화를 보고 왼편쪽 사람들은 국제시장 주변에서 일어났던 부마항쟁이나 미문화원 사건같은걸 넣지 않았다고 뭐라고 그럽디다만. ㅎㅎ
이산가족 찾기, 아 얼마나 울었던지요.
티브이 앞에 울기 위해서 밤을 지샜지요.
늙은 황정민, 아버지 이제 오실수 없지요? 너무 나이 들어서...
<내 아버지도> 이제는 오실수 없겠지요. 너무 나이 들어서. ㅎ
은비님.
영화 ‘화장’도 보낼게요.
그리고 한마디.
내가 보내 드리는 영화.
시간 나실적, 천천히 띄엄띄엄 감상하세요.
받았으니 꼭 보아야지..무어 이런 강박 조금도 갖지 마시고,
시간 나실적에 천천히.. 또는 안보면 어때요?
화장.
썩 잘 만든 영화 아니에요.
소설을 너무나 화장을 시켜 놓아서. 하하
<호놀루루>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9.09 04:51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알로아후에~
하와이 왕국을 미국에 빼앗긴 릴리우오칼라니 여왕(하와이 마지막 여왕)을 생각하면 노래의 가락은 더욱 슬픕니다.
알로하우에~ (여왕이 작곡한 노래라지요)
인종의 전시장, 호놀루루.
소설 속에 아시아 인종, 중국 일본 필리핀 사람은 등장하는데 한국인은 나오지 않네요. (이 소설의 배경은 1920-30년대 무렵이겠지요. 당시 코리언도 상당히 살고 있었을텐데.. 그리고 지금 하와이 원주민 폴리네시아인은 얼마나 남아 살고 있을까요.)
배가 침몰하여 많은 사람을 익사케한 버틀러 선장. (그 기억이 그를 쾌락주의로 만들었을까요)
마법으로 조타수를 죽이는 카나카족 여인.
흉칙한 모습의 중국인 조리사.
조셉 콘라드의 '로드 짐'이 떠오르고 부두교의 마법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버틀러 선장을 위하여 사랑하여 조타수를 죽이는 카나카 여인.
그러나 얼마 안가서 중국인 요리사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이국적 엑조틱한 분위기에 서머셋 몸은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도 좀 엿보이는듯 합니다. (제국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서머셋 몸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냉소적입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그저 불가해하고 그로테스크 한 존재로 해석되는 듯 합니다.
그는 사람마다의 그 개별성이 흥미로워서 소설가가 되었을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커피에 소금을 타서 먹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소금을 타서 먹으면 톡 쏘는 맛이 있어, 그것이 특별하고 희한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이치로 낭만의 후광(後光)에 에워싸인 고장을 찾아 갈 때 느끼게 되는 환멸이 특수한 정취를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어떤 풍경에 뛰어난 아름다움을 기대했을 때, 거기서 받는 인상은 실제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줄수 있는 것보다 한결 복잡한 내용일 수가 있다. 이것은 마치 한 위대한 인물이 지닌 성격상의 약점이, 그에게 대한 존경심을 덜게 되더라도, 그것이 그 인물을 더욱 흥미있게 해주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인 정서적인 반응을 살펴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무서운 전쟁이나 죽음의 위협, 또는 말할 수 없는 공포를 겪고 나서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있는가 하며, 고요한 바다에서 넘실거리는 달이나 숲속에서 새 우는 소리에도 성격이 변할만큼 큰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지의 강약(强弱), 상상력의 빈곤, 또는 성격의 나약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원어)
<It is very curious to observe the differences of emotional response that you find in different people. Some can go through terrific battles, the fear of imminent death and unimaginable horrors, and preserve their soul unscathed, while with others the trembling of the moon on a solitary sea or the song of a bird in a thicket will cause a convulsion great enough to transform their entire being. Is it due to strength or weakness, want of imagination or instability of character? I do not know.>
<진주 목걸이>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9.09 04:32
구운 연어가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 마주 앉은 수다쟁이 로오라와 기질이 좀 시니컬한 작가.
진주 목걸이.
나는 플라스틱 구슬로 엮어놓은 것이더라도 그게 가짜인지 알아볼 재간은 없지만, 백조처럼 우아한 여성의 하얀 목과 거기 드리워진 진주목걸이의 앙상블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게 어마어마한 가격의 귀한 진주라면 그것이 자신의 목에 드리워졌다는 자부심이 보태져서 그녀의 엘레강스는 환상적인 럭셔리함 일터.. ㅎ.
세상에는 보석에 얽힌 애환 오죽 많으리오.
가짜목걸이 때문에 슬픈 인생을 살아야 했던 마틸드(모파상의 ‘목걸이’) 진짜목걸이 때문에 위기에 몰렸던 램지부인(서머셋 몸의 ‘만물박사’)...
도덕적으로 건전한 결말이라...
5만 파운드 짜리 진짜배기 목걸이를 잠시 목에 드리웠던 덕으로 로빈슨 양은 제대로 행복한(? 하하) 삶을 찾았구만, 뭬라는게요? 로오라 부인. ㅎㅎ
이런 깔끔한 단편은 원어로 읽으면 맛이 한층 더 날 듯 싶은데 영어 까막눈이라 아쉽습니다.
<고향>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9.10 09:22
모처럼 들었습니다.
오이겐 요쿰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암스텔담 콘서트헤보.
베토벤의 교향곡 6번 바장조, Pastorale.
<문 위에는 그 집을 세운 날짜가 그 시대의 우아한 글씨체로 1673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집은 낡고 퇴색하여 주위를 에워싼 나무들과 얼른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풍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흔히 지주들의 저택 주변에 어울릴 만한 높은 느릅나무들이 한길에서 아담한 뜰 안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 집만큼이나 감각이 둔하고 끈기있고 또한 소박했다. 그들에게 오직 한 가지 자랑거리는 그 집을 지은 후로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거쳐 대대로 끊기지 않고, 그 집에서 태어나 그 집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백 년 동안이나 그 집 주변의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
낯익은 산과 들과 강, 고향으로의 회귀.
둥그런 길입니다.
기억의 실현입니다.
삶의 의식 속에 늘 귀소(歸巢)할 하나의 이미저리가 배어있다는 것.
고향이 있는 자의 삶은 유장(悠長)합니다.
조지 메도우즈 영감은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메도우즈 부인은 가슴에 안은 흰 꽃의 향기를 맡습니다.
스쳐 지나간 인연에의 회귀는 둥그런 길입니다.
그 또한 고향있는 자의 행복입니다.
도회는 기억의 실현을 용납하는 곳이 아닙니다.
직선적이고 단발성입니다.
옛 인연은 메말라 바스라지는 낙엽으로 부스럭거릴 뿐입니다.
고향이 없는 자, 아스팔트 킨트의 슬픔입니다.
***野草***
2015.09.11 10:10
가져갑니다. 감사~~
동우님.
서울오시는 기회 꼭 전화주시고.
몃진 가을날들 이어가세요~~~
***시냇물***
2015.09.12 21:43
오늘 비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고 가끔씩 파란하늘이 보이네요.
덥지 않고 주말 나들이 하기에 참 좋겠습니다.
한주간의 스트레스 말끔히 씻어내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동우***
2015.09.14 04:54
반갑습니다. 시냇물님.
비는 커녕 어제 남녘은 짓푸른 하늘이었답니다.
시냇물님댁, 잠시 방문하여 사진을 하시며 아름다운 일상을 누리시는 면모 잠시 뵈었지요. ㅎㅎ
자주 뵙겠습니다.
시냇물님도 좋은 한주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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