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미덕(美德)>
-서머셋 몸 作-
***동우***
2015.09.14. 04:58
서머셋 몸의 ‘미덕(美德)’
여성과 남성, 그리고 부부라는 관계의 속성(屬性).
다섯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명료합니다.
화자(話者)인 '나'는 역시 '서머셋 몸' 자신일 터이고.
고집센 뚱뚱한 대머리, 오십줄의 병리학자 찰리 비숍.
친척 하나 없이 외로운 처지의 그의 아내 마져리.
이 두 부부는 찰떡 궁합입니다.
<그들 내외는 의가 무척 좋았다. 함께 있을 때에는 서로 행복감을 느꼈으므로, 되도록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찰리는 결혼하고 오래된 후에도, 날마다 점심 시간이면 식당에 차를 몰고 가서 아내를 만나곤 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마구 놀려대었으나, 한편 가슴에 뭉클한 무엇을 느끼며 그들 두 내외를 대하는 것이었다. 혹시 누가 그들에게 시골에 와서 주말을 보내도록 초청하면, 마져리는 그집 주인에게 더블베드가 없으면 가지 않겠노라고 통지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 내외는 너무나 오랫동안 둘이서 같이 자는 버릇을 붙여 왔으므로 혼자서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때때로 곤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부부 사이에 20대 후반의 청년 몰튼이 끼어듭니다.
보르네오로부터 잠시 고국에 나와 있던 몰튼은 런던의 생활이 몹시 쓸쓸하였던 상황이었습니다.
<파자마 쟈켓에 사롱(말레이 섬의 토인들이 허리에 감는 천)을 걸친 모습 밖에는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저녁 옷차림일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곤색 세루 양복은 어딘가 그에게 좀 덜 어울렸으며, 흰 칼라 위에 솟은 그의 얼굴은 구리빛을 띄고 있었다. 런던, 이상하게도 소란스럽고, 악의는 없으나 냉담한 도시, 그속에서 그는 어리둥절하였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정글에 있을 때보다 더욱 고독하였다.>
그리고 '나'와 찰리부부의 친구인 빌과 자네트 부부가 있습니다.
호기심과 오지랖, 낭만적 허영과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자넷트는 여성 일반의 속성일듯 싶은데..ㅎ
<나는 쟈넷트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의 불행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을 돕는데 열성이 대단했으며, 기꺼이 친구들의 어려운 처지에 뛰어들어 힘이 되고 싶어하였다. 그녀야말로 역경에 처했을 때의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밖의 사람들의 일은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았다. 친구 중에서 어느 한 사람에게 애정문제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비밀을 털어놓게 하였으며, 또 이혼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반드시 참견하려 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친절한 여자였다....그녀는 비숍 부부사이에 일어난 비극에 대하여 몹시 마음이 아팠으나, 그것은 꽤 흥미있는 일이었으므로, 그녀는 그 내막을 들려 줄 만한 상대가 하나 나타난 것을 무척 기뻐하였다. 그녀는 마치 어머니들이 시집간 딸이 첫애기를 해산하는데 대하여 의사와 의논할 때와 같은 그런 실제적인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일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일을 경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얻어 들을 심산이었다..... 남자로서는, 여자들이 사적인 일에 대하여 남에게 털어놓는 것을 듣고 있기란 무척 힘든 노릇이다. 그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사로운 일을 거침없이 지껄인다. 정숙은 여자의 미덕이다. 남자들은 이것을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여자들이 가볍게 입을 놀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은 다만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만일 몰튼이 자기 편지를 쟈넷트 마쉬가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의 내막에 대하여 그녀가 날마다 보고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찰리의 아내 마져리가 그만 청년 몰튼과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이는 내가 좋아서 미칠 지경인가봐요.」
마져리가 말하였다.
「그이가 키쓰해 줬어요?」
하고 쟈넷트가 묻자,
「물론이죠.」
하고 마져리는 킥킥거렸다.
「자넷트,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그분은 매우 상냥하고 또 천품이 무척 고와요. 하기는 나는 그분이 하는 말을 절반도 믿지 않지만 말예요.」
「설마 그분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테지요?」
「벌써 사랑하고 있는걸요.」
「일이 난처해지면 어떻게 해요?」
「뭐 잠간 동안일 텐데 어때요. 그인 가을에 보르네오로 가게 돼요.」
「당신은 요즘에 몇 년은 더 젊어 보이는 군요.」
「나도 그걸 느껴요. 몇 살은 더 젊어진 것 같아요.」>
마져리도 남편 찰리도 처음에는 그 사랑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네요. 요즘처럼 건강이 좋은 적은 일찍이 없었어요…… 전 사랑을 하고 있어요.」
「아니 당신이? 누구하고」
「몰튼하고요.」
그는 깜짝 놀라 아내를 쳐다보았다. 자기의 귀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표정을 잘못 해석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를 탓하여도 소용 없어요. 전 인제 어떻게도 할 수 없어요. 그이는 2, 3주일 후면 이곳을 떠나 버려요. 저는 이 짧은 동안을 허송세월하기는 싫어요.」
남편은 너털웃음을 쳤다.
「여보, 마져리! 어쩌면 당신은 그렇게도 어리석단 말이오? 당신은 그의 어머니가 되어도 충분한 나이란 말이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저 못지 않게 그이도 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요.」
「그자가 당신 보고 그렇게 말했소?」
「그럼요. 수없이 말했어요.」
「그자는 새빨간 거짓말쟁이군.」
그는 킥킥거리며 크게 웃었다. 그러자 살찐 배가 유쾌한 듯이 들먹거렸다. 그는 아내의 말을 기막힌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몰튼과 머져리의 사랑은 심각한 지경에 빠져버렸습니다.
마져리는 몰튼에게서 헤어날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남편에게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에 깊숙하게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몰튼이 보르네오로 돌아가자 머져리는 가출하기에까지 이릅니다.
<「제가 몰튼과 사랑에 빠진 것은 당연해요. 그 사람은 제가 찰리에게서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어요. 찰리에 대한 사랑에는 이를테면, 언제나 모성애와 같은 것이 있었고, 저는 항상 그를 보호하는 입장에 서게 마련이었어요. 그만큼 저는 찰리보다는 지각이 있었던 거예요. 그분은 다루기가 무척 힘든 사람이었지만, 저는 언제나 그분을 조정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몰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녀는 한결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얼굴은 기쁨에 가득차 있었다.
「그이는 저에게 젊음을 되찾게 해 주었어요. 저는 그이 앞에서는 어린 소녀나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그분의 힘에 기대일 수 있었고, 그분의 보호를 받아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었어요.」
「그 사람은 제가 보기에도 퍽 훌륭한 청년 같더군요.」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일이 잘 될겁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청년은 퍽 젊어 보였어요. 아마 지금 겨우 스물 아홉 살쯤 되었을 걸요.」
그녀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 말귀를 알아들었던 것이다.
「저는 그분에게 제 나이를 속이지 않았어요. 그분은 나이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이 말을 시인 하였다. 그녀는 자기 나이 같은 것을 속일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 자기자신에 대하여 진실을 말함으로써, 어떤 잔인한 희열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부인은 올해 몇이시던가요?」
「마흔 넷이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저는 편지로 찰리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몰튼에게 알렸어요. 이제 기별이 오는대로 그분한테로 떠나려고 해요.」>
나는 놀랐다.
그녀는 담담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하였으며, 그녀의 태도에는 비장한 데가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가 떠난 후에 벌써 그녀에게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는 물론 그녀가 매우 어리석다고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에 언제나 분노를 느낀다면, 우리는 일생을 만성적인 분노 속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돌이킬수 없는 아내의 마음에 절망한 찰리는 급기야 수면제를 삼키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러나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것은 실수였을뿐 찰리의 자살을 수긍하지 않으려는 자네트의 심리와 그런 아내에 무조건 동조할수 밖에 없는 남편 빌.
이 또한 부부관계의 한 모습일듯 합니다.
<「물론 시체를 검사해 볼테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해요. 그분은 지난 3, 4주일 동안 통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 언제나 수면제를 먹어온 것 같아요. 그런데 실수해서 약을 과용한 거예요.」
「마져리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나는 이렇게 물었다.
「마져리는 너무 충격을 받아 지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녀에게 찰리가 분명히 자살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이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렇지요, 여보?」
「그래 당신 말이 맞았어.」
빌이 대답하였다.
「그는 아무 편지도 남기지 않았나요?」
「네 남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마져리는 오늘 아침에 그가 보내온 편지를 한통 받았어요. 하긴 편지라고 할 것도 없지요. 꼭 한 줄밖에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요.
<여보, 당신이 없어서 나는 무척 외롭소.>
이것뿐이었어요. 이것은 물론 별로 뜻이 없는 말이에요.
마져리는 시체를 검사할 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저한테 말했어요. 남들에게 이상한 생각을 하게 해줄 필요가 뭣이냐는 거예요. 그런데 수면제를 가지고서는 아무도 트집을 잡지 않을 게 아녜요. 그러나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은 쓰지 않겠어요. 이번 일은 분명히 사고로 일어난 거예요. 그렇지요, 여보?」
「그래 당신 말이 맞았어.」
빌이 또 대답하였다.
쟈넷트는 찰리가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믿고 싶은 것은 과연 어느 정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나는 여성심리학을 잘 모르므로 분명히 알 수 없었다. 하기는 그녀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져리와 몰톤의 연애에 있어서, 여자는 남자에게 끝까지 몸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미덕(美德)이었을까요.
착각이나 비겁함은 아니었을까요.
<나는 무슨 일이든지 분명히 하는 성미이므로 이렇게 물었다.
「그들은 육체관계까지 맺었나요?」
「어마, 마져리는 그런 여자가 아니예오.」
「그걸 어떻게 보증해요?」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그녀가 저한테 말했을 거예요.」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마져리에게 그걸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녀는 펄쩍 뛰지 않겠어요. 아마도 사실일거야요. 그들 사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저한테는 좀 이상하게 들리는군요.」
「선생님께서도 마져리가 얼마나 훌륭한 여자인지 잘 아시지 않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는 찰리에게 매우 충실했어요.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을 속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녀가 남편에게 어떤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자기가 몰튼을 사랑하게 된 것을 알게 되자 바로 남편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 제가 못하게 말렸어요. 이야기했대야 남편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라고 말해 주었지요. 두어 달 지나면 그 청년은 떠나게 될 터인데, 오래 계속되지도 않을 일로 큰 소동을 피우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에요.」>
필경은 보르네오의 몰튼은 런던의 마져리에게 등을 돌리고 맙니다.
남편에게로 돌아가라는 정중한 권고와 함께.
아, 서머셋 몸은 신랄하고 적확하게 인간성의 정체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인이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흥미있군요. 이렇게 말썽을 일으키게 된 건, 결국 그녀가 착한 탓이었어요. 왜 그녀는 몰튼과 육체관계를 맺지 않았나요? 그랬대야 찰리는 알리 없을 테고, 일은 조금도 악화되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되면 두 남녀는 멋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고, 몰튼이 떠날 때에도 하나의 즐거웠던 일화(逸話)가 아름답게 끝을 맺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헤어졌을 거요. 따라서 그에게는 그 일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을 것이며, 그여자는 만족스럽고 아늑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돌아가 전과 같이 착실한 아내 노릇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쟈넷트는 입술을 오무리고 멸시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덕(美德)을 간직할 줄 알아야죠.」
「그 미덕이 탈입니다. 우리에게 폐단과 불행만을 가져오는 미덕은 해서 뭣에 쓰자는 겁니까? 부인께서는 그걸 <미덕>이라고 하여도 저는 <비겁>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그녀가 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한, 남편에게 불성실하다는 것은 그녀에게 몸서리치는 일이었던 거예요. 이런 여자들은 왜 얼마든지 있지 않아요?」
「내 원 참! 아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불성실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남편에게 성실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여자들이 곧잘 꾸며대는 핑계지요.」
「꽤 비꼬시네요.」
「현실에 직면하여 상식을 적용하는 것이 비꼬는 것이라면, 저는 분명히 지독하게 빈정대는 것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사리를 따져 봅시다. 마져리는 중년 부인이고, 찰리는 쉰 다섯이나 되며, 그들 내외는 15년 동안이나 결혼생활을 해 왔어요. 그녀가 자기에게 몸이 단 젊은이에게 홀딱 빠진 것은 당연해요. 그런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생리문제였어요. 그녀가 그의 말을 액면대로 믿다니 이만저만한 잘못이 아니지요. 그가 요구한 것은 굶주린 성(性)의 충족이었어요. 그는 4년 동안이나 백인 여자에 주려 왔으니까요. 그가 당시에 한 들뜬 약속에 매어서 그녀의 일생을 망치려고 들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어요. 그가 마져리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동기에서였어요. 그는 마져리의 육체를 원하였지만 그녀를 정복할 수 없었으므로, 더욱 원하게 된 거지요.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저는 그것이 단지 성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동침하였던들 찰리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말썽이 생긴 것은 그녀의 하잘 것 없는 미덕 때문이었어요.」>
얼마나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지요.
미덕으로 포장된 비겁이라니.
낭만으로 포장된 본능이거나 기분.
이 또한 상통(相通)합니다.
<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몰튼이 무척 낭만적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고약한 세상에서는 낭만주의자들도 자기네의 어리석은 짓을 집어치우게 된다. 그들이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보란 겉으로만 큰 소리를 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낭만적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위선자로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만, 실은 그들은 위선자가 아니다. 그들은 진지한 태도로 신의 왕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정이 너무나 힘에 벅차 도중에서 가장 안전하게 보이는 곳에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정신이란, 웰링턴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땅에다 배를 대고 전진하는 정신이다.>
아무리 가슴은 미덕과 낭만의 찬가를 부를지라도 여자의 두뇌 속에는 계산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럼 뭣하러 불렀어요?」
「몰튼은 선생님의 친구예요. 선생님이 그 사람을 마져리에게 소개해 주셨고, 그녀는 그 사람 때문에 곤경에 빠진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선생님으로부터 발단된 거예요. 그러니까 몰튼에게 편지를 띄워, 그녀를 버리지 않도록 충고해 주세요. 이건 선생님의 의무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 짓은 못하겠어요.」
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럼 알겠어요. 이제 그만 가셔도 좋아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아뭏든 찰리가 생명보험에 든 건 잘했어요.」
하고 쟈넷트가 말하였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부인은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나더러 비꼰다는 거요?」>
사소한 우연성과 잠시의 도취에 의하여 결단나 버립니다.
생명과 물산(物産)의 길고 긴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은.
시가와 백포도주와 굴과 양(羊)이 그러하고 인생 또한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뜻하지 않는 사고가 일어나면, 운명의 줄기는 끊어지고, 이 세상과 더불어 시작된 모든 이야기들은 갑자기 끝나며, 그것이 바로 바보가 들려 준 이야기처럼 보잘 것 없는 듯이 생각된다. 그처럼 극적인 중요성을 지닌 이 사건이, 그렇게 조그마한 원인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손쉽게 방지할 수 있는 대단치 않은 사건이,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사소한 행동이 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전 생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좀 신랄하렵니다.
인문(人文)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위선과 허영과 거만과 가식을 인간성에 삽입해 놓았습니다.
기분이라는 것도 다분히 문명에 순치된, 굉장히 가변적인 감정입니다.
똥누러 갈때와 누고나서의 기분은 사뭇 다른것입니다.
낭만 또한 쾌락의 본능이 착각하여 데포르마숑된 문명적 감정중 하나일터입니다.
낭만이 근거하는 곳도 기분이라는 영역이지 싶습니다.
엊그제 낭만없는 세대의 슬픔을 읊조렸는데 스산한 기분의 내 늙은 넋두리일 것입니다.
인생을 좀 아는 복부인은 춤바람이 나더라도 제비의 낭만을 믿지 않습니다. ㅎㅎ
이 소설, 번역이 좀 어지럽습니다만 현금에도 유효한 액추어리티가 있습니다.
신랄하지만, 서머셋 몸의 인간성에 대한 통찰은 얼마나 적확한 것인지요.
-독서 리뷰-
[[서머셋 몸]]
<만물박사> <비>
<만물박사>
-서머셋 몸 作-
***동우***
2013.03.02 05:14
예쁘고 귀엽고 명랑하고 유머를 즐길 줄 알고 패션에 대한 센스가 넘치는, 정숙하면서도 남에게 돋보이는 매력 넘치는 숙녀.
그러나 그녀는 멋대가리 없는 남편을 가졌습니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그녀의 목에는 값비싼 진주 목걸이가 걸려있습니다.
남편이 알지 못하는.
남편과 떨어져 산 오랜 뉴욕생활중 그녀는 어느 숭배자로 부터 선물 받았을거나? ㅎㅎ.
숭배자라고 합시다. 정부(情夫)라던가 하는 따위의 천박한 상상은 금물(禁物).ㅎ
<"내가 잘못 봤어요."하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멋진 위조품이오. 확대경으로 보았더니 그걸 곧 알 수 있었어요. 역시 18달러짜리가 맞아요."
그는 지갑에서 잠자코 백 달러의 지폐를 꺼내어 램지 씨에게 넘겨 주었다.
"아마 이번 일은 당신에게 다시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교훈이 되었을 거요."하고 램지 씨는 지폐를 받으면서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런 따위의 다른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온 배 안에 퍼졌다.
그는 그날 저녁에 적지 않은 조롱을 받았다.
만물박사가 꼬리를 잡혔으니 재미있는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램지 부인은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면서 자기 선실로 가버렸다.
이튿날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면도를 할 때, 켈라다 씨는 담배를 피우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문틈으로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편지가 눈에 띄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편지를 집어 보았더니 굵은 글씨로 이름이 뚜렷이 적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켈라다 씨에게 넘겨 주었다.
"누가 보낸 걸까?"
그는 편지를 뜯었다.
"아!"
그는 봉투에서 편지 대신 백 달러의 지폐를 꺼내었다.
그는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더니 봉투를 박박 찢어 나에게 주었다.
"이걸 선창 밖으로 좀 버려 주시오."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봉투를 버린 후,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에게 바보로 보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요."
그가 말했다.
"그 진주는 진짜인가요?"
"만약 나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만 있다면, 내가 고베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1년씩이나 뉴욕에서 혼자 지내게 하지는 않았을 거요."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켈라다 씨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지갑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백 달러의 지폐를 집어 넣었다.>
못난 남편으로부터 렘지 부인의 곤경을 구해준, 설레발 떠벌이 만물박사 켈라다씨.
멋지다.
켈라다 씨는 진짜배기 신사였구나.
젠틀맨쉽이란 모름지기 저와 같은 것이노라.
***송현***
2013.03.02 11:51
오래전 읽은 써머셋 모옴의 만물박사, 다시 읽어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또한 서머셋의 다방면에 친절하고 기민한 멋쟁이...
스토리 전개, 호기심을 동반하게 꾸려가는 샤프한 사람이 매력입니다
동우님처럼. ㅎㅎㅎ
***동우***
2013.03.04 05:27
전에 책부족에서 서머셋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그런데 책부족에게서 그의 '달과 육펜스'는 썩 찬탄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지요.
그러나 소설가로서 서머셋 몸은 정말 재능이 넘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단편소설의 백미로 꼽는 소설중 하나가 서머셋 모옴의 '비'라는 소설이지요.
근간 '비'를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 샤프한 사람 아니에요, 송현님. ㅎ
***teapot***
2013.03.03 12:17
오지랖이 넓은 만물박사 처음부터도 미워할 수 없었네요
상상이 정부까지는 안갔지만 제 상상을 깼읍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동우***
2013.03.04 05:33
하하, 티팟님.
저 오지랖넓고 어수선하고 수다스러운 사나이 켈라다씨.
그 마음밭은 지극히 고결한...
나도 저런 사람을 몇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도무지 진실성이라고는 없는 면모이지만 의외의 경우, 그 인간성의 진면목을 발견하였을 적..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할게 아니지요.
신언서판 점잖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위선 쉽사리 간파되지는 않지만, 어떤 궁박한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드러날 때.
그 실망감의 씁씁함이라니. ㅉㅉ
***저녁산책***
2013.03.05 23:27
ㅎㅎ맥스 캘라다.
요즈음 유행하는 노랫말처럼 '반전있는 남자'네요.ㅎ
멋져요.
자신의 고결한 인격을 오지랖으로 치장할 줄 하는 겸손함..ㅎㅎ
잘 읽었습니다. 동우님^^
***동우***
2013.03.08 05:40
하하, 반전있는 남자.
강남여자는 밤이오면 심장이 뜨거워져 반전하지만, 우리 캘라다씨는 어느 숙녀의 곤혹스러운 상황에 반전하는.
멋진 사나이..
<비>
-서머셋 몸 作-
***동우***
2013.08.06 04:40
몇년 전, 책부족 과제로 서머셋 모옴(1874~1965)의 '달과 육펜스'를 재독(再讀)하였습니다.
그런데 10代 때 읽었던 감동이 옛같지 않아 '서머셋 모옴'에게 다소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비.
이제 다시 읽는 '비'는 그러나 여일(如一)하게 빼어납니다.
남태평양.
간헐적으로 미친 듯 퍼붓는 열대의 비.
원초적인 야만(野蠻)의 욕정과 그리고 파멸...
내가 읽은 중 열손가락 안에 드는 단편소설입니다.
미독(未讀)이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오늘과 내일, 2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3.08.07 03:21
올여름, 명색 장마라는데 이리도 비가 인색한 한반도 남녘땅.
서머셋 몸의 비.
열대우(熱帶雨)의 광포(狂暴)함은 어느 정도일까.
양철지붕을 다다다다 두드리는 그 야만(野蠻)의 소리가 그립다.
이 소설의 영화, 오래 전 명화극장에선가 감상하여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기억하고 있던 '비'라는 제목으로, '수잔 헤이워드'와 '험프리 보가드'라는 배우 이름으로 아무리 검색하여 보아도 찾지 못하였다.
모니터에 뜨는 것은 '비에 젖은 욕정'이라는 영화, '리타 헤이워드'와 '호세 파라'주연의.
이 소설의 영화는 이것이었던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이리 덧없구나.
찰나적 본능에 굴복함으로 멸망하고 마는 데이빗슨.
그를 죽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나긴 세월 그토록 꿋꿋하게 그를 지켜주었던 종교적 신념의 궤멸이라는, 극단적 자기혐오의 내면적 절망감이었을까.
아니면 "너희들 사내놈, 추악하고 더러운 돼지야! 모두 똑같은 놈들이지. 돼지들!" 미스 톰슨의 저 조롱과 멸시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면도칼로 자신의 이 쪽 귀에서 저쪽 귀에 까지 스스로 목을 그은.. 그토록이나 스스로를 용서할수 없었던...
필경 전자(前者)이겠지.
흐음, 그는 그리하여 구원에 이르렀는가...
아, 인간이란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곁가지 한마디, 서머셋 모옴' 소설들의 행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백인우월주의 식민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 (이문열도 이 소설을 열손가락 안에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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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가진 존재의 슬픔 혹은 공허한 승리의 실상>
'비'는 고전적 단편이론을 거의 완벽하게 집성한 것 은 작품이다. 스토리와 구성은 재미에 필요한 모든 요소와 장치를 갖추고 있고 주제는 인간성의 가장 내밀하고 심각한 국면을 포함하고 있다.
20세기가 생산한 단편 중 가장 뛰어난 열 편을 고르라면 나는 그 중에 하나로 이 작품을 넣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종교와 성본능의 갈등, 더욱 보편화시켜 말하면 선악의 투쟁을 다룬 것이며 결말은 분방한 본능의 승리, 혹은 경직된 선의 패배로 이해되고 있다.
'자기를 교화하려는 독선적인 선교사를 휘어잡아 굴복시킨 창녀의 이야기로서 자연주의 문학의 일품이다.
종교와 성본능의 갈등을 이보다 더 효과있고 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식의 해설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내가 이 작품의 결말에서 읽은 것은 그런 승부의 향방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인간의 슬픔이다.
선교사 데이빗슨은 독선적이고 경직된 성품이긴 하지만 선을 향한 믿음과 의지에서는 거짓이 없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거짓이 있었다면 그는 비겁하게 자기변명을 시도하거나 상황에 몰려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더라도 보다 고통을 줄이려 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 읽는 게 아니라면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충실하기 그지 없었지만 삼손이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약한 육체 때문에 패배한 사람이었다.
이를 인간의 숭부 개념으로 간단하게 재단할 수 있을까.
톰슨의 승리도 자연주의적인 진실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악마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승리 때문에 악마는 언제나 악마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창녀 톰슨의 승리가 자연이 부연한 육체의 악마적인 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악마가 빌려준 간계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지만 결과는 악마의 그것과 마찬가지다.
그 승리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혐오스런 창녀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 두 사람이 대표하는 의지의 승패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싸움에서는 져도 이겨도 이 세상에서는 치욕과 비참밖에 없는 우리 삶의 진상을 보여주는데 더 관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은이 모옴은 의과대학 재학시적 런던의 빈민굴을 무대로 한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자신이 거쳐온 소년시절을 자양분으로 해서 한 청년이 삶에 대한 유미적이며 불가지론적 인생관을 확립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 '인간의 굴레'와 화가 고갱의 전기에서 암시를 얻어 쓴 작품 '달과 6펜스'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91년이란 긴 생애를 거치며 소설과 희곡 분야에서 무수한 역작들을 남긴 모옴의 작품 세계는 평이한 체로 이야기를 호의롭게 전개하는 가운데 삶의 불가해성을 날카롭게 묘파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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