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공산토월 '관촌수필中'>
-이문구 作-
***동우***
2014.04.09 05:16
이문구의 '공산토월'(空山吐月, 冠村隨筆 中)을 4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오랜 타향(서울)생활에 후줄그레 젖은 이문구는 고향 (보령 관촌)을 돌아다 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조부, 부모, 부리던 이들, 마을사람들, 동무들)을 회억합니다.
'관촌수필'은 자전적 소설이지만 어쩌면 이문구가 쓰는 그들의 전(傳)일테지요.
능력은 없고 욕망이 앞서, 나도 나의 것 (의식, 기질, 인생관, 기쁨, 절망, 슬픔..)에 영향을 준 사람들의 전(傳)을 언젠가 쓰고 싶습니다만 그들에 대한 내면적 객관화의 눈길을 아직 갖지 못하여 아득합니다그려.ㅎ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석공'에게서 나는 '이문구'라는 사나이의 인품과 체취를 짙게 느낍니다.
필경 작가는 석공을 닮고자 애쓰면서 살다 갔을겁니다.
한살이란 사람끼리 부대끼며 사는 관계의 삶입니다.
그 관계를 듬직하고 우직하고 아름답고 성실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같은 종자가 따르기에 까마득한 인성(人性), 작가의 저 구수한 만연체의 사설에다 추임새나 매길 뿐입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가 한때 국내 상영논란이 되었었군요.
마피아 갱을 다룬 영화이지만 카바라초나 바로크적 장중(莊重)한 깊이의 영상이었는데, ‘대부’가 그렇게 잔인한 영상이었던가..?
***서민정***
2014.05.03 20:03
안녕하세요 동우님,
정말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블로그를 열어보았습니다.
관촌수필...
아련합니다.
미국 와서 읽는 한국 소설, 그중에 이문구씨의 관촌수필하고 우리동네가 너무너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80년대에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는 '고향'이라는 느낌을 상기시킬만한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막상 나라를 떠나서 살다보니 그 '고향'이라는 것을 그리워할 수 없다는 것이 참 허전하고 아쉽고 그랬는데
이문구씨의 이 두 권의 책이 그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에는 그냥 하루하루 몸으로 바쁘게 사느라 책도, 인터넷도 멀리하고 살아서 조용히 책읽고 독후감 쓰던 일이 까마득히 예전의 일 같이 느껴지지만, 오랜만에 보니 참으로 반갑네요.
동우님도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시지요?
언젠가는 저도 진득히 앉아 책을 읽을 기회가 다시 오겠지요.
그때까지 자주는 어렵겠지만 가끔이라도 소식 전하겠습니다.
동우님.
늘 건강하세요~
그리고 언제나 건필하세요~
***동우***
2014.05.04 06:34
반가워요, 민정님.
세상이 한창 찬연할 도연이.
얼마나 엄마를 치대어댈지 훤하게 보일듯. ㅎ
언감생심 책 찾아 읽으실 여가 바라기 힘들겠지요.
도연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 곧입니다.
아이들 크는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시며 손발이 다 닳토록...
하늘아래 어머니 수고와 같은게 달리 있을라구요?
가끔이라도 블로그에 도연이 모습 올려주세요.
홍애님도 호호야님도 그러실 테지만, 나도 보고 싶어요.
벌써 몇년 전입니까?
민정님의 싱그런 웃음소리와 발랄한 모습이 그립답니다.
레이몬드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
도연이에게 한국땅 할아버지의 축복을.
세 가족, 언제나 건강과 행복을..
***동우***
2014.04.10 04:20
행복한 사람이다.
성장하면서 진실로 어질고 갸륵한 하나의 구원한 어떤 인간상이 정신 속에 굳게 자리잡은 사람은.
일생을 살며 추모해도 다하지 못할 만큼 나이를 얻어 살수록 못내 그립기만 한 사람을 간직한 이는.
<나는 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석공을 추억하고 아쉬워하던 끝이면 흔히 돌의 됨됨이와 성질을 더불어 되새기게 되곤 했다. 그러므로 내가 아는 돌의 성질이란 곧 석공이란 별명을 가졌던 그 인간의 성질과 거의 같은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그렇듯 돌은 용모가 곧 쓸모이되 장중한 바위로부터 간지러운 자갈에 이르기까지 타고난 성질만은 매한가지로 같다. 더위에 늘어짐이 없고 장마에 젖으나 물러지지 않으며,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고 바람에 뒹굴지언정 가벼이 날아가지 않는다.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지 않고 망치로 얻어맞아 깨지긴 해도 일그러지거나 무름해지지 않는다.
옛 글에도 "丹可磨 而不可奪其赤 石可破 而不可奪其堅‥단사(丹砂)를 갈더라도 그 붉은 빛은 빼앗을 수 없고 돌을 깨뜨려도 그 굳음은 빼앗을 수 없다"고 일렀음을 알고 있다. 석공이 그렇듯 돌과 같았던 줄로 생각하기를 나는 서슴지 않는다.>
미련하게 살지 말라는 세태이지만, 세상에는 한살이의 관계를 저런 돌처럼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 없지 않으리로다.
세상이 어떻든 타고난 성정(性情)으로서 말이다.
아아 평생, 내 주변이라고 마냥 척박했을꺼나.
필경 내게도 저와 같은 사람 있었을 것이다.
내 용렬한 인간 됨됨이가 그를 담아내지 못했을 뿐, 이제 늙어 통재로다.
***jamie***
2014.04.10 08:53
바로 위...달밤에 취한듯, 이웃 혼사에 턱주가리 받치고 앉아 새색시를 들여다 보다, 새신랑이 매맞을까 온갖 걱정 다 하다, 졸음에 잠긴 눈으로 옹점이 등에 업혀 달님을 달고 귀가하는 장면.
그 묘사가 참으로 일품이지요!
이문구님 표현대로, 그런 순결스런 추억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살아가며 타성에 찌드는 마음에 말입니다.
아, 이런 멋진 글을 타국어로 번역하여 소개시킬 수 있다면, 그 한국의 정서를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단 생각 들어요.
***동우***
2014.04.11 05:01
달밤에 취한듯, 이웃 혼사에 턱주가리 받치고 앉아 새색시를 들여다 보다, 새신랑이 매맞을까 오만 걱정 다 하다, 졸음에 잠긴 눈으로 옹점이 등에 업혀 달님을 달고 귀가하는 장면의 묘사...
제이미님.
솔직히 말씀드려 나는 간과하였습니다.
제이미님이 깊이 공감하는 그 짙은 정서를, 그 느낌을.
아, 그 대목 다시 읽어 내 감성에도 담습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어머니 마음같은 휘영청한 달빛, 어른들 코골음같은 부엉이 소리, 달빛 한웅큼씩 훔쳐가는 기러기떼의 울음소리..
능금과 탱자 냄새, 자신을 업고 있는 웅점이의 늣늣한 아주까리 기름냄새, 웅점이의 보드라운 머리칼...
<"저이들이 석공을 몽둥이루 팬다는디.. 산내끼루 천장에다 달어맨디야." 나는 근심스러워 풀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연방 도래질을 하였다. "신랑 달어먹는 겨. 그런 건 노상 장난으루 허는 거랑께." 그녀는 히뜩히뜩 웃다 말고 나를 텁석 둘러업었다. 옹점이 등에 업혀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드높고 가없으며 꿈속에서의 하늘처럼 이상하게만 보인 하늘이었던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달도 나만을 쳐다보고 있었고, 내 그림자를 쫓아 대문 앞까지 따라오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
제이미님.
내 마음 속으로 충청도가 가득 밀려오기는 한데, 제이미님 반만큼만이라도 그런 감성 느낄수 있었으면.
그런데 나는 슬픈 아스팔트 킨트, 충청도 촌놈이 아니올시다.
이를 어째요?
허지만 나도 한반도 사람, 내게도 어느만큼은 담겨 있으리라 믿어봅니다다.ㅎ
***동우***
2014.04.11 04:40
아버지와 석공의 사이는 마주 존엄하였다. 그리하여 마주 사랑하였다.
배운 사람 아버지와 못배운 사람 석공의 공산질(共産)은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에 경도된 자와 사람에 경도된 자로서, 그러나 그들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의 근원이 사람이고 사람의 근원이 생각이겠으므로.
까마득하게 평범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가 석공 장가가는 날 생전 처음으로 남의 집 울안에 들어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아버지의 그 모습에 이문구는 가슴이 벅차 올라 숨조차 제대로 쉴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갇히자 석공은 지극정성 아이처럼 종종걸음으로 오가면서 아버지를 수발한다.
<진지가 식을깨미 그러지유. 장(늘) 찬 웂이 해다드려 죄송스럽기만 허유‥‥>
천성의 성품으로 지닌 그의 바위는 '선생님께 부끄럽잖은 사내가 되고자' 더욱 굳건하다.
이문구는 전쟁 직전 좌익으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준 적이 없다.
다른 이의 전(傳)으로 할아버지를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워 할 뿐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쁜 자신의 용모를 아픔으로 인식하는 석공의 아내, 이는 또 누구를 아파하는걸까.
<츠녀 쩍에 넘덜이 보구 반주그레허니 괜찮게 빠졌다구 허면 철웂이 좋아했더니, 게 다 무슨 살(煞)이던개뷰. 후제 자슥 두구 메누리 읃으면, 저처럼 콧날 오똑허구 얼굴 걀상허니 해금헌 시약씨는 절대 마다헐래유.>
짙은 이문구의 토속적 사설.
관계로서 이루어진 인간의 대지를 머리로써만 헤아리는 내 하찮음은 또 비약하여 추임새를 넣는다.
얼쑤! 생텍쥐페리.
***jamie***
2014.04.11 11:10
제 아버지의 사촌형님은 문중의 자랑거리였다지요.
충청도 촌에서 경기고 전신을 나와 보성전문에 다녀 관리로 일했고 그에 걸맞게 이화여전 출신 처녀를 만나 애들을 셋 두고 잘 살었대요.
6.25가 나기 직전, 사촌형님은 자신이 제일 아끼던 우리 아버지에게 잠깐 북에 좀 함께 다녀오자고...두 양반은 38선 근처까지 갔대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눈 앞에 아직 돌도 안된 아들(제 오빠) 얼굴이 어리더래요.
'형, 나는 그냥 집으로 가야겠소.' 하니, '그래, 넌 집에 가서 기다려라. 내 딱 한 달만 있다 오마. 네 형수랑 애들도 잘 보살펴다고.'
그게 마지막이었지요...아버지에게 아무리 섭섭했다가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고맙기만 했다는 우리 어머니, 애들 셋과 함께 생과부가 된 우리 당숙모님은 지금 치매로 자식도 못 알아 보셔요.
북으로 넘어가셨던 그 분은 거기서 새 가정을 꾸리셨고, 평양서 관리로 지내시다 타계하셨다고 90년대 초에 확인했다 해요.
이문구님의 글은 다소 비슷하고 다소 다르지만 6.25 동란에 많은 집안의 재난을 어쩜 그리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지요. 정말 가슴아픈 한반도 역사예요!
지금까지도 반분되어 있으니!
저 아픈 상처가 이제는 흐릿한 흉터로만 남아 있는 듯 하나 이런 글을 읽으니 생생하게 그 아픔이 되살아나네요, 마치 제가 직접 겪기라도 한 냥 말입니다.
***동우***
2014.04.12 07:59
제이미님.
그러셨군요.
미친 세월 속에서 운명이란 종이 한장 차이지요.
나도 가끔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가 그 때 네 처자식을 이끌고 북으로 가셨다면 어머니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거며, 우리 세남매의 지금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쩄거나, 우리 또래치고 어떤 식으로든 동족상잔의 상흔(傷痕)을 지니지 않은 사람 없을겁니다.
내 아버지는 어느 산하 스러졌을지...
잔뜩 흐린 주말하늘입니다.
비가 올거라네요.
제이미님의 버지나아 숲..
그 짓푸름을 떠올릴랍니다.ㅎ
좋은 날, 제이미님.
***jamie***
2014.04.13 11:02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말을 했네요, 제가...
동우님은 아버님을 북으로 빼앗기신 분이니!
그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하셨을지요.
저희는 통일이 되면 아들들과 페테스부르그까지 기차여행하기로 했어요.^^
***동우***
2014.04.12 07:50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동족상잔의 그 미친 세월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학적 은유 뒤에서 차마 생얼굴 내밀지 못한채.
망념(妄念)으로 듣고 보았던 석공네 마당, 그 세월을.
<석공네 마당에 웅성대는 사람들, 명주 가로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 석공 몸뚱이에 벌집을 만든 총알 자국, 도끼 또는 쇠스랑에 찍혀 빠개져 버린 두개골, 작살과 죽창에 난탕질 당한 뱃구레와 앞가슴의 선혈..그렇다, 그 돼지 잡을 때마다 자배기 안에서 솔고 엉겨붙던 검붉은 선지피..나는 몸부림 쳐도 시원찮게 후회스러웠다. 어찌하여 10여 년 전에 벌써 그런 망상을 했던 것인지, 내 자신이 그토록 저주스러울 수가 없었다.>
요망스럽고 저주스럽지만 어쩔 것인가.
피흘린 세월의 업보이거늘.
<라디오 소리가 다하여 정말 적막한 시간에 이르자, 이렇듯 대지가 모두 잠들어 휴식하되 하늘만이 살아 있는 밤의 신비로움에 대해서 몹시 감상적(感傷的)인 잡념에 접어들었고, 그러자 이 밤에도 이 대지 위엔 얼마나 많은 괴롭고 슬픈 일들이 남모르게 벌어지고 있는가가 생각되고, 사람 한평생의 무거리가 말짱 덧없고 부질없는 헛된 놀이판의 작은 자취에 불과하다는, 처음으로 깊고 어두운 허무 속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끔찍하게 선연하다.
<잘들 사는 걸 보구 죽으야 옳을 텐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하네..부디 잘들 살어..하며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울었다.>
남은 자는 세월의 뒷등에다 대고 어정쩡하게 절하면서 몽롱하게 웅얼거릴 따름이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jamie***
2014.04.13 12:06
저두 눈물이 나네요...
작가의 집 3대에 걸쳐 충직하게 맺은 석공과의 인연과 의리.
때이른 석공의 죽음으로 이리 끝나게 되는군요. 작가의 황망 중에 애통한 심정이 참말 생생하군요.
생사로는
예있으매 저히고
나는 가난다 말도
못다닛고 가나니잇고
제가 좋아하는 월명의 제망매가 싯귀를 떠올리며 여운을 달랩니다.
***동우***
2014.04.14 05:18
제이미님도 좋아하시는군요.
제망매가.
나도 까닭없이 이 향가가 좋아요, 제이미님.
그런데 어느 부분 어느 느낌이 그리 좋은데 하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겠어요.
죽고사는 길이
세상에 있으매 두려운데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하고
가버렸느냐.
흩어져 떨어질 이파리처럼
같은 가지에 났어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오누이'라는 어휘가 내 감성에는 매우 애틋하고 예쁘게 접수되는데 그런 필(feel)...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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