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더더대를 찾아서>
-이문구 作-
***동우***
2014.04.08 05:03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가 고즈넉한 고색(古色)의 정취를 더욱 깊게 하여주었던 동경의 우에노공원.
5공시절 일본 출장 적의 어느 가을이 떠오른다.
그 때 참, 현세(現世)가 아닌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외마디 절규로 우짖는 까마귀 울음소리에서 흔히 음습한 저승골짜기를 연상한다는데 나는 어떤 근원적인 일본적 정서가 심금에 닿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까마귀소리가 흔하게 들리는 일본이 나는 싫지 않았다.
내게도 없지 않은듯한 어떤 추상의 기억, 어떤 내 깊은 감성의 심금을 건드린 것일까.
그 정서의 색감은 한(恨)일지, 정(情)일지. 그리움일런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귀하다는 까마귀. <예전에는 흉조(凶兆)로 눈총받던 새가 언제부터인가 약조(藥鳥)가 되어 씨가 말랐다는데.>
그런데, 요즘 태종대를 거닐다 보면 자주 까마귀를 만나서 참으로 반갑다. (내 눈에 띈 것만 10여 마리이상, 태종대 숲속에는 적어도 100여 마리의 까마귀가 생태계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 추산한다.)
윤기흐르는 칠흑(漆黑)의 몸뚱이로 스스럼없이 날면서 우짖는 까마귀.
그 까마귀가 나는 정답다.
이문구의 까그매(까마귀의 충청도 방언)는 죄다 어디로들 가 있었던가.
'까마귀 고길 잡수셨나봐' 방송국 문지기의 말 한마디.
까마귀로 인한 그리움의 마음줄에는 은년이가 걸리고, 정(情)의 심금은 고향이 건들어 반벙어리 거지 ‘더더대’가 떠오른다.
숨어있었던 기억들.
그것은 저자거리에서 억눌리고 감추어져 있었던 어떤 영혼의 한(恨)일까.
문학 밖의 행동은 우직하고 뚜렷하지만 이문구의 문학에는 관념적 사변이나 경향성이 없다.
체홉 처럼.
그가 묘사하여 보여주는 도회의 장삼이사, 농어촌의 무지렁이들의 일상성에 유물론적 계급적 인식은 만져지지 않는다.
민중성(?民衆性)은 기지와 반항과 조롱과 원망과 모순과 조화와 교활같은 것들이 방언과 섞여서 해학과 풍자로 녹아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확고한 휴머니즘에 뿌리박고 있는 것들이고, 무엇보다 이문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현실에 기반한 재미가 쏠쏠하다.
그건 생각건대 실사구시의 리얼리즘이다.
<“누구를, 더더대를? 그이가 워서 살간 만나? 글쎄…… 살어나 있을라나…… 살어 있으면 혹 까그매덜이 가 있는 디에 살어 있나두 모르기는 헌디……”
언년이도 심드렁하게 들어넘겼다.
“글쎄…… 그런데 거기가 어딜까.”
이립은 혼잣말로 자꾸 묻고만 있었다.
더더대는 어디에 있을까?
까마귀는 죄다 어디로들 갔을까?>
태종대 까마귀 우짖는데 내 은년이와 내 더더대는 죄다 어디로들 갔을까.
정능과 자하문밖, 기억 창고를 더듬어 봐야겠다.
티티새 지저귀는 파리의 어떤 아침이 아름답거니와, 기억 속 까마귀 우짖는 부산의 어떤 새벽도 음습하지만은 않으리라.
그리고 이립과 언년이와 육손이의 사설에 보령(이문구의 고향) 외가의 정다움을 떠올리는 버지니아의 어떤 아침도.ㅎ
***eunbee***
2014.04.09 17:11
이 댓글을 세번째 쓰고 있습니다. 이집 인터넷은 무엇이 문제인지 툭하면 절명이랍니다.
그러면 모든 기기들이 올스톱이지요. 쓰던 글도 날아가고, 카톡은 물론 티비도 먹통, 전화도 벙어리...
그제 한밤중엔 동우님의 새벽기척을 듣는 것과 동시에 라인 아웃 ㅠㅠ
어제는 울언니 친구 언년이, 언년이 외사촌 동생 내동무 금년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맥없이 내 이야기로 뛰어들기에
이런 이야긴 해서 뭣하랴 하며, 덮고 그냥 잤어요.
까그매가 우짖는 쏘의 드넓은 푸른 잔디의 눈부신 봄햇살을 이야기 하지않고 뭐하는 거야 하는 생각에.
나의 가당찮은 소심과 우유부단은 아무곳 아무경우 아무때나 현신하시와요.ㅠㅠ
동우님의 태종대보다 다섯곱? 아니 그보다 더 많을 쏘의 까마귀들.
까마귀는 참으로 멋진 새예요. 철학자 같은 새라고 내가 어디선가 말한적 있지요.ㅎ
해질녘 하늘 가득 날아들며 까욱 거리는 그들의 돌림노래같은 우짖음은 먼먼 옛이야기까지 가지고 옵니다.
그러니 동우님의 태종대와 우에노공원의 까마귀가 상상이 되고 이해도 되구요.
나는 이곳을 떠나 멀리있는 날들엔 시시때때 까마귀가 궁금하고 그리웁더랍니다.
[이리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매양 봉우리와 숲과 골짜기와 바위가 있는 산이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섬과 물너울과 섟과 개펄이 있는 바다가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둑과 여울과 보와 소용돌이가 있는 내가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도랑과 징검돌과 수멍과 복찻다리가 있는 들판이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까마귀 나는 쏘의 모든 것들이 그립던 나는 정작 이곳에 와서 보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찾는 근원적인 것에 가 닿기 전에는 그리움의 그릇은 채워지지 않나 봅니다.
언년이와 이립의 대화
언년이의 성격과 이립의 성격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얹혀 어쩜 저리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웃고 읽는 중에도 설운 감정 감출 수 없네요. 잃어버린 우리네 순박하고 어여쁜 정서.
더더대의 사금파리(순수한 꿈, 욕심없고 목적없는 아름다운 본성)는 탐욕스런 사람들에 이용 당해 끝내는 종적없이 사라졌으니. 이립의 온전한 까그매도 더더대도 영영 사라진 것일테죠.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제는 먼 것이 되어버린 귀익은 사투리들이 재미를 더 보탰답니다.
후제 후제(이 단어를 들은 최근은 동우님에게서인데, 충청도 내고향에서 나 어릴적에 듣던 어휘였지요) 나는 쏘공원의 해질녘 하늘을 나는 까마귀 한마리가 되고 싶기도 하답니다.ㅎㅎㅎ
***동우***
2014.04.10 04:35
툭하면 인터넷 절명되는 파리..
확실히 우리나라가 IT에 있어서는 프랑스보다 강국인가 봅니다.
예전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하던 그 캐치프레이스의 정책이 결실을 본 것일까요?
보안문제라던가 아이들 온라인 세상에 매몰되는등, 우리 모든 생활양식이 너무 IT에 의존하는 세태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일단은 안정되고 편리해서 좋습니다.
까그매 우짖는 쏘 공원의 드넓은 푸른 잔디..눈부신 봄햇살.
짐짓 충청도를 덮는 은비님의 기분, 은비님의 지기로서 내 엿보지 못할바 없지 않답니다. ㅎ
은비님 감성의 현이 여리고 깨끗하기 때문이라는 걸..
<이리 내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매양 봉우리와 숲과 골짜기와 바위가 있는 산이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섬과 물너울과 섟과 개펄이 있는 바다가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둑과 여울과 보와 소용돌이가 있는 내가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도랑과 징검돌과 수멍과 복찻다리가 있는 들판이 더 보고 싶지 않았던가... 까마귀 나는 쏘의 모든 것들이 그립던 나는 정작 이곳에 와서 보니... 사람들은 스스로가 찾는 근원적인 것에 가 닿기 전에는 그리움의 그릇은 채워지지 않나 봅니다.>
이문구의 언년이, 응점이..
은비님의 금년이나 제이미님의 약진이..
유년의 기억, 애틋하게 그리운 그 그리움이 슬몃 외면하고 싶은 소소한 아픔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요, 후제후제, 새가 됩시다.
아니아니, 이미 우리는 새인줄도 몰라요.
해질녘 쏘정원의 하늘을 나는 까그매.
까악까악,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우짖는.
더더대의 더더대는 노래는 착함이기도 하련만. ㅎ
***jamie***
2014.04.09 23:51
더더대라는 사금파리를 지고 다니던 거지...이쁜 돌이나 구슬을 모아놓는 새가 있어요.
반짝거리는 이쁜 걸 죄다 모아놓고 자랑스러워 하는 새에 관해 읽은 적 있어요.
옛날 사금파리는 나의 소꼽장난을 위해 아주 중요했지요. 요리조리 돌로 다듬어서 밥그릇 반찬접시를 만들고 뒷동산 커다란 밤나무 뿌리 구석지의 살강(부엌의 찬장)에 모아놓았지요.
내년 여름에 다시 오면 또 갖고 놀고...제 곁엔 언년이 대신 약진이가 있었고요.
이문구님은 관념을 주장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아 좋아요.
인간과 그들의 삶--흘러가는 삶의 추억을 글로 담아 재생해놓은게 마치 꼼꼼한 풍속화가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특히나 잠재의식으로 들어간 제 유년기의 추억을 꺼내놓는 글들이니, 제가 얼마나 소중하게 읽겠습니까!^^
동우님께 거듭거듭 감사를~
***동우***
2014.04.10 04:42
반짝거리는 이쁜 구슬을 모으는 새...
그런 새가 있대요. 정말?
신기합니다. 제이미님.
더더대라는 반벙어리 거지가 자루에다 모으는 사금파리.
제이미님 유년 살강에 차려놓은 소꼽장난 사금파리.
그리고 바닷속 옛 도자기.
이쁜 광석을 부리로 물어다 모으는 새.
무언가가 아름다움으로 연결되려나.
그 보물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제이미님의 그 시절 동무 약진이..
추억은 추상의 허무함이 아닐겁니다.
지금의 자아에 엄존하는 모종의 정서적 힘일듯 합니다.
옛 중국그림들, 청명상하도.
옛것을 향한 고상한 제이미님의 취향.
제이미님의 그 에토스에는 외가댁으로부터의 어떤 감성이 자리하고 있을겁니다.
제가 얼마나 소중하게 읽겠습니까.
이 말씀 기쁜 보람입니다. 정녕.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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