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나다니엘 호오돈]]
<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
-나다니엘 호오돈 作-
***동우***
2015.01.11 01:37
예전 교과서에서 익숙한 소설, 큰 바위 얼굴.
단순한 은유이지만 '큰 바위 얼굴'이란 이미지에는 강렬한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꽤 교훈적이었지요.
큰 바위 얼굴.
나는 남보다 얼굴이 커서, 이 별명이 좋았을법한데도 별로 불리워지지 않았어요.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사람은 초인이거나 미륵이거나 재림예수처럼 현실조월적 인물은 아니지요.
인간사 보편으로 원하는 아이디얼한 비전이 바위산에 투사되어 나타난 이미지. 어떤 조화로운 부처님의 미소와 같은 표정의 사람..
아마, 니체의 위버맨쉬는 저런 얼굴을 부정할겁니다.
그렇지만 생각건대, 철학은 개별적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지요.
큰 바위 얼굴은 개별적으로 닮고 싶은 어떤 얼굴입니다.
스타이거나, 아버지거나 어머니, 아저씨거나 아줌마, 형님이거나 누님,선배이거나 친구...
개별적 감성이 사모해 마지않는 어떤 인격일겁니다.
기꺼이 그 아류(亞流)가 되고자 하는..
둘러앉은 밥상에서 조카뻘더러 '그놈 참 잘 생겼다'고 말한 그 옛날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훗날 자신의 代에서 단어 고대로 흉내냄으로 최선의 덕담으로서 스스로 만족하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진정한 감정으로서는 아무것도 구현할수 없는 지지리 못나빠진 겉폼 뿐인 아류도 있습니다만. -어느 소설-
러쉬모어산 다섯 미국대통령의 암벽조각, 이 소설과 무슨 연관이 있을런지요.
***mayblue***
2015.01.12 18:14
동우님...
큰바위얼굴
이 소설 생각하면 그리운 한 사람 있답니다.
멋진 얼굴 멋진 군인 제복에 높은 계급장을 달고
오래된 희미한 기억이지만
한번씩 저희 집에 오셔서
그 넓은 품에 어린 저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시던 고모부님...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에 반하게 되는 사람 뵈면
사춘기 시절 읽었던 큰바위 얼굴이 꼭 떠오른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건 흔치 않는 일이라
풀잎 속에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 같은 행운이랄까요? ㅎㅎ
뵙지 않아도 동우님도 어니스트가 만나고 싶은
큰바위 얼굴을 한 아름다운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실까 즐거이 추측해 봅니다.^^*
***동우***
2015.01.13 05:10
메이블루님께는 군인 고모부님...
뉘에게나 마음 속에 하나쯤 큰바위얼굴을 지니고 있었을거에요.
내경우 소년 적에는 외사촌 형이 아마 그러했을것 같은데.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멘토가 아니더라도, 막연한 추상의 이미지로써 큰 바위얼굴은 의식이 성숙함에 따라 어떤 가변성을 가지고 있었던건 아닐런지.
청년기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그렇게 닮고 싶었었지요.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에 관한 책들도 구하여 읽어보았지만, 그 스토익한 내면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웠을테고, 나의 그 시절 큰 바위얼굴은 필경 허영적 허상이었을겁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피터 오툴이 연기한 로렌스의 이미지가 그대로 차용된 큰 바위얼굴. ㅎ
아름다운 인품 운운하시는, 메이블루님의 엉뚱한 말씀.
호리(毫釐)라도 그런걸 느끼셨다면 틀림없이 내 폼잡기에 속아넘어가 오해천만인, 망발(실례?)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져 푸식 웃습니다그려. ㅎ
***mayblue***
2015.01.13 10:21
에고 참 겸손하신. 동우님
솔직히 말해서 제가 어찌 동우님의 인품과 인격을
볼 수도 없는 사이버 상에서 알 수 있겠는지요
그냥 이 블로그라는 공간에 올리시는 포스팅으로 추측해보는 거운 상상이라 봐 주세요
언어의 한계를 잘 알지만 그래도 마음에 반사되는 무언가는 느껴지니 말이에요
암튼 그리 말씀 하옵시니
저 또한 나이들수록...
삶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이 얼마나 허영에 가득찬 것이었는지
거품빠진 콜라처럼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지금의 저를 씁쓸하게 뒤돌아보며
왜. 이렇게. 밖에. 못 자라왔는지
왜 이렇게 밖에 안되는 나인지 부끄러울 때. 정말 많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저는 먼저 전쟁영웅이라 불리는 그가
고고학자였다는 점이 참 이색적이었고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풀벌레만도 못한 여리디 여린 정신력을 가진
저와 너무나 크게 대비되는 무서울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으면서
한편 이방민족인 아랍민들에 대한 목숨건 인간애를 가진 그가
참 아이러니한 인간으로 비춰졌다고 할까요
또한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한 미지의 세계와 같은 아라비아의 광활한 사막 풍경이
낯설면서도 얼마나 신기하게 다가오던지
그 이후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기까지 했어요
암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닮고 싶었다는 말씀 참 인상적입니다.
전 일전에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지와 사랑>의 나르치스의 정신세계를 늘 동경해 왔답니다.*
암튼 동우님 제 댓글로 잠시나마 웃으셨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웃음이 명약이란 말도 있잖아요
전 바보같이 울기도 웃기도 잘한답니다
즐거운 하루 이어가십시요 동우님*
***동우***
2015.01.15 05:00
데이빗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기자가 로렌스에게 묻지요.
"왜 당신은 그토록 사막을 사랑하십니까?"
"청결해서요"
그에 관한 책에서도 나오는 대목인데, 나는 그 사막의 이미지가 그의 내면과 일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젔습니다.
영국에 돌아와 그는 늘 사막을 그리워하였지요.
장군이 되어도 충분한 사람인데 대령의 계급, 다시 이름을 숨기고 쫄병으로 입대하는 그를 이해하려면.
사막의 청결함을 느끼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요.
사막.
아베 코보의 사막 (모래의 여인).. 생 텍쥐페리의 사막과는 또 다른.
사막의 별빛 아래 죽고 싶은 사람도 있답니다. ㅎ
메이블루님도 즐거운 하루를.
***송명숙***
2015.01.14 05:49
큰바위 얼굴
내가 생각하는 믿음의 세계, 종교의 세계를 깊게 생각게 합니다
맹목적인 종교생활의 15년을 돌아보게 하면서 이 주인공의 진실성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학교 다닐때는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소설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진지하게 읽어보니 나 자신이 거울이 되어 매일 정화시키면서 거듭거듭 태어나야함을 또 다짐합니다
거르고 걸러서 정말 산행에서 만났던 속이 휜하게 비치면서도 속이 너무 깨끗하여 나로 하여금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연상케했던 맑은물처럼 나도 그 순수를 사모합니다
언제나 맘은 앞서지만 행동은 따르지 못하여 늘 마음 아프지만 그 상징성을 중심에 두어 봅니다
나만의 큰 바위 얼굴을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이 감사가 이 아침 저를 참 가볍게 합니다
곶감 빼먹듯이 달콤하게 쏙쏙 잘 먹습니다 ㅎ ㅎ
***동우***
2015.01.15 04:54
예수님의 어떤 이미지로 형상화된 큰 바위얼굴로 마음에 늘 간직하여, 먼 곳 바위산의 큰 바위얼굴 바라보듯 내면을 응시하여 신앙적 응시를 하여도 좋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딩 북의 글들, 달콤하게 드셔 주신다니 얼마나 기쁜지요.
탱큐 송명숙님.
<이산 브랜드>
-나다니엘 호오돈 作-
***동우***
2016.03.04 04:18
나다니엘 호오돈(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이산 브랜드'
소설적으로는 끝부분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상징적인 수법의 소설인지라 이해하기 쉽지 않군요.
18년동안 속세를 등지고 도(?道)를 닦고 마을로 돌아 온 이산 브랜드.
어떤 높은 경지에 이른 깨달음인지, 불가마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이젠 나의 어머니도 아니고 그 품속으로 이 육신이 되돌아가지도 않을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여!" 하고 그는 외쳤다. "오, 내가 우애를 끊고 그 위대한 정리를 내 발로 짓밟은 인류여! 오, 옛날엔 내 앞길과 머리 위를 밟혀 주듯 비춰 준 하늘의 별들이여! 이젠 모두들 영영 이별이다. 오라, 필살(必殺)의 화신이여- 앞으로 다정한 친구가 될 그대! 내가 그녀를 포옹하듯 그대 나를 포옹하라!">
그리하여 이산 브랜드는 고작 반 부셀 값어치의 석회가 되어버리는군요.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날이 새자, 자연은 다시 아름답게 빛납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 다음 대목에서 단서를 찾을수 있을까요.
<용서받지 못할 죄'가 뭣이오?" 하고 석회구이장이가 물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이에 대한 대답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더 멀찌감치로 물러앉았다. "그것은 내 가슴 속에 움터 자라난 죄요."... "다른 아무 곳에서 자라난 죄도 아니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우애와 유대감과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을 능가하고 만사를 그 주장 앞에 희생시킨 이지(理智)라는 죄악이오! 영원한 고통의 보상을 받아 마땅한 유일한 죄요! 처음부터 다시 하래도 나는 기꺼이 이 죄를 다시 범하겠소. 나는 서슴지 않고 이에 대한 응보를 받겠소!">
그러니까, 세상의 리얼리즘을 떠나 관념론적이고 독선적 지식을 궁구한 그것이 죄라는 얘기일까요.
미국 동부의 뉴 잉글란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숨막히는 캘비니즘으로 부터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들.
에머슨, 소로, 호오돈...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신, 자연과 융합된 문명, 자아의 승화, 초영혼의 세계...
이른바 초절주의 (초월주의, Transendentalism)
'이산 브랜드'의 비판적 상징성이 캘비니즘의 독선과 엄격함과 오만에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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