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서하진]] <제부도>
<모호함에 대하여>
<제부도>
-서하진 作-
***동우***
2013.01.10.
서하진 (女, 1960~ )의 ‘제부도’
참으로 불행한 여인.
첩살이하는 어머니, 사람들의 손가락질 왕따의 치욕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고귀한 사랑을 그토록이나 완성시키고 싶었는데...그 마저.
<나를 따라오는 그의 차의 무게가 등뒤로 무출하게 전해지고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그를 견인하는 느낌이었다. 사라져가는 길 위로, 이미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나는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내가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그의 차는 한 바퀴, 두 바퀴 굴러온다.
내 허리가 휘는 무게로 그가 내게 실려올지라도 나는 결코 그를 놓지 않으리라. 발 밑에 밟히는 자갈들이 내 구두를 함부로 망가뜨리고 발에 생채기를 내더라도 나는 이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오로지 내 발길에 의지하여 나를 따라오는 그를 힘겹게 힘겹게 뭍으로 올리고 나면 그는 비로소 환히 웃으며 내 젖은 발을 닦아줄것이다.
내 여윈 등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작은 몸으로 자신을 끌어온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처음 그의 굳은 눈동자가 풀리던 날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리라. 나는, 그의 눈썹이 움칠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을 읽었던 나는 알뜰히 그의 뜻을 받아주리라.>
증발한 남자, 사고를 가장한 자살이었는지, (그 당위는 좀 모호하다.)
두고 온 어머니도 '물에'... 그 또한 자살로 암시되고....
섬이었다가 바닷길이 열리면 잠시 뭍이 되는 섬, 제부도.
현재와 유리된, 지독하게 쓸쓸한 풍경화.
제부도는 주인공 여자의 삶, 과거에 갇힌 삶의 의식, 그 풍경화일듯.
<그가 갔던 길을 가보리라. 그가 사라진 곳으로 나는 그를 따라가리라. 어둠 저편에 미소짓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를 향해 마주 웃으며 나는 힘주어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의 얼굴이 이끌어주고 있으므로 나는 길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앞유리까지 밀려드는 파도를 와이퍼로 밀어내며 나는 물소리와 차의 끼륵거리는 신음소리, 그 가운데서 나를 부르는 그의 아득한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가요. 나직이 대답하는 내 앞을 막아서는 바다. 춤추는 바다를 나는 그 파도를 닮은 손짓으로 밀어내며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 또한 택하고 마는 죽음...
아, 불쌍하고나.
여자여.
으흠, 작가의 어떤 불행한 기억과 경험이 이 소설을 쓰게 하였을까.
그런데 서하진을 검색해 보았더니 좀 뜻밖이다.
그녀는 6공시절 검찰총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세도가 집안의 딸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았다.
어떤 경험이 있었길래, 어떤 작가적 의식이 이런 작품을 쓰게했을까.
***BooRoo/불루보트***
2013.01.18 05:35
동우님의 감성은 참 여린 편이고 애린한 것 같습니다..ㅎ
수필같은 문체가 특이하네요 아니면 소품의 새로운 창작법인지?
곰곰 생각해 보면서 읽었습니다.
좀은 ...현실성 없는 환경에서 자살했다는 것이 개운하지 않네요. 제부도^ 지금은 연륙의 섬이지만 그 당시의 환경설정은 맞지만 물시간엔 절대^ 절대 출입금지.
허지만 동우님의 논조가 위의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동우님이 한편 써보시지요
진짜^ 동우님으로부터의 최근작 한편 읽어보고 싶습니다.
감성의 사사를 받고 싶습니다.
좋은 시간 행복한 주말, 손녀와 함께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동우***
2013.01.19 06:09
아하, 블루보트님.
연육(連陸)되어 이제 제부도는 섬이 아니라지요?
위 소설의 형식, 무어 그다지 새로운 작법은 아닐겝니다.
물론 블루보트님의 소설 기법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ㅎ
좀 지리한 느낌이 나는 문체에다, 어떤 사유를 요구하는듯한 불편함.
재미있고 속도감있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요.
반면 블루보트님의 소설들.
대화체의 심플한 문장, 스피디한 속도감.
읽히는 재미에 있어서 위 소설은 블루보트님의 소설에 한참 못미칠겁니다.
허이구, 블루보트님.
사사라굽쇼? 누가 누구에게.
거꾸로 말슴하시는듯.
내 글쪼가리 읽는 사람만 읽어주는, 맛없는 글이에요. ㅎ
***잉크***
2013.01.10 12:15
책 펴 본지 오래 전의 일이라..
아~ 몇달전에, 또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리라 다짐하고는 두번 읽었던 혼불을 집어들긴 하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읽었던 기억은 다 없어지고 처음 접하는 내용들만 있더군요~ ㅎㅎ
그것도 역시나 1 권에서 멈췄구요~
힘든 겨울을 보내는데
오래 된 우리집 드디어 천정쪽에 물자욱이 보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지붕을 덧 씌우려는데 공사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쪼오끔 우울합니다~ ㅎㅎ
***동우***
2013.01.11 07:13
잉크님.
최명희 '혼불'은 몇번이라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라도가 고향이시고 전주에 사시는 잉크님으로서는 각별한 흥미와 의미가 있을듯.
오래된 집이라시니, 전주의 고풍스러운 품격의 가옥들이 떠오릅니다.
이곳 들르시는 베로니카님 댁 그림들도..
집수리, 보통 신경쓰이는 대사가 아니지요.
전에 살던 아파트 악몽이 생각납니다.
아래층 물이 샌다고 하여 온통 바닥을 까부쉈던...
아파트도 그러한데 단독주택은...
(흐음, 아파트가 더 골치 아플까?ㅎ)
그래도 잉크님.
우울은 쪼으끔만.
이쁜 손주 금서 생각하시면서.ㅎ
<모호함에 대하여>
-김채린 作-
***동우***
2016.08.19 03:13
젊은 여성작가 '김채린'(1976~ )의 '모호함에 대하여'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꿈꾸는 바 그것은 백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혹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기.
디지털 기호로 간접화된 삶.
추상으로 살기.
집단(mass) 속에 익명(匿名)으로 숨어 하나의 인자(因子)로 살기.
내일 지껄이기로 하고...
폭염의 기세 꺾인게 확연하지요?
유별난 여름 겪어내느라 욕들 보셨습니다. ㅎ
***동우***
2016.08.20 16:12
토요일 한낮, 이 시간에 P/C 앞 앉아 노닥거리는 것도 모처럼만입니다.
책상 위 찬 맥주는 내 일락입니다.
부산하고도 영도의 창밖.
해원은 짓푸르고 수평선 위로는 흰 구름 몇 송이 하늘가를 한가롭게 노닥거립니다.
그래도 좀 전까지 내 감각이 겪은 밖의 잔서(殘暑)는 아직 뜨겁습디다.
하하 그러나 그래봤자 입니다.
섭리께서 이제 고만 물럿거라 하는데 지가 어쩌리까.ㅎ
나는 이 소설을 디지털 유목민이니 어쩌구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구조에 대입하여 읽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아주 추상적이다. 아주 모호하고 흐릿하다. 손가락 끝으로 마구 문질러 놓은 파스텔화 같다. 아니, 그러나 나는 파스텔화처럼 부드럽지는 못하다. 물론 이것은 추측이다. 나는 나에 대해, 특히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자기 강화로 딱딱해진 내벽은 생활의 필수 아이템이다. 쉽게 상처받지도 않고, 쉽게 상처 줄 일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안은 작은 생채기에도 벌겋게 부어올라 결국에는 죽음에 가깝게 치열하게 밀어 올리는 '두려움'이라는 내피가 포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역시 아주 추상적이다.>
소설 모두(冒頭)에 나오는 저 문장.
삶에 대하여 모호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자.
자기강화로 딱딱해진 내벽.
관계에 의하여 상처 받는 두려움, 관계로부터 소외되는 두려움.
추상으로, 익명으로 관계하기.
공감합니다.
실체는 숨긴채 아이콘으로 또는 이모티콘으로 욕망을 치장하는...
욕심은 없으나 욕망은 기승입지요. (욕심과 욕망.. 잠시 생각해 봅니다)
두려움은 객기를 낳고 객기는 기교를 낳지요. ('거대담론'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죄 기교적입디다)
나남없이 크고 작은 테크닉으로 한살이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유전,학습,경험,)
그리하여 테크니샹은 본시 니힐리스트 올시다.
무언가 미련남아 죽지는 못하니 스스로 體得한, 心得한 기교로서 살고있는.
문제는 테크니샹으로 한세상 살아내지만 테크니샹으로는 죽을수 없으니 탈입지요.
<와퍼 버거는 차갑게 식어 약간 굳어 있었지만 나는 포장을 벗겨 우걱우걱 먹었다. 나는 와퍼 버거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식은 와퍼를 먹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그저 식은 빵조각과 고기조각을 먹고 있는 것이다. 흐물흐물해진 야채 조각이 목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버거킹 햄버거의 실체는 쇠고기와 토핑의 물질명사가 아니라 버거킹이라는 추상명사인가요.
나도 한때 생각해보았던적 있을겁니다.
익명으로 살고, 익명으로 관계 되기.
그리고 스스로 '이상헌'이 아닌 누군가(아버지 동우)의 익명으로 인식하기.
그러나 그건 가당치도 않습니다만...
그렇습니다그려....
천년쯤 수행한 도사라면 모를까... ㅎ
<이제 그의 모호함이 사라지는 거야. 우리는 이미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이미 우리도 없고, 너희도 없고, 우리의 것도 없고, 너희의 것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모호해진 사람들. 몇 가지 범주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형의 성격, 취미, 외모.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거짓인지도 모른다. 나는 좌변기를 껴안고 아침에 먹었던 와퍼 버거를 꾸웩꾸웩 토해내기 시작했다.>
세상도 모호하고 내자신도 모호하누나.
모호한 세상의 강을 모호한 포즈로 걸어 가는 벗들이여, 그러지 말자.
나를 쏟아내어.. ㅎ
<변기 안에는 내가 토해낸 와퍼 버거가, 변기 바깥에는 내가 토사물처럼 쏟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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