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보르헤스]] (1,4,3,3,1)

카지모도 2020. 6. 2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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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보르헤스]]

<칼의 형상> <타자> <아스테리온의 집>

 

 

<칼의 형상>

-보르헤스 作-

 

***동우***

2013.10.10 04:59

마침 텍스트 파일 구하여 처음으로 보르헤스를 올립니다.

책을 펼쳐놓고 자판 두드리더라도 진작에 포스팅했어야 할 보르헤스인데, (독수리 타법인지라) 텍스트 파일 구해지는대로 또 올리지요.

 

아르헨티나 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눈이 멀어버린 사람.

천국을 도서관으로 상상하였던 사람.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거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거나 탈구조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사람.

20세기 후반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

가브리엘 마르케스, 움베르트 에코, 자크 데리다, 메셀 푸코등이 추앙하는 스승...

 

단편소설만 고집하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나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외울수 있는 분량의 소설만 씁니다">

과연 보르헤스다운 멘트.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에 수록된 단편 '칼의 형상'

추리소설적 반전의 묘미, 그렇다고 이 소설이 가장 브르헤스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 거인에 대하여 나 따위가 무에 더 지껄일게 있으리오.

중언부언은 다음에...

 

 

<타자>

-보르헤스 作-

 

***동우***

2013.10.12 05:12

보르헤스적 환상.

누가 말했다던가.

세상에는 '소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보르헤스적 소설'이 있다고.

 

그는 여태까지와는(모더니즘, 합리주의, 저간의 원칙이나 논리따위..) 다른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았다.

다른 눈으로 자아와 시간과 삶과 죽음 등에 관한, 형이상학적 철학을 사유하였다.

그 사유를 구체화 형상화하여 환상적인 문학으로 치환한 것이 그의 소설일 것이다.

보르헤스는 전혀 새로운 소설세계의 원형(原型)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요즘 작가들에게서 나는 숱한 보르헤스의 모습을 본다. (마르케스, 박민규, 하루키, 윤후명, 한강,하성란,김영하,구효서,신경숙,윤대녕, 박상우,성석제,은희경등 무수한..)

 

타자(他者).

장자의 꿈인가.

늙은 ‘나’가 조우한 젊은 ‘나’.

 

그러나 저 만남의 현장은 은유가 아니라 보르헤스가 경험한 사실이다.

젊은 보르헤스는 꿈으로 생각하여 기억에서 지워버렸지만 (보르헤스는 1910년대 젊은 시절 조우한 늙은 보르헤스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1969년 젊은 보르헤스를 만난 늙은 보르헤스는 명징한 그 사실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다.

 

자아의 본질은 (인지하여 그것을 나로써 유지하는 것) 어떤 것일까.

순차적으로 접수되는 단속적 기억(인지)의 집합이 지금의 나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동시성...

초시간적 의식

존재함이란 곧 시간을 말함일까..

에효!(어느 분의 흉내) 내 머리로는 그저 골치만 아파라.

 

그렇지만 보르헤스는 골치 아프지 않다.

그의 글을 재미없게 읽는다면 보르헤스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ㅎ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또하나의 자아(도플갱어?)의 보르헤스의 아래 글도 재미있다. <이게 소설인지...>

 

<참, 본문에 나오는 저 싯구 “L'hydre-univers tordant son corps ecaille d'astres", 뜻 아시는 분 없으슈? 위고의 詩같은데.., 그리고 '가우초'는 찾아보니 이를테면 남미의 '카우보이'라고 하네요.>

 

++++

보르헤스와 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박병규 옮김)

 

세상사를 경험하는 사람은 바로 다른 나(el otro), 보르헤스이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걸으면서 철문과 현관 아치를 눈여겨보려고 별 생각 없이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우편물을 통해 보르헤스의 소식을 듣고, 교수 명단이나 인명 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본다.

또한 모래시계, 지도, 18세기의 활판 인쇄, 어원학, 커피 맛, 그리고 스티븐슨의 산문을 좋아한다.

다른 나도 역시 이런 것을 애호하지만, 허세를 부려 한 배우의 특성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들 관계가 적대적이라고 한다면 과장이리라.

왜냐하면 내가 살아야, 그냥 이렇게 살아가야 보르헤스는 문학을 만들 수 있고, 나아가서 그 문학은 나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나는 보르헤스가 가치 있는 글을 몇 편 썼다는 사실은 별 어려움 없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이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은 다른 나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라 언어나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내 자신은 틀림없이 소멸될 운명이며, 단지 나의 삶의 어떤 순간만이 다른 나에게서 살아 남을 것이다.

나는 과장하고 거짓을 꾸미는 보르헤스의 못된 습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조금씩 모든 것을 양보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만물이 제 모습으로 존속하기를 바란다고 얘기했다.

돌은 영원히 돌이고자 하며, 호랑이는 영원히 호랑이이고자 한다.

나는 내가 아니라(나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보르헤스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의 책에서보다는 다른 일에서, 예컨대 힘들게 연주하는 기타 소리에서 내 자신을 더 잘 인식한다.

몇 년 전, 나는 보르헤스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도시 변두리에서 떠도는 전설적인 얘기를 다루기도 했고 시간과 무한을 가지고 놀이하기도 했으나 이제 그러한 놀이는 보르헤스의 것이 되어버려 나는 다른 것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처럼 나의 인생은 덧없이 사라지고,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있다.

그 모두는 망각 속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다른 나의 것이다.

나는 둘 중 누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

 

***eunbee***

2013.10.12 19:09

“L'hydre-univers tordant son corps ecaille d'astres"

은비 엄마의 메일을 옮깁니다.

 

"수소의 세계는 그 몸을 비틀며 천체의 비늘을 벗는다"

빅토르 위고의 '명상'이라는 시, 싯구인가 본데, 심오한 뜻은 잘 모르겠고,

내가 그냥 직역을 했어.

 

천문학적/ 과학적/물리학적/철학을 망라한 상식이 있어야 완전 이해 가능한 가히 아름다운 싯구네.ㅋ

천체의 비늘을 벗다.. 음.. 멋져.

 

Envoye de mon iPhone

 

***동우***

2013.10.13 05:26

짐짓 은비님을 상정하고 싯구의 뜻을 묻기는 물었지만, 파리의 따님께 물어물어 이토록 성실한 답변을!

감동하렵니다.ㅎ

그래서 보르헤스를 읽는 내 독서는 은비님만큼 성실하였는가 저어되어 다시 정독하였습니다.

 

++++

“그런 ‘증명들’로는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지요. 만일 내가 당신을 꿈꾸고 있는 거라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길게 나열하신 목록들은 전혀 소용이 없는 거예요.”

“자네가 나를 꿈꾸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게 방금 생각났네. 이 시 구절을 좀 들어보게.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자네가 들어본 적이 없을 걸세.”

나는 천천히 그 유명한 시구를 불어로 낭송해 주었습니다.

“L'hydre-univers tordant son corps ecaille d'astres"

나는 그가 거의 경악을 느끼며 놀라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빛나는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시구를 나지막하게 읊조려 보았습니다.

“정말 그러네요.” 그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죽어도 그런 훌륭한 시구는 못 쓸 것 같네요.”

빅토르 위고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습니다.

++++

 

이 대목.

젊은 보르헤스가 생전 처음듣는 그토록 경악할만큼 감동적인 싯구 (빅토르 위고는 훨씬 이전 사람인데)

꿈에서도 감지되어야 할 감동의 기억, 내가 이 구절로 너의 꿈에 들어가 감동시킬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이건 너의 꿈이 아니라 너의 현실이야 하는...

 

저 구절, 쉽게 찾아지지 않는게 당연하지요.

싯적 난해한 상징성으로 가득한 고차원적 의역이 필요한 아주 드문 문장, 저 구절은 많은 사람에 회자되는 위고의 싯구가 아닙니다.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찾지 못하였는데, 따님의 직역을 단서로 여기저기 찾아서 영어중역으로 대충 뜻을 파악했습니다.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대충...

 

히드라(신화 속의 여러갈래 뱀머리칼의 그녀...마, 엉터리겠지만 그 쯤의 이미지로 연상 ㅎ)처럼, 우주가 몸을 비틀어 별의 비늘을 털어낸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듯 말듯.ㅎ

탱큐, 은비님.

 

++++

“정말 당신이 나였다면 1918년 자신 또한 보르헤스라고 밝힌 노신사와의 만남을 잊어버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아마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서 잊어버리도록 했을 거야.”

“만약에 말일세. 이 아침과 우리의 만남이 꿈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그가 혼자 꿈꾸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할 걸세. 아마 꿈은 언젠가 끝날 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 동안만은 적어도 분명하게 그 꿈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가 우주를 인정하듯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 것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숨 쉬고 있는, 이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 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네.”

“만일 꿈이 계속된다면요?”

불안한 듯이 그가 물었습니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 나 역시도 진정해야했기에 -- 나는 전혀 동요를 느끼지 않는 척했습니다.

“나의 꿈은 이미 칠십 년이나 지속되고 있다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깨어나게 되어도, 만나는 건 자신이 아니겠나. 그것이 우리에게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지금의 경우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지만. 그나저나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이기도 한 나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나?”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지.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간절함이나 욕망의 표현이라고 우리가 느끼게 되면 그 시는 위대함을 획득하게 되지.”

젊은이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그가 외쳤습니다.

“휘트먼은 거짓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시인이예요.”

반세기의 시간이 그냥 지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취향과 소소한 관점들은 너무나도 달라 서로 일치점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닮았지만 그토록 달랐습니다.

서로를 속일 수 없었기에 대화가 더욱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만남에 관한 생각은 줄곧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해답은 알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은 진정 일어났었지만 젊은이는 꿈에서 나와 이야기했던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잊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나는 깨어있으면서 그와 만났습니다.

그러하기에 그 만남의 기억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꿈꾸었지만 나를 ‘명징하게’ 꿈꾸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미국 지폐에 찍혀있던 그 불가능한 날짜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알게 되었습니다

++++

 

늙은 보르헤스와 젊은 보르헤스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사람....

젊은 보르헤스가 꿈이라면 늙은 보르헤스 또한 환상....

늙은 보르헤스의 1969년과 젊은 보르헤스의 1918년이 해후하는 현장에 늙은 보르헤스가 물증으로 꺼낸 돈의 발행년도가 1974년 (이제 이게 보이네요.ㅎ)이라니.

 

전에는 장자의 '胡蝶夢(호접몽)이 떠오르더니, 이번에는 영화 '인셉션'이 연상 (남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는, 그 복잡미묘한 복선들..)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휴, 은비님.

좌우간 이 냥반 소설을 분석적으로 읽으려니까 머리에 쥐가 나려 합니다.ㅎ

 

***eunbee***

2013.10.13 16:53

빅토르 위고의 Les contemplations이란 시에 나오는 한 구절.

 

히드라 우주는 별들의 비늘로 덮인 자신의 몸을 비틀며.

뭔 뜻이냐고요? 나두 모르징.

 

위의 이메일은 오늘 큰애에게서 온 거에요. 이애들에게 모두 이메일로 전송했더니

아들은 뭐가 바쁜지 답멜도 없구, 프랑스 최고의 '통번역 대학원'을 나왔다는 큰애는 저런 답글을 보내왔으니

우리 애들 참으로....ㅎㅎㅎㅎ

어제 은비엄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가 폰으로 이어진 메일 받고 곧바로 답멜 보낸거라고 해요.

그래도 우리 애들 이쁘죠? 뭔지도 모르면서, 아닌 밤중에 홍두께를 들이대도 저렇게 답을 써 보내니...ㅎㅎㅎ

 

***동우***

2013.10.14 06:10

어머니의 오더(?)에 째꺽 답을 보내는 따님.

아드님 두 따님과 은비님 사이의 그 가차운 커무니케이션.

보기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샘도 나고..ㅎ

거듭 따님께 감사를.

 

빅토르 위고의 'Les contemplations'이라는 시.

우주가 벗고자 하는 비늘(허물 벗는 뱀처럼)이 말하자면 별들인지, 아니면 우주가 별들의 비늘을 벗기려고(별들을 새롭게 하려고) 용트림을 하는 것인지...

따님의 텍스트, 은비님의 텍스트, 그리고 나의 텍스트를 종합해 본 결과 이게 핵심인듯.

그래서 뭔 뜻이냐구요? 나도 모르징. ㅎㅎ

 

아무러면 어때요?

보르헤스의 이 소설, 그냥 경악할 정도로 훌륭한 시 정도로 족하지요.

 

월요일, 은비님 가곡 부르는 날인가..

 

 

<아스테리온의 집>

-보르헤스 作-

 

***동우***

2013.10.13 04:51

압축과 절제로 더욱 선뜻한 은유.

천학(淺學)의 내 짦은 식견이 평가건대, 이 짤막한 소설은 가히 명작입니다.

 

'아스테리온의 집'

아스테리온은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르스'가 분명하고 그의 집은 그 유명한 크레타의 미궁(迷宮)임이 분명합니다.

 

아시겠지만, 유명한 그 신화를 찾아 요약하여 읊조립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海神 포세이돈으로부터 받은 황소로 인하여 변고를 당합니다.

왕비 파시파에가 그 황소와 사랑에 빠져 잉태하여 반우반인(半牛半人)의 괴물을 낳았는데 그 괴물이 바로 미노타우르스지요.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에게 미궁을 만들게 하여 미노타우르스를 그곳에 가둡니다.

그리고 아테네로부터 매해 사람공물(남7 여7)을 받아 미노타우르에게 제물로 바치게 합니다.

이 때 영웅이 등장하지요. 바로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연인 아리아드네의 지혜(미궁의 길찾기 실타레)로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죽입니다.

그런데 테세우스가 아테네 항구에 귀환 할 적에 뱃전에 승리의 흰 깃발 대신 깜빡 검은 깃발을 달았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절망하여 바다에 투신하지요. (그래서 에게해라는 이름이 생겼답니다)

한편 아드리아네의 지혜에 도움을 준 '다디다로스와 이카루스를 미노스 왕은 미로에 가둡니다.

그들은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밀랍으로 몸에 붙이고 날아올라 미궁을 탈출하지만, 태양게 가까워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말지요. <이 여러가지 신화 얘기들은 후세에 다양한 상징으로 참 많이도 차용되는 일화이기도 하지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웅 테세우스도 아니고 자유를 상징하는 이카루스도 아닌 괴물 미노타우르스입니다.

神話와는 전혀 다른 면모의 미노타우르스이지요.

보르헤스가 새로이 쓴 신화 속 아스테리온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서 순해 빠진 소의 눈이 연상되어 나는 좀 슬펐습니다. <ㅎㅎ 엿장수 마음대로의 느낌이올시다>

나는 보지 못하였는데, 도살 직전의 소의 눈은 가슴 저리도록 슬프고 불쌍하다지요.

운명론적 비극성을 수더분히 받아들이는 그 눈망울을 그려보면 생각만으로도...

 

아스테리온은 오로지 세상에 하나 뿐인 반우반신의 존재입니다.

영원토록 집안에서 그저 혼자서 놀아야 합니다.

그는 겸손하지만 어머니가 왕비인지라 아무도 그와 놀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으흠, 그야말로 아스테리온은 단독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문과 모든 것이 얼네개 짜리 집입니다.

그의 집은 무한(無限)인 것입니다.

아스테리온은 모든 것이 한개짜리, 유한(有限)한 곳에 살고 싶지만 어쩌겠습니까?

 

무한에 갇혀있는 무한의 단독자.

아스테리온이라는 존재는 무한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무한속의 무한은 절대고독이고 절대허무일 밖에는 없을듯 싶습니다.

어쩌면 아스테리온은 창조의 기억이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린 창조주일런지요.

 

아스테리온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잡아먹으려고 청한것도 아닌데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그의 집에 들어와서는 저 혼자들 죽습니다.

 

아스테리온은 뉜가 귀띰한 메시아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 메시아란 무한을 끝장 낼 유한의 구원자일런지요.

 

아, 드디어 구원자, 그가 왔습니다.

아스테리온은 기꺼이 달려 가 그를 맞습니다.

 

테세우스의 청동검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면서 아스테리온의 깊숙한 심장을 찔렀습니다.

아스테리온은 기어이 그의 허무에서 벗어났습니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츠암, 내 이 느닷없음을 어쩔거나.

테세우스의 칼을 심장으로 받는 아스테리온에게서 득보의 시퍼런 단도를 심장으로 받고 싶은 억쇠가 떠오르니. <생각이야 엿장수 마음대로ㅎ>

 

김동리의 '황토기'

<그 한 뼘도 넘어 될 득보의 단도 날이 자기의 가슴 한복판을 푹 찔러, 이 미칠 듯이 저리고 근지러운 간과 허파를 송두리째 긁어 내어 준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한 번 치고,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을 때, 해는 이미 황토재 위에 설핏한데, 한 마장 가량 앞에는 득보가 터덕터덕 혼자서 먼저 용냇가로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