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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26) -李舜臣-

카지모도 2021. 2. 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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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8월 (1594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14일] <丙午>

비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수루의 방으로 옮겨 앉았다가 곧 뒷동 헌방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낙안군수(김준계)가 강집을 데려다가 군량 독촉하는 일로 군율에 따라 문초하고 내어 보냈다. 비가 종일 내리더니 밤까지 왔다.

 

8월 초2일 [양력 9월 15일] <丁未>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초하루 한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부안사람(이순신의 첩)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를 따져보니 낳을 달이 아니었다. 그래서 꿈이지만 내쫓아버렸다. 몸이 나은 것 같다. 저녁나절에 수루 위로 옮겨 앉아 충청수사·순천부사 및 마량첨사와 함께 이야기 하며 새로 빚 은 술을 몇 잔 마셨다. 비가 종일 내렸다. 송희립이 와서 아뢰기를, 흥양의 훈도도 작은 배를 타고 도망갔다고 했다.

 

8월 초3일 [양력 9월 16일] <戊申>

아침에는 흐렸으나 저물녁에야 개었다. 충청수사와 함께 활 서너 순을 쏘았다. 수루의 방을 도배 했다.

 

8월 초4일 [양력 9월 17일] <己酉>

아침에 비가 뿌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충청수사 및 순천부사·발포만호 등이 와서 활을 쏘았다. 수루의 방의 도배를 마쳤다. 경상수사의 군관과 색리들이 명나라 장수를 접대할 때에 여자들에게 떡과 음식물을 머리에 이고 오게 한 죄를 처벌했다. 화살장이 박옥래가 와서 대를 가져 갔다. 이종호가 흥양에 안수지 등을 잡아 오려고 갔다.

 

8월 5일 [양력 9월 18일] <庚戌>

아침에 흐렸다. 밥을 먹은 뒤에 충청수사·순천부사와 같이 활을 쏘았다. 오후에 경상수사 원균에게로 갔더니, 우수사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서로 이야기하다가 한 시간쯤이나 지나서 돌아왔다. 이 날 웅천현감·소비포권관·영등포만호 및 윤동구 등이 선봉장으로서 여기에 왔다.

 

8월 6일 [양력 9월 19일] <辛亥>

아침에 맑다가 저물녁에 비가 내렸다. 충청수사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들어 왔다. 보성군수가 나갔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는 편안하시고 아들 면은 차츰 나아진다고 한다. 고성현령과 사도 첨사·적도만호가 아울러 왔다가 갔다. 이 날 밤 수루의 방에서 잤다.

 

8월 7일 [양력 9월 20일] <壬子>

종일 비가 내렸다.

 

8월 8일 [양력 9월 21일] <癸丑>

종일 비가 내렸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

 

8월 9일 [양력 9월 22일] <甲寅>

비가 내렸다. 우수사 및 조방장 정응운·충청수사·순천부사·사도첨사가 같이 이야기했다.

 

8월 10일 [양력 9월 23일] <乙卯>

종일 비가 내렸다. 충청수사 및 순천부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이 날 장계초고를 수정했다.

 

8월 11일 [양력 9월 24일] <丙辰>

종일 비가 많이 내렸다. 이 날 밤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 지붕이 세 겹 이나 벋겨져 삼대 같이 비가 샜다. 밤새도록 앉아서 새벽을 맞았다. 양 창문은 모두 바람에 깨져 다 젖었다.

 

8월 12일 [양력 9월 25일] <丁巳>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충청수사 및 순천부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웅천현감·소비포권관도 와서 활을 쏘았다. 아침에 원수의 군관 심준이 여기 왔다. 그 전령에, 군사 약속을 직접 만나서 논의하자고 하므로 오는 17일에 사천으로 나가 기다리겠다고 했다.

 

8월 13일 [양력 9월 26일] <戊午>

맑다. 아침에 심준이 돌아갔다. 노윤발도 돌아갔다. 오전 열 시쯤에 배에서 내려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견내량으로 가서, 별도로 날랜 장수들을 뽑아 춘원포(춘원포:통영시 광도면 끄승개) 등지로 가서, 적을 엿보아 무찌르게 할 일을 사도첨사에게 전령하여 여러 장수들에게 사람을 보내고 그대로 머물러 잤다. 달빛은 비단결 같고 바람 없어 잔잔하여 해를 시켜 피리를 불게 했다. 밤이 깊어서야 그만 뒀다.

 

8월 14일 [양력 9월 27일] <己未>

아침에 흐리다가 저물녁에 비가 왔다. 사도첨사·소비포권관·웅천현감 등이 달려 와서 보고한 내용에, "왜선 한 척이 춘원포에 정박해 있으므로 불의에 엄습하였더니, 왜놈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쳐 달아나기에, 우리 나라 남녀 열다섯 명을 빼앗아 돌아오고, 적의 배도 빼앗아 왔다."고 했다. 오후 두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8월 15일 [양력 9월 28일] <庚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출항하여, 경상수사 원균과 함께 월명포(통영시 산양면 수월리)에 이르러 잤다.

 

8월 16일 [양력 9월 29일] <辛酉>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소비포에 이르러 정박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돛을 올려서 사천 선창(선창: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이르니, 기직남이 곤양군수(이광악)와 함께 와 있었다. 그대로 머물러 잤다.

 

8월 17일 [양력 9월 30일] <壬戌>

흐리다가 저물 무렵에 비가 왔다. 원수가 오정에 사천에 이르러 군관을 보내어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곤양의 말을 타고 원수가 머물고 있는 사천현감(기직남)이 맞아주는 곳으로 나아갔다. 교서에 숙배한 뒤에 공사 간의 예를 마치고, 그대로 함께 이야기하니 오해가 많이 풀리는 빛이다. 원균 수사를 몹시 책망하니, 원 수사는 머리를 들 지 못하였다. 우습다. 술을 가지고 마시자고 청했다. 여덟 순을 돌리니 원수가 몹시 취하여 상을 물리고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니, 박종남과 윤담이 와서 봤다.

 

8월 18일 [양력 10월 1일] <癸亥>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원수가 청하므로 나아가 이야기했다. 또 조촐한 술잔치를 벌였는데 잔뜩 취해서 아뢰고 돌아왔다. 경상수사 원균은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드러누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 곤양군수(이광악)·거제현령(안위)·소비포권관(이영남) 등과 함께 배를 돌려 삼천포앞에 이르러 잤다.

 

8월 19일 [양력 10월 2일] <甲子>

맑다. 저녁에 잠깐 비가 왔다. 새벽에 사량(통영시 사량면) 뒷쪽에 이르니,원균 수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칡을 예순 동이나 캐니, 원균 수사가 그제야 왔다. 늦게 출항하여 당포(통영시 산양면 삼덕리)에 이르러 잤다.

 

8월 20일 [양력 10월 3일] <乙丑>

맑다. 느지막이 출항하여 진(한산도)에 이르렀다. 우수사(이억기)와 조방장 정응운이 와서 보고는 정은 곧 돌아갔다. 우수사 및 장흥부사·사도첨사·가리포첨사·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저녁에 피리를 불고 노래했다. 밤이 깊어서 헤어졌다. 미안스러운 일이 많았다. 충청수사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여 흥양으로 곧장 도로 돌아갔다.

 

8월 21일 [양력 10월 4일] <丙寅>

맑다. 외가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곤양군수·사도첨사· 마량첨사· 남도만호· 영등포만호· 회령포만호· 소비포권관가 아울러 왔다. 양정언이 와서 봤다.

 

8월 22일 [양력 10월 5일] <丁卯>

맑다. 나라제삿날(성종정현왕후 윤씨)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 우우후가 와서 봤다. 낙안군수·사도첨사도 왔다가 갔다. 저녁에 곤양군수·거제현령·소비포권관·영등포만호가 와서 이야 기하고 밤이 깊어서 돌아갔다.

 

8월 23일 [양력 10월 6일] <戊辰>

맑다. 아침에 공문 초안을 잡았다. 밥을 먹은 뒤에 활터정자로 옮겨 앉았다. 공문을 적어 보냈다. 그대로 활을 쏘았다. 바람이 몹시 험악하게 불었다. 장흥부사·녹도만호가 같이 왔다. 저물 무렵에 곤양군수과 웅천현감·영등포만호·거제현령·소비 포권관도 왔다. 초저녁에 헤어져 돌아갔다.

 

8월 24일 [양력 10월 7일] <己巳>

맑다. 각 고을에 수군을 징발하는 일로 박언춘·김륜 신경황을 내어 보냈다. 조방장 정응운이 돌아갔다. 저물 무렵에 소비포가 와서 봤다.

 

8월 25일 [양력 10월 8일] <庚午>

맑다. 아침에 곤양군수·소비포권관을 불러 와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사도첨사가 휴가를 받아 갔다. 9월 초7일에 돌아오도록 일러 보냈다. 현덕린이 제 집으로 돌아갔다. 신천기도 곡식을 바칠 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흥양이 돌아왔다. 활 터정자로 내려가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정원명이 들어왔다고 했다.

 

8월 26일 [양력 10월 9일] <辛未>

맑다. 아침에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써 보냈다. 흥양 보자기 막동이란 자가 장흥의 군사 서른 명을 몰래 그의 배에 싣고 도망간 죄로 처형하여 효수했다. 저녁나절에 내려가 활터정자에 앉아서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와서 같이 쏘았다.

 

8월 27일 [양력 10월 10일] <壬申>

맑다. 우수사는 가리포첨사·장흥부사·임치첨사·우후 및 충청우후가 와서 활을 쏘는데, 흥양현감은 술을 바쳤다. 아침에 아들 울의 편지를 보니, 아내의 병이 위중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회를 내 보냈다.

 

8월 28일 [양력 10월 11일] <癸酉>

밤 두시쯤부터 비는 조금 오다가 바람이 세게 불었다. 비는 아침 여섯 시께 개었으나, 바람은 종일 세게 불고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아들 회가 잘 갔는지 아닌지 몰라서 몹시 염려된다. 진도군수(김만수)가 와서 봤다. 그 편에 원수의 장계로 해서 문책 하는 글이 내려 왔는데, 대체로 장계를 낸 것에 잘못 풀이한 때 문이었다.

 

8월 29일 [양력 10월 12일] <甲戌>

맑으나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마량첨사·소비포권관이 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활터정자로 옮겨 앉았다. 공문을 적어 보냈다. 도양장의 머슴 박돌이의 죄를 다스렸다. 도둑 세 놈중에 장손에게 곤장 백 대를 치고 얼굴에 도둑 자를 새겼다. 해남현감이 들어왔다. 의병장 성응지가 죽었다니, 참으로 슬프다.

 

8월 그믐날 [양력 10월 13일] <乙亥>

맑고 바람조차 없다. 해남현감 현즙이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이억기) 및 장흥부사(황세득)가 와서 봤다. 저물 무렵 충청우후(원유남) ·웅천현감(이운룡)·거제현령(안위)·소비포권관(이영남)도 왔다. 허정은도 왔다. 이 날 아침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몹시 위독하다고 했다. 벌써 죽고 사는 것이 결딴이 났는지 모르겠다. 나라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은 생각이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아들 셋·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꼬! 쓰리고 아프구나. 김양간이 서울에서 영의정의 편지와 심충겸(심 충겸:병조판서)의 편지를 이곳에 가지고 왔다. 분개한 뜻이 많이 적혀 있다고 했다. 원균 수사의 하는 일이 매우 해괴하다. 나더러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니, 천년을 두고서 한탄할 일이다. 곤양군수가 병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보지 못하고 보냈으니 너무 너무 섭섭하다. 밤 열시쯤부터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못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