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9월 (1594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14일] <丙子>
맑다.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여 촛불을 밝힌 채 이리저리 뒤척였다. 이른 아침에 손씻고 고요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쳐보니, 중이 환속하는 것과 같고, 다시 쳤더니, 의심이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다. 또 병세가 덜해질지 어떤지를 점쳤더니, 귀양 땅에서 친척을 만난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이 역시 오늘 중에 좋은 소식을 들을 조짐이었다. 순무 사서성 (1558-1631)의 공문과 장계초고가 들어왔다.
9월 초2일 [양력 10월 15일] <丁丑>
맑다. 아침에 웅천현감·소비포권관이 와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낙안군수가 와서 봤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다고 하나, 원기가 몹시 약하다고 하니 염려스럽다.
9월 초3일 [양력 10월 16일] <戊寅>
비가 조금 내렸다. 새벽에 임금의 비밀분부(유지)가 들어왔는데,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병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세 해 동안이나 바다에 나와 있는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죽음으로써 원수를 갚을 뜻을 결심하고 나날을 보내지마는, 적이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있으니, 경솔히 나아가 칠 수도 없다. 하물며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라 일은 어지럽건만 안으로 건질 길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랴! 밤 열시쯤에 흥양현감이 내가 혼자 앉아 있음을 알고 들어와서 자정까지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9월 초4일 [양력 10월 17일] <己卯>
맑다. 아침에 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밥을 먹은 뒤에 소비포권관도 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원균이 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활터 정자로 내려가 앉아 활을 쏘았다. 원균 수사가 아홉 푼을 져 술이 취해서 갔다. 피리를 불게하다가 밤이 깊어 헤어졌다. 또 미안한 일이 있었다. 우습다. 여도만호가 들어왔다.
9월 초5일 [양력 10월 18일] <庚辰>
맑다. 닭이 운 뒤에 머리가 가려워서 견딜수 없었다. 사람을 시켜 이를 긁게 했다. 바람이 고르지 않아 나가지 않았다. 충청수사가 들어왔다.
9월 초6일 [양력 10월 19일] <辛巳>
맑고 바람이 잔잔하다. 아침에 충청수사 및 우후·마량첨사와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활터정자로 옮겨 앉아 활을 쏘았다. 이 날 저녁 종 효대·개남이 어머니의 평안하시다는 편지를 가지고 왔다. 기쁘고 다행함을 어디다 비기랴! 방필순이 세상을 떠나고 방필순이 그 가족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온다고 한 말을 들었다. 우습다. 밤 열시쯤에 복춘이 왔다. 저물녘에 김경로가 우도에 이르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9월 7일 [양력 10월 20일] <壬午>
맑다. 아침에 순천부사의 편지가 왔는데, 순찰사(홍세공)가 초열흘 쯤에 본부(순천)에 도착된다고 했다. 좌의정(윤두수:1533-1661)도 도착된다고 했다 심히 불행한 일이다. 순천부사가 진에 있을 때 거제로 사냥을 보냈던 바, 그들은 남김없이 다 잡았다는데, 그 사정을 전혀 보고하지 않은 것이 몹시 해괴하다. 그래서 편지를 보낼 때에 그것을 지적하여 보냈다.
9월 8일 [양력 10월 21일] <癸未>
맑다. 장흥부사(황세득)을 헌관으로 삼고, 흥양현감(배흥립)을 전사(전사)로 삼아서 초아흐레 날 둑제를 지내려고 입재 시켰다. 첨지 김경로가 여기 왔다.
9월 초9일 [양력 10월 22일] <甲申>
맑다. 저물녘에 비가 오다가 그쳤다. 여러 장수들이 활을 쏘았다. 삼도가 아울러 모였는데, 원균 수사는 병으로 오지 않았다. 첨지 김경로도 같이 쏘고서 경상으로 돌아가 잤다.
9월 초10일 [양력 10월 23일] <乙酉>
맑고 바람도 잔잔하다. 사도첨사가 활쏘기 대회를 열었는데, 우수사도 모였다. 김경숙이 창신도로 되돌아갔다.
9월 11일 [양력 10월 24일] <丙戌>
맑다. 일찌기 수루 위로 나갔다. 남평의 색리와 순천의 격군으로서 세 번이나 양식을 훔친 자를 처형했다.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저녁나절에 충청 수사가 와서 봤다. 소비포권관은 달빛을 따라 본포로 돌아갔는데, 까닭은 원 수사가 몹시 모함하려는 때문이었다.
9월 12일 [양력 10월 25일] <丁亥>
맑다. 일찌기 김암이 방에 왔다. 조방장 정응운의 종놈이 돌아가는 길에 편지답장을 써 보냈다. 우수사·충청수사가 함께 왔다. 장흥부사가 술을 내어 함께 이야기하다가 몹시 취해서 헤어졌다.
9월 13일 [양력 10월 26일] <戊子>
맑고 따뜻하다. 어제 취한 술이 깨지 않아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충청우후가 와서 봤다. 또 조도어사 윤경립의 장계 두통을 보니, 하나는 진도군수를 파면해 달라는 것이고, 하나는 수륙 양군이 서로 침해하지 말라는 것과 수령들을 전쟁에 보내지 말라는 것이니, 그 뜻은 자못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녁에 하천수가 장계 회답과 홍패(과거 합격자 명단) 아흔일곱 장을 가지고 왔다. 영의정 편지도 가져 왔다.
9월 14일 [양력 10월 27일] <己丑>
맑다. 흥양현감이 술을 바쳤다. 우수사·충청수사가 같이 활을 쏘았다. 방답첨사가 공사례를 했다.
9월 15일 [양력 10월 28일] <庚寅>
맑다. 일찌기 충청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망궐례를 했다. 우수사는 약속을 하고도 병을 핑게하니 한탄스럽다. 새로 합격한 사람들에게 홍패를 나누어 주었다. 남원 도병방과 향소 등을 잡아 가두었다. 충청우후(원유남)가 본도로 돌아갔다. 종 경이 들어왔다.
9월 16일 [양력 10월 29일] <辛卯>
맑다. 충청수사 및 순천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밤 꿈에 아들을 보았는데, 경의 어미가 아들을 낳을 징조다.
9월 17일 [양력 10월 30일] <壬辰>
맑고 따뜻하다. 충청수사·순천부사·사도첨사가 와서 활을 쏘았다. 우후 이몽구가 둔전에 마당질하는 일로 나갔다. 효대 등이 나갔다.
9월 18일 [양력 10월 31일] <癸巳>
맑고 지나치도록 따뜻하다. 충청수사 및 흥양현감과 함께 종일 활을 쏘고서 헤어졌다. 저물 무렵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왔다. 이수원 및 담화가 들어왔다. 복춘이 들어왔다. 이날 밤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을 못 이루었다.
9월 19일 [양력 11월 1일] <甲午>
종일 비가 내렸다. 흥양현감·순천부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해남현감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흥양현감·순천부사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9월 20일 [양력 11월 2일] <乙未>
새벽에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비가 잠깐 들었다. 홀로 앉아 간 밤의 꿈을 기억해 봤다. 꿈에 바다 가운데 외딴 섬이 달려오다가 눈 앞에 와서 주춤 섰는데,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은 우뚝 서서 끝내 그것을 구경하니, 참으로 장쾌하였다. 이 징조는 곧 왜놈이 화친을 애걸하고 스스로 멸망할 징조다. 또 나는 준마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다. 이것은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다. 충청수사와 흥양현감이 왔다. 거제현령도 와서 보고 곧 돌아갔다. 체찰사의 공문에 수군에게 군량을 받아 들여 계속 대라고 했다. 잡아 가두었던 친족과 이웃을 다 풀어 주었다고 했다.
9월 21일 [양력 11월 3일] <丙申>
맑다. 아침에 활터정자에 나가 앉아 공문을 처리하여 주고, 저녁나절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순천부사·충청수사가 종일 이야기 했다. 어둘 무렵 여러 장수들이 뛰어넘기를 하게 하고, 또 사병들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9월 22일 [양력 11월 4일] <丁酉>
아침에 활터 정자에 앉았다. 우수사·장흥부사·경상우후가 와서 명령을 듣고서 갔다. 원수의 비밀서류가 왔는데, 27일에는 꼭 군사들을 출동시키라는 것이었다.
9월 23일 [양력 11월 5일] <戊戌>
맑으나 바람이 사나왔다. 아침에 활터 정자에 올라가 공문을 써 보냈다. 경상수사 원균이 군사기밀을 논의하고 갔다. 낙안의 군사 열한 명과 방답의 수군 마흔다섯 명을 점고했다. 고성 사람들이 연명으로 하소연하였다. 진주 강운의 죄를 다스렸다. 보성에서 데려온 소관 황천석을 끝까지 추궁했다. 광주에 가두었던 창평현 색리 김의동을 사형하라는 전령을 내보냈다. 저녁에 충청수사와 마량첨사가 와서 봤다. 깊은 방이 들어서야 돌아갔다. 초저녁에 복춘이 와서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다가 닭이 운 뒤에야 돌아갔다.
9월 24일 [양력 11월 6일] <己亥>
맑고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대청에 앉아서 공무를 봤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충청수사와 같이 먹었다. 오늘 더그레(호의: 각 영문의 군사와 마상재의 군이 입는 세자락 난 웃옷)을 나누는데, 전라좌도는 누른 옷 아홉 벌, 전라우도는 붉은 옷 열 벌, 경상도에는 검은 옷 네 벌이었다.
9월 25일 [양력 11월 7일] <更子>
맑으며, 바람이 조금 잤다. 첨지 김경로는 군사 일흔 명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저녁에 첨지 박종남은 군사 육백 명을 거느리고 들어왔다. 조붕도 와서 같이 자면서 밤에 모여 앉아 이야기했다.
9월 26일 [양력 11월 8일] <辛丑>
맑다. 새벽에 곽재우·김덕령 등이 견내량(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에 이르렀으므로 박춘양을 보내어 건너온 까닭을 물었더니, 수군과 합세할 일로 원수(권율)가 전령하였다고 하였다.
9월 27일 [양력 11월 9일] <壬寅>
아침에 맑더니 저물녘에 잠깐 비가 내렸다. 아침에 출항하여 포구에 나가자 여러 배들도 일제히 출항하여 적도(거제시 둔덕면) 앞바다에 대었다. 그러니 첨지 곽재우· 충용 김덕령· 별장 한명련 ·주몽룡 등이 와서 약속하고 각각 원하는 곳으로 갈라 보냈다. 저녁에 병사 선거이가 배에 이르렀으므로 본영의 배를 타게 했다. 저물무렵 체찰사의 군관 이천문 림득의· 이홍사· 이충길· 강중룡· 최여해· 한덕비· 이안겸· 박진남 등이 왔다. 밤에 잠깐 비가 내렸다.
9월 28일 [양력 11월 10일] <癸卯>
흐리다.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왜적을 치는 일로 길흉을 점쳤더니, 길한 것이 많았다. 첫 점은 활이 살을 얻은 것과 같고, 다시 치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았다. 바람이 고르지 않았다. 흉도 안바다에 진을 치고 잤다.
9월 29일 [양력 11월 11일] <甲辰>
맑다. 출항하여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앞바다로 마구 쳐들어가니, 적의 무리는 험준한 곳에 웅거하여 나오지 않는다. 누각을 높이 양쪽 봉우리에는 진지를 쌓고서 항전하러 나오지 않는다. 선봉의 적선 두 척을 무찔렀더니, 뭍으로 내려가 도망가버렸다. 빈 배들만 쳐부수고 불태웠다. 칠천량에서 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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