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근경인 줄 아는 승재는 차차 그것을 기쁘게 받고, 그 대신 간혹 명님이네 집에를 들렀다가 끼니를 끓이지 못하고 있는 눈치가 보이면 다만 양식 한 되 두 되 값이라도 내놓고 오기를 재미삼아서 했다. 승재가 끊어다 주는 노란 저고리나 새파란 치마도 명님이는 더러 입었다.
승재는 명님이가 명님이답게 귀여우니까 귀애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명님이는 일변 승재의 기쁨이기도 했다.
그것은 승재의 그 ‘조그마한 사업’의 맨 처음의 환자가 명님이었던 때문이다. 승재는 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그 중에는 생사가 아득한 중병환자를 잘 서둘러 살려 내기도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다지 중병도 아니요 수술하기도 수나로운 명님이의 하선염을 수술해 주던 때, 그리고 그것이 잘 나았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도저히 다른 환자의 치료에서는 맛볼수 없이 큰 것이었었다.
그렇듯 명님이는 승재의 기쁨이기는 하지만, 한편 또 명님이로 해서 슬픔도 없지 않았다.
명님이네 부모가 명님이를 기생집의 수양녀로 주려고 하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다.
승재는 명님이가 장차에 매녀(賣女)의 몸이 될 일을 생각하면, 마치 친누이동생이나가 그러한 구렁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같이 슬프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승재는 명님이를 만나면 그 일을 안 뒤로는, 겉으로 반가움이 솟아나서 웃는 한편, 속에서는 그 반가움 못지않게 슬픔이 서리곤 했다.
이러한 갈피로 해서 명님이는 일변 승재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가 인생을 살피는 한 개의 실증(實證)이요 세상을 들여다보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새까지도 그러했거니와, 이 앞으로도 그러할 형편이었었다.
승재는 앞서서 비탈길을 내려가는 명님이의 뒤태를 눈여겨보면서 무심코 한숨을 내쉰다.
“벌써 열세 살!……”
그의 등뒤에서는 유난히 긴 머리채가 치렁거려 제법 계집애 꼴이 박혀 보인다.
승재는 이 애가 이렇게 매초롬하니 장성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불안스러 견딜 수가 없었다.
“명님아”
부르는 소리에 명님이는 대답 대신 해뜩 돌려다본다.
“요새두 어머니 아버지가 저어, 거시기 음! 그 집으루 가라구 그리시든”
승재는 좀 거북해하면서 떠듬떠듬 물어 본다. ‘그 집’이란 팔려 갈 기생집 말이다.
“네에…… 그래두…….”
명님이는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대답을 한다.
“흐응…… 그래서”
“지가 싫다구 그랬지요, 머.”
“흐응…… 그러니깐 무어래시지”
“그럼 죄꼼 더 크거던 가라구 그래요.”
“그럼 명님인 어머니 젖 먹구퍼서 싫다구 그랬나”
“아녜요! 아이 참…….”
명님이는 승재가 혹시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고서,
“……놀리실려구 그리시느만, 머.”
“아냐, 놀리는 게 아니구…….”
“그렇지만 머, 어머니 보구퍼서 남의 집에 어떻게 가서 있나요”
“그럼 더 자라면 어머니 보구 싶잖은가”
“그렇다구 그러든데요? 어머니두 그리시구, 아버지두 그리시구…… 그러니깐 인제 죄꼼 더 자라거던 가라구.”
“흐응, 더 자라거던!”
승재는 먼눈을 팔면서 혼자 말하듯이 중얼거린다.
승재는 속으로 촌사람들이 돼지새끼나 송아지를 팔래도 너무 어리고 젖이 떨어지지 않아서 어미를 찾고 소리를 지르니까, 아직 좀더 자라게 두어 두고 기다리는 것 같은 그러한 정상을 명님이네 집에다 빗대 보던 것이다.
돼지새끼나, 혹은 송아지나 그놈이 조금만 더 자라 제풀로 뛰어다니면서 밥도 먹고, 꼴도 먹고, 그래 젖이 떨어지면 장에 내다가 팔려니 하고 기다리는 촌사람이나, 일변 딸자식이 철이 좀더 들어서 부모도 그려 않고, 그 동안에 가슴도 좀더 볼록해지고, 키도 좀더 자라고 하면 기생집에다가 수양딸로 팔아먹으려니 하고, 매일같이 고대고대 기다리고 있는 명님이네 부모나 별반 다를게 없을 것 같았다.
승재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무심결에 캐액 하고 침을 뱉는다.
그러나 이어, 그들 양순하디양순한 명님이네 부모의 얼굴을 생각하면, 고약스럽다는 반감보다도 불쌍한 마음이 앞을 섰다.
승재는 명님을 돌려보내고, 콩나물고개로 해서 초봉이네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에서들은 마침 저녁을 먹는지 대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들리고, 승재 방에는 자리끼 숭늉이 문턱 안에 들여놓여 있었다.
이 한 그릇 자리끼 숭늉은, 계봉이가 하던 말마따나 소중한 생명수이었었다.
승재는 갈증도 나지 않았지만, 물그릇을 집어 들고 후루루 들이마신다. 물은, 물을 마셨다느니 보다 초봉이로 연하여 가득 넘치는 행복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진작부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서 ‘성층권(成層圈)의 연구(硏究)’라고 하는 신간을 읽고 있던 승재는 사발시계가 저그럭저그럭 가다가 일곱시 반이 되자, 읽던 책을 그대로 펴놓은 채 푸시시 일어선다. 일곱시 반은 병원에 출근하는 시간이다. 인제 가서 소쇄를 하고 조반을 먹고 나면 여덟시 반, 여덟시 반부터는 진찰실에 나가 앉아야 한다.
승재는 버릇대로 낡은 소프트를 내려 쓰고 툇마루로 나앉아서 구두를 신노라니까, 문 밖에선지 왁자하니 사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재는 무심히 구두를 신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는데, 그러자 별안간 지쳐 둔 일각문을 와락 열어 젖히면서 ‘먹곰보’가 문간 안으로 쑥 들어서는 것이다.
승재는 대번, 이건 또 말썽이 생겼구나 생각하면서 주춤하니 멈춰선다. 그는 명님이네 집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먹곰보의 얼굴을 익히 알던 것이다.
술속 사납고, 싸움 잘하기로 호가 난 줄도 잘 알고…….
먹곰보의 뒤에는 그의 아낙이 따랐고, 먹곰보가 떠드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도 두엇이나 일각문으로 끼웃이 들여다본다.
“이놈, 너 잘 만났다!”
먹곰보는 승재를 보자마자, 황소 영각하듯 외치면서, 눈을 부라리면서, 쏜살같이 달려들면서 승재의 멱살을 당시랗게 훑으려 잡는다.
세모지게 부릅뜬 눈하며, 본시 검은데다가 술기와 흥분으로 검붉어, 썩은 생선빛으로 질린 곰보 얼굴을 휘젓고 들이미는 양은 우선 흉하기 다시 없었다.
놀란 것은 승재요, 그는 설마 이렇게야 함부로 다그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어마지두 쩔매는데,
그러자 먹곰보는 멱살을 움켜쥐기가 무섭게,
“이놈!”
소리와 얼러, 철썩 뺨을 한 대 올려 붙인다.
승재는 아프기보다도 정신이 얼떨떨해서 더욱 당황해한다.
“아이구머니! 저를 어째애!”
계봉이가 마침 학교에 가느라고 책보를 안고 대뜰로 내려서다가 그만 질겁하게 놀라, 동당거리고 외친다. 안방에서 식구들이 우 하고 몰려나온다.
“그래 이놈!”
상관 않고 땅땅 어르면서 먹곰보는 수죄(數罪)를 하는 것이다.
“……네가 이놈, 침대롱깨나 가지면 김생원 박생원 한다더라구, 그래 네가, 의술깨나 한다는 놈이, 남의 어린 자식이 방금 죽는다는 것을 보구서두 약 한 봉지를 써주지를 않구 침 한 대 놓아 달라구 애걸복걸을 해두 그냥 말었다니…… 그래서 필경 내 자식을 죽여 놓아…… 이놈!”
이를 부드득 갈면서 승재의 맷집 좋은 따귀를 재차 본새 있게 올려 붙인다.
승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말도 못 하고 뻐언하니 마주 보기만 한다.
먹곰보네 아낙이 슬금슬금 들어와서, 사내의 팔을 잡고, 좋은 말로 하지 왜 이러느냐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기는 해도, 승재가 얻어맞는 것이 고소한 눈치다.
뒤늦게 정주사가 신발을 끌고 허둥지둥,
“원 이게, 웬 행패란 말인고!…… 너 이 손! 이걸 놓지 못할 텐가!”
내려오면서 호령호령한다.
먹곰보는 힐끔 돌려다보더니 꾀죄한 정주사의 풍신이 눈에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아래로 한번 마슬러 보다가,
“이건 왜 나서서 이 모양이야! 꼴같잖게!”
유씨와 초봉이는 벌벌 떨고만 섰고, 계봉이는 휘휘 둘러보다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놈, 경찰서루 가자. 너 같은 놈은 단단히 법을 좀 가르쳐야 한다.”
먹곰보는 을러 대면서 멱살을 잡은 채로 잡아 낚아챈다. 바로 그때다, 퍽 소리와 같이 장작개비가 먹곰보의 옆구리를 옹글게 후려갈긴다. 계봉이의 짓이었었다.
계봉이는 이를 악물고 억척으로, 이번에는 팔뚝을 후려갈기려는 참인데, 아 저런 년 보았느냐고 정주사가 나무라면서 떠밀어 버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여럿 문간으로 끼웃거리다가 몇은 슬금슬금 마당으로 들어서서 구경을 한다.
정주사는 달려들지는 못하고 돌아가면서 연신 호통만 하고 있고, 계봉이는 분에 못 이겨 새액색 어쩔 줄을 몰라한다.
“헤에, 참 내!”
승재는 뒤를 돌려다보면서 누구한테라 없이 바보처럼 한번 웃더니, 그러다가 어찌 무슨 생각으로, 먹곰보가 멱살을 잡고 버팅긴 팔목을 슬며시 훑으려 쥐고 불끈 잡아 비튼다.
먹곰보는 하잘것없이 주먹을 편다. 다 같은 장정이라도 승재가 완력이 솟고, 한데다가 먹곰보는 술이 취해 놔서 그다지 용을 쓰지 못하던 것이다.
승재는 부챗살같이 손가락을 쫙 편 먹곰보의 비틀린 팔목과 얼굴을 한참이나 번갈아 들여다보다가, 그의 아낙한테로 밀어 젖힌다.
“……데리구 가요!…… 내가 죽였수? 당신네가 죽였지.”
먹곰보는 나가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버팅기고 선다.
“오냐, 이놈 보자, 적반하장(賊反荷杖)두 유분수가 있지, 이놈 네가 되레 사람을 치구…….”
먹곰보가 끄은히 왜장을 치면서 비틀거리고 도로 덤벼드는 것을 그의 아낙이 뒤에서 허리를 그러안고 늘어진다. 그러자 마침 양서방이 명님이를 뒤세우고 헐러덕벌러덕 달려든다.
“이 사람이 환장을 했나? 이건 어디라구…….”
양서방은 들어단짝 지천을 하면서, 먹곰보를 사정없이 떠밀어 박지른다.
“아, 성님!”
“성님이구 지랄이구 저리 물러나! 당장, 괜시리…….”
양서방은 먹곰보를 한번 떠밀어 내던지고, 승재 앞으로 가까이 와서, 술 먹은 개라니, 저 녀석이 시방 자식을 죽이고 환장을 해서 그러는 거니, 참고 탄하지 말라고, 제 일같이 사정을 한다. 승재가 멱살잡이에 따귀까지 두 대 얻어맞은 줄은 모르고서 하는 소리다.
승재는 별말 안 하고, 어서 데리고 가라고 흔연히 대답을 한다.
먹곰보는 더 덤비려고는 안 하고, 몸을 휘청거리면서 승재더러 욕만 거판지게,
“이놈아, 네가 명색 의술을 한다는 놈이 그래 이놈, 내 자식이 죽은 것을 보고두 모른 체해야 옳아? 그리구서 왜, 진작 뵈잖었느냐구 내 여편네게 호령을 해? 이놈 당장 목을 쓸어 죽일 놈, 이놈. 이노옴! 내 자식 내놔라. 이놈.”
“업동 아버진 괜히 생떼를 써요…….”
명님이가 진작부터 나설 듯 나설 듯하다가 그제야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여러 사람더러 들으라는 듯이 먹곰보를 몰아세운다.
“……다아 죽어서 아주 숨도 안 쉬구 그랬어요. 그런 걸 주사를 놓는다구 죽은 애기가 살아나나요…… 괜히, 죽은 송장한테 주사를 놨다가 정말 죽였다구 애맨 소리 듣게요…… 생으로 어거지를 쓰믄, 본 사람두 없나, 머…….”
정주사는 대개 그러한 곡절이려니 짐작도 했지만, 명님이가 앙알앙알 앙알거리는 말을 듣고 나서는 쾌히 속은 알았다. 속을 알고 보니 먹곰보가 더욱이 괘씸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괘씸하기는, 아까 자기를 보고 근육질을 하던 것이다. 과연 생각한즉 분하기도 하고, 계제에 먹곰보가 인제는 한풀 죽었는지라 기운이 불끈 솟았다.
“거 고현 손이로군!”
정주사는 노랑수염을 거슬려 가면서 눈을 깜작깜작, 음성은 위엄을 갖추어 준절히 꾸짖기 시작했다.
“……그게, 그 사람이 돈을 받고 하는 노릇도 아니요, 다아 동정심으로 그리는 것인데, 그러니 가서 보아 준 것만이라두 감사할 것이지, 그래 오죽 잘 알아보구서 손두 대지 않았으리라구!……
네끼 고현 손 같으니라구!…… 아무리 무지막지한 모산지배기루서니 어디 그럴 법이 있나!”
호령이 엄엄한 푼수로는 당장 무슨 거조가 날 것 같으나, 오직 발을 구를 따름이다.
승재와 양서방은 한편으로 비껴 서서, 승재는 어제 겪은 일을, 양서방은 먹곰보가 아이를 나서는 잃고, 나서는 잃고 하다가 사십이 넘어 마지막같이 또 하나를 낳아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하던 참인데 그렇게 죽이고 보니 눈이 뒤집히는데, 간밤에 그의 아낙이 말을 잘못 쏘삭여서 그래 더구나 환장지경이 된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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