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태수는 주인집의 저녁밥도 비워 때리고 요릿집에서 놀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길이었다.
술이야 얼근했지만, 밤이 그렇게 마음 촐촐하게 하는 밤이니, 다니는 기생집도 있고 한 터에 그냥 돌아오지는 않았겠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서로 엇갈리고 헛갈리고 해서 할 수 없이 혼자 동떨어진 셈이었었다.
그는 술을 먹고 늦게 돌아왔다가 탑삭부리 한참봉한테 띄면 으레 붙잡혀 앉아서 술을 먹지 말라는 둥, 사내가 어찌 몇 잔 술이야 안 먹을꼬마는 노상 두고 과음을 하면 해로운 법이라는 둥, 이런 제법 집안 어른 노릇을 하자고 드는 잔소리를 듣곤 하기 때문에 그것이 성가시어, 살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태수는 그래서 사푼사푼 마당을 가로질러 뜰아랫방으로 가노라니까 공교히 안방에서,
“고서방이우”
하고 기척을 내는 김씨의 음성에 연달아 앞 미닫이가 열렸다.
“네에, 납니다…… 여태 안 주무세요”
태수는 할 수 없이 안방 댓돌로 올라섰다. 김씨는 흐트러진 풀머리에 엷은 자릿적삼으로 앞을 여미면서 해죽이 웃고 내다보던 것이다.
남편의 마음이 변한 것이야 아니지만, 그래도 시앗을 본 젊은 여인이라, 더위 끝에 산산히 스미는 야기(夜氣)에 잠을 설치고 마음이 싱숭거려, 이리저리 몸을 뒤치고 있던 참이다.
“늦었구려? 저녁은 어떻게 했수? 자서예지”
“먹었어요…… 아저씬 주무세요”
“저 집에 가셨지.”
“하하하, 나는 글쎄 술을 한잔 먹었길래, 아저씨한테 들킬까 봐서 그대루 슬쩍 들어가 버릴 양으루 그랬지요. 하하하…… 그럼 좀 놀다가 잘까”
태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마루로 해서 안방으로 성큼 들어선다.
이거야 탑삭부리 한참봉이 있건 없건, 밤이고 낮이고 안방에 들어가서 놀고 누워 뒹굴고 하던 터라, 이날 밤이라고 그것을 허물할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이날 밤사 말고, 태수는 김씨의 잠자리에서 나온 그 흐트러진 자태에 전에 없던 운치스러움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어떤 무엇을 분명하게 계획한 것은 물론 아니요, 그저 그 당장에 문득 인 흥(興), 단지 그 흥에 지나지 않던 것이다. 적어도 시초만은 그러했다.
이 흥은 김씨도 일반이다. 그는 태수가 그대로 돌아서서 제 방으로 가려고 했더라면 놀다가 가라고 자청 불러들이기라도 했을 것이다.
태수는 윗미닫이로 해서 안방으로 들어서고 김씨는 엽엽스럽게도,
“아이머니!”
질겁을 하면서, 그러나 엄살을 하는 깐으로는 서서히, 자줏빛 누비처네를 끌어다가 홑껍데기 하나만 입은 아랫도리를 가리고 앉는다.
“미안합니다! 난 또 아직 눕잖으신 줄 알았지.”
“아냐 괜찮아! 일루 앉어요. 어떤가? 머, 늙은 사람이…… 자아 앉어요.”
태수가 도로 나올 듯이 주춤주춤하는 것을 김씨는 붙잡아 앉히기라도 할 것같이 반색을 한다.
둘이는 태수가 술 먹은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고 하다가 말거리가 없어 심심했다. 전에는 이런 일은 통히 없었다.
“고서방두 인제는…….”
어색하리만치 말이 없다가 김씨가 겨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던 것이다.
“……장갈 들어서 살림을 해예지! 늘 이렇게 지내느라구 고생허구…… 적적하긴들 오죽해여!”
“아즈머니두! 색시가 있어야지 장갈 가지요”
“온 참! 고서방 같은 이가 색시가 없어서 장갈 못 들어? 과년찬 색시들이 사뭇 시렁 가래다가 목을 맬려구 들 텐데, 호호.”
“아녜요, 정말 하나두 걸리는 게 없어요. 이러다간 총각귀신 못 면할까 봐요!”
“숭헌 소리두 퍽두 허구 있네!…… 아 고서방이 장가만 가구 싶다면야 내 중매 안 서주리”
“정말이요”
“그래에!”
“거 참 한자리 마땅한 데 좀 알아봐 주시우. 내 술은 석 잔말구 삼백 잔이라두 내께.”
“그래요!…… 그렇지만 인제 고서방이 장갈 들면 따루 살림을 날 테니 우리 내왼 섭섭해서 어떡허나? 호호, 우리 욕심만 채리구서 그런 말을 다아 허구 있어요! 하하하아.”
“허허, 정 그러시다면, 그대루 저 뜰아랫방에서 살림을 하지요, 허허.”
“호호…….”
김씨는 간드러지게 웃다가 낯빛을 고치고 곰곰이,
“……아이 나두 고서방 같은 아들이나 하나 두었으면 오죽이나!”
말을 못 맺고 한숨을 내쉰다.
“인제 애기 나실 걸 머…… 저렇게 젊으신데!”
“내가 젊어”
김씨는 짐짓 눈을 흘기다가 다시 고개를 흔든다.
“……내야 늙구 젊구간이, 안 돼!”
“왜요”
“우리집 영감님이 아주 제바리야! 그새 첩을 네엔장 몇씩 갈아딜이두 아이를 못 낳는 걸 좀 보지”
“허긴 그래요! 남자가, 저어 그래설랑…… 아일 못 낳기두 하니깐…….”
“그러니 우리 집안은 자손 보기는 영 글렀지!…… 젠장맞을, 여편네 혼자서 아이 낳는 재주 없나!”
김씨는 해쭉 웃고, 태수도 같이서 빙긋이 웃는다.
김씨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슬하가 적막하기도 하거니와, 장래가 또한 걱정이었었다.
만일 김씨 자기가 영영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 대신 첩의 몸에서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 낳는 날이면, 남편의 정이며 또 재산은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미한테로 달칵 기울고 말 것이었었다.
그러는 날이면, 김씨는 내 신세가 간데없을 테라 해서 연전부터 그는 남편한테 돈을 한 오백 원이나 얻어 가지고 그것을 따로 제 몫을 삼아 사사 전당도 잡고, 오푼변 돈놀이도 한 것이 시방은 돈 천 원이나 쥐고 주무르는데, 이것은 장차 그렇게 될 날을 혹시 염려하고, 즉 말하자면, 늙은 날의 지팡이를 장만하는 셈이었었다.
이러한 불안이 있으므로 김씨는 내 몸에서 아이를 낳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그가 한 말대로 여자 혼자서 아이를 날 수가 있다면, 그 수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가리지 않을 만큼 간절히 아이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남자에게 정조를 개방하리라는 결단이 동시에 서서 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그것은 옳고 그른 시비보다도 우선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를 않았었다.
태수와 사이의 사단이, 좌우간 마음 성가시게 된 요새 와서는 김씨는 ‘자식이나 하나 보쟀던 것이!’ 하는 후회를 혼자 앉아 가끔 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로서 저를 속이자는 괜한 억지이던 것이다.
미상불 태수와 그렇게 된 그 이튿날부터도 아기를 바랐고, 시방도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아기를 바라느라고 태수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었다. 기왕 그리 되었으니 아기나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이게 정말이던 것이다.
탑삭부리 한참봉은 비록 자손을 보겠다고 첩을 얻고 지내지만, 마음으로는 아내 김씨한테 노상 민망해한다. 십오 년 동안이나 쓴맛 단맛 같이 맛보아 가면서, 게다가 이만한 전장까지 장만하느라고 동고동락으로 늙어 온 아내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 하나가 흠이지, 정이야 깊을 대로 깊고 해서 알뜰한 생애의 길동무인 것이다.
그렇지만 한참봉은 김씨보다 나이 열세 살이나 더해서 이미 늙발에 들어앉은 사람이다.
그러한데다 한 달이면 삼사 일만 빼놓고 육장 첩의 집에 가서 잠자리를 하곤 하니, 가령 마음은 변하지를 않았다 하더라도 옛날같이 다 구격이 맞는 남편이 될 수는 없었다.
한편 김씨도 남편이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미더워하며 소중히 여겨 주는 줄은 잘 알고 있었다.
또 김씨 자신도 의가 좋게 반생을 같이 살아온 남편이니, 그에게 정도 깊거니와 의리도 큼을 모르는 바 아니었었다.
그런지라 그는 남편이 갑자기 싫어졌다거나, 그래서 배반할 생각이 들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었다.
단지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따로 이것이라, 시장하기도 한데 냉면도 구미가 당겼던 그런 셈쯤 되었었다.
그럼직도 한 것이, 김씨는 젊었다. 나이보다도 또 더 젊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알찐거리는 태수는 늘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곧잘 보비위를 해주고 싹싹히 굴어 오랍동생같이 조카같이 자식같이 따르는 귀동이요, 그런만큼 다뤄 보기에 호락호락하기도 했었다.
그 만만하게 다룰 수 있는 귀동이는, 그런데 또 보매도 씩씩한 젊은 사내이어서 셰퍼드답게 세찬 매력을 가졌었다.
진실로, 삼십을 가제 넘은, 시앗을 본 여인의 바로 무릎 앞에서, 그리하여 그놈 셰퍼드가, 초가을의 산산한 야기에 포옹이 그리운 밤과 더불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그 밤의 핍절한 정경이었었다.
피가 뜨겁게 머리로 치밀고 숨이 차왔다. 그러자 마침 땡땡 마루에서 두시를 쳤다.
시계 소리에 태수는 그만하고 일어설까 했으나 엉덩이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어느결에 흠씬 무르익어 버린 이 흥을 이대로 깨뜨리기가 섭섭했던 것이다.
“고서방, 우리 화투나 칠까”
김씨가 약간 떨리는 음성을 캐액캑 가다듬어 겨우 말을 내던 것이다.
“칩시다.”
태수는 선선히 대답을 하고 일어서더니, 잘 아는 장롱서랍을 뒤져 화투목을 꺼내다가 착착 치면서 김씨 앞으로 바투 다가앉는다.
“고서방 고단할걸”
“뭘! 괜찮어요.”
“그러면 ‘놉빼꾸’ 한판만…… 그런데 내기야”
“좋지요. 무슨 내기를 할까요”
“글쎄…… 무슨 내기가 졸꼬…… 고서방이 정허구려.”
“나는 아무래도 좋아요. 아주머니 하자는 대루 할 테니깐 맘대루 정하시우.”
“무슨 내기가 좋을지 나두 모르겠어!…… 고서방이 정해요.”
“그럼 팔 맞기”
“승거워!”
“그럼 무얼 하나!”
“아이! 정허구서 해예지!”
김씨는 태수가 내미는 화투를 상보기로 떼어 보고, 태수도 떼어 보면서,
“내가 선이로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기는 사람이 시키는 대루 내기 시행을 하기루”
“그래그래, 그럼 그렇게 해요? 무얼 시키든지 시키는 대루 하기야…… 고서방 또 도화 불르면
안 돼”
“염려 마시구, 아즈머니나 떼쓰지 말구서 꼭 시행하시우!”
토닥토닥 화투를 치기 시작은 했으나, 둘이는 다 화투에는 하나도 정신이 없다. 싫증이 나서 홍싸리로 흑싸리를 먹어 오기도 하고, ‘시마’를 빼놓고 세기도 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져도 상관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승부는 나서 태수가 졌다.
“자아, 인전 졌으니 내기 시행해요!”
“하지요. 무어든지 시키시오.”
“가만있자…… 무얼 시키나아”
“무어든지…….”
“무엇이 조꼬”
김씨는 까막까막 생각하는 체하다가 별안간,
“아이! 난 모르겠다!”
하면서 자리에 가 쓰러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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