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건 먹는다구 해야 하는 법이야! 또오, 젊은 사람이 술을 좀 먹기루서니 그게 대순가? 정주산 그런 건 가리잖는 분네야, 그렇잖수? 정주사…….”
“허허, 뭐…….”
“아녜요, 정주사…… 그인 술 별루 먹잖어요. 난 먹는 걸 못 봤어요.”
“뭐, 그거야 먹으나 안 먹으나…….”
“그래두 안 먹는걸요!”
“난 보니깐 먹던데”
“언제 먹어요”
“요전날 밤에두 장재동 골목에서 취한 걸 본걸”
정주사는 실로(진실로 그렇다) 태수가 술은 백 동아리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를 나섰다.
그는 김씨더러 집에 돌아가서 잘 상의도 하고, 또 아무려나 당자인 초봉이 제 의견도 물어 보고, 그런 뒤에 다 가합하다고 하면 곧 기별을 해주마고 대답은 해두었다.
그러나 그런 건 인사삼아 한 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당장에서 정혼을 해도 좋았을 것이었었다.
미상불 그는 선 자리에서, 여보 일 잘되었소, 자 그 혼인 합시다. 사주단자에 택일(擇日)까지 아주 합시다. 책력 이리 가져오시오, 이렇게 쾌히 요정을 지어 버리고 싶기까지 했었다.
아무것도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었다. 김씨의 말이, 자기 부인 유씨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가합한 양으로 말을 하더라니까, 그러면 되었고, 당자 되는 초봉이가 혹시 어떨는지 모르지만, 가령 제가 약간 싫은 일이라도 그 애가 부모가 시키는 노릇이라면 다 그대로 좇는 아인즉슨, 또한 성가실 일이 없을 터였었다.
그러나마 사람 변변치 못한 것을 제 배필로 골랐을새 말이지, 고태수 그 사람이 오죽 도저한가! 도리어 과한 편이지.
처음 김씨가 혼담을 내놓았을 때에 정주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태수의 정체는, 시방처럼 선명한 자격은 보이지 않았고, 매우 막연한 것이었었다.
그렇던 것이 김씨가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가는 대로 차차 선명하게 미화(美化)되어 가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마치 캔버스 위에서 화필(畵筆)이 노는 대로 그림의 선과 색채가 한 군데씩 두 군데씩 차차로 뚜렷해지다가, 마침내 훤하게 인물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정주사의 머릿속에서 조화를 부리기 시작한 태수의 영상은, 그가 ‘전문대학’을 졸업했다는 데 이르러서 비로소 선명해졌고, 다시 정주사한테 장사 밑천을 대준다는 데서 완전히 미화되어 버렸었다.
골고루 골고루, 대체 요렇게 마침감으로 똑 떨어진 신랑감이 어디 가서 다른 집 몰래 파묻혔다가 대령하듯이 펄쩍 뛰어나왔는가고 생각하면, 자꾸만 꿈인가 싶어진다.
그는 이 혼인을 하기로 마음에 작정을 하고 나서는 한번 돌이켜, 마치 시관(試官)이 주필을 들고 글을 꼲듯이 사윗감인 태수를 꼲는다.
자자에 관주다.
태수의 눈찌가 좀 불량해 보이는 것이랄지, 사람이 반지빠르고 건방져 보이는 것이랄지, 더욱 무엇보다도 마음 찜찜한 구석은 그가 조건 붙은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미심다운 것,
이런 것들은 다 모른 체하고 슬슬 넘겨 버린다.
죄다 관주를 주어 놓고서, 정주사는 어떻게 해서 누가 준 관주라는 것은 상관 않고, 사윗감이 관주인 것만을 기뻐한다.
아들놈이 여느때에 공부를 잘 못 하는 줄을 알면서도, 통신부의 성적이 좋으면 기뻐하는 게 부모다. 이거야 선량한 어리석음이구나 하겠지만, 정주사는 그러한 인정이라 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그래서 정주사는 시방 크게 만족하여 가지고 콩나물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그는 바로 며칠 전에 이 콩나물고개를 이렇게 넘어가면서 초봉이의 혼인과 및 그 결과에 대해서 공상을 했었고, 하던 그대로 모든 일이 맞아떨어진 기쁨을 안고서 오늘은 이 고개를 넘느니라 생각하면, 이놈 콩나물고개란 놈이 신통한 놈이로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좌우가 둘러보여지는 것이다.
“자아, 그래서 돈이 생기면…….”
느긋하게 궁리를 하면서 정주사는 천천히 집을 향하고 걸어간다.
대체 얼마나 둘러 주려는고? 한 오륙백 원…… 오륙백 원 가지고야 넘고 처져서 할 게 마땅찮
고…… 아마 돈 천 원은 둘러 주겠지. 혹시 몇천 원 척 내놓을지도 모르고.
한데, 무슨 장사를 시작한다…… 싸전? 포목전? 잡화전…… 그런 것은 이문이 박해서 할 것이 못 되고…….
가만히 미두를 몇 번 해보아? 그래서 쉽게 한밑천 잡아
에잉! 그건 못쓰지. 그랬다가 만약 실수나 하고 보면, 체면도 아니려니와 모처럼 잡은 들거린데 방정을 떨어서야…….
그러면 무얼 해야만 하기도 수나롭고 이문도 박하잖고 두루 괜찮을꼬
초봉이는 가게 일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계봉이와 형주는 건넌방으로 쫓고, 병주는 저녁 숟갈을 놓던 길로 떨어져 자고, 시방 정주사 내외가 단둘이 앉아 초봉이의 혼담 상의에 고부라졌다.
“나두 한참봉네 집에서 두어 번이나 보기는 했수마는…….”
유씨는 삯바느질로 하는 생수 깨끼적삼을 동정을 달아 가지고 마침 인두를 뽑아 들면서, 문득 이런 말을 비집어 낸다.
“……외양두 다 똑똑허구 허긴 헌데, 어찌 눈찌가 좀 독해 뵙디다아”
“아냐, 거 그 사람의 눈이 독한 눈이 아니야…… 그러구저러구 간에, 여보! 그렇게까지 흠을 잡아 낼래서야 사웃감을 깎아 맞춰야 하지, 어디…….”
정주사는 발을 따악 개키고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흔들, 양말 벗어던진 발샅을 오비작오비작 후비고 앉아서, 누구와 구누나 하는 듯이 연신 눈을 깜작깜작, 자못 유유한 태도다.
“글쎄, 나두 그것이 무슨 대단한 흠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단 말이지요, 머…… 아무튼지 사람은 그만하면 괜찮겠습디다.”
“괜찮구말구! 그만하면…… 그런데 거, 그 사람이 술을 좀 먹는 모양이지”
이번에는 정주사가 탈을 잡는 체한다. 한즉은 유씨가 이번에는 차례 돌림이나 하듯이 부리나케 그것을 발명하기를,
“당신두 원 별소리를 다아 하시우!…… 시체 젊은 애들치구 술잔 안 먹는 사람이 백에 하나나 있답디까? 젊은 기운이구 허니 술 좀 먹는 것두 괜찮아요! 많이 먹어야 낭패지.”
“것두 미상불 그렇기는 그래!…… 사내자식이 너무 괴타분한 것보담은 술잔 먹구 다아 그러는데서 세상 조화두 부리구 하는 법이니깐.”
“거 보시우…….”
유씨는 돋보기 너머로 남편을 흘끗 넘겨다보면서 한바탕 구박이 나온다.
“……당신두 인제야 그런 줄 아시우…… 세상에 당신같이 괴탑지근한 이가 어디 있습디까
…… 담보 있게 술 한잔 먹어 볼 생각 못 해보구, 그래 고렇게 늘 잔망스럽게 살아왔으니 어떻수? 말래가 요지경이 아니우”
정주사는 할말이 없으니까 한바탕 꺼얼껄 웃더니, 여태 발샅 후비던 손가락을 올려다가 못생긴 코밑 수염을 양편으로 싸악싹 꼬아 올린다. 암만 그래도 그놈이 ‘카이젤’ 수염은 되지 못하고 죽지가 처지는 것이고.
“아, 그런데 말야!…… 그 애가…….”
정주사는 무렴 끝에 서시렁주웅하고 이야기를 내놓는 모양인데, 그는 벌써 태수를 ‘그 애’라고
애칭(愛稱)을 한다.
“……글쎄 우리 초봉이를 벌써 지난 초봄부터 알았다는구려…… 그래 가지굴랑은 저 혼자만 애가 달아서, 머 여간 아니었다더군그래! 허허.”
“시체 사람들은 다아 그렇게 연앨 해야만 장가를 온다우. 우리 애가, 너무 내차기만 허구, 그래서 남의 집 젊은 사람이라면 눈두 거듭떠보질 않지만…… 그러나저러나 간에 나는 그 사람 자기네 집에서 어쩌면 그렇게 통히 당자한테 내맽기구 맘대루 하게 한다니 그 속 모르겠습디다! 신식이요 개명한 집안이면 다아 그렇기는 하답디다마는…….”
“아 여보, 그럴 게 아니오…… 과부의 외아들이겠다, 제 집안이 넉넉하겠다, 허니 자연 조동으루 자랐을 것이요, 그래서 입때까지 장가두 들지 않구 있었던 게 아니오? 그러니깐 장가를 가더라두 제 맘대루 골라서 제 맘대루 갈려구 할 것이고, 저의 집에서두 기왕 그래 오던 것이니, 쯧! 모르겠다, 다아 네 마음대로 해라, 맘대루 해서 하루바삐 장가나 가거라, 이럴 게 아니오? 사리가 그러잖소”
두 내외의 태수의 위인이랄지, 또 혼인하기에 꺼림칙한 점이랄지는 짐짓 말 내기를 꺼려했고, 혹시 말이 나오더라도 서로 그것을 싸고 돌고 안고 돌아가고 하느라고 애를 썼다. 마치 자리잡은 부스럼이나 동티나는 터줏대감 건드리기를 무서워하듯.
그들은 진실로 이러하다. 그들은 딸자식 하나를 희생을 시켜서 나머지 권솔이 목구멍을 도모하겠다는 계책을 적극적으로 세우고 행하고 할 담보는 없다. 가령 돈 있는 사람을 물색해 내서 첩으로 준다든지, 심하면 기생으로 내앉히거나 청루(靑樓)에다가 팔거나 한다든지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비록 낡은 것이나마 교양이라는 것이 있어서 타성적으로 그놈한테 압제를 받기 때문이다.
교양이 압제를 주니 동물적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인간답게 교활하다.
해서, 정주사네는 시방 태수와 이 혼인을 함으로써 집안이 셈평을 펴게 된 이 끔찍한 행운을 당하여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 혼인이 장차에 딸자식을 불행하게 하지나 않을 것인가 하는 의구를 일으켜 가지고 그 의구가 완전히 풀리기까지 두루 천착을 해보기를 짐짓 그들은 피하려 든다.
‘사실’이 무섭고 무서운 소치는 너무도 ‘사실’이 뚜렷하고 보면 차마 혼인을 못 할 것이므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악취가 나는 것도 그것을 번연히 코로 맡고 있으면서 실끔 외면을 하고는,
하나가 혹시,
“어찌 좀 퀴퀴하우”
할라치면, 하나가 얼른 내달아,
“아냐, 구수한 냄새를 가지고 그리는구려.”
하고 달래고, 그리다가 또 하나가,
“그런데, 어쩐지 좀 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군!”
할라치면, 하나가 서슬이 시퍼래서,
“향깃허구면 그리시우!”
하고 세수빠진 소리를 하는 것을 지천을 하던 것이다.
이렇듯 사리고 조심하여 눈을 가리고 아웅한 덕에, 내외의 의견은 더 볼 것도 없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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