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겁네!”
“그럼 말야아, 응”
김씨는 도로 발딱 일어나더니 얼른 태수의 귀때기를 잡아다가 입에 대고,
“……저어, 나아 응? 애기 하나만…….”
하면서 한편 팔이 태수의 어깨를 감는다.
그날 밤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된 뒤로부터 둘이는 그대로 눌러 오늘날까지 지내 왔다. 여덟 달이니 장근 일년이다.
탑삭부리 한참봉이야 육장 첩의 집에 가서 자곤 하니까, 태수가 달리 오입을 하느라고 바깥잠을 자는 날만 빼면, 그래서 한 달 두고 보름은 둘이의 세상이다.
식모나 심부름하는 아이년도 돈이며, 옷감이며, 다 후히 얻어먹는 게 있어, 밤이면 태수를 바깥 주인 대접을 할 줄로 알게쯤 되었기 때문에 둘이는 아주 탁 터놓고 지낼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참봉이 첩을 얻어 두고 어엿이 다니는 것과 일반으로, 김씨도 태수를 남첩(男妾)으로 집안에다 두어 두고 재미를 보던 것이다.
태수가 작년 여름에 이 집으로 주인을 잡고 올 때에는 인조견 이부자리 한 벌과, 낡은 트렁크 한 개와, 행담 한 개와 도통 그것뿐이었었다.
그러던 것이, 김씨와 그렇게 되던 사흘 만에는 단박 푹신푹신한 진짜 비단 이부자리에 방석까지 껴서 들여놓고, 연달아 양복장이야, 책상이야, 요강, 재떨이, 체경 이런 것으로 그의 방은 혼란스럽게 차려졌다.
그 밖에 철철이 갈아 입을 조선옷이며, 보약이며, 심지어 담배까지도 해태표로만 통으로 두고 피웠다.
이러한 비발은 김씨가 말끔 제 돈을 들여서 해주되, 남편한테는 눈치로든지 말로든지 태수가 돈을 내놓아 그 부탁으로 심부름을 해주는 체하기를 잊지 않았다.
밥값은, 처음에 이십오 원에 정한 것을 오 원씩 더 내서 삼십 원씩이라는 핑계로 언제나 밥상은 떡벌어졌다. 그러나 태수는 처음 석 달 동안만 이십오 원씩 밥값을 치렀지, 그 뒤로는 피차에 낼 생각도, 받을 생각도 하지를 않았다.
그 동안 김씨는 남편이 어느 첩한테서 긴치 않게 전염을 받은 ××을 나누어 가졌다가, 그놈을 다시 태수한테 모종을 해주었다.
그 덕에 태수는 단단히 고생을 했고, 치료는 했어도 뿌리는 빠지지 않고 만성이 되어, 요새도 술을 과히 먹거나 실섭을 하면 도로 도져서 병원 출입을 해야 했었다.
태수는 화투의 승부로 그날 밤에 짊어진 내기 시행 가운데 여벌치 한 대목은 아직도 시행을 하지 못했다. 웬일인지, 김씨는 포태(胞胎)하는 기색이 보이지를 않았다.
“나는 아마 팔자가 그런가 봐!”
김씨는 생각이 나면 태수를 붙잡고 불평삼아, 탄식삼아 가끔 이렇게 뇌살거린다.
그러나 일변 둘이 사이에 정은 수월찮이 물크러졌다.
태수는 한편으로, 호화스러운 맛에 전과 다름없이 기생 오입도 하고 지내고, 또 요새 와서는 초봉이한테 정신이 쏠려 그와 결혼을 하려고 애를 쓰고 하기는 해도, 그런 것과는 달리 김씨와 사이에는 소위 색정이라는 것이 자못 깊었다. 김씨는 더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이 들고 서로 좋고 해도, 애초부터 아무 때고 떨어져야 한다는 말없는 조건이 붙은 둘 사이의 관계이었었다.
김씨는 수월찮이 영리하기도 한 여자이었었다. 그는 한때의 손짭손으로 일생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다.
만일 태수와 이렇게 오래오래 두고 지내다가는 필경 파탈이 나서, 큰 풍파가 일고라야 말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삼월부터는, 인제는 웬만큼 해두고 일을 수습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태수와 떨어질 일을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섭섭하기란 다시 없었다. 또 기왕 내친걸음이니, 바라던 자식이나 하나 뺄 때까지 그렁저렁 밀어 가고도 싶었다.
그러나 올 삼월, 그때만 해도 벌써 배가 맞아 지낸 지가 반년인데, 반년이나 두고 그렇게 지냈어도 가져지지 않던 아이가 앞으로 더 지낸다고 별안간 생겨질 것 같지도 않고, 그뿐 아니라, 남편을 더 오래 속일수록 위험은 더 많이, 그리고 더 가까이 닥뜨려 오게 하는 것이어서 차차로 겁이 더 나기도 했었다.
한번 이렇게 위험을 느끼고 나매, 그는 그새까지는 어쩌면 그렇듯 마음을 턱 놓고 지냈던가 싶을만큼 자꾸만 초조와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뿐 아니라 앞으로 가령 위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태수를 한평생 옆에 두고 지내진 못할 바이면, 역시 차라리 선뜻 떨어지는 게 수거니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 그렇지, 생각 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고, 해서 그러면 생으로 잡아떼느니보다 태수를 장가를 들여서 할 수 없이 떨어지도록 하는 도리가 옳겠다고, 드디어 태수를 장가를 들일 결심을 했던 것이다. 하고서, 태수더러 그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하자고 하니까, 태수는 갈리는 거야 형편대로 할 것이지만 장가는 갈 생각이 없다고 내내 코방귀만 뀌었다.
그래서 하루 이틀, 그 짓을 그대로 미룩미룩 밀어 내려오던 참인데, 그러자 이러한 일이 있었다.
사월 바로 초생이니까 달포 전이다.
태수가 오후에 은행에서 돌아와 바깥 싸전가게에 나가서 탑삭부리 한참봉과 한담을 하고 있노라니까 웬 여학생인지, 차림새는 초라해도 얼굴이며 몸맵시가 단박 눈에 차악 안기는, 그런 여학생 하나가 가게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태수는 그 여학생의 차림새가 너무 조촐하고 더욱 트레머리에 통치마는 입었어도 고무신에 버선을 신은 것이, 혹시 공장이나 정미소에 다니는 여직공이 아닌가 했다.
그렇다면 더욱 인물이 아깝다고, 그래서 태수는 황홀하게 그를 바라보는 참인데 마침 탑삭부리 한참봉을 보더니 사풋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었다.
초봉이었었다.
“어이, 아버지 안녕하시구”
탑삭부리 한참봉은 이렇게 아주 친숙히 인사 대답을 했다.
“네에.”
초봉이의 대답은 들리는 둥 마는 둥했지만, 방긋이 웃는 입을 보고서 태수는 그만 엎으러지게 흠탄을 했다.
초봉이가 지나가기가 무섭게 태수는 탑삭부리 한참봉더러,
“거 누구예요”
하면서 사뭇 숨이 차게 다급히 묻던 것이다.
“왜”
한참봉은 히쭉이 웃다가,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우리 아는 사람의 딸인데…… 학교 졸업하구서 시방 저기 제중당이라는 양약국에 다닌다지…… 그래 맘에 들어”
그는 연신 수염 속에서 내숭스럽게 웃는다.
“아녜요, 거저…….”
태수는 너무 덤빈 것이 점직해서 뒤통수를 긁는다.
“흐응! 맘에 드는 모양이군그래…… 워너니 똑똑하겐 생겼지. 저엉 맘에 들거들랑 집엣사람더러 중맬 서달라지? 저 너머 둔뱀이 정주사네 맏딸 초봉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 테니.”
“아녜요, 아저씬 괜히.”
그날 밤부터 태수는 그새까지 시뻐하던 장가를 급작스레 들겠노라고, 그러니 초봉이한테 중매를 서달라고 김씨를 졸랐다.
초봉이란 말에 김씨는 도무지 전에 없던 일로 별안간 강짜가 나고, 나되 사뭇 앞이 캄캄하고 몸이 떨려 어쩔 줄을 몰랐다.
김씨는 자청해서 태수더러 결혼을 하라고 했고, 종차 나서서 규수를 골라 내 손으로다가 뒤받이를 들어 혼사를 치러 줄 염량까지 했고, 그러면서도 조금도 질투 같은 것은 몰랐고 한 것은 무릇 그 여자 즉 태수의 배필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 인물이 실지의 인물로서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초봉이라고 하는 잘 아는 계집애, 그때의 최근으로는 작년에 본 것이 마지막이지만 썩 아담스럽게 생긴 그 계집애 초봉이가, 이건 시방 당장 내 애물인 태수를 차지를 해가다니! 아 그 계집애가! 이러해서 계제와 대상을 만나 질투는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러한 딴 속을 두어 두고, 그는 태수더러는 초봉이가 너한테는 과분하다는 핑계를 해가면서, 그의 소청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드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6 조그마한 사업
언덕 비탈을 의지하여 오막살이들이 생선 비늘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님(明姙)이네가 도통 오 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 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한테 이 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
대지가 일곱 평 네 홉이니, 안방 세 식구, 건넌방 세 식구, 도합 여섯 사람에 일곱 평 네 홉인 것이다.
건넌방에는 시방 먹곰보도 없고, 그의 아낙도 없고, 아랫목에는 제돌쟁이 어린것이 앓아누웠고, 윗목에서는 경쟁이가 경을 읽고 앉았다.
방 안은 불을 처질러 놓아서, 퀴퀴한 빈취(貧臭)가 더운 기운에 섞여 물큰 치닫는다.
어린것은 오랜 백일해로 가시같이 살이 밭고, 얼굴은 양촛빛이다. 그런 것이 입술만 유표하게 새까맣게 탔다. 폐렴을 덧들였던 것이다.
눈 따악 감은 얼굴이며, 꼼짝도 않는 사족에는 벌써 사색(死色)이 내려덮었다. 목숨은, 발딱발딱 가쁜 숨을 쉬는마다 달싹거리는 숨통에만 겨우 걸려 있다. 몇 분도 아니요, 초(秒)를 가지고 기다릴 생명이다.
경쟁이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윗목으로 벽을 향하여 경상 앞에 초연히 발을 개키고 앉아 경만 읽는다.
경상으로 모서리 빠진 소반 위에는, 밥이 한 그릇에 콩나물 한 접시, 밤 대추 곶감을 얼러서 한접시, 북어가 세 마리 이렇게가 음식이요, 돈이 일 원짜리 지전으로 두 장, 쌀이 두 되는 실히 되겠고, 소지(燒紙)감으로 접은 백지가 석 장, 일 전짜리 양초에 불을 켜서 꽂아 놓은 사기접시, 그리고 소반 옆으로는 얼멍얼멍한 짚신이 세 켤레, 대범 이와 같이 차려 놓았다.
병자한테 붙어 있는 귀신더러 이 음식을 먹고, 이 짚신을 신고, 이 돈으로 노수를 해서 딴 데로 떠나라는 것이다.
이렇게 차려 놓은 경상 앞에 가서 경쟁이는 자못 엄숙하게 북을 차고 앉아 경을 읽는데…… 북을 얕게 동당동당 동당동당 울리면서 청도 북대로 고저와 박자를 맞추어 나직하고 느릿느릿,
“해-동조-선 전라-북도 군산부-산상- 정 권씨-댁…….”
무엇이 어쩌구저쩌구 한바탕 주욱 외우다가는, 목소리를 일단 위엄 있이,
“오방신자앙-”
처억 불러 놓고서 이어, 북도 빨리, 청도 빨리 몰아 들입다 귀신을 불러 대는데, 아마 세상 귀신이란 귀신은 있는 대로 죄다 나오는 모양이다. 게다가 계급도 가지각색이요, 개명을 톡톡히 한 경쟁이든지, 심지어 ‘한강철교 연애하다가 빠져 죽은 귀신’까지 불러 댄다.
대체 이렇게 숱해 많은 귀신들이, 한 부대(一個部隊)는 넉넉한가 본데, 겨우 그 앞에 차려 놓은 것만 가지고 나누어 먹자면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이 날 텐데, 본시 귀신이란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런지 저희끼리 오쟁이를 뜯는 꼴은 볼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귀신 대중(大衆)을 불러 놓더니 그 담에는 갑자기 북소리와 목청을 맹렬하게 높여, 그러느라고 발 개킨 엉덩이를 들썩들썩, 팔을 번쩍번쩍 쳐들면서 크게 꾸짖어 가로되,
“너 이 귀신들!…… 빨리 운감을 하고, 당장에 물러가야 망정이지, 그러지 안할 양이면, 신장을 시켜 모조리 잡아다가, 천리 바다 만리 바다 쫓어 보내되, 평생을 국내 장내도 못 맡게 하리라아.”
고 냅다 풍우를 몰아치듯 추상 같은 호령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대문을 걸찍하게 읽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하고, 그러자 마침 먹곰보네 아낙이 숨이 턱밑까지 차서 허얼헐 판자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의 등뒤에서는 승재가 낡은 왕진가방을 안고 따라 들어오고, 또 그 뒤에는 명님이가 따라섰다.
주인과 승재가 방으로 들어서도, 경쟁이는 모른 체 그냥 앉아 경만 읽는다.
“아가아, 업동아!”
먹곰보네 아낙은 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린것의 얼굴 위에 엎드려 끌어안을 듯이 들여다본다.
어린것한테서는 싸늘하니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눈을 떠본다든지, 입술을 달싹거린다든지, 하다못해 손끝을 바르르 떤다든지.
승재는 대번 보고서 짐작은 했지만 아무려나 이왕 온 길이니 청진기를 꺼내서 귀에 걸고 다가앉는데, 먹곰보네는 그제야 놀란 눈을 흡뜨고,
“아이구머니 이것이 죽었나 베!”
하면서 당황히 서둔다.
승재는 어린것의 앙상한 가슴을 헤치고 청진기로 들어 보는 것이나 가느다랗게 담 끓는 소리만 들리는 둥 마는 둥, 맥은 아주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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