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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32)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1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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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네플류도프는 하숙으로 돌아와서 책상위에 놓여 있는 누님의 편지를 보자, 곧 그녀의 호텔로 찾아갔다. 저녁 때였다.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별실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나탈리아 이바노브나만이 동생을 맞았다. 그녀는 허리가 잘록한 검은 비단 야회복을 입고 까만 머리를 지져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로 높이 틀어올리고 있었다. 같은 연배의 남편에게 좀더 젊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동생을 보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옷자락을 살랑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그를 맞았다. 남매는 키스를 나누고 미소를 지으면서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롭고 의미심장한 진실이 깃들인 시선을 주고받았으나, 그들은 진실이 깃들이지 않은 말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남매는 어머니가 별세한 이후 한번도 만난 일이 없었다.

"누님은 몸이 나고 더 젊어지셨군요."하고 그는 말했다. 누님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넌 좀 여위었구나."

"그런데 매형은?"하고 네플류도프는 물었다.

"지금 쉬고 계신단다. 간밤에 주무시지 못했어."

할 말은 태산 같았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을 서로 눈으로 얘기했다.

"아까 너한테 갔었단다."

"네, 알고 있어요. 난 집을 나와 버렸어요. 혼자 살기엔 너무 넓고 쓸쓸해서. 그리고 난 아무것도 소용 없으니 누님이나 모두 가져가세요. 가구든 뭐든."

"글세, 아그라페나 페트로브나도 그러더라. 거기에도 들러 봤어. 고맙긴 하지만..."

이 때 호텔의 하인이 은제 찻잔을 날라왔다. 그들은 하인이 찻그릇을 늘어놓는 동안 잠자코 있었다. 나탈리아 이바노브나는 테이블 앞에 놓인 안락의자에 가서 묵묵히 차를 따랐다. 네플류도프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드미트리, 난 모든 걸 알고 있단다." 나탈리아는 흘끔 동생을 보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누님이 알고 계시다니 기쁩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해 온 여자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탈리아 이바노브나가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조그마한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누님의 얘기를 잘 듣고 잘 대답하려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마슬로바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일어났던 기분은 아직 그의 영혼을 조용히 기쁨과 모든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넘치게 해주었던 것이다.

"난 그 여자를 바로잡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바로잡으려는 거예요."하고 그는 대답했다.

나탈리아 이바노브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아니고도 다른 방법이 있을 테네."

"그래도 난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뿐만 아니라 결혼을 함으로써 내가 남에게 소용이 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하고 나탈리아 이바노브나는 말했다. "네가 행복해지라고는..."

"문제는 내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 물론 그렇겠지. 그런 그 여자에게 양심이 있다면 그 여자는 행복해 질 수가 없을거야. 또 그것을 바랄 수조차도 없을 거고."

"그 여자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알겠어.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은..."

"인생이 뭡니까? 마땅히 우리가 해야할 일을 요구할 뿐, 인생은 그 밖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과 입언저리에 잔주름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누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난 모르겠다." 그녀는 한숨을 내귀면서 말했다.

'가엾게도! 어쩌면 저렇게 변해버렸을까?' 네플류도프는 결혼하기 이전의 누님을 상기하고, 자기가 아직 어렸을 때 맛보던 상냥하던 누님의 마음씨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때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바싹 쳐들고, 널찍한 가슴팍을 내밀고, 안경과 대머리와 검은 구렛나루를 번쩍이면서 경쾌한 걸음걸이로 빙그레 미소를 띠며 방으로 들어왔다.

"참, 오랜만이군요." 그는 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걸혼 후 얼마동안 두 사람은 친밀한 '자네', '형님'이라는 말을 쓰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그나치 니키포로치는 가볍게 안락의자에 앉았다.

"얘기하는 데 방해가 도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말이나 행동을 누구에게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과 털투성이 손을 보고, 보호자연하는 자신만만하고 너그러운 말투를 듣자, 부드러웠던 네플류도프의 기분은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

"우린 지금 동생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하던 참이예요."하고 나탈리아 이바노브나가 말했다. "차를 드시겠어요?" 그녀는 찻잔을 들면서 이렇게 물었다.

"음, 그런데 그 계획이란 어떤 것이지?"

"실은 내가 죄를 끼친 여자가 시베리아로 가게 되어 같이 따라갈까 합니다."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따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이 있다고 하던데."

"네, 그 여자만 승낙한다면 결혼할까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나 별 지장이 없다면 동기를 이야기해 줄 수 없겠어요? 나에겐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그 동기라는 것은, 그 여자가... 타락의 길로 접어든 그 첫걸음이..." 네플류도프는 적당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동기는 내게 죄가 있는데 그녀가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벌을 받았다면 그 여자도 죄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 여자는 전연 죄가 없습니다."

네플류도프는 필요 이상을 흥분하면서 그 경위를 얘기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재판장의 실수였군요. 그리고 배심원의 답신이 소홀했던 것에도 원인이 있고요. 그러나 이런 경우를 위해서 대심원이 있지 않던가?"

"대심원에서도 기각됐습니다."

"기각되었다면, 요컨대 충분한 상소 이유가 없었던 게로군." 대심원의 결과는 언제나 진실하다는 속론을 믿고 있는 듯, 이그나치 니키로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대심원은 사건의 본질적인 심리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판결에 잘못이 있다면 황제에게 청원해야 해요."

"수속을 했습니다만, 전혀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법무부에 조회가 가면 법무부는 대심원에 조회하고 대심원은 자기네 판결을 되풀이할 것입니다. 결국 전과 마찬가지로 죄없는 여자가 처벌되고 마는 겁니다."

"법무부가 대심원에 조회할 리가 있을까요?"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관대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재판소에서 상세한 것을 요구해서 잘못을 발견하면 그에 의해 새로 판결을 내려요. 그리고 죄 없는 자는 절대로 형벌을 받지 않아요. 어쩌다 받는다 해도 극히 드문 일이지요. 역시 벌을 받는 것은 죄가 있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와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네플류도프는 매형에 대한 반감을 품으면서 말했다. "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람들의 과반수가 무죄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째서지요?"

"문자 그대로 무죄니까요. 이를테면, 그 여자는 독살 사건에 누명을 쓴 것이고, 요즈음 내가 만난 농부는 자기가 범하지 않은 살인 사건에 말려 있어서 무죄이며, 그리고 방화범으로 잡혀 있던 모자도 무죄였습니다. 이 모자는 집주인이 저지른 방화 때문에 하마터면 유죄 판결을 받을 뻔했습니다."

"그야 물론 재판상의 착오란 항상 있어 왔고, 또 앞으로도 있을 테죠. 인간이 만든 제도니까 완벽하다고 할 수야 없는 겁니다."

"그리고 죄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이 자라난 특정한 환경 때문에 자기들이 저지른 행위를 범죄로 보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례지만, 그건 좀 지나친 편견인 것 같군요. 어떤 도둑이라도 도둑질이 나쁘다,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은 사람의 도리에서 어긋나는 행위이다, 하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다소 남을 멸시하는 듯한 자신 만만하고 침착한 미소를 디면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말했다. 그 미소는 네플류도프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아뇨, 그들은 모릅니다. 그저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 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장주가 임금을 착복해서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있는 일이며, 정부가 숱한 관리를 사용해서 조세라는 명목으로 계속 그들의 돈을 수탈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벌써 무정부주의로군요."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처남의 말을 조용히 이렇게 단정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단지 사실대로 말했을 따름입니다." 네플류도프는 말을 계속했다. "그들은 정부가 자기네들의 돈을 수탈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힐 토지를 우리네 지주들이 그들에게서 빼앗고 그들을 약탈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빼앗긴 토지에서 농민들이 자기네 난로에 땔 나뭇가지를 꺾어 가면 우리들은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도둑이라고 단정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둑은 그들이 아니라 실은 그들의 토지를 훔친 자들이며, 도둑을 맞는 것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자기네들의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잘 모르겠군. 비록 안다고 하더라도 찬성할 수가 없군요. 토지는 그 누구의 토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만일 당신이 토지를 분배해 준다면..."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네플류도프가 사회주의자이며 또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은 모두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해 줘야 한다는 것에 있다고 믿고, 이렇게 분배하는 법은 몹시 어리석은 것이며, 또 그 어리석음을 쉽사리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 만만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가령 오늘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해 준다고 하더라도, 내일에는 그 토지가 근면하고 수완있는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아무도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생각은 안합니다. 토지는 아무도 사유해서는 안 되니까요. 사거나 팔거나 빌리거나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유권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거예요. 기 사유권이 없이는 토지를 경작하려는 따위의 흥미는 애당초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사유권을 없애려면, 우린 야만 시대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토지 사유에 대한 갈망은 토지가 필요한 증거라는 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일반론을 되풀이하면서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마치 그것에 대한 권위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그 반대입니다. 아무도 토지를 소유하지 않게 되면 오늘날과 같이 지주라는 인간들이 건초위에 누워 개처럼 아무일 하지 않고 자기는 토지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토지는 방치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이봐요.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그건 정신 나간 짓이야. 오늘날에 와서 토지 사유제를 폐지할 수는 없는 일이오. 그건 당신의 낡은 도락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겠는데..."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의 얼굴은 청백해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이 문제는 그의 마음에 자극을 주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이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에 나서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도록 권하고 싶군요."

"당신은 내 개인 문제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특별한 지위에 놓여 있는 우리들은 모두 이 지위에서 생기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며 또 우리가 태어나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활 상태를 유지하여 자손들에게 전해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실례지만,"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가로채이지 않으려고 이그나치 니키포로비치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나 자기 자식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의 자식들은 생활이 보장되어 있으며, 나 자신도 가족이 먹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벌어 놓았어요. 자식들도 걱정 없이 살 수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기탄없이 말하겠는데,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개인적인 이해 관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당신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더 깊이 생각하고, 책이라도 좀 읽고..."

"아니, 내 문제는 나 자신이 해결하게 내버려두세요. 무슨 책을 읽어야하며 무엇은 읽지 않아도 좋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네플류도프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했다.

그의 두 손은 싸늘해졌으며, 자신을 자제할 수 없을 것 같아 말없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